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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사람의 장례식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6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19년07월12일 21시18분 ]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을 보내며


일 년에 380명이 넘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며 많은 사연들을 만납니다. 남다른 가족사, 행방불명이 된 형제의 사망 소식,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의 무연고 장례에서 오열했던 남자 등 그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생각하면 그때 그 장면이 떠올라 또 한 번 눈시울을 붉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연들 중 유독 가슴이 먹먹한 장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을 보낼 때입니다.

 

아기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 빈소 제단에 배냇저고리와 바나나우유를 올렸습니다
 

제단에 우유를 올리다


2019년 6월 작은 관이 등장했던 두 번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한 종교단체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어 어린이병원에서 일 년을 살다간 ㄱ아기. 발견 당시 수두무뇌증을 앓고 있었던 남자아기 옆에는 메모지가 있었습니다. 부모는 찾을 수 없었고 지난 5월 하순 폐렴으로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장례 당일 입관을 진행했던 의전업체에서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뽀얀 피부에 곤히 잠이 든 아기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해 가슴이 아렸습니다.


6월 말에도 아기의 무연고 사망자 공문을 받았습니다. ‘○○○의 자’로 이름도 없는 아기는 하루도 채 살지 못했습니다. 고시원에 살며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엄마는 출산 후 스스로 탯줄을 잘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혈이 심해져 119에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병원으로 가던 중 아기의 엄마는 112에 상황을 신고했습니다. 고시원 세면대에서 발견된 아기는 이미 숨을 거둔 이후였습니다. 아기는 이름 대신 ‘○○○의 자’로 기재된 무연고 사망자 공문에 따라 장례가 진행되었습니다. 화로에 들어간 지 10여 분 만에 화장이 끝났고, 무게감조차 느낄 수 없었던 아기의 유골은 유택동산에 뿌려졌습니다.

 

이름 대신 붙여진 ‘불상’


6월엔 이름 대신 ‘불상’으로 온 무연고 사망자 공문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분은 지난 3월 6일 서울시 강서구의 한 야산에서 발견되었고, 이미 사망한 지 오래된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던 등산로에서 벗어나 버섯을 캐러 갔던 목격자의 의해 발견되었고, 사망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불상’의 경우 지난 2월 중순 서울시 영등포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완공되기 전인 아파트 건물 29층에서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고, 신원을 파악할 수 없어 이름 대신 ‘불상’으로 기재되었습니다.


두 분 모두 생전에 이름을 갖고 사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망 당시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막상 장례 당일 ‘불상’이라는 위패를 들게 되니 참 어이없고 참담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불상’으로, 무연고로 세상과 이별하게 될 줄 알았을까요? 마지막 가시는 길에 서울시립승화원 화로로 들어가는 분의 이름이 ‘불상’이라는 사실이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형제였던 너를 보낸다


한때는 가족으로 우애를 나누며 살았던 형제자매. 성인이 된 후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연락이 점점 줄어들고, 어느 순간부터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잘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연락처를 찾아보지만 번호는 바뀌어 있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생사를 모르고 살아가는 형제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형제였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위패를 든 자원봉사자분과 동생의 유골함을 들고 오열하는 누나
 

동생의 마지막을 못 보게 될까 봐 마음을 졸였습니다


새벽부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받기도 전부터 급한 전화임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서울행 첫차를 놓쳐 장례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6월 중순 ㄴ님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하기로 한 누나의 다급한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습니다. 혹시라도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누나는 또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승화원으로 택시를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릴까요?”


누나가 서울시립승화원에 도착했을 때 동생의 시신은 이미 화로에 들어간 지 수 분이 흐른 뒤였습니다. 서울시 공영장례서비스 ‘그리다’ 전용빈소에는 종교집례가 진행되고 있었고, 급한 숨을 달래는 동안 화로로 들어가는 순간을 미리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드리니 그제야 울음이 터졌습니다.


동생에겐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은 무책임한 아빠가 미워서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합니다. “내 자식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조카를 어떻게 제가 설득하겠어요.” 화장이 끝나고 동생의 유골을 뿌리는 누나의 얼굴엔 눈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안치료를 지불하지 못해서 포기한 오빠


6월 하순의 어느 토요일 두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 각각 여동생과 사촌 형제가 참석했습니다. 여동생은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오빠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찾아갔지만 안치료 380만 원을 당장 구할 수 없어 시신인수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구청에 연락해 꼭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고 부탁했고, 일 때문에 부득이하게 주말에 화장예약을 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곡히 전화를 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여동생은 아픈 가족사가 있어서 연락이 끊어졌고, 오빠와 마찬가지로 언니의 소식을 모르고 산 지 오래되었다고 했습니다.

 

노숙자가 된 형제


같은 날 무연고 장례를 치른 ㄷ님의 사촌 형제분은 장례 내내 표정이 굳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ㄷ님은 삼남매의 둘째이고, 성인이 된 후 ㄷ님과 ㄷ님의 형님은 집을 나간 후 소식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막내 여동생은 사촌형제들이 돌보게 되었고,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릴 적 집안에 불화가 있었고, 그 때문인지 성인이 된 후 연락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ㄷ님은 공문에 기재된 마지막 주소가 서울시의 한 주민센터로 거주지가 불분명했고, 지난 6월 중순 서울의 한 공원벤치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건기록에는 ㄷ님이 노숙자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고 씌어 있었습니다.

 

불행한 가족사, 흩어진 형제들


삼남매, 불행한 가족사, 성인이 된 후 헤어져 살다 30여 년이 지나 형제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공통의 아픔. 두 가족의 삶은 닮아 있었고,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고인의 장례를 통해 어쩌면 이날의 경우가 무연고 사망자의 전형적인 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챙겨줄 여유 없는 생활 형편에 성인이 되어 뿔뿔이 흩어져 살며 서로의 소식도 모른 채 살아가고, 죽어서 만났을 때에도 시신을 거둘 여유 없는 팍팍한 삶. 대물림된 빈곤은 단절을 만들었고, 동기간임에도 어쩔 수 없이 형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물림되는 무연고
ㄹ님의 무연고 장례를 하루 앞두고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60대에 접어든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는 오래전부터 헤어져 살았고, 아들 역시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과도 연락 없이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장례 당일 아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올렸고,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하지 못했다며 오열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종교자원봉사자들은 아들을 위로했고, 아들은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아들은 이혼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자신도 몸이 불편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무연고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아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 간의 단절로 인해 가족의 장례를 못 치를 뿐 아니라 본인의 앞날도 걱정거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화장로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관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아들의 뒷모습은 본인의 애처로운 심경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가족이 없었던 무연고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친구들
 

마지막을 지킨 친구들, 지인들


6월 초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ㅁ님의 장례에 친구분들이 참석했습니다. 50대 중반인 ㅁ님은 작년에 뇌출혈로 쓰러졌고,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친구분들은 ㅁ님의 병원비를 책임졌고, 상황이 호전되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말 ㅁ님은 패혈증으로 돌아가셨고, 장례를 준비하던 친구분들은 ㅁ님에게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고자가 아니었던 친구분들은 결국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ㅁ님은 무연고자가 되어 서울시 공영장례 서비스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아니지만 친구분들은 아직도 남은 병원비를 갚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운구가 진행되고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친구분들은 ‘그리다’ 전용빈소에서 장례의식을 치렀습니다. 한 분씩 ㅁ님께 술잔을 올렸고, 꽃을 올려드렸습니다. 화장이 끝난 후 유골함을 안은 친구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열했고, ㅁ님께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비록 혈육의 가족은 안 계셨지만 ㅁ님에겐 생전에도 그리고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에도 친구분들이 가족이었습니다.


*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 6월 기초생활수급자
이남선, 금경도

 

- 6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일기, 김안중, 한슴수, 조규방, 박종안

 

- 6월 무연고 사망자
장월뢰, 김건, 이문성, 윤임주, 이성근, 윤인자, 차정준, 문중식, 최승호, 불상, 박병기, 권정민, 권영성, 곽중섭, 김영일, 김종한, 나원영, 김기현, 조영민, 불상, 정종섭, 박종만, 박용호, 김만호, 강미복,
○○○의 자, 최종덕, 나승규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다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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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나눔과나눔 장례지원실장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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