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6월18일tue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홍성훈의한번물구나무서보겠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상추와 당근즙
[홍성훈 칼럼] 나의 S 다이어리①
등록일 [ 2019년05월31일 11시18분 ]

어머니는 종종 밥상에서 우리 사남매에게 태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태몽 이야기를 할 때면 허리를 꼿꼿이 펴고 목소리에 힘을 주는 습관이 있었다. 태몽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영험하기로 이름난 동물이란 동물들은 다 등장했다. 우선 둘째 여동생의 태몽에서는 뱀이 나왔다. 아주 큰 뱀이었는데 얼마나 컸는가 하면 산 능선마다 뱀의 마디가 걸쳐져서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온 산이 흔들렸다. 뱀을 본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털썩 주저앉았고 오줌을 찔끔 흘렸다. 셋째 남동생은 호랑이였다. 역시 꿈속에서 산길을 가고 있었는데 ─ 어머니는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 갑자기 건너편 나무 뒤에서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왼쪽 엉덩이를 콱 물었다. 이번에도 오줌이 찔끔 나왔고 꿈에서 깨어났는데도 왼쪽 엉덩이가 계속 아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며칠 뒤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뱃속에는 셋째 남동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막내 남동생은 황소였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딩동’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어머니가 졸린 눈을 비비며 현관문을 열었더니 문 앞에 누런 황소 한 마리가 음매, 하며 울고 있었다. 황소는 커다란 달구지 하나를 끌고 왔는데 달구지 안에는 사람 팔뚝만 한 고구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는 꿈속에서 본 그 많은 고구마를 돈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너희들 중에서 막내는 부자가 될 거”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분홍색 바구니에 상추가 담겨 있다. ⓒ픽사베이

 

나는 나의 태몽 이야기가 못내 기다려졌다. 첫째인 나의 태몽 이야기가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아마 이 태몽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말하면 이야기를 맛깔나게 할 수 있는지 다 알고 있어서 조미료를 넣고 빼는 데 능숙했다. 그런데 쉬지 않고 이야기하던 어머니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때 우리는 불판에 삼겹살을 굽고 있었고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만 거실 가득 메웠다. 어머니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버지와 동생들은 고기를 굽고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금방 이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소쿠리에서 상추 하나를 집어 들고 물기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밥과 고기, 쌈장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잘 썰린 고추를 넣고 빈틈없이 쌈을 여미더니 곧장 입안으로 넣었다. 멋쩍은 나는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 쌈을 삼킨 어머니가 옆에 앉은 여동생에게 말했다.

 

“네 오빠는 내 꿈에 상추로 나타났단다. 그것도 아주 싱싱한 상추로.”

 

고기가 목구멍에서 걸리는 바람에 한참을 캑캑댔다. 어머니가 잽싸게 물을 먹여주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처 삼키지 못한 상추가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에이 씨벌─, 그 상추 조각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그만 욕설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상추가 무엇이란 말인가, 상추가. 깊은 바닷속에서 여의주를 품고 승천하는 용이나, 날갯짓 한 번만으로 만(萬) 리를 간다는 황새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상추라니. 시골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상추였다. 나는 그만 힘이 탁 풀리고 말았다. 식구들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고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난 처음 태몽이 제일 신기하고 가장 또렷이 기억나.”

 

어머니는 꿈속에서 나와 이렇게 만났단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 산 하나만 넘으면 서로의 집을 오갈 수 있어서 쌀과 과일, 채소 등을 나눠 먹기도 했다. 태몽에서도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고추를 아버지 집에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을 받고 싱싱한 고추를 한 소쿠리에 가득 싣고는 자전거를 타고 산 하나를 넘어갔다. 이윽고 아버지 집으로 갔는데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마당에선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두 분에게 인사했지만 이렇다 할 반응도 없었고 그저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더랬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추가 든 소쿠리를 마당에 두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집 안 사랑방엔 웬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새하얀 한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그 할머니를 처음 보았지만, 인사는 드려야 하지 싶어 큰절을 올리려 했다. 그때,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절하지 말라고 극구 말리더란다. 그리고는 여기서 썩 나가라고 사정없이 밀쳐냈고집에서 쫓겨난 어머니는 도망쳐 나오다시피 해 마당으로 다시 갈 수밖에 없었다.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거기 두고 온 소쿠리 안을 봤더니 고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파릇파릇한 상추만 무성히 쌓여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당황해하던 찰나, 꿈에서 깨어났다.

 

이야기를 끝낸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할머닌 아무리 생각해도 삼신할머니 같아. 내가 절을 하려는데 미친 사람처럼 말리더라고. 다 널 살리시려는 거였을 거야. 고추가 상추로 변하긴 했지만…… 엄마가 삼신할머니한테 절 안 한 거 너무 잘한 거 같지 않냐?”

 

어머니는 해맑은 얼굴로 되물었다. 본인 나름대로는 그 태몽을 하나의 계시로 여기는 듯했다. 고추가 상추로 변한 것은 내가 장애를 가지게 될 것(게다가 남자 구실을 못할 것)이라는 삼신의 암시라고 했다. 그때의 나로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바보 같지만 꿈에서 어머니가 고추만 놓고 아버지 집에서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자기연민에 빠져 시무룩하게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쌈을 싸 먹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얘, 할 건 다 해. 어제도 자위하다가 나한테 들켰잖아.”

 

이번에는 물을 먹다 사레가 들렸다. 나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기침을 해댔다. 고기를 뒤집던 아버지가 “또?”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다행히도(?) 동생들은 배가 찼는지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 뒤였고 밥상엔 나와 어머니, 아버지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불판을 바라보았다. 고기는 잘도 익어갔다. 차라리 할 수 있다면, 저 고기가 되어 불판으로 뛰어들고픈 심정이었다. 아버지는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쓱 닦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대체 누굴 닮아서 저런디여.” 아버지 말에 나는 둘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딴 건 몰라도 내가 그렇게 밝히는 건 그네들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빨간 비디오’를 본 것은 네 살 무렵이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생후 첫 기억도 그 비디오의 내용과 비디오를 보며 손을 꼭 잡고 있던 우리 부모의 모습이었다. 당시 우리는 신촌의 어느 단칸방에서 살았고 침대 하나가 방의 삼 분의 이를 차지했다. 침대 맞은편엔 티비와 오디오, 전축과 같은 잡동사니가, 그 왼쪽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이 있었다.

 

그날 나는 책상에 앉아 메모장에 선을 긋는 연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치료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였다. 일곱 장째 종이를 구긴 끝에 어쩌다 보니 바른 선을 그리기에 연거푸 성공했다. 나 혼자 뿌듯해하며 부모에게 자랑하려 고개를 든 순간,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듣는 남녀의 신음소리였다. 티비를 봤더니 화면 속엔 웬 부부가 아침나절부터 부엌에서 엉겨 붙는 중이었다. 둘은 흥분이 고조되어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가 본능에 따라 성실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어린 나에게 보다 충격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그들 부부가 본격적으로 눈이 맞기 전, 아내는 부엌에서 믹서기로 남편에게 줄 당근즙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를 어쩐다, 거사(?)를 치르는 데 너무 급급해 그만 믹서기를 끄지 못했다.

 

당근 ⓒ픽사베이
 

그 빨간 비디오의 하이라이트는 여기서부터다. 화면에서는 거사가 치러지는 안방의 장면과 부엌에서 혼자 열나게 돌아가는 믹서기 장면이 교차 됐는데, 부부가 절정에 이를수록 믹서기도 한껏 열을 받고 있었다. 절정의 최고조에 이른 남편이 눈을 질끈 감고 사정하고 아내가 환호 섞인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과부하가 걸린 믹서기에서 스파크가 탁 튀어 올랐다. 그런데 불이 붙은 건 정작 믹서기가 아니라 부부의 집 밖에 세워져 있던 애꿎은 전신주에서였다. 전선에서 불꽃과 연기가 화르르 오르더니 얼마 안 가 전신주가 나뭇가지처럼 똑 부러지고 말았다─나는 한참을 커서야 그 비디오의 클리셰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렸던 나는 그만 얼어붙은 채 손에 꼭 쥐고 있던 연필을 놓쳐버렸고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부모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 따위는 전혀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듯이 서로의 허벅지를 열심히 쓰다듬어주었다. 아버지의 입이 반쯤 헤벌려졌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침대에 쓰러지지 않으려 오른팔로 자기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 거의 함락되어가는 성문(城門)을 온 힘 다해 틀어막는 옛 병사처럼 어머니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의 부모는 빨간 비디오의 배우들보다 야했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아랫도리에서 불쑥, 뭔가가 일어났다. 간질간질하면서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오줌이 마려운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자신의 허벅지를 유랑하는 아버지의 손을 밀쳐냈다. 그리고 내 앞으로 와서는 괜히 브래지어 끈을 추켜올리더니 나를 멋쩍게 안아주었다. 아버지는 나를 한번 보고 내 눈을 피하더니 입맛을 쩝, 다셨다. 매미가 세차게 울었던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다.

 

아직도 나는 야한 생각을 할 때면 당근즙과 서로를 쓰다듬는 부모의 손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역시 나도 부모의 뜨겁고 농밀한 색(色)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야한’ 여름철들을 지나오며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 [나의 S 다이어리②]로 이어짐

올려 0 내려 0
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으로 마주하는 나의 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으로 마주하는 나의 몸 (2019-06-03 14:14:44)
기해의존선언서(己亥依存宣言書) (2019-03-28 18:3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