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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고도성장기 한국사회가 ‘청소해버린 소년들’이 통과한 처참한 50여 년의 세월을 듣다
용케 살아남은 소수가 국가에, 국가와 한 편이 되어 방관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고발장
등록일 [ 2019년04월05일 17시38분 ]

책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표지, 하금철·홍은전·강혜민·김유미 글 ⓒ도서출판 오월의봄

선감학원(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선감원에 위치한 소년 수용소)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부랑아 단속 및 수용 조치를 위한 감화정책으로 1942년 설립되었고 1982년까지 40년간 존속했다. 부랑 아동을 보호, 수용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강제 납치와 감금이 이뤄졌다. 시설로 잡혀간 아동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각종 노역과 모진 고문, 폭력에 노출됐다. 소년들은 선감학원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다 쓸모를 다하면 사회에 다시 버려지거나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와 같은 다른 시설이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하금철·홍은전·강혜민·김유미 글, 도서출판 오월의봄, 15000원)는 진보장애언론 ‘비마이너’ 기획연재 ‘소년, 섬에 갇히다-선감학원 피해자의 이야기’를 통해 소개한 9명의 피해생존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이야기들은 그들이 통과한 처참하고 쓰린 50여 년의 세월의 기록을 피해생존자의 생생한 언어로 전달한다.

 

- 선감학원에서 소년들은 노예처럼 부려졌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부모와 보호자 없이 떠도는 부랑아뿐 아니라 단순히 길을 잃은 미아들이었다. 국가가 이런 아이들을 강제로 납치해 시설에 몰아넣었다. 길을 잃으면 경찰이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런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

 

“파출소에 있는 순경 같았어요. 저한테 ‘집 어디냐’ ‘어디 가냐’ 하면서 집 주소를 대라고 했어요. 나는 주소는 몰라서 모른다고 했어요. 가평에 살고 가평국민학교에 다닌다고 했는데, 자기네가 확인을 하려고 하면 학교에 연락해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혼자서 왔다고 하니까 아예 믿지를 않았던 거 같아요. 저를 파출소에 데리고 있다가 바로 응암동 아동보호소로 넘겼어요. 자기들도 할당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동보호소 가서 알고 보니까 다 그렇게 잡혀 온다고 하더라고요. 웬만큼 꾀죄죄하고 그러면.”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피해생존자들은 하나같이 선감학원에서 보낸 지난날을 ‘자기 자신을 상실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인적사항이 완전히 조작돼 호적이 말소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수의 생존자들은 이런 사실조차 퇴소 혹은 탈출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선감학원은 모든 원생들의 생일을 선감학원 개원 기념일인 5월 29일로 날조하기도 했다. 시설 내부에는 그 흔한 시계와 달력도 없다. 아침 점호와 취침 점호, 그것이 선감학원 안의 유일한 시계였다. 이들은 입소 시기와 퇴소 시기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소년들은 선감학원에서 심한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선감학원은 기록상으로는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소년들은 누에고치와 소를 키워야 했다. 교육은 꿈도 못 꿨다.

 

“소를 키웠어요. 20마리, 30마리 키웠어요. 소들이 겨울에 먹을 게 있어야 되잖아요. 억새풀을 잘게 썰어서 큰 통에다가 재워놔요. 그걸 하는 게 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이에요. 낫도 안 줘요. 손으로 하던가, 우리가 돌로 만들어요. 돌 두 개를 갖고 다니면서 억새풀을 꺾어서 짓이겨서 하루에 40킬로씩 해야 돼요.”

 

선감학원은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소년들은 먹을 것처럼 보이면 닥치는 대로 먹었다. 생쌀을 먹기도 하고, 콜라병에 담긴 농약을 마시기도 했다.

 

“거기서는 항상 배가 고팠어요. 반찬도 맨날 새우젓하고 무 같은 걸 심어서 짠지를 만들어줬어요. 새우젓도 구더기가 끓어서 도저히 못 먹어요. 생식도 엄청 많이 먹었어요. 논에 가면 벼가 있잖아요. 벼를 손으로 훑어다가 바닥에다 놓고 신발로 막 비비면 껍질이 까져요. 그럼 그걸 손에다 놓고 호호 불어서 입에 털어 넣는다구요. 생쌀을.”

 

“어떤 아이는 배가 고파서 사무실에 들어가 콜라병 같은 게 있길래 그걸 마셨대요. 근데 그게 사실은 농약이었던 거예요. 어처구니없게, 농약을 먹고 죽은 거죠.”

 

폭력은 일상이었다. 원생을 원생이 때리게 하는 구조는 이들의 일상을 폭력으로 지배했다. 굶주림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일부 원생들은 바다를 헤엄쳐 탈출을 시도했다. 일주일을 꼬박 헤엄쳐 살아남은 소년도 있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소년들도 있었다. 선감학원은 그들의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했고, 그 일은 남아 있는 다른 소년들이 맡아서 했다.

 

“도망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퉁퉁 불어가지고 소라, 낙지 이런 게 다 붙어 있어요. 거기다 빨간 소독약을 그냥 뿌리는 거예요. 냄새난다고. 한번은 장마가 크게 온 뒤에 뽕 따러 올라가다 보니까 시체가 다 드러나 있는 거예요. 아이들 시신을 얼마나 아무렇게나 내버렸는지. 그런 아이들을 내가 직접 묻기도 했어요. 선생이 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 아무도 그들에게 꿈을 묻지 않았다

 

선감학원에서 나온 이들은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그러나 시설이 사라진 지금도 소년들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시설 밖도 그들에겐 감옥과도 같았다. 학교에 다니거나 인간관계를 맺거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껌팔이, 구두닦이, 신문팔이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다 범죄에 빠지기도 했다.

 

피해생존자 김성환 씨는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고 “누구도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는 그들에게 꿈을 묻기는커녕 꿈을 말할 수조차 없도록 만들었다.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선감학원 소년들은 수십 년이 흘러 노년에 접어들었다. 그들은 지금에서야 국가의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일생일대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자신들의 경험을 말하면서 그들의 투쟁은 자연스럽게 시작됐고, 이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은 그들의 꿈을 짓밟았던 국가의 폭력을, 그들의 꿈을 묻지 못했던 우리의 무관심에 내리꽂히는 죽비와 같은 경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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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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