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1월19일tue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홍성훈의한번물구나무서보겠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기해의존선언서(己亥依存宣言書)
자부담 미납됐다고 하루아침에 활동지원 끊어버린 복지부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 의존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한다면?
등록일 [ 2019년03월28일 18시33분 ]

- 만약 우리가 매달 ‘지구 부담금’을 내야 한다면?

 

미세먼지 때문에 목도 칼칼하고 기분도 꿀꿀한데 이런 상상이나 해보자. 어느 날, 한 공룡기업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AI를 개발한다. AI의 업무는 지구 생태계를 망치는 주범인 인간들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인데, 빅데이터를 종합하여 개인이 한 달가량 배출한 오염 물질의 양을 계산한 뒤 국세청에 넘긴다. AI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국세청은 또다시 복잡다단한 산술을 거쳐 국민 개개인에게 세금 고지서를 날린다. 이 세금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딱히 생각나지 않으니 그냥 ‘지구 부담금’이라고 부르자. 이 지구 부담금은 전 국민에게 부과된다. 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 부과되는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발생하는 갖가지 쓰레기도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아이의 몫은 가족 또는 공동체가 감당해야 한다.

 

지구를 의미하는 동그란 바닥에 초록 잎사귀가 가득한 나무가 자라있다. ⓒ픽사베이
 

그런데 지구 부담금이 날로 높아져서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어떻게 될까? 국세청은 우선 그의 가족 앞으로 납세 독촉장을 보낸다. 그가 가족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한들 동사무소에서 전산 한 번만 두드리면 금세 찾아낼 수 있다. 한국은 ‘IT 강국’이니까 이런 일쯤은 식은 죽 먹기다. 그가 가족과 어떤 사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설령 십 년 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았어도 전혀 문제 될 일은 아니다. 어쨌든 정부는 세금만 거둬들이기만 하면 될 테니 말이다. 만약 그의 동생에게 근로소득이 있다면, 다시 말해서 동생이 일해서 돈을 벌고 있다면 여지없이 그의 앞으로 세금이 청구된다. 차오르는 수치심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 그는 동생에게 세금을 대신 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이를 어쩐담? 동생은 거부 의사를 밝힌다. 본인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가족 수에 비례해 부과되는 세금이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생활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다른 가족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결국, 가족에게 외면받은 그는 거의 자포자기하기에 이른다. 마음을 다잡고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봐도, 결국 체납자가 된다. 국세청은 독촉장을 두어 번 더 발송한 다음 체납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입력한다. 체납자는 일종의 낙인인데 이 낙인이 붙여진 사람은 거의 ‘사회적’ 식물인간이 된다.

 

AI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이때부터다. AI는 체납자인 그를 사회에서 지우는 작업에 돌입하는데 첫 단계가 전국의 모든 전산망에서 접근 금지 명단에 그의 신원(이 신원에는 생체정보도 포함되어 있다)을 올리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현금을 갖고 있다 한들 동네 구멍가게에서 음료수 하나 사 먹을 수도 없다. 전국의 모든 전산망이 일괄적으로 그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형벌이다. 정부는 지구 부담금을 내지 못한 그를 지구 자원만 축내는 존재로 인식한다. 다시 ‘시민’이 되려면 체납한 지구 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진다. 공원 벤치에 앉아 가만히 있기만 해도 그가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측정되고 그것은 다시 지구 부담금으로 환산되어 세금 고지서에 착실하게 쌓이기 때문이다.

 

몇몇 극단적인 정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일컬어 ‘세금충’, ‘환경 파괴충’이라는 용어로 운운하며 조롱하고 혐오한다. 어느 날 아침에 끔찍한 벌레가 되어 사랑하는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는 내용의 카프카 소설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처럼, 그는 집안에서만 머물다가 서서히 죽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내가 여태까지 한 이 이야기의 몇몇 부분들은 우울한 미래를 그린 SF 영화 장면을 몇 개 빌려와서 내 마음대로 꿰맞춘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 현실에서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사실 ‘그’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다.

 

- 꽃길인 줄 알았던 독립생활… ‘자부담 브레이크’ 

 

3년 전부터 나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생활하고 있다.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면서 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는데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변화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집에서 학교로 통학할 때에는 하루 8시간밖에 이용할 수 없었는데 거처를 기숙사로 옮긴 이후 그 두 배가 늘어난 16시간을 쓸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주말엔 12시간씩이나 가능했다. 갑작스러운 ‘시간 벼락’을 맞아 어리둥절하고 있던 나에게 동사무소 직원은 상냥하게 말했다. 내가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고 기숙사로 주소 이전하면서 독립 가구가 되었기 때문에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대량 늘어난 것이라고. 그리고 말을 마치고 나서 축하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휠체어에서 내려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진 못했고, 대신 고개를 최대한 수그려 감사하다는 표시를 꾸벅했다. 감사 인사를 받은 직원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시간 벼락’을 맞은 나는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마치 벼락부자가 된 졸부처럼, 태연한 척을 해도 어딘가 어색했다. 어쨌거나 나는 늘어난 시간에 맞춰 추가로 두 분의 활동지원사를 뽑았고 현재 평일 오전과 오후 그리고 주말 이렇게 시간을 나눠서 세 명의 활동지원사 분들에게 서비스를 받고 있다.

 

단지 서비스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지만 내 생활은 몰라보게 윤택해졌다. 가장 큰 장점은 아무 때나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활동지원사가 왔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정 급할 때는 친한 학교 선배나 동기에게 염치를 무릅쓰고 화장실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부탁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두 시간 동안 소변 참는 명상법’ 따위를 궁리하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소변 배출을 유발하는 물, 커피는 절대 금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신력이 약한 인간인지라 커피의 유혹에 넘어가기 일쑤였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커피 향을 맡으면 나는 그길로 달려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30분이 채 안 돼 잔뜩 부풀어 오른 방광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이제는 당당히 아메리카노나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바깥에 있는 동안은 대부분 활동지원사가 옆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나의 활동지원사 ‘아저씨’(오른쪽)와 함께. ⓒ홍성훈
 

하지만 꽃길로만 이어질 줄 알았던 나의 독립생활기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활동지원사 분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일이었다. 특히 나에게는 열여섯부터 스물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 함께 해온 활동지원사 분이 있다. 그분은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는 그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기숙사로 거처를 옮기면서는 아저씨가 해야 할 업무가 확연하게 늘어났다. 빨래부터 시작해서 방 청소까지 집에서 주로 어머니가 도맡아 해오던 일까지 떠안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일하셨다. 물론 나와 얼굴 붉히면서 싸우는 일도 잦아졌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와 일상을 함께 공유한다는 건 꽁꽁 숨겨둔 나의 밑바닥까지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니까. 그건 다른 활동지원사 분들도 마찬가지였고, 내 밑바닥을 드러낼수록 나는 아저씨를 비롯한 세 분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햇살이 코밑까지 스며드는 아침 시간이었지만 나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전날 밤 잠자리에 눕자마자 약간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몸살은 아예 내 몸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옆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나는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어머니에게 연락했고, 어머니는 부랴부랴 기숙사로 달려온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물에 젖은 솜마냥 몸이 무거워 한번 뒤척일 때마다 끙, 소리를 냈고 어머니는 내 이마를 한번 만지더니 쯧, 하고 혀를 찼다. 끙과 쯧이 비트로 엮이며 리드미컬하게 반복되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 무슨 짓을 했길래 이 지경이니? 오늘은 아저씨도 안 계신데 어쩐다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이야기인즉 오전 7시경에 아저씨가 왔는데 일종의 출근부 기능을 하는 바우처 카드를 찍어보더니 활동지원 시간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단다. 알고 보니 지난달 말부터 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내는 자부담금이 올랐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기존에 내던 요금을 자동이체한 것이다. 너무 무심하게도 복지부에서는 인상된 자부담금이 들어오지 않아 활동지원서비스를 중지했고 고로 내게 주어져야 할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는 한 푼의 소득조차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자부담금은 매번 인상되었다. 부모님이 돈을 벌고 있다는 그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집에서 몸만 빠져나왔지 경제적으로는 부모님에게 기대고 있었다. 한창 부풀어 오른 내 ‘독립’의 꿈은 너무도 쉽게 꺼져버렸다.

 

게다가 어머니는 서비스 시간이 없어 당황해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싫은 소리 좀 했단다. 도대체 어제 얘를 어떻게 하셨길래 앓아누워 있느냐고 좀 따졌단다. 곪은 상처에 제대로 소금을 뿌린 격이었다. 아저씨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어디론가 가버렸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조금 황당했지만, 아저씨에게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복지부가 아무 말도 없이 인상한 자부담금을 내지 못했기에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저씨에게 무상으로 일을 부탁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활동지원서비스도 엄연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감정이 실타래처럼 엉키고 엉켰으니, 참으로 난감한 문제였다.

 

앓아누워 있는 동안 생각을 곱씹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이 ‘괘씸함’은 아저씨가 아니라 요상한 이 나라의 복지정책으로 향해 있었다. (물론 나는 찌질한 인간인지라 아저씨에게 서운한 감정이 안 들었다고는 못하겠다)

 

한번 생각해보자.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일하든 놀든 할 테니까. 그런데 어느 날 정부에서 모든 국민에게 이 일상생활을 하려면 돈을 내라고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비용, 이불 개는 비용, 샤워하는 비용, 심지어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 비용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동마다 값을 매기고 매달마다 비용을 청구한다. 마치 우리가 앞에서 본 AI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인상된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비용을 낼 수 없는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당신의 가족 중 한 명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어 당신에게는 비용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무한정 개인의 책임, 또는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당신이 끝까지 비용을 내지 않는다면 정부는 모든 지원을 끊어버린다. 또 소설 쓰고 있냐고? 이건 소설이 아니다. 적어도 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들에게는 오늘도, 내일도 반복해서 겪어야 하는 상황이다.

 

-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데… 의존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한다면?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정부 부처는 보건복지부다. 복지부는 이 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도 일정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 당사자가 돈을 낼 능력이 없다면 자부담은 그 가족에게 전가된다. 여기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을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장애인에게는 그를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어야 하며, 가족은 그를 무한히 책임져야 한다. 활동지원서비스 자부담 역시 가족이 장애인 구성원을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일환책으로 볼 수 있다. 소득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여지없이 자부담 대상이 된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립’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운용되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들을 그 가족에게 더욱 ‘의존’하게 만든다.

 

지난 13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4개 장애인단체는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본인부담금 폐지’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들이 본인부담금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자부담을 폐지하라는 우리들의 목소리에 복지부의 답변은 이렇다. 만약 복지부가 그 비용을 감당하려면 활동지원제도에 쓰이는 예산을 대폭 늘릴 수밖에 없는데 그럴 돈이 없단다. 또한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되어 활동지원사들의 임금도 올려줘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단다. 매년 반복되는 복지부의 단골 변명이다. 복지부의 변명은 얼핏 들으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변명은 어디까지나 장애인들을 복지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아주 편협한 시각을 담고 있다. 복지부의 주장에 따르면,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을 ‘구매’해야 비로소 누릴 수 있다.

 

일상생활을 누리는 건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쟁취해야 할 권리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그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때만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살아가는 데 단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해도 상관없을까? 나는 법률 지식에 문외한이지만 최소한 우리 헌법은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따로 분류하고 있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우리 헌법에 그런 조항이 있다면 나에게 연락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보태자면, 흔히 장애 운동에서 활동지원제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그 근거로 장애인의 ‘자립’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나는 여기에 또 다른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이렇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상당수가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 경제적 형편이 받쳐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낼 수도 있고, 딱히 가족과 떨어져 지낼 이유가 없어 자립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들에게 활동지원제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필요하다. 장애인은 가족에게 ‘도움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가족도 평생 장애인 구성원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자부담 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는 우리가 우리만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활동지원사들의 권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활동지원사들의 임금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 임금만으로 생활하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고 노동권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을 보장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지 장애인 당사자의 책임이 아니다. 만약 복지부가 활동지원사들의 임금에 대해 그렇게 걱정거리가 많다면 국가에서 활동지원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장애인 당사자인 우리도 활동지원사의 권리를 위해 연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서로 의존하는 존재이기에 같이 싸워야 한다.

 

사람은 절대 혼자의 힘으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차려준 밥을 먹고 누군가가 낸 길을 간다. 그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그러한 의존들이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된다면 삶의 질이 너무 팍팍해지진 않을까?

 

올해로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다. 당시 민중은 일제의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청껏 대한독립을 외쳤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민중은 나라의 독립을 외쳤을 뿐 아니라 ‘나도 사람이오’ 하는 운동이고, 다른 이들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운동을 했다고 한다. 과연 함석헌 선생다운 해석이다. 그렇다면 100년이 지난 지금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를 스스로 새롭게 정의하는 운동을 시작하면 어떨까?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며 다른 사람이 받는 억압에 같이 맞설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운동 말이다.

 

그 운동의 선언문을 ‘기해의존선언서(己亥依存宣言書)’라고 불러도 좋겠다. 아, 아저씨와는 어떻게 됐냐고? 뭐 항상 그렇지만 내가 느꼈던 서운한 감정은 하루도 안 가 저절로 풀렸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딱히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그렇지만 언제나 의존할 수 있는 ‘그럭저럭’한 사이로.

올려 0 내려 0
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자립 막는 ‘활동지원 자부담’은 차별” 장애인 271명 인권위에 집단진정
사회생활하려면 돈 내라? 장애인에겐 부당한 ‘활동지원 본인부담금’
"장애인 옥죄는 자부담, 확실하게 끝장내자"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상추와 당근즙 (2019-05-31 11:18:12)
차도를 달리는 휠체어, 그러나 ‘우리의 이동’이 곡예가 되지 않으려면 (2019-03-04 16:22:06)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무엇이 독일 나치의 장애인 학살을 허락했을까
1939년 9월 1일 독일 제3 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Adolf Hi...

다가오는 ‘디지털 복지 디스토피아’의...
미래로 유예된 빈곤 해결, 오늘 죽어가는...
길을 잃고 헤매다 보니, 길을 찾았어요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