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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국회는 2020년까지 법 개정해야
헌재, 형법 제정 66년 만에 낙태죄 위헌 결정
2020년까지 법 개정해야… 2021년부터 법 조항 효력 잃어
등록일 [ 2019년04월11일 19시43분 ]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여성을 처벌했던 ‘낙태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11일 오후 3시경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헌법불합치 4명, 단순위헌 3명, 합헌 2명의 결정으로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66년간 낙태를 범죄로 규정했던 악법 개정의 길이 열린 것이다.

 

헌법불합치는 사실상의 위헌선언이지만 해당 법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해주는 결정이다. 따라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21년부터 해당 법 조항은 효력을 잃게 된다.

 

헌법재판소 결정 당일 장애계, 종교계 등 각계 릴레이 기자회견이 열렸다. 의료계가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 자기낙태죄, 의사낙태죄 모두 헌법에 위반돼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 제1항에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270조 제1항에서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결국 낙태를 행하는 여성과 의사를 모두 처벌하도록 하는 것으로,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으로 이를 구분하기도 한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등 4인의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의사낙태죄 조항도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서 하는 것이므로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위 조항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낙태의 결정가능기간 설정, 상담요건, 숙려기간 등이 담긴 개선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헌법불합치로 판결했다.

 

단순위헌 결정을 내린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등 3인의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헌법불합치 의견과 견해를 같이하지만,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며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이 모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합헌 결정을 내린 조용호, 이종석 등 2인의 재판관은 “인간의 존엄과 태아의 생명, 국가의 보호의무” 등을 이유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기쁨을 표하는 사람들의 모습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 여성계, 인권단체 일제히 환호… 인권위도 환영 성명

 

낙태죄 위헌 판결에 여성계, 인권단체는 일제히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헌재 앞에서 헌재 결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기쁨을 표했다.

 

헌재 판결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그동안 힘들게 찾아온 여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 너무 감격스럽다”며 “WHO(세계보건기구)는 이미 임신중지가 인권이며 의료행위라고 한 바 있고, 유산유도약 미프진은 2005년 WHO의 필수의약품이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이제야 ‘여성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국제적 기준에 따라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리인단장을 맡았던 김수정 변호사는 “세 명의 헌법재판관이 단순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낙태죄 폐지에 큰 힘을 실어줬다”며 “네 명의 헌법재판관의 헌법불합치 결정 내용에서는 국회에서 어떤 취지로 입법을 해야 할지 충분히 나타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판결이 임신의 1차적 주체는 여성이며 여성을 존중하라는 선언”이라고 정의하며 앞으로 이뤄질 개정입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위원장은 “낙태죄 폐지뿐 아니라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전면 재검토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을 경우 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나영 공동위원장은 “국가가 가족계획 정책과 인구통제를 위해 어떤 사람은 임신중지가 불법이고, 어떤 사람은 임신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것”이라며 “이런 법 조항이 여성을 통제하고, 국가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였다”고 일갈했다. 그는 “오늘 헌재의 판결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뿐 아니라 혼인과 낙인의 조건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현실을 드러내고 싸워온 모든 여성의 공”이라며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는 사실을 증명한 역사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도 헌재 판결 직후 인권위원장 이름으로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국제적으로 낙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상충하는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난 지 오래됐다”며 “낙태를 국가가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안전한 낙태의 조건을 요구하는 데로 나아가 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번 결정이 재생산권 보장, 안전한 낙태를 위한 보건의료 제도 확충, 태어난 아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양육 환경 조성 등 사회 전반의 인권 수준 향상을 위한 생산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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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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