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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는 ‘비정상인’ 승리의 역사될 것”
노들장애학궁리소 차담회, '배틀그라운드' 북토크로 진행
“우생학과 '비정상인' 수용의 역사 끊는 시작이 낙태죄 폐지”
등록일 [ 2019년04월04일 19시36분 ]

3일 오후 7시, 책 ‘배틀그라운드’ 저자들이 노들장애학궁리소 차담회에 초대되었다. 빨간색 표지의 ‘배틀그라운드’ 책이 앞에 놓여있고, 왼쪽에서부터 황지성 장애여성연구활동가,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조미경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장. 사진 최한별

 

오는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할 예정이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규정하고 시술 의사의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낙태죄 폐지' 요구에 불이 붙었다. 2016년 10월 15일 폴란드 '검은 시위'와 연대하여 서울 종로에서 진행된 '낙태죄 폐지 촉구 검은 시위'를 시작으로 대중시위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 운동 초반까지만 해도,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적용 예외 규정을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로 확대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낙태죄 폐지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여성의 재생산'권'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통제권, 즉 모성에 대한 선택권에 머무르기도 했다. 장애여성공감(아래 공감)은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에 공감은 직접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성과 재생산포럼'이다. 공감은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와 당사자들을 초대해 장애여성의 재생산권과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여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연대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그리고 '성과 재생산포럼'에서 낙태죄를 둘러싼 입체적 논의를 진행하고 이를 담은 책, '배틀그라운드'가 지난해 12월 출간되었다. 낙태죄 위헌 결정을 앞둔 한국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의 의미와 그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데 씨앗이 되어줄 수 있는 다양한 논의가 담긴 이 책은 어느새 2쇄를 찍었다. 2쇄가 처음 나온 날인 3일 오후 7시, 배틀그라운드 저자들이 노들장애학궁리소 차담회에 초대되었다.

 

황지성 장애여성연구활동가는 '건강한 국가와 우생학적 신체들'을, 그리고 조미경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장은 '수용시설에 감금된 성과 재생산 권리'를 '배틀그라운드'에 각각 실었다. 이날 차담회에서 두 저자는 자신의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독재정권, 헤게모니 유지위해 우생학에 기반한 '불능' 인구 양산하고 재생산권 박탈

 

황지성 장애여성연구활동가가 '건강한 국가와 우생학적 신체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최한별

 

황지성 연구활동가는 우생학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정상/비정상을 분리하는 것이 어떻게 국가 통치술로 활용되었는지를 짚었다.

 

황 활동가는 근대국가가 '통계'로 인구를 통치하기 시작했는데, 통계를 통해 인구 간 차이가 드러나게 되었고, 여기서 특정 집단에 대한 정상/비정상의 구분이 통치에 활용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생학은 인구 간 차이가 사회체제의 책임이 아니라 '생물학적/종적으로 열등한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손쉽게 설명함으로써 사회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편리한 통치수단으로 등장했다. '비정상' 인구는 곧 '불능의 존재'로 분류되어 재생산권, 즉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국가 체계를 유지하는 인구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한 신문 기사에는 '영흥감화원'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다. 기사에서는 "지능 박약, 정의 불량인 아이들이 감화원에서 갱생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황 활동가는 "영흥감화원은 최근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선감학원'과 같은 수용소로, 지능 박약이나 정의 불량과 같은 불투명한 기준에 따라 선별되고 갇혀 극심한 인적 수탈에 동원되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조는 일제강점기 종료 이후, 한국전쟁을 지나 냉전 시기에도 한국에서 지속되었다. 부랑아는 격리 수용되거나 해외입양사업의 '수단'이 되었다. 1954년과 56년에 나온 '취약인구보고서'에서는 나병 환자, 혼혈아, 미망인, 약물 중독자, 전염성 감염질환 보균자, 매춘여성, 장애인, 상이 병사 등이 묶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황 활동가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박정희 개발독재 정권의 우생학적 통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당시 서구 국가들은 중국과 소련의 사례를 통해, '빈곤한 제3세계 국가에서 인구가 급증하면 공산화가 될 위험이 커진다'는 전략적 판단하에, 이러한 국가들의 인구조절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1953년 제정된 형법상 낙태죄가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가족계획과 출산 조절의 명분이 될 '모자보건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모자보건법 제8조(현재 제14조)에는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로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를 들었고, 시행령에서는 이 질환의 종류로 △유전성 정신분열증 △유전성 조울증 △유전성 간질증 △유전성 정신박약 △유전성 운동신경 원질환 △현저한 유전성 범죄 경향이 있는 정신장애 등을 특정했다. 황 활동가는 "이러한 내용만 보더라도 당시 모자보건법 낙태 허용 조항이 실제로 생물학적•과학적인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생산가능/불능의 집단을 가로지르는 정상/비정상의 기준은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것이었는데, 1999년 8월, 당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이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모자보건법 낙태 허용 조항’에 따라 장애인거주시설인 충남 정심원에서 거주인들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수술이 이뤄졌다. 특히, 해당 시설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부랑인, 알콜중독자, 정신장애인 등이 두루 수용되어 있었고, 이들도 모두 강제불임시술 대상자가 되었다. 황 활동가는 "흔히 우생학적으로 임신 중절이 허용되는 집단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자보건법에 따라 강제불임시술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황 활동가는 "이런 식으로 국가가 장애인을 비롯해 토막민, 불량 소년소녀, 빨갱이, 매춘부, 부랑인 등의 인구를 장애화/불능화하는 것은 마음껏 노동을 착취하고, 일하다 죽어도 그만인 인구집단을 구축하는 데 있었다"라며 "그리고 이 '불능'의 인구가 남성중심주의•제국주의•국가주의•인종주의•자본주의 헤게모니를 떠받치도록 했다"고 분석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이 탈시설 운동과 만나야 하는 이유

 

조미경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장이 '수용시설에 감금된 성과 재생산 권리'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최한별

 

조미경 소장은 탈시설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시설에서 장애 여성들을 만난 경험에서 확장된 고민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조 소장은 국가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장애인, 특히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는지, 그리고 낙태죄 폐지가 여기에 어떤 균열을 낼 수 있을지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조 소장은 소록도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한센인을 격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인 지난 2016년, 특별한 재판이 소록도에서 열렸다. 과거 소록도에서 강제 단종•낙태 수술을 받았던 한센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이 특별재판 형식으로 소록도에서 열린 것이다. 조 소장은 "한센인을 대상으로 국가가 강제로 불임수술과 낙태 수술을 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이 경악했지만, 이 사건은 아직도 많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대구시립희망원에서는 얼마 전까지 '심리안정실'을 운영했던 것이 밝혀졌다. 희망원 내규를 어기는 경우 거주인들은 이 '심리안정실'에서 길게는 46일까지 갇혀있었다. 그리고 이 내규에는 '이성 교제'가 담겨있다. 즉, 희망원 안에서 이성 교제는 징벌의 대상이었다. 또한, 지난해 9월에는 전남 무안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거주 장애 여성들에게 본인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피임기구(루프) 설치를 했던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장애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는 채 피임 시술을 받았다가 적정한 시기에 관리를 받지 못해 자궁 안에서 루프가 꼬여 심한 복통을 앓거나, 조기 완경이 되기도 했다.

 

조 소장은 "장애인 수용시설은 국가의 생명 통치가 가장 공공연하고 적나라한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어쩔 수 없다', '당연하다'는 인식아래 시설 내 장애인들의 재생산권은 공공연하게 억압되고 있다. 하지만 소록도나 희망원, 전남 무안 장애인시설과 같이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이것이 '일부 인권의식없는 시설장과 직원들' 개인의 문제로 협소해지고, 수용시설 정책을 유지하는 국가의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집단으로 거주하는 수용시설의 특성상, 개인은 삭제되고 시설 거주인이라는 '집단'으로서만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곧 '개인 공간 없음'을 의미하며 이는 거주인들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 통제를 용이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성과 관련된 통제는 이런 물리적 조건뿐만 아니라 '정상성'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규율을 통해 체화되기도 한다. 조 소장은 "수용시설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하여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이들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특수성에 기반해 설립되기 때문에, '비정상 집단'이라는 낙인이 생기고, 이는 성과 재생산 권리를 통제하는 핵심적 기제가 된다"고 전했다. 조 소장은 자신이 인터뷰한 한 탈시설 장애 여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저는 성 욕구가 생기지 않아요. (아마) 평생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기 때부터) 27년 동안 (성과 관련하여) 제재당하고 통제받는 모습만 봐왔어요. 성적인 부분에서는 유치원 수준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7, 8살만 되어도 다 아는데, 저는 잘 몰라요. 3년째 시설에서 나와 살고 있는데 아직도 시설에서 살았던 모습이 가끔씩 나타나요." (조미경, "장애인 거주 시설 안의 성 규범과 문화 중심으로 본 장애 여성의 성과 재생산",  ⌈성과재생산xIL과 젠더 4차 포럼 자료집⌋, 장애여성공감, 2016)

 

조 소장은 "성적 주체이자 재생산 주체로서 자신을 정체화할 수 있는 경험이나 기회를 박탈하는 수용시설의 규율은 단순히 거주인의 성과 재생산 권리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언제 행복을 느끼고 누구와 관계 맺으며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아갈 존재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조 소장은 "이러한 수용시설은 국가 차원에서 시행되기 때문에 거주인에 대한 낙인이 더 견고해진다"며 "수용시설을 통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문제가 있다고 규정된 이들'을 시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분리하고 이들이 더는 재생산되지 않도록 감시와 통제가 용이한 체계를 구축해왔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이런 점에서 탈시설 운동은 본질적으로 국가의 모순적 생명 정치를 폭로하는 것이며, 이는 낙태죄 폐지 운동이 국가 수용시설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시작

 

강연 후 대담이 진행되었다.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운데)의 농담에 황지성 활동가(맨 왼쪽)와 조미경 소장(맨 오른쪽)이 웃고 있다. 사진 최한별

 

각자의 발제가 끝난 후,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의 사회로 대담이 진행되었다. 세 사람은 모두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황지성 연구활동가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한 장애인의 재생산권이나 우생학 문제 해결은 일단 낙태죄가 폐지된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일단 폐지가 된다면 무척 기쁘고 신날 것"이라며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생학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을 설득해 나가는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 전혀 다른 챕터를 여는 느낌이 있다"며 양면적인 감정을 전했다.

 

조미경 소장 역시 "낙태죄 폐지는 앞으로 뻗어 나갈 수많은 논의의 시작에 불과하다"라며 "예를 들어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려면, 그냥 생식권 보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생산권을 실제로 행사하기 위해 사회에 수많은 지원 체계가 필요할 텐데, 그것을 논의하는 것은 낙태죄라는 국가의 여성에 대한 통제를 끊은 후에 더욱 자유롭고 다채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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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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