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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앞에서 타오른 장애해방열사들의 뜻 “우리가 이어나가자”
최옥란 열사 17주기… 2019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 ‘기억하라, 투쟁으로!’
장애해방열사와 희생자 넋 기리며 그들이 남긴 뜻 계승 다짐해
등록일 [ 2019년03월27일 06시56분 ]

26일 저녁,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 도로에서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 ‘기억하라 투쟁으로’가 열렸다. 420공투단은 열사들이 남긴 유지를 낭독한 후 장작더미에 하나씩 불을 밝혀 이들의 투쟁이 현재진행형임을 밝혔다. 사진 박승원.
 

26일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중증장애인으로, 빈민으로 태어나 37년간 고된 삶을 살다가 종국에는 죽음을 선택한 최옥란 열사,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 된 날이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은 최옥란 열사 17주기에 맞춰, 2019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를 26일 저녁 7시 30분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 도로 앞에서 치렀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최옥란 열사를 비롯한 12명의 장애해방열사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거주시설 등 장애인을 옥죄는 제도들로 인해 죽어간 24명의 장애인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그들이 남긴 뜻을 계승하자고 다짐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최옥란, 최정환, 이인석, 김종대, 김주영, 조성배 열사가 남긴 유지를 빌려 살아있는 자들에게 투쟁을 촉구했다. 낭독이 끝날 때마다 장작더미에 불을 밝혀 이들의 투쟁이 결코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음을 형상화했다.

 

추모제에서 열사들의 투쟁 정신을 상징하는 장작더미가 불타오르고 있다. 사진 박승원
26일 저녁,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 도로에서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 ‘기억하라 투쟁으로’가 열렸다. 사진 박승원
 

- “내게서 이뤄지지 않은 모든 일들을 이뤄주십시오”

 

최옥란 열사는 1966년 태어났다. 중증 뇌성마비장애가 있었고, 가난했으며, 배움에 대한 열의가 있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갈 수 없었다. 1989년 장애인 노동권 투쟁으로 장애운동에 뛰어들면서 이후 그의 삶은 장애인 노동권과 이동권 투쟁의 최전선에 머물렀다.

 

그는 당시 1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생계비 26만 원을 받았다. 여기에 주거급여 2만 3000원과 장애수당 4만 5000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매달 병원비로 26만 원을 고스란히 써야 했고, 16만 원인 월세를 감당하지 못했다. 노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려고 했지만, 소득이 생겼다고 수급권 탈락의 위기를 겪었다. 결국 그는 생계급여 26만 원 전액을 국무총리에게 반납하고, 기초생활수급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며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이렇게 투쟁의 의지를 불태우던 그였지만 세상은 더 가혹했다. 이혼 후 아이의 양육권을 행사하기 위해 십시일반 모았던 700만 원 탓에 그는 수급권에서 재차 탈락하게 되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 열사의 피맺힌 절규에도 가난한 자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도 송파 세 모녀, 망우동 모녀 등 가난한 자들의 죽음이 잇따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가난한 자에게 이 세상은 여전히 살아내기 어려운 곳이다.

 

이라나 장애인문화공간 활동가는 최 열사를 대신해 “부탁이 있다. 내게서 이뤄지지 못했던 것을 이뤄 달라”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을 간곡히 요청했다.

 

이라나 장애인문화공간 활동가가 최옥란 열사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낭독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내 한 몸 죽어도 좋다, 복수해 달라”

 

최정환 열사는 1958년 태어났다. 그는 척수장애로 어려서부터 보육원에 맡겨졌다. 어릴 때는 다방을 돌며 껌과 수세미를 팔았다. 그러다 21세에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마저 다치게 된다.

 

27세에 신문광고를 통해 아버지를 찾았으나 아버지는 그를 거부했다. 그런데 호적상 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었던 그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카세트테이프 노점상을 해야 했다. 

 

서초구청은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으로 최 열사의 왼쪽 다리까지 쓸 수 없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폭력 단속으로 빚어진 일임에도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이때 그를 도운 건 장애인 노점상들이었다.

 

그가 다시 카세트테이프 노점을 시작했을 때, 서초구청은 다시 그의 전부인 스피커와 배터리를 빼앗았다. 그는 돌려달라고 했지만, 도리어 모욕만 당했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붙였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최정환 열사를 대신해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내 한 몸 죽어도 좋으니, 복수해 달라”고 외쳤다.

 

- “시설을 폐지해 모든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

 

언어장애 등이 있던 이인석 열사는 2007년 2월, 같이 살던 아들이 군대에 가면서 석암베데스다요양원 시설에 입소하게 됐다. 지자체에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방편을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시설 입소를 권유한 것이다. 그러나 시설에선 극심한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었고, 당시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시설 내 인권침해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구성한 석암비상대책위원회에 열사도 함께하게 됐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투쟁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09년 초, 아들이 제대하면서 그는 다시 지역사회에서 나와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으나 그해 3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이 열사를 대신해 “내가 느꼈던 행복을 모든 장애인이 느낄 수 있도록 시설을 폐지해 모든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이인석 열사의 유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 “열사들이 바꾸고자 했던 세상 요원하지만, 투쟁으로 이루자”

 

열사들이 꿈꿨던 세상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시설’이 없는 곳이었다. 참가자들은 열사들이 바랐던 세상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지금 우리는 열사들이 남기고 간 뜻을 이어받아, 시설과 가정에만 있어야만 하는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투쟁하고 있다”며 “싸움도 노숙도 힘들고 고되겠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염원하며 불꽃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 사진 박승원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기획재정부가 장애인복지예산을 다 잘라버려 우리가 이렇게 호통을 치고 투쟁하고 있는데 열사님들에게는 어쩌면 살고 싶었던 세상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며 “열사님들이 남긴 염원이 풀릴 때까지,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우리 권리의 당당함을 찾을 때까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투쟁하자”고 독려했다.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단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전화를 통해 “열사마다 삶이 다르고 사는 곳도, 경험도 다르지만 오로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았고, 이에 온몸으로 저항했다”며 “이렇게 우리가 모인 이유도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장애등급제가 ‘진짜로’ 폐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만큼 투쟁의 의지를 각 부처에 제대로 전달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제는 참가자들의 분향과 헌화로 마무리됐다. 이후 이들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염원하며 젖은 솜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추모제를 마친 이들은 기획재정부 청사 도로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장애해방열사들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사람들. 사진 박승원

장애해방열사들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사람들. 사진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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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현덕 기자/사진 박승원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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