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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기고] ‘세상을 바꾸는 농인들’ 김수진
기안84 사태 이후, 농인·청각장애인에 대한 2차 가해는 현재 진행형
등록일 [ 2019년05월21일 20시26분 ]

‘청각장애인 비하’라고 지적받은 기안84의 ‘복학왕’ 248화 세미나1(2019. 5. 7. 연재) 갈무리. 지난 10일 이후, 해당 장면은 수정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대에 누워 꿀 같은 휴식을 만끽하며 에스엔에스(SNS)를 하던 중, 아래와 같은 단문의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복학왕’에서 청각장애 있는 캐릭터가 혼잣말 (생각) 할 때 새는 발음으로 한다.”

 

개인적으로 웹툰에 큰 관심은 없지만, ‘복학왕’은 네이버 수요웹툰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 웹툰작가인 기안84가 공중파 방송에도 나오고 있다는 것도.

 

네이버 수요웹툰 ‘복학왕’ 248화(세미나1) 중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 ‘주시은’의 속마음이 어눌한 발음으로 표현된 부분에서 저절로 탄식과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스크롤을 쭉 내려보니, 해당 회차 분의 댓글 창에는 해당 장면에 대해 분노와 불쾌감을 드러내는 일부 농인·청각장애인1)의 댓글들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해당 댓글들은 웹툰일 뿐인데 너무 예민한 반응이라며 무시당하거나 묻히기 일쑤였고, 3일이 지나서도 기안84와 네이버 웹툰 측의 사과문이나 수정 등 후속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장애인권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단체 홈페이지 및 SNS에 게재한 입장문을 통해 “기안84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지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희화화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의한 법률’ 제4조에 해당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로, 지금까지 작품을 통해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해온 것에 대해 공개사과를 해 달라”고 정식 요구했다. 그렇게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각종 커뮤니티에 일파만파 퍼지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오갔다.

 

네이버 웹툰 측은 10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당사와 기안84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장면을 꾸준히 검수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문제가 불거진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사과하였으며, 기안84 역시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첫째, 네이버 웹툰 측과 작가가 사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장면을 꾸준히 검수해 왔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리가 없다는 점. 둘째, 기안84의 사과문을 통해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묘사하고 과장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재미를 주려고 했다는 점이 확실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안84의 사과문. 현재는 삭제됐다.
 

“주시은이라는 청각장애 캐릭터가 등장했던 건 아주 오래전인데, 그땐 아무런 지적도 안 하다가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이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기안84가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냐?”


매주 연재 중인 ‘복학왕’에 청각장애여성 캐릭터인 주시은은 2018년 10월(‘공장왕’ 에피소드)부터 등장하는데, 최근에서야 몇몇 농인·청각장애인이 불쾌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의 속마음 대사까지 어눌한 발음으로 표현한 것에 있다.


“내가 가장 답답하고 화난 지점은 바로 ‘여자 청각장애인이 속으로 어눌한 대사를 하는 부분’에서다. 학창시절, 반 아이들이 나에게 “말해봐. 그냥 아무거나 다 말해봐.”라고 할 때마다 무조건 입을 굳게 다물었던 순간들, 그리고 나의 어눌한 발음을 듣자마자 나를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나는 그 컷을 보면 작가의 무지와 편견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 한눈에 보였다. 작가가 독자에게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과장해서 그렸다고 하는데 이는 나의 어눌한 발음을 가지고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트위터 아이디 daily****)


만일 작가가 ‘웹툰’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유로 모든 대상을 희화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본다. ‘웹툰’이라는 장르는 청소년 등 10대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도 하며, 이러한 미디어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기안84가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기 전에 한 명의 창작자로서 캐릭터 묘사에 좀 더 신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 창작과 표현의 자유 핑계로 타인 상처 주는 행위 지양해야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발음이 어눌한 편인데, 이걸 작품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에 불편하다고 한다면 어떡하라는 거냐. 실제로 내가 만난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발음이 어눌했다. 사실인데, 사실대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은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나 다름없다.”

“너무 작가의 창작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어떠한 의도를 갖고 어떻게 묘사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안84는 사과문을 통해 “작품을 재밌게 만들려고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언급하며, 자신의 잘못을 정식으로 인정하였다. 이처럼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다면, 이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실제 장애가 있는 당사자들이 상처를 받은 상황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된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해당 작품과 사과문은 웹툰작가 기안84가 평소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으며,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인 ‘주시은’이 말할 때의 발음을 기안84가 어눌하게 표현한 것에 실제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낀 청각장애인도 상당수 있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발음이 대체로 어눌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 부분은 필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말할 때의 발음이 어눌하다고 해서 사고 역시 어눌한 발음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명백한 잘못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가 예부터 수차례 이루어져 온 바 있는데, Rosenstein(1961)은 농인을 대상으로 수행된 여러 연구를 검토한 끝에, 농아동과 일반 아동의 지능 수준은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Vernon(1967) 역시 청력손실 정도와 지능, 그리고 청력손실 시기와 지능 간에는 유의한 상관이 인정되지 않으며, 뇌막염과 같이 뇌신경장애를 수반하는 경우 지능과의 상관성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아울러 그는 농아동이 지적과업에서 보이는 결함에 대해, 이는 ‘청각장애’ 그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 그들 집단이 속해있는 사회‧경제적 배경의 취약성(불리함)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 청각장애 있는 사람들에 대한 2차 가해는 현재 진행형

 

네이버 웹툰과 기안84가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온라인에서 여전히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사건에 대해 “선천적 청각장애인들은 단 한 번도 살면서 제대로 된 언어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언어로 생각을 하냐”, “청각장애인들, 기안84가 사과해도 듣지도 못할 거면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와 같이 무시‧비하‧조롱 등이 담긴 댓글들을 온라인상에 남김으로써 또 다른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댓글 중 ‘제대로 된 언어’란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청인2)들이 사용하는 ‘음성언어(한국어)’를 기준으로 얘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필자는 의학적 기준으로 선천적 중증 청각장애인에 해당하며, 소리(음성언어)를 듣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소위 어음변별력은 0이다. 이 네티즌의 말대로 선천적 청각장애인은 ‘제대로 된 언어’로 사고가 불가하다고 한다면, 그가 말하는 ‘제대로 된 언어’로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나(농인)는 뭐가 되는 것일까?

 

아울러 이들은 농인들의 고유언어인 수어를 ‘제대로 된 언어’로 보지 않는걸까? 실제 수어는 예로부터 “조사가 없다”던가 “문법이 덜 발달되어 있다”, “수어로 일상적인 대화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추상적인 주제에 관해서 토론하기 어렵다”며 언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평가절하당해왔다. 하지만 농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수어는 어휘의 의미범주와 문법의 구현방식에서 한국어와 많은 차이가 있는 독자적인 언어로, 2016년 시행된 「한국수화언어법」 제1조에서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고 인정하고 있다. (『농문화와 농사회』, 2019, 국립국어원)

 

이에 농인·청각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단체인 ‘세상을 바꾸는 농인들’, ‘한국농아대학생연합회’가 17일 공동성명서를 SNS에 동시 게재하면서 아래와 같이 두 가지를 분명히 하였다.

 

첫째, 우리들은 당신들의 흥미와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둘째,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십시오.

 

‘세상을 바꾸는 농인들’, ‘한국농아대학생연합회’가 17일 SNS에 게시한 공동성명서. ‘세상을 바꾸는 농인들’ 페이스북 갈무리.
 

주변에서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30만 명3)에 달하는 농인·청각장애인의 존재를 지우는 행동과 그들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무시‧비하‧조롱은 지양되어야 한다. 버스 또는 지하철에서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 농인·청각장애인 중 한 명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아래의 문구를 읽고 자기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

 

 

*** 각주

 

1) 농인(聾人): 언어‧문화적 관점을 내포한 정의로,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원어민 혹은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것을 지향하는 언어적 소수자들을 칭한다.
청각장애인(聽覺障碍人): 의학적 관점을 내포한 정의로, 병리학적으로 청력에 손상이 있는 사람들을 칭한다.

 

2) 청인(聽人): 여기서 청인은 ‘소리를 듣는 사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건청인’이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의학적(병리학적) 관점이 적용된 용어로 ‘청력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관점을 적용하면 농인은 ‘청력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람’이 되며, 정상-비정상으로 구분될 위험이 있어 최근 농사회에서는 ‘건청인’이 아닌 ‘청인’으로 바꿔 부르고 있는 추세이다.

 

3) 국내 등록 청각장애인의 수는 30만 2,003명(보건복지부, 2017)으로, 미등록 청각장애인까지 합친다고 가정하면 이들 수는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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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세상을 바꾸는 농인들) changedeaf2018@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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