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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의 안전할 권리 찾기-치안이 아닌 ‘치료’, 관리가 아닌 ‘권리’
[교차적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⑦
등록일 [ 2019년05월08일 14시23분 ]

/기획의도/
 
장애여성공감은 [IL과 젠더 포럼]을 통해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을 통해 증명하듯이,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지 삶의 장소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시설에 수용된 역사를 재해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를 해나가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건과 권력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설을 폐쇄해서 더이상 시설에 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은 등록된 장애인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부랑인, 홈리스를 비롯해서 정신병원에서 심지어 지역사회와 집에서 사실상 감금된 채로 살아온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드러내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억압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에 대한 억압과 정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동시에 필요하며 다양한 해방의 관점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설화에 저항하는 동료들을 만들고, 누구도 시설에 수용되지 않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과 집단(부랑인, 정신장애인, 소위 요보호 아동, 여성, 성폭력 피해자, 난민,  HIV 감염인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시설화의 양상들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 나가는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연재순서/
 
시설화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며 :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사회복지체계에서 탈시설 운동의 의미: 김지혜(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탈시설 운동의 확장: 조미경(장애여성공감)
홈리스 시설: 김윤영(빈곤사회연대) 
한부모 시설: 오진방(한국한부모연합)
입양/미혼모 시설: 김호수(뉴욕시립대학교 사회학과)
⑦정신병원/요양시설: 노다혜(장애여성공감)
⑧성폭력 피해자 쉼터: 여름(장애여성공감)
⑨난민 시설: 고은지(난민인권센터)
⑩(탈가정) 청소년 시설: 변미혜(함께걷는아이들)
⑪요양병원: 권미란(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⑫가족: 김순남(가족구성권연구소)
⑬성매매피해자 자활시설: 김주희(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필자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미국 IL운동의 시작은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으며 다양한 소수자 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탈의료화·탈원화를 비롯한 1950년대 정신보건운동 역시 당시 미국의 IL운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고, 향정신성 약물 개발을 통해 병원에 있던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로 나오게 된 배경은 탈시설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미국의 정신장애인 운동의 역사가 짧지 않고, IL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에도 한국의 정신장애인 운동은 다른 유형의 IL운동에 비해 역사도 짧고, 당사자 단체의 수도 많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의 독립이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당사자 운동이 활발할 수 없는 이유는 왜일까?

 

사회는 장애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사회통합과 사회안전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8년 발표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에서 장애인 정책의 목표를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라고 소개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복지·건강 지원체계 개편, 교육·문화·체육 기회 보장, 경제적 자립기반 강화, 권익 및 안전 강화, 사회참여 활성화’를 추진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양성’과 ‘차이’가 그러했듯이, 운동사회에서 시작된 일부 개념들은 우리 안에서 제대로 논의되거나 정의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정책의 언어가 되어버린다. 소수자가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언어를 국가가 사용하기 시작하면, 국가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소수자에게도 역할이 있음을 강조한다. 사회통합 역시 일찍이 정책의 언어가 되었고, 사회통합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약간의 권리를 보장받는 대신 회복을 통해 생산성을 증진함으로써 주류에 편입하고, 정상성을 획득할 것을 요구받는다.

 

복지의 역사는 특정 집단을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에서 구제의 대상으로, 구제에서 편입의 대상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이었다. 빈민과 장애인, 탈북민과 이주민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으나 재배치의 과정을 통해 사회통합의 대상으로 ‘승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있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이들은 여전히 구제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만 여겨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정신건강복지법)을 ‘인권을 더 두텁게, 사회안전을 더 빈틈없이 지키는 법’으로 소개한다. 어떤 집단의 인권보장을 이야기하며 사회안전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정신보건법은 미인가 정신의료기관과 시설을 제도화하고 입퇴원 절차를 규정함으로써 인권침해적인 기도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방치되었던 정신질환자가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5년 처음 제정되었다. 그러나 신권철 교수는 정신보건법이 정신질환자의 의료와 사회복귀를 법의 목적으로 써 놓았지만, 사실은 ‘사회안전이라는 본심’이 숨겨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해당 법이 제정되면서 정신장애인이 미인가 요양 시설에서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것은 ‘갇힌 공간에서 갇힌 공간으로의 이동이었고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만든 법이 아닌 치안 목적의 입법’이었음을 비판한다.1)


치료가 아닌 ‘치안’, 권리가 아닌 ‘관리’2)


정신보건법은 2016년 9월 헌법재판소가 강제입원 조항이 위헌(헌법불합치)임을 선언하면서 전부 개정되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바뀌었다. 당시 헌재는 해당 조항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의 근거로 강제입원이 치료보다 격리 목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크고, 입원 필요성 판단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역행하며 치안의 목적을 더욱 강화한다. 개정안이 적용되는 20년부터는 보호자 동의입원(강제입원)이 부활하며, 정신질환자는 퇴원 시, 퇴원 사실을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해야 한다.

 

최근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가해자로 등장하는 사건이 많이 보도되면서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센터에 등록된 8만 명을 대상으로 일제 점검을 시행하고, 경찰청의 정신질환 의심자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사례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정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치료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신질환자의 건강에 대한 책임’인지 범죄자가 거리에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는 ‘경찰의 치안에 대한 책임’인지 명확히 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발굴을 통해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겠다는 말 역시 치료 사각지대와 범죄 사각지대, 그리고 발굴과 색출 사이의 중의적이고 애매모호한 말들만 남을 뿐이다.

 

지난 2016년, 정신보건법 전부개정 추진 당시 경찰관도 정신병원에 입원 ‘요청’을 할 수 있는 신설 조항에 대해 한 활동가가 "경찰에 의한 강제입원, 정신장애인이 범죄자냐?"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반대하고 있는 모습.


권리에 앞서는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
 

IL운동은 오랫동안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를 거부하며 장애인 당사자의 실패할 권리와 위험의 존엄성을 주장해왔다. 독립생활이 많은 위험을 수반하더라도 이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 실패를 통해 경험을 쌓는 것 또한 장애인의 권리임을 이야기하면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보장되는 것’으로 논의를 진전시켜왔다. 위험을 선택할 권리와 함께 안전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지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차츰 찾아가고 있다. 반면 정신장애인은 실패할 권리를 주장하는 일에서부터 부딪힌다. 자신에게도 위험을 감수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전에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낙인자(the stigmatized)는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역할’ 또한 수행해야 한다. 장애인에게는 주로 연민이나 자선의 대상, 영원한 아이, 병든 자 같은 역할 기대가 주어진다. 역할기대는 낙인자의 가치를 더욱 절하시키지만, 이를 잘 수행할 경우 사회로부터 ‘잠시 머물 수 있는 기회’를 허락받을 수 있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어빙 고프먼의 『스티그마』와 낙인의 개념을 다루며, ‘낙인을 지닌 개인에게 요구되는 ‘적응’을 통해 정상인은 낙인을 지닌 개인과 접촉할 기회를 줄임으로써, 그들 자신의 이미지 속에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3)

 

여기서 정신장애인에게 딜레마이자 좁힐 수 없는 틈이 발생한다. 정신장애인은 낙인자에게 요구되는 역할-공포나 위협의 대상, 병든 자-을 수행할수록 정상인의 이미지 속에 안전하게 머무를 수 없다. 어쩌면 정신장애인의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은 아무 곳에도 나타나지 않는 방식으로만 수행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닮아있는 혐오의 얼굴들

 

이와 같은 논리와 기제는 HIV 감염인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당사자의 인권과 치료보다 치안을 목적으로 했던 정신보건법의 흔적이 정신건강복지법에 남아있듯이, 에이즈예방법의 ‘전파매개금지조항’에도 감염인의 인권 보호보다는 공중보건을 우선시하여 감염인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했던 초기 에이즈 예방정책의 흔적이 남아있다.4)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유성원은 “정부는 어떻게 이들(감염인)과 우리가 함께 건강히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감염인 개인을 병리화, 범죄화함으로써 사회 정책 면에서 효과적인 예방과 조치를 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가 피해-가해 구도를 형성하는 이 과정에서 감염 예방을 위한 국가의 의무는 은근슬쩍 사라지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다.5)

 

공중보건과 사회안전은 언제나 정신장애인과 감염인의 권리에 선행해왔다. 그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잠재적 가해자로서 불시에 일어나는 검문과 조사에 응해야 하며, 치료에 순응함으로써 안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국가는 공중보건과 사회안전에 ‘구멍’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책임을 되돌아 보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개인’의 문제로, 치안과 단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협소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병과 장애는 개인의 도덕적 책임이 되고 격리와 처벌만이 유일한 방법이 된다.


순환되는 통제의 근거들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의 모호한 경계, 혼용과 혼재 또한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어렵게 한다.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를 비롯해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지면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거두는 뒷받침이 되는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된다. 하지만 ‘장애이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고, 누군가의 개입 없이는 본인의 병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논리는 당사자를 취약하게 만들며, 통제의 근거가 된다.

 

고립, 단절, 자극 없는 일상의 반복 역시 정신질환을 불러오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이지만 여기에서도 사회와 구조의 책임은 사라지고 개인의 병증만이 남을 뿐이다. 장기간의 입원과 시설수용, 시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재가장애인의 한정된 생활처럼 갇혀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어떤 상황들을 그저 증상으로만 다룰 때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다시 ‘갇힌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어빙 고프먼6)에 따르면 환자의 병력(기록)은 입원의 정당성을 확보하며 지속이 가능하게 한다. 고립된 환경이 유발하는 어떤 ‘증상’들은 그가 왜 병원으로 다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해주고, 그렇게 병력이 추가됨으로써 정신장애인의 입원과 장기수용의 정당성은 더욱 힘을 얻는다. 격리가 유발하는 현상들은 정신장애인을 격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이러한 순환을 통해 통제의 기제는 더욱 강화된다.

 

지난 2월 8일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주관한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가 열렸다. 이에 대해 정신장애계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악안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정신장애인의 안전할 권리

정신장애인의 독립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정신장애인의 안전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신장애 또는 정신질환을 이야기할 때 늘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따라붙지만 이는 타인의 안전만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위험요소’로만 이야기될 뿐,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주체로는 상상되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폭력 피해자 쉼터는 비장애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장애여성은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잠시 대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많은 쉼터가 접근성과 활동지원의 부재를 이유로 장애여성의 입소를 거부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여성은 시설입소 또는 다시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기 어렵다. 장애여성운동 진영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오래전부터 제기하며 쉼터 안에서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7)

 

그러나 폭력피해 여성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면 또 다른 맥락이 발생한다. 쉼터는 돌봄의 부재가 아닌 다른 입소자들의 안전을 이유로 해당 여성의 입소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해당 여성이 또 다른 장애가 있거나, 이주민이거나, 홈리스거나, 난민일 때 사회는 안전을 명분으로 격리가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한다. 여전히 사회는 ‘누군가의 안전’을 내세우며 ‘그들끼리만 모여있기를’ 원하며, 이 안에서 정신장애인의 안전은 타인의 안전보다 후 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정신장애인이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입원뿐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미 병원이 치료보다는 격리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병원은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정신장애인에게 안전할 권리는 없으며, 오로지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만이 주어진다. 자해의 위험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사실상 당사자의 안녕보다는 주변인과 사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에 더 가깝다.


위기를 다시 정의할 때

 

정신장애인 단체와 정신보건전문가, 여론과 언론 모두 최근의 사건을 두고 “위기 대응에 실패했다”, “위기 대응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신보건 관련 대응 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는 “정신건강복지법은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법이 아니라, 우리처럼 아픈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법이다. 그런데 정신건강복지법 논의가 살인 사건에서 출발하면 이런 식으로 논의 방향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정신건강복지법 논의 흐름을 지적했다.8)

 

어떤 사건을 위기로 명명하는 것, 그 사건이 어떤 집단에 위기가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이다. 정신건강복지의 목적이 개인의 인권보다 치안에 있는 이상, 정신의학으로 대표되는 의료권력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한, 위기 대응은 정신장애인을 통제하고 격리하는 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위기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위기인지, 누구의 위기인지 다시 정의하며, 당사자의 인권과 치안이라는 숨겨진 목적의 재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         *         *

 

각 주

 

1) 신권철,  “정신보건법과 국가책임”, 국민일보, 2017.02.17

2) 해당 단락의 제목은 신권철 교수(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토론문과 기사에 인용된 말을 차용하였다. “치료가 아닌 ‘치안’”은  2017년 2월 16일 국회에서 개최된 ‘개정 정신보건법의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사항으로 이야기한 “강제입원의 목적이 치료인가? 치안인가?”에서 비롯하였으며, “권리가 아닌 ‘관리’”는 기사(박은하, [특집]정신질환자를 대하는 ‘병적증세’, 주간경향, 2016년 6월 14일)에 인용된 “한국의 사법체계에서 최근에야 정신질환자를 가족의 일부에서 떼어내 이제 막 개인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최근의 논의를 보면 ‘권리’가 아니라 ‘관리’ 차원으로 정신질환에 접근하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문장에서 비롯하였다.

3)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125쪽

4) 유성원, “고통에는 얼굴이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018년 9월 3일

5) 유성원, 같은 기사

6) 어빙 고프먼 『수용소』, 심보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 188-189쪽

7)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는 2017년 서울시의 조사용역사업으로 서울시 내 폭력피해여성 지원기관의 장애여성 지원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양애리아,[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③] “‘장애인도, 여성도 아닌’ 폭력피해 장애여성은 어디로 가야하나?”, 오마이뉴스, 2018년 1월 30일

8) 이재호, “50만을 영원히 가둬둘 수는 없다”, 한겨레, 2019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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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혜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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