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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법 제정 20년,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서 제도 평가해야” 쓴소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생활보장 제도 발전방안’ 심포지엄 열어
기초법 제정 20년, 비수급 빈곤층·부양의무제 문제 현재진행형
등록일 [ 2019년05월01일 20시42분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발전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4월 30일 오후 2시,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관한 ‘기초생활보장 제도 발전방안’ 심포지엄이 열렸다.

 

기초법은 지난 1999년 제정돼 2000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당시 제정 이유를 ‘저소득 국민, 영세 도시빈민, 실업자 등을 지원하여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한편, 빈곤가구별로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맞는 자활급여를 실시함으로써 빈곤의 장기화를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제정 20년이 지난 지금, 기초법 취지가 무색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기초법 제정 당시부터 문제 되었던 부양의무자 기준이 지속되고 있고, 비수급 빈곤층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또한 낮은 생계보장 수준과 가혹한 재산 소득환산제도,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단절적 운영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아울러 노인 빈곤 가속화와 신빈곤층으로 불리는 중장년 빈곤, 청년 빈곤 문제 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됐다.

 

지난 4월 30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초생활보장제도 발전방안’ 심포지엄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축하의 말을 전하고 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이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축사에서 “14차례에 걸쳐 제도 개선 작업을 해왔지만, (기초법이)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기초법의 기본 취지인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되기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비수급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논의와 정부 부처 간 협력에 더욱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자 중 일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의구심을 표하거나 여전히 기초법을 권리가 아닌 시혜와 동정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부정수급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이에 당사자와 당사자단체는 “무엇보다 기초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질타했다.

 

- 기초법 사각지대 ‘비수급 빈곤층’ 93만 명에 달해

 

2014년 송파 세 모녀가 죽음으로 알렸던 기초법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광범위했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 연구’에 따르면 기준 중위소득 40% 이하 생계·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은 약 93만 명에 이른다. 또한 소득지표가 악화되면서 생계급여 수급자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017년 12월 123만 4559명에서 2018년 12월 122만 9067명으로, 5492명이 수급권에서 탈락했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10% 중 35%가 비수급 빈곤층으로 추정된다. 이 중 노인인 경우 기초연금을 받지만 이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은 수급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소득으로 생활해야 한다. 2015년 기준으로 기초생활 수급자의 기대 소득은 95만 2000원인데 비해, 기준 중위소득 30~40%의 비수급 빈곤가구는 67만 7000원, 기준 중위소득 30% 이하의 비수급 빈곤가구는 49만 3000원으로 나타났다.

 

비수급 빈곤층의 발생 원인으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가장 첫 번째로 꼽혔다. 또한 신청을 하려고 해도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준과 절차에 가로막히고, 기초법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정보접근성 문제도 원인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보장 제도 발전방안’ 심포지엄에 참가한 토론자와 참석자들의 모습. 사진 허현덕
 

- 비수급 빈곤층 양산하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해야

 

사람들은 비수급 빈곤층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지목했다. 토론자들은 대체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는 예산의 문제를 들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비수급 빈곤층의 소득보장을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와 일자리 지원 사업 확대, 자산형성 지원을 위한 제도 마련 등을 제시했다. 그는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가 이뤄질 경우 노인 19만 7000명, 장애인 2만 명, 비노인 6만 7000명 등 신규 수급자가 26만 3000명으로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고소득·고재산 부양의무자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는 독일형 모델과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하되 현재 부양의무자에 해당하는 1촌 이내 직계혈족인 자가 일정 소득 이상인 경우 생계급여 감액 구간 설정을 하는 미국형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비수급 빈곤층에 대한 해결책은 국내의 상황에 맞춰 마련해야 한다”며 “미국과 독일 사례를 역사와 제도적 맥락 없이 제도 개선책으로 내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 기자는 “한꺼번에 부양의무자를 폐지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아직까지 부모와 자녀가 따로따로 사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양의무제에서 ‘인정재산 기준 제외’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박영아 변호사는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 법적인 관점에서 불합리한 점을 짚으며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자녀가 성년이 된 후 당연히 부양이 이뤄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실제로 부양을 받지 않고 받을 수도 없는 사정, 혹은 잠재적 부양의무를 받을 수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 엄격하고 비인간적인 제도”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6년 조사에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권 탈락이 37.6%로 나온다”며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부양의무제는 기초법의 효과성 측면과 제정목적 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에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노인, 외국인, 난민 등도 아우르는 기초법으로 거듭나야

 

기초법에서 노인, 중장년, 청년, 여성 빈곤 문제 해결이 앞으로의 과제로 제시됐다. 이 중에서 노인 빈곤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OECD에서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 노인 빈곤율은 계속 치솟고 있지만 기초생활 수급 비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2006년 52.3%에서 65.5%까지 오르며 13.2%포인트 높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 기초생활 수급자 비율은 8.25%에서 6.25%로 2%포인트 떨어졌다. 노인들은 더 가난해졌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수치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포용복지연구단장은 “65세 이상의 노인은 노동 능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크기에 한번 빈곤에 빠지면 벗어날 여력이 없다”며 “이들이 근로능력을 인정받아서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낮은 근로빈곤에 놓이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 65세 이상 빈곤노인에 대한 대책이 현재로서는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노인 빈곤뿐 아니라 난민, 외국인, 결혼이주민까지 아우르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문진영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법의 취지는 모든 국민에 대한 포용적 복지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는데 지금은 외국인이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하거나 대한민국 국민을 봉양해야 시민권을 부여하고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며 “포용적 국가를 표방한다면 사회에서 가장 취약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내 외국인들까지 아우르는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기초법이 없으면 살기 힘든 사람들의 목소리 이제는 반영돼야

 

시행 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낙인찍기,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제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어떤 지자체에서는 최근까지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수급신청사유서를 받았는데, 이것은 ‘낙인감’을 넘어 ‘구체적 권리 침해’”라고 지적하며 “집행기관에서 기초법을 여전히 읍소행정이나 시혜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초법 관련 지침이 500페이지에 달하고, 특례조항 등 내용이 너무 방대해 담당 공무원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급권에 탈락해도 이의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제도와 원칙으로 기초법이 개편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욱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이렇게 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못 믿는다는 뜻”이라며 “이런 정부의 태도를 보면 빈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가난한 사람들이 죽음으로 드러냈던 기초법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최종적으로 드러났던 것은 ‘죽음’이었다”며 2001년 최옥란 열사가 26만 원으로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없다며 명동성당에서 벌인 투쟁과 수급 탈락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들의 유서를 소개했다.

 

김 사무국장은 “지금 모인 정부 부처 관계자에게는 기초법이 꽤나 자랑스러운 제도겠지만 이 제도와 연결 짓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로부터 기초법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가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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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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