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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비하하지 않으며 그 삶을 잘 담아낸다는 것
[비평] 기안84의 ‘복학왕’과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등록일 [ 2019년05월24일 16시09분 ]

‘청각장애인 비하’라고 지적받은 기안84의 ‘복학왕’ 248화 세미나1(2019. 5. 7. 연재) 갈무리. 지난 10일 이후, 해당 장면은 수정됐다.

 

- ‘병맛’ 만화가 사회적 소수자를 만났을 때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세미나 1, 2편)이 청각장애여성을 비롯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 생산직 노동에 대한 비하 등으로 최근 논란이 되었다. 논란이 된 웹툰 에피소드만을 봐도 당최 이 만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최근 올라온 50여편가량을 읽어봤지만(2014년 6월에 연재를 시작한 복학왕은 22일 기준 250화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의 일관된 서사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병맛 코드’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기안84의 웹툰이 뜬금없고 허약하긴 했으나 큰 틀에서는 지켜져 왔던 기본적 스토리마저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복학왕’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패션왕’에서부터 기안84 만화를 구독해왔다는 오래된 독자들이 “도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를 토하는 댓글들만 봐도 이러한 징후를 알 수 있다. 이는 별점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복학왕의 별점 평균은 9.2점(10점 만점)인데 243화(4월 2일)부터 각 웹툰 평점은 5점 안팎으로 급격히 떨어져 여전히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일 올라온 ‘복학왕’ 250화(세미나3)에 달린 베스트덧글 일부.
 

장애인을 작품에 등장시킬 때 꼭 장애에 천착하여 그릴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일상적 장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자연스레 등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지향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소수자를 그리는 것은 분명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장애인을 비롯해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많은 경우 이름을 가진 한 명의 개별자로서가 아닌, 사회가 덧씌워놓은 이미지(편견)에 따라 분류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장애인은 불쌍하다, 게이는 여성스럽다,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다’와 같이 말이다.

 

복학왕에 등장한 청각장애여성 주시은은 어떠한가. 이 인물은 218화(2018년 10월 9일)부터 등장한다. 30편 넘게 등장했음에도 주시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 외에 그 이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이렇게 납작한데, 이는 ‘병맛’ 작품의 특징 중 하나라고 너그럽게 이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인물의 서사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인물이 갖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성(장애, 이주노동자 등)’ 그 자체가 캐릭터의 전부가 될 때, 비하와 왜곡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실제 대중들이 가장 분노한 지점은 주시은의 경우 ‘생각조차 혀짧은 소리로 어눌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며 이는 장애에 대한 희화화라고 비난받았다. 이렇게 한 존재의 서사와 그에 따른 여러 속성을 삭제하고 오직 사회적 소수자성만을 부각시켜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들 때, 남는 것은 그저 강화된 편견뿐이다.

 

- 장애를 비하하지 않으며 그 삶을 잘 담아낸다는 것

 

이러한 흐름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감독 육상효)는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중 보기 드문 수작이다. 전신마비장애인 세하(신하균)와 지적장애인 동구(이광수)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다행히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동을 주지도 않으며, 특별히 정의롭지도 않아서 좋다.

 

오히려 세하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비장애인들에게 ‘봉사 시간’을 파는 영특함(?)을 발휘하고, 자신의 장애에 주눅 들기는커녕 신경질 부릴 줄 아는 그는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장애인 캐릭터다. 중증장애인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둘이 있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세하는 되받아친다. “119에 신고하면 되죠. 불이 나면 비장애인은 안 위험합니까?” 세하는 자신이 ‘동구를 수족으로 부리고 있다’는 세간의 눈초리에도 날카롭게 대립한다. “내가 동구를 이용했다면 동구도 나를 이용했고, 내가 동구를 도왔다면 동구도 나를 도운 겁니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스틸컷
 

대개의 삶이 그렇듯, 삶은 ‘이용 혹은 도움’으로 이분화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얽혀있다. 영화는 바로 그 관계의 결을 다채롭게 그림으로써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하고 서사의 풍요로움을 획득한다. 영화 속에서 세하가 휠체어에 관한 농담(서 있는 비장애인에게 "그러니깐 어딜가든 의자를 좀 갖고 다녀"라고 말한다)을 하고, 지적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이광수)의 모습이 장애인 비하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핵심을 놓치지 않는 유머러스함으로 재미와 가치를 함께 높인다.

 

마지막 장면도 흥미롭다. 동구와 세하가 더는 수동휠체어를 중심으로 앞뒤에 서지 않고 나란히 걷는 모습(전동휠체어를 타는 세하 곁에 동구가 서서 함께 걷는다)이 한 프레임에 포착될 때 우리는 그 특별한 우정의 깊이를 새삼 선명히 깨닫게 된다. 이는 영화에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 활동지원제도가 나오지 않는 점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대신 영화는 장애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는데, 이는 제도에 포섭되지 않는 온전한 우정으로서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함은 아닐까. 이는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바라는, 어떠한 친밀한 관계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지 않은가.

 

- 표현의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무엇을 이야기할지’(서사)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며, 반면 서사에 대한 붕괴가 캐릭터의 붕괴와 납작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작가 자신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난잡함 속에서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를 기대하는 게 더욱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와 기안84의 ‘복학왕’이 동일하게 장애인을 등장시켰으나 서로 다른 극단의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는 표현의 피씨함(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특별한 형제’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인가. 영화의 서사와 표현이 정치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따진다는 것은 어쩐지 갑갑한 일이다. 예술작품이 삶에 대한 은유라면, 삶은 ‘정치적 옳고 그름’의 이분법에 포섭되지 않는 다양한 결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니, 정치적 옳고 그름으로 포섭되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프로파간다가 아닌가. 그렇다고 복학왕과 같은 작품을 제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작품들은 지금처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고 와 논의됨으로써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소수자의 삶의 서사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공통감각을 기르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그러니 기안84가 부디 방송에 그만 나오고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와 작품에 힘써주었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 방송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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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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