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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도 노동자다, ‘건강할 권리’ 위해 노조를 만들자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④
건강할 권리는 노동자 권리 주장에서 온다
등록일 [ 2019년08월01일 19시03분 ]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박종필 추모사업회(준)는 지난 7월 24일 활동가들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추모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를 열었습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활동비와 과로한 노동, 불투명한 전망 등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겪는 현실이나 이제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국가폭력 등 고통의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은 피해당사자와 함께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활동하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는 꿈꾸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에 비마이너는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논의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하며, 추모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기획 연재합니다.


또한, 비마이너에서는 8월 31일까지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자유기고를 받습니다. 게재되는 글에 한 해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며, 필요시에는 익명 투고도 가능합니다. 글은 비마이너 메일(beminor@bemino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_ 편집자 주

 

- 활동가가 노동자인가? 사용자는 누구인가?

 

활동가 건강권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노동자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안 할 수 없다. 우리 연구소는 100% 개인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사단법인 독립민간연구소이다.   처음 연구소가 노동조합을 설립하겠다고 했을 때, ‘활동가가 어떻게 노동자인가? 사용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다. 사전적으로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근로기준법’ 근로자 정의)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는 노동자이다. 우리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어, 타인의 노동으로 이윤을 축적’하지 않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으로 생활’하는 생활인이다.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면 생활인으로서의 우리는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시민건강연구소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이자, 활동가이자, 연구자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균형추를 맞추려고 노력하며 활동하고 있다. 활동가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 건강권 관련 요구는 활동가에게도 당연한 권리이다.

 

지난 24일 박종필 추모포럼에서 발언하는 서상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사진 강혜민
 

- 2012년 7월, 시민건강연구소는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건강권을 기초로 우리 사회와 사람의 삶을 고루 조망하며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진보적 연구 단체이다. 시민건강연구소 노동조합은 2012년 7월 11일에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사회적 연대 차원이 가장 컸고, 두 번째는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향후 연구소 규모가 커질 것에 대비한다면 민주적 조직 운영을 위한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당시 상근인력 2명으로 정말 작은 조직이었지만 상급단체인 의료연대본부에서는 우리에게 ‘분회’를 내줬다. 진보적 연구 단체이자 시민 단체라는 특수성을 높게 사주었기 때문이다.
 
시민건강연구소는 개인 후원자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단체이기 때문에 임금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후원자에 대한 책무성으로 회계의 투명성을 기본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 하의 여러 조직들과는 조직 형태도 다르고 운영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단체협약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우리는 주체적인 노동자이자 활동가로서 ‘숙고’와 ‘논의’를 통해 ‘합의’하는 민주적 의사결정방식으로, 임금과 복리 수준을 결정한다. 동시에 후원자에 대한 책무성으로, 후원금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의 고민도 함께한다. 주 40시간 노동을 명시하고 있지만 활동가이자 연구자의 특성상 그럴 수 없다. 때로는 며칠씩 잠을 못 자기도 하고, 현장을 기반으로 한 연구가 진행될 때면 감정과 체력 소모가 클 때도 많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이 있고, 기본 규정이 있는 것은 조직적으로 활동가의 과한 소진을 막을 수 있는 견제 역할을 한다.

 

2019년 여전히 우리는 100% 노조 조직률을 자랑한다. 이제는 상근직원 5명에 비상근직원 1명으로 총 6명이다. 논의와 합의를 통한 결정 방식을 채택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느슨한 상호 견제와 긴장이 유지되어야 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조직 내 문화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 내 문화는 논의하고 합의하는 민주적 운영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또한 기본원칙을 정하고 고수하고자 노력할 때 가능하다.
 
시민건강연구소의 ‘좋은 노동 공간’을 위한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노동으로부터 사람이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함께 일하는 노동공간) 원칙적으로 파트타임과 재택근무는 하지 않는다.
(분절적 노동 방지) 연구소에서 발생하는 노동에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안정적인 노동) 정규직을 원칙으로 한다.
(복리후생) 근로기준법 적용은 50인 이상 사업장 기준으로 한다.

2)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함께 만들어간다.
3) 행정관리에 있어서 기본적인 체계를 구축한다.

 

시민건강연구소 노조설립 안내문 (2012.07.16.)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서 노조를 설립하였습니다

 

지난 7월 11일 수요일,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분회라는 이름으로 연구소 노조를 설립하였습니다.


저희가 노조를 설립한 이유는 단지 연구소 내의 복리후생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노동조합 전체의 힘을 키우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여 절박한 위기 상황에 내몰린 여러 노동조합과 함께 연대투쟁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연구자, 혹은 공익적 성격의 비영리기관 노동자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자신을 노동자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고, 특히 사회단체의 경우 분명한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사회진보의 방식과 내용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노동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다른 노동자에 대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열심히 연구활동을 하면서 성실하게 노동조합비를 납부하고, 다른 노동조합과 함께 할 수 있는 연대투쟁에 조금씩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노동조합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부터 손쉽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를 통해 노조활동이 노동자의 삶에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는 점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모두가 같은 노동자로서의 연대의식을 꾸준히 쌓아가는 과정에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도록 앞으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 2018년 3월,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서 시민건강연구소로 법인명 변경


- 건강할 권리는 노동자 권리 주장에서 온다

 

아마티아 센은 ‘건강’을 하나의 기능(functionings)이자 능력(capability)으로 보았으며, 모든 사람이 ‘동등한 능력’을 가지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기능이란 삶을 이루는 기본적인 영양 섭취, 좋은 건강 유지, 피할 수 있는 병에 걸리지 않는 것, 조기사망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행복한 생활, 자기존중 확보,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더 복잡한 것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기능은 가능할 수 있는 능력(capability)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이는 곧 성취할 수 있는 자유와 연결된다. 즉, 건강은 그 자체로 삶을 구성하는 핵심기능인 동시에 다른 기능을 선택하고 성취할 수 있는 자유와 연관된다(『건강보장의 이론』, 김창엽, 한울, 2009). 이처럼 건강은 삶의 현재 상태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

 

흔히 건강 결과는 사회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이 겹쳐서 일어난다. 예를 들면, 결핵은 결핵균이 몸에 들어와야 걸리지만, 어떤 사람이 왜 결핵균에 노출되었는지는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영국 런던 대학의 브루너와 마멋 교수는 질병이라는 최종적인 결과는 생물학적 현상이지만 이것은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고 보았다. 사회구조가 질병과 사망, 삶의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작용은 물질적 요인, 사회 환경, 노동환경이라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한다(『건강할 권리』, 김창엽, 후마니타스, 2013).

 

건강의 가치는 다른 인권 행사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기본적 인권이며, 활동가 역시 건강할 권리는 예외일 수 없다. 현실적으로 활동가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제도적 수단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 노동 환경의 개선, 보완 등에 단체 내 자정 노력 역시 우리가 생활인으로서 노동자라는 의식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는 사회적 연대의 일환이기도 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운동의 차원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시민건강연구소 분회 깃발. 이미지 제공 서상희

- ‘활동가의 자기검열’, 제어할 수 있는 견제 장치가 바로 노동조합

 

노동조합 활동의 결과로 얻게 된, 연구소 활동가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성과로는 대체휴무제와 주4일제 도입이 있다. 연구소에서는 2019년부터 대체휴무제와 주4일제(주 40시간)를 실시하고 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그렇듯이 연구소도 야근이 많은 편이다. 야간에 워크숍, 강좌, 세미나, 회의 등이 많다. 따라서 주 40시간인 노동자 법정근로기준시간을 근거로 매주 수요일을 공식 휴무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주말이나 공휴일에 공식적인 행사로 일을 한 경우는 다른 날 대체휴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임금 외 다른 수당을 지급할 수 없는 대신 ‘쉼(휴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다른 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노동조합 활동 차원에서 집회, 교육 등을 나간 경우는 자율적 노조 활동에 해당하므로 대체휴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현실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연구, 사회운동)의 특성상 휴무일에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따로 대체휴무를 신청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보장된 제도가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공식적인 제도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쉬려고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연구소에 노동조합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현실에서 작동 가능하게 노력하는 것 역시 노동조합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연구소를 포함해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논의와 합의를 통해 충분히 이런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많은 활동가들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한다. 이 정도를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낯부끄럽고, 이 정도는 내가 감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힘들다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그냥 넘어가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 속에 있었지만, 만약 내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아니었고, ‘노동자 정체성’으로 의식적으로 ‘지금 여기서부터’ ‘노동하는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문제제기 하지 못했을 것이고, 다른 조합원의 문제제기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발언권 보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자발적으로 불만 없이 감수해 온 일들을 후배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에 사회운동의 지속성을 고민해 본 활동가라면, 대부분 공감하고 동의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하고 있는 나를 제어할 수 있는 견제 장치는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존재 그 자체로 의식의 문지기 역할을 한다.

 

연구소 노동조합 활동에 도움이 된 구조적 장치 중 하나로 이사회 ‘구성’을 들 수 있다. 연구소의 이사회는 시민사회계, 노동계, 공공의료계, 예방의학계, 약학계, 간호계 등 분야별로 추천하여 총회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하여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노동계는 주로 외부 노동운동 인사 중에 추천하여 1인을 선출한다. 또한, 노동 내부 1인, 즉 연구소 노동조합 조합원 중에서도 1인을 선출하여 포함한다. 이처럼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사회 구성에 포함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사회 구성은 노동조합 활동에 도움을 준 장치였다. 한편, 이처럼 이사회 구성에 노동계를 포함하는 작업은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쉽게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단체 내 노력은 우리가 노동자라는 의식이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민건강연구소 활동가들은 동일한 가치를 지향하고 공유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회운동을 한다. 동시에 우리는 사회가 좀 더 좋게 변화해 가는 길에 노동자로서의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삶의 방식을 변화해 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운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이 활동가들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구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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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shsuh@health.re.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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