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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마로니에 8인’의 유쾌한 10년
‘석암투쟁 10주년’ 맞아 마로니에 공원에서 문화제 열려
마로니에 공원에 다시 모인 그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이뤄내자”
등록일 [ 2019년06월06일 03시29분 ]

발언하는 김진수 석암비대위 활동가 뒤편에 10년 전 투쟁을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이 걸려있다. 사진 강혜민

 

4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야외무대에서 탈시설 정책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되는 석암투쟁 10주년 기념 문화제가 열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지난 2009년 6월 4일, 마로니에 공원 구석에 세간을 모아놓고 노숙농성을 펼쳤던 8명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탈시설을 했으니 살 곳을 마련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고 62일 만에 성과를 거뒀다.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렸던 이들 투쟁은 장애인 주거권을 쟁취한 중요한 사건이자, 탈시설 운동의 시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문화제는 마로니에 8인에게 직접 투쟁 과정의 비화, 성과를 들어보고 앞으로 탈시설 정책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지민주, 박준 씨의 축하무대와 석암비대위가 선정한 공로패 증정식도 마련됐다. 공로패는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정종훈 노들야학 활동가, 이규식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임소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 등 4명에게 돌아갔다.

 

- 마로니에 8인, ‘탈시설 어벤저스’의 탄생

 

마로니에 8인은 김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시설 장애인들로 재단의 비리를 폭로한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석암비대위)’로 활동했다. 석암재단은 서울시 보조금으로 운영됐던 사회복지법인으로 회계부정과 시설 장애인의 감금과 폭행, 금품 갈취가 자행됐다. 2008년 1월, 석암비대위는 검찰에 석암재단을 고발하고, 서울 양천구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처벌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이사장은 구속되었고, 시설장은 불구속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시설비리 투쟁에도 시설 장애인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설 비리투쟁이 탈시설 투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문화제에서는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김동림·황정용 석암비대위 활동가, 정종훈 노들야학 활동가를 통해 마로니에 8인의 탈시설과 노숙농성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10년 전 이맘때 홍성호, 김용남, 김동림, 방상연, 하상윤, 주기옥, 황정용, 김지수 등 석암비대위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어느 공원에서 탈시설 결의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마로니에 투쟁’의 시작이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와 김동림 석암비대위 활동가가 이야기 나누고 있다. 사진 강혜민

 

“어떤 공원에서 대낮에 술 한잔도 없이 결의했어요. 노숙투쟁을 하고 힘들 거 같단 말도 했는데, 결의를 하기까지 30초가 채 안 걸렸어요.” (김정하)

 

“솔직히 30초도 아니야, 10초지. 그런데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막막했어요. 내가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8인의 동지가 있어서인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 그때가 좋았다고 얘기해요. 그땐 정말 빡세게 투쟁했어요. 지금은 그보다 덜한 거 같아(웃음).” (김동림)

 

그들이 시설을 떠나는 장면은 고 박종필 감독의 다큐 ‘시설 장애인의 역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길게는 28년, 짧게는 6년을 살았던 곳에서 나오는 8명의 짐이 1톤 트럭을 못 채울 정도로 단출했다. 그 짐은 마로니에 공원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누가 힘든 노숙을 선택하고 싶었을까. 마로니에 8인은 시설에서의 비인간적인 삶을 떨치고 싶다는 욕망에 노숙마저도 달게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설에서는 정부에서 주는 돈을 떼어먹었어요. 돈을 달라고 하면 3만 원을 주고, 적다고 하면 5만 원 이런 식으로 말이죠. 10만 원을 받은 적은 없어요.” (황정용)

 

“거기에서의 삶은 죽은 목숨이었어. 시설에서 하라면 하는 대로 하고,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했다니까. 우리는 자유를 위해 나온 거야.” (김동림)

 

지민주 문화활동가의 공연. 사진 강혜민
석암투쟁 10주년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 사진 강혜민
 

- 62일간의 노숙투쟁이 이뤄낸 것, ‘탈시설 권리’

 

“우리는 더 이상 시설에서 살지 않습니다! 우리를 시설에 가두지 마십시오. 시설에서 나올 것입니다!”

 

마로니에 8인이 노숙투쟁을 시작한 2009년 6월 4일, 석암비대위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이런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서울시에 △탈시설전환국 설치 △전환주거 제공 △활동보조 생활시간 확대 및 대상제한 폐지 등을 요구했다.

 

마로니에 8인은 국가인권위원회 11층에도 농성장을 차리고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보장 약속을 지켜라’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오 시장을 쫓아다니며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다. 그 결과 서울시는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 신설과 전환주거 도입을 약속했고, 8월 4일 62일간의 노숙농성을 마치게 된다.

 

당시 투쟁의 결과는 현재 탈시설 운동의 마중물이 됐다. 당시 투쟁을 함께했던 임소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 한규선·김진수 석암비대위 활동가가 함께 마로니에 투쟁이 이뤄낸 최초의 성취 다섯 가지를 꼽았다. 이들은 △시설장애인의 역습 △탈시설전환지원센터 △자립생활주택 △탈시설 정착금 △‘시설에서 나와서 살고 싶으냐’는 근본적인 질문 등을 중요 성과라고 말했다.

 

(왼쪽에서부터) 임소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총장, 한규선·김진수 석암비대위 활동가. 사진 강혜민
 

“‘시설장애인의 역습’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지나가는 시민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시설 장애인들이 시설장에게 대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거예요. 시설 장애인들은 시설장한테 감히 말도 못 붙여요. 그런데 비리를 폭로하고 석암비대위를 꾸려서 이렇게 탈시설한 것은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어요(웃음).” (김진수)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하고 싶어도 못 나오는 이유는 지원 체계가 안 돼 있어서인데, 탈시설전환지원센터를 서울시에 요구했고, 이게 받아들여졌어요. 이것도 아마 세계 최초가 아니까 싶어요(웃음).” (한규선)

 

“사실 10년 전에는 장애인이 탈시설했다고 집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집을 달라면 집을 줘야 하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 큰 성과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임소연)

 

“제가 시설에서 20년을 살았는데, 나올 때는 통장에 100만 원이 있었어요. 그만큼 시설 장애인들은 나오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없었죠. 지금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지원이 되고 있어요. 경기도에서는 천만 원이 지원되고 있으니까요.” (한규선)

 

“석암재단 비리투쟁을 하던 2008년 서울시에 요구해서 탈시설 욕구 조사를 시행했던 것도 최초였어요. 당시 1200명을 만났는데, 그중 50%인 600명이 시설에서 나오고 싶다고 답변했죠. 그리고 마로니에투쟁을 통해 이런 탈시설 권리 주장이 전국으로 확산이 됐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생각해요.” (임소연)

 

석암투쟁 10주년 문화제가 열리는 마로니에공원에 10년 전 석암투쟁 사진이 놓여있다. 사진 강혜민
김동림 석암비대위 활동가와 그의 아내 이미경 씨. 김동림 씨는 시설에서 나온 후 노들야학에서 이미경 씨를 만나 2011년에 결혼했다. 사진 강혜민
 

- 앞으로의 과제,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마로니에 투쟁을 계기로 장애인탈시설 권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전히 2만 6000여명의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시설장애인들이 지역생활에서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도록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의 필요성을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되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47년간 집에만 갇혀 지내느라 시설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동지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것을 보고 그제야 시설의 문제점을 알 정도로 무지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저도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어서 그랬습니다. 감옥이 달리 감옥입니까. 나가고 싶을 때 못 나가는 게 감옥입니다. 장애인이 나갈 생각조차 못 하게 하는 이 사회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우리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반드시 제정돼야 합니다. 정부는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만들자는데 뒷짐만 지고 있는데, 다 같이 사는 세상을 위해 투쟁으로 쟁취합시다.”

 

이날 문화제는 10년 전 마로니에 투쟁의 성과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탈시설 투쟁을 결의하는 의미로 참가자 전원이 모여 ‘시설폐쇄법제정’ 팻말 퍼포먼스를 펼치며 마무리했다. 

 

한편,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은 10년 내 모든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전체 시설거주인에 대한 지역사회 기반 주거서비스로의 전환, 복지 공공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거주시설 신규 설치 및 신규 입소 금지 △범죄 장애인거주시설 즉각 폐쇄 △30인 이상의 대형시설 5년 이내 폐쇄 △2028년 4월 20일까지 모든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중증장애인에게 지원(자립생활)주택 및 개인별지원서비스 등을 법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문화제는 10년 전 마로니에 투쟁의 성과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탈시설 투쟁을 결의하는 의미로 참가자 전원이 모여 ‘시설폐쇄법제정’ 팻말 퍼포먼스를 펼치며 마무리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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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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