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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1인당 정신보건 예산이 서울 절반도 안 돼… “예견된 참사”
만약 ‘위기 대응 체계’가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정신장애계 긴급 좌담회 열고 “법 개정 나서야”
등록일 [ 2019년04월27일 13시16분 ]

최근 발생한 진주 방화 살인사건에 대해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오후 2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지금 정신장애인들의 고통은 비참한 수준입니다. 과거엔 범죄자 취급하더니 지금은 살인자 취급을 하고 있어요. 정신질환자는 병원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살지 못합니다. 국민들은 우리를 혐오합니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정신장애인들끼리 모여 살 섬을 달라는 거예요. 2000년도에 강제입원율은 93%였어요. 그때는 강력사건이 없었습니까? 사건은 늘 있었어요. 강제입원이 100% 이뤄진다고 해도 살인사건은 막을 수 없습니다. 정신질환과 범죄의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텐데 그때마다 조현병 환자 잡자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정신보건 핵심은 ‘위기 대응 체계’이지만, 정신보건법(현 정신건강복지법)이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았어요. 국가가 방치하니깐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겁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창원, 칠곡 등에서도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정신질환자가 또다시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정신질환 증상 자체를 범죄와 연결하여 보는 태도와 닿아있다. 따라서 이에 우려를 보내면서 진주 사건의 경우, 초동 대처에 미흡한 경찰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정신장애계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신장애계는 현행법에서 충분히 위기상황에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음에도 작동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며, 이번 사건을 위기 대응 체계 관점에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오후 2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긴급 좌담회를 열고 정신건강복지법 제12조, 44조, 50조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짚으며 대책을 논의했다. 법 12조는 국가와 지자체의 응급 대응 체계, 44조는 행정입원, 50조는 응급입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구체적 매뉴얼 및 전달 체계 부재가 작동 가로막아… 법 개정 나서야

 

이날 발제를 맡은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측의 주장과 달리 현행법에 근거해 응급 대응 체계로 행정입원, 응급입원이 충분히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제 교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반드시 정신질환이 있어야 하나, 행정입원·응급입원은 정신질환이 ‘추정’되는 사람을 입원시키는 거다. 따라서 진주 사건의 경우, 정신질환 경력을 경찰이 알았느냐, 몰랐는가에 상관없이 입원이 가능했다”면서 “정신건강복지법 제12조 제2항에 따라 광역지자체는 응급 대응 체계를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에 연계할 책임이 있는데 이게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그 이유로 제 교수는 자·타해 위험을 현장에서 판단할만한 매뉴얼의 부재, 응급정신건강서비스 전달 체계의 부재를 꼽았다. 또한, “법에 광역지자체의 책임이라고 명시해두었다면 조례로 구체화시키는 등의 노력을 해야 했으나 하지 않은 입법상의 문제도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신건강복지법에 이를 자세히 명시하기 위한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 있다. 긴급하게 대응해야 하는 현장 특성상 ‘자기결정권’과 ‘생명 및 신체의 안전’이라는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수 있는데, 강제입원이 되더라도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레이건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한 정신장애인이 강제입원된 후 약 복용을 거부하자, 의사가 주사로 약을 강제 주입했다. 이후 정신장애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강제입원되었더라도 강제로 약물을 주입해선 안 된다’며 환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해 제 교수는 “이 소송을 통해 약물 강제주입 시엔 반드시 법원의 허가를 받거나, 혹은 그 병원 소속이 아닌 다른 병원 소속 의사의 확인을 받고 본인이 이에 불복할 경우엔 불복 절차를 알려줘야 하는 등의 법리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제 교수는 “강제하게 될 경우, 심리적 충격이 커서 이후 치료를 안 받으려고 한다. 될 수 있는 한 설득을 하고, 당사자에게 약 복용을 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할 기회도 주어서 스스로 약 복용을 하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원칙에 근거해 제 교수는 위기 개입에 대한 구체적 상을 제안했다. 광역자치단체별로 권역별 응급대응센터를 두고, 센터에는 24시간 상시 운영하는 응급콜대응팀과 응급대응팀을 둔다. 응급대응팀이 현장에 파견되어 위기개입을 하고 이를 통해서도 환자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필요한 서비스 기관으로 이송하도록 한다. 여기엔 응급입원뿐만아니라 위기쉼터 등 다양한 선택지를 두어 당사자가 선택하도록 한다. 만약 응급입원이 될 경우, 현재는 응급입원 시에는 의사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데 향후엔 절차보조인을 통해 당사자를 옹호하고 치료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퇴원 후에는 가정뿐만 아니라 지원주택, 일상쉼터 등 다양한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서비스와 연계하여 회복을 지원하는 체계를 만든다.

 

더불어 제 교수는 “대상자를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자·타해 위험을 보이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면서 “응급입원 시에 입원할 병원이 없다고 하는데 응급입원은 국공립병원으로 일원화시켜야 한다”고도 말했다. 또한, 서비스 질을 관리하기 위해 자세한 매뉴얼을 마련하여 전문적인 위기개입훈련을 상시적으로 받아야한다고 제안했다. 만약 위기 대응 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당사자 또는 제3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형사 처벌과 별도로 국가와 지자체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명문화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제 교수는 위기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근원적 해결 방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다 근원적 개혁을 위해 전국 정신병원의 정신질환자를 전수조사하여 치료 환경, 환자의 자기결정권, 인권 존중 실태, 신체 자유 박탈의 적법성 등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여야를 초월한 다학제적 전문가와 당사자 등으로 구성된 대통령 또는 국회의장 직속의 TF팀 구성을 제안했다.

 

- 사건 발생한 경남 진주, 1인당 정신보건 예산이 서울 절반도 안 돼… “예견된 사고”

 

이날 토론자로 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건은 예고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왼쪽)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 회장, (오른쪽) 장창현 원진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진 강혜민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 회장은 “이번 사건이 발생한 진주의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 한 명의 인력이 185명을 담당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센터 인력은 사례관리만 하는 게 아니니 애당초 업무 수행이 불가능했다”면서 “지난 20여 년 동안 이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해왔으나 국가와 지자체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현재 사건은 그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2018년 초에 정부가 지자체별로 위기대응팀을 꾸리라고 했으나 전국에서 지자체 두 곳만 반응했다. 이유는 매칭펀드 방식이었기 때문”이라면서 “중앙정부 예산을 받으면 그만큼 지자체도 예산을 매칭해야 하는데, 사건이 발생한 진주나 칠곡 같은 곳은 그만큼 매칭할 지방정부 예산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예산은 전액 중앙정부 예산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 정신건강서비스를 도맡고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열악함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전 회장은 “센터에 있는 전문요원들은 공무원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 연수도 짧다. 현재 정신질환자들은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비정규직에게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이라면서 불안정한 고용 구조가 서비스의 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창현 원진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또한 터무니없이 낮은 정신보건 예산을 지적했다. 2018년 5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펴낸 정신건강동향에는 3년간(2014~16년)의 인구 1인당 지역사회 정신건강 예산 통계가 실렸다. 3년간의 지역별 예산 평균값을 보면, 광주(6898원)와 전라북도(5316원)가 가장 높았으며, 서울(4221원)은 여섯 번째였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경남(1958원)은 가장 최하위로 서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그다음이 인천(1965원), 경북(2189원)이다. 

 

시·도별 인구 1인당 정신건강 예산. 2018년 5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펴낸 ‘정신건강동향’에서 갈무리.
 

장 의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경남(진주)과 경북(칠곡)이 최하위 세 곳 중 두 곳인데 이미 정신건강 구멍이 나있었다는 증거”라면서 “예산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고안이 필요하다. 입원 시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에도 힘써야 한다. 현재 정신건강복지예산이 전체 보건 예산의 1.5%에 불과한데 OECD 선진국 예산 수준으로 가려면 5%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EIU의 정신건강통합지수에 따르면 △환경 △치료 접근성 △기회 △거버넌스 이 네 가지 기준에 따라 국가가 정신건강을 통합적으로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때 환경 안에는 이미 탈원화가 담겨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탈원화를 진행할지 말지 고려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으로 탈원화를 거스르는 정책이 제기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사법입원 도입? 선진국과 사법시스템이 달라도 너무 달라

 

질의응답 시간에는 현재 강제입원에 대한 절차적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사법입원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정신과 의사라고 밝힌 한 청중은 “왜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계가 사법입원에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고민해주면 좋겠다”면서 강제입원을 현재처럼 의사가 아닌 법원이 결정하는 사법입원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철웅 교수는 사법입원을 시행하고 있는 미국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각 국가마다 사법 시스템이 다른 상황에서 기계적 도입만을 주장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표했다.

 

제 교수는 “우리나라 판사 수는 3000명 정도인데, 미국은 한국의 두 배이며 결정 또한 혼자 하지 않고 전문가들과 함께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판사의 경우, 평생 30~40년 동안 그 일만 전문적으로 하고 범죄 우려가 높은 사람들에 대해선 판사가 직접 사례 회의를 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2~3년마다 로테이션하는 시스템이며, 3급으로 시작해서 조금만 지나면 차관급이 되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환자들과 똑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사례회의를 하겠나”라고 되물었다.

 

따라서 그는 “사법입원을 도입하려면 판사 수를 현재의 두 배로 늘리면서 판사들의 지위를 대폭 낮춰야 하며, 평생 이 일만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현장에서 당사자들과 이야기하고 사례회의에 참석할 때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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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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