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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이별, 깊은 절망에도 봄이 찾아오다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4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19년05월09일 23시22분 ]

4월에도 많은 장례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당해 절망하고 있었지만 그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봄과 함께 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부고를 인터넷으로 보고 이른 아침 멀리 용인과 평택에서 벽제까지 오신 자원봉사자들은 스스럼없이 위패를, 유골함을 들었습니다. 외롭게 떠나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쪼개어 오신 분의 마음을 아직 듣지는 못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따뜻했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고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과 의전업체 대표. 사진 나눔과나눔

 

구청 앞에서 발길을 돌리다 _ “아버지를 무연고자로 보낼 뻔했습니다”

 

4월 초 나눔과나눔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에 3일째 안치되어 있고 아들인 자신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상황이라 장례를 치를 돈을 구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들은 해당 구청에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구청 담당자로부터 아버지의 시신인수포기서를 작성하면 무연고로 화장이 진행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장례가 필요한 경우라 판단하고 일단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에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해보시라 권하고 다음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나눔과나눔에서 장례식장에 연락했더니, 아들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을 통해, 아들에게서는 듣지 못했던 고인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더 들을 수 있었고, 사정이 어려우면 일단 화장을 진행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장제급여만 나중에 받는 것으로 진행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연락이 없는 아들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아들은 마침 구청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울먹이는 아들에게 구청에서 나와 곧바로 장례식장에 가시라고 전했습니다. 아들은 전화를 끊고 장례식장으로 향했고, 나눔과나눔은 장례식장과 협의하여 빈소 대신 시립납골당까지의 운구차량비와 시립납골당 사용료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화장 당일 드디어 아들의 초췌한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아들은 비참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8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하던 일이 잘못되어 자신이 구치소에 있다가 나와보니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를 치를 형편이 안 되어 나눔과나눔에 전화를 걸었고, 장례식장에 선불로 내야 할 75만 원(장제급여)을 구할 데가 없어 이리저리 헤매다 절망 끝에 아버지의 시신을 포기하러 구청 앞까지 가야 했던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참해 아들은 죽고만 싶은 심경이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의 배려로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아들은 공영장례 전용빈소(그리다)에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떨리는 두 손으로 아버지께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던 아들은 끝내 목 놓아 울었습니다.


가족이 가족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아들이 정말 절실하게 바랐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오열하는 아들. 사진 나눔과나눔

 

한국에 다녀온다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지난 3월부터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기관 나눔과나눔이 활동을 하면서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참 당황스럽고 안타까웠던 사연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분의 전화였는데, 한국에 온 외국인이 입국하자마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하여 다른 병원으로 옮겼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병원비는 천만 원을 훌쩍 넘겼고, 본국에 있는 아내가 구할 수 있는 돈을 모두 보냈지만 아직도 갚아야 할 돈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장례를 치를 형편이 되지 않아 가족들은 시신 인수를 포기해야 했고, 외국인이었지만 무연고자로 보낼 상황이 되었습니다.


전화를 건 분은 돌아가신 분의 조카였습니다. 관계 정리가 잘 되지 않아 해당 구청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보니, 돌아가신 분은 원래 한국분이었으나 30년 전 귀화해서 외국인으로 살았고, 해외에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았습니다. 3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공항에 도착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하기도 전에 병원으로 실려 갔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고액의 병원비만 남긴 채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장성한 조카분은 얼굴도 뵌 적 없는 삼촌을 처음 맞이하게 된 것이 무연고 장례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울시 의전업체 입관과정에 참석한 아내와 자녀는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에 오열했고, 더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치러진 장례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장례식에는 조카분들만이 참석해 쓸쓸히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습니다.

 

30년 만에 만난 삼촌의 무연고 장례에서 산골과정을 함께하고 있는 조카들. 사진 나눔과나눔


마지막을 함께한 가족, 지인들의 방문


봄비가 내리는 4월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두 분의 무연고자 장례가 있었고, 평소 한산했던 분위기와 달리 서울시립승화원 공영장례 전용 빈소(그리다)에 많은 분들의 발길이 있었습니다.


ㄱ님은 지난 2019년 2월 초 84세를 일기로 서울의 한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지방에 사는 조카들이 있었지만 조카분들도 연로한 관계로 생전에 삼촌을 잘 돌보지 못했고, 명절 때에야 그나마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찾아가 뵙지 못하는 마음을 달랬습니다. 올해 초에 전화했을 때 삼촌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 조카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형편이 넉넉지 않아 시신인수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조카들은 비록 장례를 치르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삼촌의 화장하는 날은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해당 구청 담당자에게 뜻을 전했고, 무연고 장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장례 당일 무연고 사망자 전용 빈소가 있다는 사실에 조카분들은 놀라워하셨습니다. 의전업체에서 수의를 준비해 정성껏 고인을 모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조카분 중 한 분은 “삼촌의 장례도 못 치르고 보내게 되어 마음이 아팠는데, 대신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술 한 잔 올릴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라며 장례가 끝날 때까지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같은 날 장례를 치르게 된 ㄴ님은 생전에 어머니처럼 챙겨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사는 동안 지병이 있어 늘 힘겨운 삶을 살았던 ㄴ님을 딸처럼 여기며 여러모로 챙겨주셨고, 본인이 다니던 교회에도 함께 다니며 많은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셨습니다. ㄴ님의 장례에는 교회분들뿐 아니라 생전에 ㄴ님을 돌봐주셨던 동주민센터에서도 참석해 일반적인 장례처럼 고인과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따뜻한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삼촌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조카들. 사진 나눔과나눔
 

서울시 저소득시민 장례지원


서울시는 2018년 5월 10일 광역단체 최초로 공영장례를 지원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을 수행할 의전업체를 선정하고 서울시립승화원 전용 빈소에서 두 분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한 이후 2018년 한 해 동안 약 250여 명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서울시는 저소득시민 장례(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자)를 시범적으로 진행했고, 2019년 3월부터는 무연고 사망자의 고인모심(시신 입관부터 운구, 화장 후 봉안) 수행업체와 장례의전 업체를 통합하고, 저소득시민 장례까지 지원하는 서울형 공영장례 추모서비스 ‘그리다’ 사업을 진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에 따라 지난 4월 12일과 22일 서울시는 마포구에 거주하다 돌아가신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자 두 분의 장례를 서울시 저소득시민 장례로 지원했습니다. 특히 4월 12일 정○○ 님 장례에는 서울시 관계자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그리고 공영장례 수행업체와 나눔과나눔이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공영장례 진행과정에서 겪은 애로들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수행업체인 정담의전과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기관인 나눔과나눔의 의견을 수렴하여 공영장례 지원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종교 등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사회적인 애도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저소득시민 장례는 고인과 함께 지냈던 이웃, 지인들이 고인을 추억하며 애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지원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망이 가족을 대신해서 장례를 치러줄 수 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형 공영장례 추모서비스 ‘그리다’가 점차 자리 잡아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장례를 치를 수 없어 무연고자가 양산되는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울시 저소득시민 장례에 참석한 서울시 관계자가 고인의 영전에 술을 올리고 있는 모습. 사진 나눔과나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4월 기초생활수급자
조춘식, 정남채, 곽경훈, 조완형

 

4월 무연고사망자
장화자, 윤천석, 불상아기, 김동용, 백승우, 한정호, 황용덕, 윤병상, 이정은, 서용익, 최영선, 이최식, 김성수, 이태영, 전영구, 김한성, 이봉근, 이상준, 김종용, 김영락, 김영인, 신애란, 이종태, 조길동, 송영운, 유복형, 노정학, 송인수, 황일, 홍윤표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네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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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나눔과나눔 장례지원실장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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