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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 선언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의학이 설명할 수 없는 고통, 치료할 수 없는 몸
등록일 [ 2019년06월11일 15시29분 ]

책상 위에 주사기와 알약, 청진기 등 의학 장비가 있고, 데일리 리포트 스케줄(daily report schedule)에 무언가 체크하려는 한 사람의 손이 보인다. 사진 픽사베이

 

바느질하다가 잠깐 딴생각에 빠지면 자기 손가락을 찌른다. 딱 그 느낌의 통증은 글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어진다. 머리 전체를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콕콕 찔러대는 듯한 통증, 손가락과 발가락 마디마디, 무릎에도 투명한 바늘들이 꽂혔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한다. 뱃속에도 그런 느낌이 든다. 밥을 먹은 직후 윗배가 조금씩 아파지고, 아랫배도 아파지면 나는 내 몸 안의 염증들이 나를 만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염증은 마치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한강, 『흰』, 문학동네, 2018, 11쪽)과 같아서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살점을 찢는 것만 같다. 아, 생각해 보니 염증은 애초에 살점을 어느 정도 찢고 솟아나는구나. 그래서 나는 내 몸에 갇힌 것만 같다. 내 온몸에는 그런 구슬들이 박혀 있다. 잠깐 작아졌을지라도 언제 다시 커질지 모르는 망할 구슬들 말이다.


원래 나는 언제나 입맛이 넘쳤는데 어느 날부터 먹고 싶은 음식이 사라졌다. 입맛이 사라진 데에는 여러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일단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는 게 한몫한다. 원래 정말 좋아하던 음식들도 먹고 배가 몇 번 아프면 사진만 봐도 속이 안 좋아진다. 피가 나기도 한다. 화장실에서 밑을 닦으면 휴지에 피가 특정한 패턴으로 살짝 묻기도 하고, 흥건하게 적셔지기도 한다. 전자는 항문과 그 근처가 손상되어서 그럴 것이고, 후자는 아예 변에 좀 섞여 나온 경우일 것이다. 사실 항문 근처는 언제나 상처가 나 있어서 거의 매번 피가 묻어 나온다.


잠도 편히 못 잔다. 정말로 개운하다고 마지막으로 느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속이 안 좋으면 잠이 오지도 않는다. 항문에다가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는 도구를 꽂아 놓고 계속 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속에 가스가 차서 방귀가 나오고 트림이 끊이질 않는데 어떻게 잠이 오겠는가. 그렇다고 이게 걱정되어 밥을 너무 적게 먹으면 배가 너무 고파서 잠이 안 온다. 덧붙이자면, 염증성 장질환 환자는 공복을 너무 오래 유지해도 안 된다. 염증에 안 좋댄다. 아, 드럽게 성가신 몸이네. 그놈의 ‘적당히’가 얼마만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 황당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이게 약으로 해결이 별로 안 된다는 거다. 수험생활 동안에 나를 제일 괴롭힌 건 두통이었다. 다음으로는 관절통. 오히려 그때는 복통이 적었다. 가장 흔히들 먹는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최대 3알까지만 먹을 수 있는 약을 따로 처방받았지만, 이 약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몇 달 동안 이 약으로 버텨 보다가 약을 바꿨지만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 두 약 외에도 아주 여러 약을 거쳤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 지금은 또 다른 약을 구비해 두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이 진통제 방황의 발단은 부작용이었다. 가장 많이들 사용하는 약을 먹고 아주 희박한 확률의 부작용이 생겼고, 두통이 너무 심해서 처방받은 신경정신과 약을 먹은 뒤에는 속이 메슥거리고 구역질이 올라오고 뇌가 정지하는 듯이 어지러워지는 부작용에 시달렸다. 그때 두통이 너무 심한 걸 보고는 의사가 뇌에 크론병이 침투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던 게 떠오른다. 나는 심지어 두 번째 수능을 앞두고 있었다. 아, 나는 시험 날 아침에 자리에서 못 일어나는 상상에 이어 뇌가 파괴되는 상상까지 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서 뇌에는 이상이 없다고 나오기는 했지만 말이다(나는 아픈데 검사는 대체로 별 이상이 없다).


우리는 진료를 받으러 왔지, 격려를 받으러 온 게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들은 자신의 지침에 나와 있지 않은 증상은 부정부터 하면서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말들을 뱉어댄다. “수치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여 보세요.” “검사 결과는 정상이네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져 보세요.” 그래도 환자가 계속 고통을 호소하면 정신과로 보내 버린다. 아, 얼마나 간편하고 게으른가! 진료가 아니라 격려를 하더니, 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몸에 문제가 없다고 단정 짓는 그 태도란.


만성질환자들, 특히 희귀질환자, 자가면역질환자들은 (이 세 영역이 상당히 겹치기는 하지만) 의사에 대한 불신을 이해할 것이다. 의학, 과학에 대한 불신도 말이다. 분명 의학은 과학적이다. 그런데 어떤 의사들은 몸에 관해서 의학이 유일한 진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는 몸에는 문제가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린다. 환자의 고통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넘기면서 말이다. 환자의 몸과 이야기보다 의학적 권위의 무결함이라는 환상을 유지하고픈 욕망이 더 큰 사람들. 정신과로 보내 버리는 것도 아주 효율적이다. 의학은 자신의 완벽함을 지킬 수 있고, 정신과는 환자를 확보하니까 말이다.


물론 면역억제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의학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왜 나의 작은 통증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원인도 알려주지 못하는지. 지금도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과 만성질환자들이 무시당하고 있다. 동시에 고통받고 있다. 누군가는 신경계가 말을 안 듣고, 누군가는 살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며, 누군가는 피부가 부어오르고, 누군가는 인지기능이 떨어지며, 누군가는 자신의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 우리가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어서 해결될 문제라면 왜 우리는 그토록 부정적으로 마음을 먹고 구태여 스트레스를 받아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의사들은 의학이 완벽한 지침이라는 착각을 버리고 우리 몸에 실재하는 통증을 직접 들여다보고 인정하라. 의학이 갈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난치병 환자의 몸이 그 증거다. 하여 나는 선언하고자 한다. 나는 낫지 않고, 나의 고통은 피부에, 피부 아래에, 근육과 힘줄 사이에 살아 숨 쉰다. 당신의 책과 머릿속에는 없는 몸, 당신이 치료할 수 없는 몸이 바로 여기 있다. 당신의 책이 ‘확진’을 내려주지 않고 설명하지 못하는 몸이 바로 여기 있다. 아픈데 파악할 수 없는 몸, 항생제와 진통제,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로 버텨 내고 매일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몸 말이다. 나는 난치질환자다. 나는 만성질환자다. 나의 몸이 의학의 한계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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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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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 구멍: 누공의 상상력 (2019-05-14 11:5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