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9월17일tue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탈시설ㆍ자립생활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탈시설계의 큰 손’이고자 했던 사람, 故 황정용 떠나다
14일,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 동지 추모제 열려
석암투쟁의 주역으로 탈시설 정책 초석 마련… 추모객들 ‘시설폐쇄법’ 결의
등록일 [ 2019년07월16일 11시58분 ]

14일 오후 6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7호실에서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 씨 추모식’이 열렸다. 고인의 동생 황주용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죄송합니다. 제가 2007년에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형님을 모셔다드린 장본인입니다. 형님이 요양원에 계실 때 거기서 형님이 시위하고 다닌다고 전화를 몇 번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형에게 찾아가서 ‘제발 좀 가만히 있어 달라’라고 말하며 형의 뜻을 모르고 비참한 말만 남겼습니다. 실은 이 자리에 서서 얘기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우리 형님을 이렇게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많은 동지분들을 보며 놀랐습니다. 오늘에서야 형님이 무슨 뜻을 가지고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을 했는지 이해했습니다. 여러분께 정말로 감사합니다.” - 유가족 황주용(53) 씨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의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 석암투쟁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황정용 씨가 13일 새벽 자택에서 향년 60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 14일 오후 6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 동지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은 탈시설과 자립생활이라는 말조차 알려지지 않을 때 ‘시설에서 나가자’라고 외친 황 씨를 기리며 ‘시설폐쇄법’ 쟁취를 다짐했다.

 

석암투쟁을 이끈 마로니에 8인 황정용 씨의 빈소. 그의 영정 앞에는 지난 6월 4일, 석암투쟁 10주년을 기념한 팜플렛이 놓여 있다. 사진 박승원
 

- 장남으로 가족 부양하다가 시설 입소, 시설비리 터지자 탈시설 투쟁 나서

 

지체장애가 있던 황 씨는 중학교 졸업 후 아버지가 하던 도장 파는 기술을 이어받아 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장애가 있는 여동생 2명, 배다른 남동생 2명을 부양하며 살았다. 그러다 장애가 점점 심해져서 2007년 1월 30일 동생에 의해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입소하게 됐다.

 

그가 들어간 베데스다요양원은 석암재단 산하 시설이었다. 석암재단은 서울시 보조금으로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으로 회계부정과 시설 장애인의 감금과 폭행, 금품 갈취 등 시설비리의 온상이었다. 이에 석암베데스다요양원 거주 장애인들은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석암비대위)’를 꾸리며 재단의 비리를 폭로했다. 석암비대위는 2008년 1월, 검찰에 석암재단을 고발하고, 서울 양천구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처벌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이사장은 구속되고, 시설장은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시설비리 투쟁에도 시설 장애인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의 시설비리 투쟁은 탈시설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2009년 6월 4일, 고인을 비롯한 거주인 7명은 시설에서 나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62일간 노숙 농성을 하며 서울시에 탈시설자립생활정책을 요구했다. 이른바 ‘마로니에 8인’ 투쟁이다. 이 투쟁의 성과로 서울시에는 시설에 있던 장애인이 탈시설할 때 지원해주는 탈시설전환지원센터와 자립생활주택, 탈시설 정착금 등 탈시설 정책의 초석이 마련됐다. 이후 서울시를 시작으로 경기, 광주, 대구, 전주, 인천 등 지역에도 탈시설 정책이 수립됐다.

 

14일 오후 6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7호실에서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 씨 추모식’이 열렸다. 마로니에 8인으로 함께 탈시설 투쟁을 한 김동림 석암비대위 활동가가 상주이자 이날 추모제의 사회를 맡았다. 사진 박승원

 

- ‘탈시설 자립생활’이라는 말이 낯설었던 때, ‘큰 손’이 되고자 했던 고인

 

황 씨의 장례식장에는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중에는 황 씨와 함께 탈시설하여 석암비대위 활동을 한 마로니에 8인 활동가들도 있었다. 황 씨의 장례식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묵묵히 투쟁현장을 지켜온 그를 기억하며 탈시설 운동을 결의했다.

 

조은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그가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함께 설립한 것은 ‘탈시설에 대한 의지’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정용이 형은 ‘마로니에 8인뿐 아니라 시설에 있는 모든 장애인이 나올 때까지 열심히 싸우자’라고 말했다”면서 “석암재단 산하 거주시설 대부분이 김포에 있으니 김포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 사무국장은 “정용이 형이 센터에서 활동할 때 활동명이 ‘큰 손’이었다. 시설에 사는 많은 장애인을 큰 손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는, 탈시설계의 큰 손이 되고 싶다고 했다”라며 당사자로서 탈시설 투쟁 참여를 비롯해 장애인의 멘토로 활발히 활동해왔다고 소개했다.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마로니에 8인’의 한 사람이자 현재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진수 씨는 “우리 마로니에 8인 중 한 사람을 내 손으로 보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며 참담함을 표했다.

 

김 소장은 “추위를 많이 타 한여름에도 잠바를 입고 다녔다. 하지만 석암재단 비리 사건이 터지고 나서 양천구청 앞에서 농성할 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를 지키다 동상에 걸리는 등 엄청나게 고생했다”면서 “언제나 묵묵히 투쟁 현장을 지켰던 사람”이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그는 시설 안에서 황 씨와 함께 탈시설 투쟁을 결의하던 때를 떠올렸다. 김 소장은 “남한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법 없이도 살 친구가 ‘나가서 투쟁하면 뭐라도 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용아 네가 조금이라도 힘 보태주면 탈시설 역사가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을까. 함께 나갈래?’라고 제안하니 가만 생각하다가 ‘그러면 나갑시다’라고 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 옆에는 황 씨 동갑내기 친구인 김용남 씨도 함께 있었는데,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 씨도 탈시설하여 ‘마로니에 8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날 추모제 앞자리에 앉아있던 김 씨는 오랜 친구의 죽음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로니에 8인으로 함께 탈시설 투쟁을 한 김용남 씨. 사진 박승원
추모제가 끝난 후, 사람들이 고 황정용 씨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마로니에 8인’ 김동림 석암비대위 활동가는 상주로 장례식장을 지키며 이날 추모제 사회를 보았다. 그는 생전에 고인이 탈시설 운동을 하면서 안식처에 대해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정용이 형은 탈시설 운동을 하면서도 바람막이가 될 수 있는 보금자리 하나 가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라면서 “살 곳이 없어 여기저기 전전하다 2017년 10월에 임대주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로니에 8인 중 먼저 보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 했다”라며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황 씨를 기억하며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린 것 중 하나는 술이다. 그만큼 고인은 술을 좋아했다. 황 씨의 추모제 참석을 위해 대구에서 올라온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그를 위해 대구에서부터 술을 챙겨왔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만날 때마다 술 많이 먹지 말고 밥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하곤 했다”면서 “이제야 그 모진 세월 살아오면서 술 아니었으면 무엇으로 삶을 의지하며 살았을까 싶다. 맛나게 드시고 잘 가시라고, 대구에서 술을 준비해왔다.”며 울음을 삼켰다.

 

휠체어에 하얀 국화가 꽂혀있다. 뒤로는 눈물 훔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 박승원

사람들이 헌화하기 위해 국화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고인의 죽음에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박승원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황 씨는 탈시설이라는 말과 자립생활이라는 말조차 알려지지 않던 시대에 ‘시설에서 나가자.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살자’라고 외치며 투쟁했다. 시기상조라는 말이 있었지만, 당신과 마로니에 8인을 만나 함께 탈시설 투쟁을 할 수 있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 이사장은 “2009년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요구하며 62일간 노숙농성하고, 10년이 지난 2019년 황 동지가 별세했다”라며 “석암재단 투쟁으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프리웰 재단 산하 향유의 집으로 바뀌었다. 현재 향유의집에는 52명이 있다. ‘나오려는 사람에게 왜 시설을 강요하느냐’ 말한 정용이 형의 외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시설은 폐쇄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박 이사장은 “여전히 국가는 ‘탈시설 자립생활’이라는 단어를 법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 정용이 형에게 ‘시설폐쇄법’을 보여주지 못하고 떠나보내서 야속하다”라며 “10년 뒤인 2029년에는 ‘시설폐쇄법’을 들고 정용이 형을 찾아가고 싶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마음을 잘 나누고 정용이 형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 씨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 사진 박승원


- 황 씨 유가족, “오늘에서야 탈시설 운동의 의미를 알았다”

 

이날 고인을 직접 시설에 보낸 장본인이라고 고백하며 용기를 내 발언한 유가족이 있었다. 황 씨의 동생 황주용 씨는 추모제를 마치고 나서 비마이너 인터뷰를 통해 “형님은 고향을 벗어나기 싫어한 사람이었는데 점점 장애가 심해지고 나도 처자식이 있다 보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베데스다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형님 의지가 아닌 내 의지대로 그렇게 했어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나 미안하다”라고 전했다.

 

이날 황주용 씨는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탈시설 운동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형님이 시설에 있을 때 내게 전화해 ‘내가 여기에 있는 현실이 싫다. 힘들고 외롭다’라고 말했다. 당시 ‘형 조금만 있다 보면 적응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게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황 씨는 “사실 형님이 시설에 입소할 때 목소리만 듣고도 화가 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족이니까 알 수 있는 부분”이라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온갖 수모를 겪어왔다.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들게 싸워온 형님을 가족으로서 지지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많이 미안하다고 형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더불어 “가족이 하기 힘든 부분을 동지들이 함께 채워줬다. 이 표현으로는 부족하지만 많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 사람이 고인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 박승원

올려 0 내려 0
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부고] 석암투쟁 이끈 ‘마로니에 8인’ 황정용 씨, 13일 별세
이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마로니에 8인’의 유쾌한 10년
석암재단 탈시설 투쟁 10주년, 장애인거주시설폐쇄조례 제정 촉구
시설에 내팽개쳐진 삶, 시설 비리 사건이 터지자 함께 투쟁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40세 넘으면 동대문구 활동지원 추가 시간 끊겼는데…” 동대문구, 2년 만에 폐지 (2019-07-16 19:54:03)
[사진] 새로운 세상을 향한 깃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2019-07-02 20:52:44)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 인권의 도시는 상상하라! '시설없는' 사회를~, 뉴질랜드 people first에서 발달장애인 자기옹호 운동을 듣다!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