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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으로 마주하는 나의 몸
[홍성훈 칼럼] 나의 S 다이어리②
등록일 [ 2019년06월03일 14시14분 ]

>> [나의 S 다이어리①]에서 이어짐

 

음담패설 만국박람회

 

매미가 지겹도록 울고 뙤약볕에서 텃밭 상추가 성큼 자랐을 법한 또 다른 여름날을 기억한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온갖 유혹 속에서 꼬물꼬물 유영하는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현관에는 신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주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신고 다니는 단화나 구두였다. 개중에는 나의 이모의 것도 있었다. 이모는 유난히 굽 높은 빨간색 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그 구두를 신고 길거리를 활보할 때면 뭇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이모는 예뻤다.

 

내가 휠체어에서 내려 거실로 기어가고 있는데, 아줌마들 특유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왁자지껄 한 가운데 우리 어머니와 이모, ‘김 시스터즈’가 있었다. 그들은 좌중을 휘어잡는 데엔 탁월한 수완을 보였다. 이모가 허두를 떼면 어머니가 받았다.

 

“언니들, 혹시 그 얘기 들었어? 왜 주말드라마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있잖아. 몇 년 전에 걔가 오밤중에 한강 둔치에다 차 대놓고 어떤 년이랑 붙어먹다가 순찰대원한테 아주 딱 걸렸대요. 글쎄~”
“아니, 걔 결혼하지 않았어? 하여간 남자 놈들은 아랫도리를 싹 거덜 내야 돼. 개새끼들.”
“아니 근데 신랑 아랫도리 하나는 남겨놔야지. 그것마저 없으면 뭔 재미로 살겄어?”

 

이모의 능청에 주위가 웃음바다가 되어 뒤집혔지만, 한창 자라나고 있는 또 다른 ‘개새끼’ 하나는 거실로 기어가다 말고 그 자리에서 뚝 멈췄다. 그녀들의 역동적인 웃음소리는 늘 생경했다.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를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거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워 있었는데 어쩔 줄 몰라 하던 나를 발견하고는 오른손으로 자기 옆자리를 두어 번 탁탁 쳤다. 여기로 와 앉으라는 제스처였다. 나는 머쓱하게 이모와 아주머니들에게 인사한 뒤 어머니 옆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나로서는 그 자리가 꼭 싫지만은 않았다. 어머니는 마사지를 받는 중이었고, 이모는 마사지 기계로 자기 언니의 얼굴을 열심히 문질러 주고 있었다.

 

강아지 사진 ⓒ픽사베이
 

한때 이모는 화장품 회사에 다녔었다. 당시 그 회사는 화장품뿐 아니라 피부마사지 기계도 생산했다. 마사지 기계는 주로 영업사원들에게 지급됐는데, 영업사원들은 그 무거운 기계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무료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짐작들 했겠지만, 마사지 받으러 이모 앞에 드러누운 아주머니들은 잠재고객이 되었다. 마사지의 핵심은 잠재고객들의 피부를 얼마나 탱탱하게 만드느냐에 있기보다 어떤 화장품을 쓰면 마사지에 맞먹는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스스로 깨달아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게끔 하는 데에 있었다. 이모는 아주머니들에게 마사지해주면서 곁에는 값비싼 화장품 몇 개를 스리슬쩍 늘어놓았다. 제법 프로다운 영업기술이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이모의 영업 자산은 그녀의 외모였다. 이모는 어머니보다 결혼을 일찍 해 내 나이보다 세 살 많은 딸 하나, 우리집 셋째와 동갑인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런데도 서른 중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던 이모는 이십 대와 같은 생기로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어머니에게서 “저년은 늙지도 않는다”라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모는 꿋꿋하게 자신을 모델 삼아 화장품을 팔았다.

 

완벽에 가까운 이모의 영업에도 비빌 언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넓은 발이었다. 처음에는 이모도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부터 막막해했다. 회사에서 받은 마사지 기계를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이모의 손을 잡아끈 건 다름 아닌 나의 어머니였다. 제 새끼를 부양하는 어미 새처럼, 어머니는 자기 동생을 우리집 거실에 앉혀놓고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물어다 왔다. 어머니가 아주머니들을 데려오면 이모는 마사지해주었다. 둘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덕분에 우리집은 자연스럽게 동네 살롱이 되었다. 가끔 아버지가 퇴근 후 팬티 하나만 걸친 채로 집안을 활보하지 못해 툴툴거렸지만.

 

아버지와 달리, 나는 이모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모가 오는 날은 우리집에서 ‘음담패설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주머니들이 주고받는 각양각색의 음담패설은 언제나 나를 흥분케 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가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남의 집 부부 사정에 귀가 밝은가 하면 다른 아주머니는 글로벌한 성문화에 빠삭했다. 물론 여기에 우리의 김 시스터즈가 빠질 리 없었으니.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본인의 이야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인지라 자기 남편의 과거와 자신의 부부생활을 주로 이야기했고(물론 부끄러움은 아들인 나의 몫이었지만), 이모는 유명인사들의 섹스 스캔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이야기의 출처는 주로 ‘카더라’ 통신이었지만 군침이 절로 꼴깍 삼켜질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유부남 연예인의 외도부터 시작해서 정치인들이나 재벌들의 기괴한 성적 취향까지 이건 뭐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가 따로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이모의 이야기를 듣는 중간중간 “썅노무 새끼”나 “시부럴 놈, 저걸 그냥 냅둔다냐?”와 같은 거친 언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언성들은 이야기의 맥을 끊었다기보다 중간중간 윤활제가 되어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 수박을 집어먹으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치 화투판을 기웃거리며 개평을 떼어먹는 여느 노름꾼처럼 그 자리에서 떠날 줄 몰랐다.

 

종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야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왔지만,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세계의 것이었다. 그때의 학교생활은 남자애들끼리 야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게 전부였다. 허나, 우리집에서 꽃 피어났던 이야기들에 비하면 남자애들은 시시껄렁했다. 나는 속으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너희들이 뭘 알겠니?’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우리집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학교 교실에서 조금씩 풀어놓았다. 그 덕에 학교에서 나의 별명은 ‘색골(色骨)’이나 ‘색마(色魔, 또는 sex master)’였다. 물론 나의 뒷배에는 ‘음담패설 만국박람회’가 있었다.

 

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으로 마주하는 나의 몸
 
우리의 관심사는 야한 이야기 말고 또 있었다. 바로 몸에 관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한창 몸에서 재미를 찾아 나가는 중이었다. 특히 갓난이 때 늘 쥐고 있었던 딸랑이가 아랫도리에도 붙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우리는 그 장난감을 갖고 노는 재미에 심취했다. 남자애들은 툭하면 딸랑이를 쥐고 흔드는 제스처를 보였다. 음담패설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내 몸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친구들에게 그 제스처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어보았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마음씨 착한 친구가 옆에서 보기 딱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친구는 설명하다 말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근데 네가 그걸 할 수 있나?”라며 구부러진 내 손목을 쳐다보았다. 나는 머쓱해져서 구부러진 손목으로 친구의 어깨를 툭 쳤다. 친구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 머리를 돌렸지만 나는 괜히 시무룩해졌다. 나도 내 몸의 기능에 대해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엔 사람이 그냥 시무룩하게 있으리란 법은 없고, 무너진 하늘에도 솟아날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어느 날 나는 욕조에서 혼자 목욕하다가 시험 삼아 왼손으로 나의 딸랑이를 쥐어보았다. 놀랍게도 내 손은 할머니의 보자기처럼 그것을 ‘폭’ 하고 감싸 쥐었다. 평소에는 연필만 잡는데에도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뛰던 손이 웬일인지 잠자코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위아래로 움직여보았는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쾌감과 흥분이 몸 아래에서 위로 전해졌다. 피가 온몸 구석구석에서 슉슉 도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딸랑’하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머릿속에선 온갖 감탄사가 떠올랐고, 하마터면 욕조에서 ‘유레카!’라고 외치며 뛰쳐나갈 뻔했다. 집에는 온 가족이 있었는데 나는 생전 처음으로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장애가 있는 내 몸에 깊은 동지애를 느꼈다. 만약 진짜 벌거벗은 채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나갔다면…… 그다음 장면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끝을 보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쿵쾅대는 심장과 한껏 팽팽해진 딸랑이를 진정시키려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마음속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딸랑이가 바람 빠진 풍선 모양이 돼서야 어머니를 호출할 수 있었다.

 

‘딸랑’ 종소리 사진 ⓒ픽사베이
 

내 몸에 대한 인생 일대의 발견은 욕망 목록에 항목 하나를 더하게 했다. 여섯 식구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다 보니 나만의 공간을 갖기란 요원했다. 그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동생들의 팔다리에 짓눌리지 않고 무사히 밤을 지날 수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잘 일어났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부모에게 나만의 공간을 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순전히 다른 이에게 방해받지 않고 내 딸랑이를 갖고 놀고 싶다는 욕망에서였다. 나는 부모에게 ‘이제 곧 있으면 고등학생이다’, ‘무릇 좋은 글을 쓰려면 고독한 환경 속에 있어야 한다’는 둥 온갖 허접한 이유를 갖다 대며 설득했다. 설득하는 동안 손을 벌벌 떨었던 나와 달리, 부모는 의외로 쉽게 허락했다. 그 바람에 나와 방을 같이 쓰던 셋째 동생은 거실로 거처를 옮겨야 했고 ‘소리 없는 원망’이 담긴 눈초리를 내게 보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방 한가운데에 누워 이쪽에서 저쪽까지 데굴데굴 구르며 쾌재를 불렀다. 서너 번만 굴러도 머리가 벽에 부딪힐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불 꺼진 방에 누워 팬티를 내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내 방에는 양말과 속옷 서랍이 있었는데 때문에 가족들이 수시로 들락날락거렸다. 특히 셋째 동생은 꼭 모두가 잠든 새벽에 샤워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 속옷을 입으러 새벽 시간에도 방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혔고, 나는 기겁하며 놀라곤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불을 덮고 고개만 폭 내민 채 딸랑이를 갖고 놀아서 방문이 열리는 순간 눈을 잽싸게 감고 잠든 척할 수 있었다. 근데 그게 어디 감춰졌겠나. 아마 셋째 동생은 눈치챘겠지만 어색한 상황을 피하려 스리슬쩍 넘어갔을 것이다. 진짜 눈치 없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느 초저녁이었다. 집으로 손님들이 왔고 부모는 그들을 맞았다. 초저녁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일찍부터 아랫도리가 간질거렸다. 혼자 애국가도 불러보고 별짓을 다 해봐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끝을 봐야 해결될 문제였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이마를 짚어 보이며 아픈 척했다. 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커피를 내오느라 정신이 없던 어머니는 “응.” 짧게 대답했다. 내가 아프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나는 손님들에게 까딱 고개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굳게 닫은 뒤 불을 끄고 내 몸에 집중했다. 창문 너머 하늘엔 얇은 반달이 걸려 있었다. 반달 주변에 구름 무리가 옅게 깔려 지나갔는데, 구름의 속도에 맞춰 딸랑이를 천천히 아래위로 쓸어주었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세계가 되었다. 더욱이 누군가가 침범할 리 없었다. 부모는 손님을 맞고 있었고 동생들은 학원에 가 있을 터였다. 세계의 안전함을 느끼자 흥분이 배로 고조되었고, 입술 틈새로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제 막 절정을 향해 달려갈 때쯤이었다.

 

갑자기 방문이 열어 젖혀지더니,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달려 들어왔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 섞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얼마나 아프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 너 앓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리더라.”

 

어머니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뚜벅뚜벅 내게로 왔다. 내가 고개를 미친 듯이 돌리며 괜찮다는 표시를 수만 번 했건만 이미 내 곁으로 왔다. 동시에 나는 이불속에서 어떻게든 바지춤을 올려보려고 했지만, 딸랑이는 뻣뻣이 고개를 쳐들고는 세차게 저항했다. 하필이면 또 그날 입었던 바지가 허리에 꽉 끼는 청바지였다. 울어도 볼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아직 기분 좋은 긴장이 가시지 않아 얼굴 근육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에 대한 적개심이 마구 치솟았다. ‘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은 이럴 때 쓰는 속담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어머니가 이불을 훽 거둬들였고, 그다음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는 나의 아랫도리에서 약 15초간 눈을 떼지 못했다.

 

“아픈 게 아니었네?”

 

그러고는 잠시 말을 어버버 거리더니 다시 살포시 거둬들인 이불을 덮어주었다. 어머니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감정의 복원력이 누구보다도 빠른 사람이었다. 차라리 화라도 내면 온 힘 다해 받아치기라도 할 텐데 아무 말도 없었다. 조금 후엔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나는 이제까지 그날 어머니가 지었던 그 미소보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보지 못했다. ‘미칠 것 같다’라는 표현이 그토록 절절하게 와닿은 적은 처음이었다.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카운터 펀치는 이 한 마디였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마저 하렴.”

 

어머니가 유령처럼 스르르 방문을 닫고 나가자 나의 딸랑이도 스르르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갔다. 거실로 간 어머니가 소곤거리며 손님들에게 뭔가 이야기하는 것 같더니 순간 폭소가 일었다. 들리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알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내 팬티를 내리면서 털이 몇 개가 빠졌는지 확인해보는 습관이 있었다. 털이 많이 빠져있으면 내가 전날 자위한 것이고 몇 개 없으면 안 한 것으로 간주했다. 팬티에 털이 수북이 쌓여 있다고 해서 나를 혼내지는 않았다. 다만 동생들 앞에서 큰 소리로 “어제 또 뭔 짓을 한 거여.”라고 말할 뿐이었다. 동생들은 그 말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자기 일에 몰두했다. 처음 몇 번은 수치심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흘려보내게 됐다. 지금에 와서야 어머니의 그 농담은 수치심에 너무 몰두하지 않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퇴로가 되어주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전처럼 자위에 열을 올리지도 않게 됐다.

 
장애가 있는 아들의 성 문제에 호들갑 떨지 않고, 그렇다고 또 마냥 무시하는 것도 아닌 딱 적당한 거리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머니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날 이후로 자위를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아직도 나는 내 몸을 갖고 노는 것이 즐겁고 일상이 된 지도 오래됐다. 그렇게 나는 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으로 마주할 수도 있는 몸과 함께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 번외

 

그날의 소동 역시 이모가 모를 리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모는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역시 화장품 회사에서 생산하는 청소년용 칼슘 영양제였다. 어머니가 이것이 뭔지 물어보자 이모는 나를 보며 이렇게 답했다.


“어 이거 칼슘 영양제야. 쟤 먹이라고. 자위 많이 하면 뼈가 삭는다고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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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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