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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첫날, 장애인들은 ‘진짜’ 폐지 위한 투쟁 선포하며 대규모 행진
"‘장애등급제 폐지’는 단순 정책 이행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달려 있어”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는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보장 정책의 변화와 예산 책정”
등록일 [ 2019년07월01일 17시59분 ]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에서 ‘진짜 폐지’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있는 참가자 모습. 사진 강혜민 1일, 오후 1시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단체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이날 모인 참가자들 모습. 사진 강혜민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첫날인 7월 1일,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예산을 반영하라”며 정부를 향해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을 선포했다.

 

1일, 오후 1시 서울지방조달청(기획재정부 서울사무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단체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이들은 선포식 이후 잠수교를 지나 서울역까지 행진 투쟁을 벌였다. 이날 1500여 명의 장애인 활동가와 가족, 연대 단체들이 행진에 동참했다. 행진 대오만 500여미터에 달했다.

 

선포식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죽음을 택하거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장애인을 추모하면서 시작했다.

 

박명애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첫날, 고 송국현 동지를 떠올리게 된다”며 운을 뗐다. 고 송국현 씨는 27년을 장애인수용시설인 ‘꽃동네’에서 살다가 2013년 10월 지역사회로 돌아왔다. 당시 활동지원서비스는 2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는데 당시 송 씨는 ‘3급’이라는 이유로 서비스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언어장애와 뇌병변장애로 사실상 24시간 돌봄이 필요하여 여러 차례 이의신청도 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그로 인해 2014년 4월 13일, 집에 혼자 있던 사이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전신 화상을 입어, 나흘 후인 4월 17일 사망했다. 그의 죽음 이후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활동지원서비스는 3급까지 대상자가 확대되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고 송국현 씨처럼 정말 필요한 서비스가 부족해 죽어가는 장애인을 보면서 ‘누구나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불길을 보면서도 피하지 못해 죽고, 보일러가 터져 넘쳐오는 물을 보면서 그 물이 얼어붙을 때까지 움직일 수 없어서 죽은 장애인들이 수없이 많다”며 “우리가 이렇게 투쟁을 벌였던 것은 그 장애인이 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 또다시 그런 죽음을 맞이하지 않겠다는 처절함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은 전장연 등의 장애단체가 2010년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점거를 시작으로, 이후 광화문역에서 2012년 8월 21일부터 1842일간 노숙농성을 벌이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에 직접 찾아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하면서 구체적 성과를 보였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명령 1호’이기도 했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임박해오자,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지난 6월 25일 문재인 대통령도 SNS를 통해 “장애인들이 맞춤형 서비스를 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정책이 31년 만에 바뀝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브리핑을 열었다. 그러나 정부의 장밋빛 홍보와 달리 장애인 당사자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장애인들은 “31년 만의 변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장애등급제 폐지가 우리의 요구와는 다르게  시행될 위기에 처했다”며 “이러한 긴급하고 처절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다시 투쟁에 나선다”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한다면서 중·경증으로 이원화했을 뿐 예산은 늘리지 않은 채 사실상 기존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를 서비스 종합 조사표로 바꾸었다. 게다가 주간활동서비스라는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신규 서비스를 도입해놓고는,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삭감하고 있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변경택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 손팻말을 들고 있는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과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의 모습. 옆에는 수어통역사가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로 인해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드디어 장애등급제 폐지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고 하는데 기쁘지가 않다”며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고 정부에서는 그렇게 홍보를 하면서 예산 반영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국민명령 1호로 선정했는데, 그 아래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는 그에 따른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있다”며 “예산이 없다기보다 장애인 예산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 아니냐”며 비판했다.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규탄하기 위해 이들은 지난 6월 4일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홍남기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 장관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또한, 지난 6월 28일부터 1박 2일간 조달청을 기습점거하고, 노숙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재부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

 

변경택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이곳 조달청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예산에 관한 무서운 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서울에서 집무를 볼 때 이용하는 곳”이라며 “지난 목요일 면담을 요구하며 기습 투쟁과 1박 2일 노숙농성을 벌였지만 갑 중의 갑인 기재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며 기재부를 거듭 규탄했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에서 연대 발언을 하고 있는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과 손팻말을 들고 있는 공민규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국민연금지부 위원장의 모습. 사진 강혜민

 

시민사회단체의 투쟁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교육과 노동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을 없애고, 권리를 견고히 할 수 있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에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권리로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와 완전 통합교육은 불과분의 관계”라며 “시혜와 동정이 아닌 권리를 보장받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평등한 관계를 위해 전교조 6만 조합원이 함께 연대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공민규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국민연금지부 위원장은 “활동지원은 필요한 장애인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대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 국민연금공단이 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현재 정확한 서비스를 측정할 수 있는 2인 1조 체계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복지서비스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현수 전장연 정책조직실장은 “등급제 폐지는 제도 하나를 단순히 개편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분리’와 ‘배제’, ‘낙인’의 의미였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계기로 장애인과 가족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가 핵심”이라며 “결국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보장 정책의 변화와 예산 책정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인 2022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의 장애인복지 예산 확대,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다양한 정책과 서비스 도입” 등을 촉구하며 선포식을 마무리했다. 이후 이들은 “권리를 향한 변화”를 요구하며 잠수교를 지나 서울역까지 행진을 벌였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에서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 단계적 폐지는 단계적 사기행각’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참가자 모습. 사진 강혜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에서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 단계적 폐지는 단계적 사기행각’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참가자 모습.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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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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