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8월21일wed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기고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비탄에 빠진 피해자와 함께하는 활동가의 트라우마, “나는 국가폭력 피해자가 아닌가?”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②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활동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등록일 [ 2019년07월30일 23시19분 ]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박종필 추모사업회(준)는 지난 7월 24일 활동가들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추모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를 열었습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활동비와 과로한 노동, 불투명한 전망 등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겪는 현실이나 이제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국가폭력 등 고통의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은 피해당사자와 함께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활동하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는 꿈꾸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에 비마이너는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논의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하며, 추모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기획 연재합니다.


또한, 비마이너에서는 8월 31일까지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자유기고를 받습니다. 게재되는 글에 한 해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며, 필요시에는 익명 투고도 가능합니다. 글은 비마이너 메일(beminor@bemino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_ 편집자 주

 

-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활동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355일 만에 용산참사 장례를 치러야 했다. 현장 정리를 앞두고 유가족들에 대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하려던 시기, 한 인권활동가가 상황실 활동가들의 심리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생각할 수 없는 참사를 겪고, 355일 동안 상상하지도 못한 날들을 견뎌내야 했던 피해자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이전과는 전혀 같을 수 없는 일상을 마주해야 할 피해자들이 느낄 심리 상태에 비하면, 활동가들이 겪은 내상은 빨간약 처방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활동가들은 이전보다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을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 자체가 치유지, 무슨 치유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이었다.

 

‘활동가들이 이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은 아니지 않은가’, ‘355일 동안 피해자들의 절망과 절규를 지켜보는 것도, 현장에서 겪어야 했던 경찰폭력과 온갖 모욕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활동가라면 이미 이 정도는 각오했고 감당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활동가로서 감내해야 할 몫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색을 하는 것이 활동가의 자세이지, 자신이 그 문제 상태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과 표현하고 싶은 많은 감정들을 그저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이 활동가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치유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24일 박종필 추모포럼에서 발언하는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사진 강혜민
 

- 시간은 해결해주지 않았다

 

이 참사가 355일의 투쟁으로 끝낼 수 있는 거였다면, 난 여전히 ‘활동가의 몫, 자세’쯤으로 넘기며 가슴 속 한구석에 쟁여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났고, 여전히 이 싸움은 지속되고 있다. 보통 심리적 외상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살아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충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투쟁은 괴로운 기억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잊고 살고 싶다’며 괴로워하는 피해자들에게, 활동가인 나는 ‘이거 하자, 저거 하자’라고 하는 입장이었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을 지켜보며, 내가 활동을 종용하는 것이 피해자들을 여전히 참사의 한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괴로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가만히 있으면 잊고 살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간은 전혀 해결해 주질 않았다. 오히려 시간은 새로운 외상을 만들어 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은 용산참사를 과거의 한 사건으로 잊히게 하고 있었다. ‘잊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 피해자들은 ‘잊혀질까 두렵다’고 호소한다.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잊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 잊히는 시간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 활동가의 부담으로 남겨진다. ‘잊히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기획해야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조건이 미약함을 마주하면서도, 싸움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에 짓눌릴 때도 있다.

 

- 국가폭력의 내밀한 작동 방식

 

다큐 ‘공동정범’(감독 김일란, 이혁상)은 용산참사 생존 철거민들의 갈등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국가폭력의 내밀함을 그려냈다. 사실 두려운 일이었다. ‘이명박 정권에 정면으로 맞선, 용산참사 피해자들’이라는 프레임은, 반(反) 이명박 정서가 강했던 진영에서는 대표적인 정권의 피해자이자 ‘투사’의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다. ‘보상을 노린 떼쟁이들’, ‘시체팔이’라는 혐오와 공격에 맞서기 위해, 의도했든 안 했든 ‘아무 죄 없는 순수한 피해자 철거민’, ‘자본과 권력에 맞선 투사적인 철거민과 유가족들’이라는 구도가 그려지기도 했다. 그런 ‘투사적 피해자’들이 내부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연대하는 이들을 그 갈등에 끌어들이는 것이기도 하고, 결국 연대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떠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떠난 일들이 없지 않았다. 활동가들 역시 ‘피해자다움’이라는 편협한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실 ‘공동정범’에서 그려진 갈등은 1/10도 되지 않았다. 2009년 당시부터 국가는 순수한 철거민(용산4구역 철거민)과 외부세력(연대 지역 철거민)을 분리하려 획책했고, 유가족의 요구와 용산4구역 철거민들의 요구를 분리해 서로의 요구가 서로의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것처럼 몰았다. 그런 분리 획책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각자에게 상처로 각인을 남겼다. 용산4구역 유족과 연대 지역 유족들의 갈등, 유가족과 용산4구역 철거민들의 갈등,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갈등, 용산4구역 생존자들과 연대 지역 생존자들의 갈등,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과 망루에 오르지 않은 철거민들의 갈등…. 유가족과 생존자, 용산과 연대 지역, 망루 위와 아래로 교차하는 갈등의 방정식은 겹겹의 갈등으로 작동했다.


수년간의 투쟁에도 응답조차 없는 국가의 벽을 직면하면서 원망의 대상이 같은 피해자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심지어 그 원망의 손가락이 활동가들을 향하기도 했다. 거기에 보상이라는 방식의 협상과 최근까지도 진행된 협상 이행의 장기화는 수 개로 교차하는 당사자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또 다른 갈등을 증폭시켰다. 외부의 국가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투쟁보다 내부 갈등과 이해 다툼을 봉합하거나 이해시키려는 과정, 보상 등 협상 이행과 관련한 이해다툼을 조정하는 활동은 활동가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 활동가가 아닌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자조가 나를 괴롭게 하기도 했다. 결국 국가폭력은 지난 10년간 미세하고 내밀하게 작동했다. 피해자들에게도 나에게도.

 

용산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1월 15일, 용산참사로 남편 윤용현 씨를 잃은 유영숙 씨가 “김석기가 죽였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국회 안에서 들고 외치고 있다. 손팻말에는 용산참사 진압 당시 사망한 희생자 5명의 영정 사진이 담겨 있다. 사진 최한별
 

-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 애쓰지 마라’, ‘너무 마음 쓰지 마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속사정을 아는 가까운 활동가들은 언제부터인가 피해자들보다, 그들의 트라우마와 갈등에 개입하는 나를 더 걱정했다.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국면에서도 대응 방법과 역량 사이에서 발 동동 구르며 초초해 하는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갈등, 초조함은 어느 순간 내게 흡수되어 있었다.

 

‘나라도 애쓰지 않으면’, ‘나마저 마음을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어쩌면 그건 피해자들이 아닌 활동가인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운동의 정당성만으로 지난 10년의 활동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돌아보지 않으면, 지난 10년의 활동이 부정당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해결사가 아닌 활동가로서의 나의 활동이 부정되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는지도 모르겠다. 

 

- 아프다고 말해야겠다


얼마 전 발생한 용산참사 생존철거민 김아무개 씨의 황망한 죽음이 지금도 믿기질 않는다. 생존자 중 가장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는 아프다고,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억을 많이 지우려고 노력해서, 기억이 많이 지워진 것 같다”고 말했던 그가 가슴에 묵직한 돌덩어리야 없겠냐만, 둥그스름하게 잘 다듬어서 한구석에 두고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다. 생지옥과 같았다던 용산의 불타는 망루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것이 죄가 되어, 뾰족하고 거친 돌덩이를 가슴에 품고 있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던, 잘 지낸다고 생각했던 그의 죽음은 꽤 충격이었다. ‘참사 이후 가장 바뀐 부분이 뭐냐’는 2016년 인터뷰에서 그는 “꺾였다”고 했었다. “저는 아마 꺾인 것 같아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가 꺾인다 해야 하나? 예전에는 삶의 의지가 컸었는데…”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미 그가 그때부터 신호를 보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그의 아픔을 알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화장한 그의 뼛가루를 산골하고 온 날, 또 다른 생존철거민의 집을 찾아갔다.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그는 1년여 전부터 전화를 꺼두고 집안에서 홀로 무기력한 삶에 빠져 있었다. 병원과 상담에 끌고 가듯 동행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의 삶을 내가 책임질 순 없었다. 이제는 1~2개월에 한 번 그의 집을 찾아가 10여 분간 초인종을 누르고서야 만나고 오는, 그야말로 ‘생사 확인’만 하고 있었다. 장례를 치른 그 날도 그렇게 ‘생사 확인’ 방문을 했다. 그에게 김 씨의 부고를 전했다. “거푸집만 싱싱했지, 속은 골병들고 있는 걸 사람들이 몰라준다”며, 본인은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나에게 아프다고 말할 줄 알았던 그는 어제 열무를 사다 김치를 담갔다고 했다. 나도 아프다고 말해야겠다.

 

- 나는 국가폭력 피해자가 아닌가?

 

활동가들도 아프다. 비탄에 빠진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며, 그들의 괴로움과 분노와 원망을 흡수한다. 그래서 아프다. 활동가의 자세, 활동가의 몫이라고 내면화하며 마음속에 품어둘 수 없는 수준에 와서도, 아프다고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몸이 먼저 말했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말해야 하지만 여전히 드러내기가 두렵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른다.


‘나는 국가폭력 피해자가 아닌가?’라는 제목을 쓰고도, ‘이는 과도한 질문이 아닌가?’라는 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비탄에 함께한 나 역시 그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말해야겠다.

 

덧) 넋두리 같은 글이다. 넋두리라도 하고 싶은 자리라고 생각했다. 아프다 말하고 아프지 말자. 

올려 0 내려 0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병원 갈 돈이 없어요" 저임금에 시달리는 활동가들의 버팀목, 동행
우리 운동의 지향과 공동체의 일상은 어떻게 만나고 있나요?
[영상] 활동 과정에서 건강이 손상된 활동가들의 스피크 아웃
상담실에서 만난 활동가들, 피폐해진 마음을 돌보다
활동가도 노동자다, ‘건강할 권리’ 위해 노조를 만들자
제도 밖에서 맞이하는 활동가의 40대, 아프지만 않으면 다행일까
아프다는 말, 우리는 왜 하지 못할까?
사회운동활동가 절반이 “활동비로 생활 힘들어 아르바이트해 본 적 있다”
저임금과 휴식 없는 삶, 불투명한 미래… 지속불가능한 활동가들의 현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제도 밖에서 맞이하는 활동가의 40대, 아프지만 않으면 다행일까 (2019-07-31 21:45:08)
아프다는 말, 우리는 왜 하지 못할까? (2019-07-29 11:34:03)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발달장애인의 실종, 오직 그의 장애 때문일까?
대책 없는 발달장애인 실종 대책의 현주소 정부의 커...

복지부의 발달장애학생 방과 후 활동서...
"병원 갈 돈이 없어요" 저임금에 시달리...
우리 운동의 지향과 공동체의 일상은 어...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