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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나는 우물쭈물하고 말지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만성적으로 아프다고 하기에는 너무 건강하지만, 건강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픈”
등록일 [ 2019년04월08일 16시19분 ]

- 의자에 앉고 싶다, 그러나 나는 지금 충분히 아파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만성질환자다. 피로에 약하고 자주 힘이 빠진다. 그렇지만 밤마다 먹는 면역억제제 외에 사용하는 보장구는 없다. 그래서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나를 ‘아픈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건강한 비장애인’, 아니면 기껏해야 ‘좀 지친 비장애인’ 취급을 받는다. 이 때문에 생각 외의 고충이 자주 생긴다. 바로 내가 우물쭈물하게 만드는 상황들.


지하철과 버스에서 자리가 나면 나는 우선 앉고 싶다.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언제 갑자기 돌아올지 모르는 콕콕 쑤시는 통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머리, 배, 손가락과 발가락 관절들에 난데없이 찾아오는 통증은 내 몸을 어느 정도 경직시킨다. 나는 주춤, 한다. 이럴 때 서 있으면 몸을 지탱하려고 손도 사용해야 해서 그런지 어딘가에 묶여서 바늘로 콕콕 찍히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까지는 아니고, 다만 서 있는 자세가 조금 흐트러지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정도. 나는 정말 많이 아픈 게 아닌 한, 이 정도로는 겉보기에 아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이 사실을 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조차 다른 사람들처럼 ‘안 아파 보이는’ 나의 겉모습을 가장 먼저 인식한다.

 

지하철 빈 의자 이미지. ⓒ픽사베이

 

그래서일까, 나는 자리에 앉는 게 편하지 않다. 특히 버스에서는 앞쪽의 1인석들. 나는 원래 모르는 사람과 앉는 게 싫어서 자리가 많으면 1인석에 앉았고 2인석만 비어 있으면 아예 서서 가기도 했다. 그러나 서서 가는 게 조금씩 힘들어졌고, 어디든 자리가 비어 있으면 앉고 싶어졌다. 눈치를 보거나 비키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한 뒷자리로 가지만, 1인석만 비어 있을 때는 그 자리 하나를 두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지. ‘아픈 나’, ‘아플지도 모르는 나’, ‘안 아파 보이는 나’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결정을 미룬다. 그러다 만약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들어오는 사람을 계속 살핀다. 그러면서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아픈 나’, ‘아플지도 모르는 나’, 그리고 ‘안 아픈데 교통약자석 차지한 젊은 것’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수님들께 내 건강을 설명하려고 메일을 쓸 때처럼 굳이 좀 더 아파 보이려고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자는 척을 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나에게 뭘 그렇게까지 고민하냐고,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앉으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서 있는 사람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나보다 아프거나 힘들어서 이 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전에는 그냥 자리를 비워 두면 되었으니 이런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어디에라도 앉고 싶어져서인지, 앉고 싶은 다른 사람의 존재도 고려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 아픈 것도 아닌데, 내릴 때까지 안 아플지도 모르는데, 며칠 동안 체력 괜찮았으니 지금 좀 서서 간다고 내일 힘들 것 같지 않은데, 그러면 내가 자리를 비워 두거나 비켜 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 복잡하다. 대중교통 자리 앞에서, 자리에 앉아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고민을 줄이기 위해 자리가 많은, 아예 애매한 시간에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한다. 그게 속이 편하니까. (아, 물론 장이 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 남성 크론병 환자의 ‘똥권’과 ‘위생용품 처리권’

 

이런 고민은 장애인 화장실 앞에서도 이어진다. 정말 급할 때 화장실이 꽉 차 있으면, 대체로 비어 있는 장애인 화장실로 눈이 갈 수밖에 없다. 크론병 환자들에게 대체로 화장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김원영 씨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제안한 ‘오줌권’처럼, 크론병 환자에게도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품위를 지키기 위한 권리가 필요하다. 바로 ‘똥권’과 ‘위생용품 처리권’이다. 자주 배가 아프고,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똥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가까이에 비어 있는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어떤 행사든 도중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거리가 멀면 힘들긴 하지만, 턱이나 계단에 의해 이동이 지체되거나 저지되지는 않기 때문에, 크론병 단일 질환에 비지체장애인인 나의 경우에는 ‘똥권’은 사람이 갑자기 몰리지 않는 한 어느 정도 보장된다. 사람이 너무 몰리면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아프고 급합니다. 양보해 주세요.”라고 적힌 카드를 비치해 두긴 한다. 나도 그걸 두어 장 가져오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사용 중인 화장실에다 대고 암행어사가 마패 꺼내듯이 그 카드를 꺼내며 “크론병 출두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 나는 장애인 화장실 쪽으로 시선을 슬쩍 돌리게 될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복통 설사를 동반하는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의 편안한 화장실 이용을 위해 만든 카드. “아프고 급합니다. 양보해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제공 : 안희제)

장애인 화장실을 자꾸 보게 되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휴지통. 재작년부터 행정안전부에서는 “화장실 내 휴지통 없애기”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실시된 지는 만 1년이 조금 넘었다. 이로 인해 모든 화장실에서 휴지통이 사라졌지만, 여자 화장실과 장애인 화장실에는 ‘위생용품 수거함’이 생겼다. 여자 화장실에서는 생리대를, 장애인 화장실에서는 소변 줄이나 성인용 기저귀를 고려하여 수거함을 설치한 것 같다. 그리고 남자 화장실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내가 항문주위농양 제거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기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수술 부위에서 계속 고름이 나오는 바람에 거즈를 달고 살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걸 갈아줘야 했다. 수술 부위가 부위인지라 땀도 많이 찼기 때문에 사용한 거즈는 아주 더러웠다. 거즈는 당연히 변기에 버리면 안 되고 별도의 수거함에 버려야 하는데, 만약에 내가 다시 그런 수술을 받거나 치루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여자 화장실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고름이 가득 묻은 누런 거즈를 엄지와 검지로 끄트머리만 잡아서 내 몸에 안 닿게 대롱대롱 들고 다니며 쓰레기통을 찾아 헤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나는 위생용품 수거함이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지금 당장은 거즈를 사용하지 않지만, 언제 내가 다시 거즈를 달고 살지 모르는 노릇이다. 그러나 장애인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지체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기존의 화장실은 비장애인 전용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체장애인이 아니며, ‘겉보기에’ 아파 보이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다. 내 경우가 아니더라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장루장애인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보조기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옷 아래에 감춘다. 이 경우에도 장애인 화장실을 보며 나처럼 문 앞에서 우물쭈물할 것이다.


황당한 건 이 “화장실 내 휴지통 없애기” 프로젝트가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겼다는 것이다. 근데 남자 화장실의 경우 위생 문제의 핵심은 휴지통이 아닌 입식 소변기다. 일본의 한 생활용품업체에서 2006년에 한 실험에 따르면, 남성 1명당 하루에 변기 밖으로 튀기는 미세한 오줌 방울만 2,300방울이라고 한다. 실제로 화장실에 가 봐도 더러운 건 좌변기 칸 내부가 아닌 입식 소변기 주변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사람은 (제대로 따지지도 않은) ‘위생’ 때문에 정작 화장실 정책에서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 “만성적으로 아프다고 하기에는 너무 건강하지만, 건강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픈”

 

이런 우물쭈물함은 대중교통과 화장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언제나 우물쭈물한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도, 일을 나눌 때도. 똑같은 음식도 내 몸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사람들과 일을 할 때 나는 대체로 비장애인 또는 비질환자로서의 기능을 기대받지만, 그것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나는 스스로가 총체적으로 무능하다고 느낀다. 진정 할 수 있다고, 혹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되면서도 그 믿음이 지속적으로 으깨어지니까.

 

‘안 아파 보이는’ 사람의 이 우물쭈물함을 어찌하면 좋을까. 문득 만성질환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는 커뮤니티인 “The Mighty”에서 본 “만성적으로 아프다고 하기에는 너무 건강하지만, 건강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픈(Too Functional to be Chronically Ill, but Too Sick to be Healthy)”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런 상태의 문제는, 나도 나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관해기는 휴화산 같은 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되면서도, 실제로 터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기에 스스로 괜히 엄살 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애매해서 우물쭈물한 사람. 나는 이 우물쭈물함을 언제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은 나의 우물쭈물함을 답답하게 느끼지 않고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기다리고 도와줄 수 있을까?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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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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