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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코다 콘퍼런스를 꿈꾸며
2019년 제34회 코다국제콘퍼런스에 다녀오다 ③
등록일 [ 2019년08월03일 12시23분 ]

전 세계 코다들이 모이는 2019 코다 국제 콘퍼런스가 지난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콘퍼런스에 참가한 이길보라(CODA, 영화감독, 작가) 님의 참관기를 총 3편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 코다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②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코다 월드
③ 아시아 코다 콘퍼런스를 꿈꾸며


- 코다의 힘으로 코다를


“첫 번째 콘퍼런스에서는 무리하지 마세요. 수많은 감정과 경험, 기억이 솟구쳐 오를 텐데 피곤하거나 지치면 쉬세요. 새로 만나는 사람들, 수많은 언어와 문화들 사이에서 울었다가 웃었다가 감동에 겹다가 화가 났다가 할 거예요.”


작년 콘퍼런스의 첫 참가자였던 홍콩 코다 캐시아(Cassia)의 말이었다. 콘퍼런스 마지막 날이 되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코다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감정이입하고, 나의 경험을 꺼내놓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쉬고 싶었지만 내일이면 모두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호텔방을 박차고 나왔다. 아직 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고, 나는 이제 막 ‘우리나라 사람’을, ‘우리나라’를 만난 것 같은데. 벅찬 마음과 섭섭함,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데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룸메이트인 캐시아가 아침부터 엄청난 양의 화장 도구를 꺼내 놓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며 분주해 왜 저러나 싶었는데 하얀 얼굴에 분홍색으로 진하게 분칠을 한 중국 경극 복장의 여성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놀랄 정도로 수많은 참가자들이 특이하고 신기한 복장으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콘퍼런스인 만큼 프랑스인 화가 모자와 검은색 원피스를 세트로 차려입은 60대 코다들부터 프렌치프라이를 형상화해 가슴골에 수많은 감자튀김 장식을 꽂고 나타난 미국 코다, ‘프랑스’하면 ‘프렌치 셰프(French Chef)’ 아니겠냐며 요리사 모자와 앞치마를 입은 호주 코다, 프랑스 국기 색깔로 된 가발을 쓴 코다, 프랑스인 콧수염과 화가 모자를 쓰고 나타난 여성, 프랑스가 뉴욕에 선물한 것이라며 자유의 여신상 모자와 미국 국기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커플까지. 다들 1년 동안 이날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것 같았다.

 

콘퍼런스 마지막 밤인 7월 13일에 열린 엔터테인먼트의 밤. Sherry Hicks가 미국수어로 노래하고 있다. 사진 김보석
 

저녁 식사 이후에는 코다 인터내셔널의 정기 총회가 이어졌다. 임원들은 올해 해왔던 행사와 사업을 보고하고, 내년의 사업 및 콘퍼런스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거수로 투표도 하고 주요 사안도 결정했다. 회장 레이는 올해가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에서 참석한 해라며 미국 백인 중심의 콘퍼런스에서 벗어나 조금씩 다양성을 갖춰 나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코다 하나가 손을 들었다. 어렸을 적 필리핀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이었다.


“코다 인터내셔널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코다들과 장기적으로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나요? 실제로 제가 아는 필리핀의 많은 코다들은 이 콘퍼런스에 참가하길 원하지만 그쪽 물가로는 등록비가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시기적절한 질문이었다. 실제로 다양성을 중요 가치로 여기는 코다국제콘퍼런스지만 여전히 미국 백인 참가자가 중심이었다. 레이는 상황이 어려운 코다들에게 지원 신청서를 받아 참가비 및 항공료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콘퍼런스가 어떻게 장기적인 방안을 수립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지는 답하지 못했다. 앞으로 함께 풀어야 할 숙제였다.

 

코다 장학금 기금 마련을 위한 경매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이 자신이 기부한 물건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설명하면 그걸 사고자 하는 이들이 숫자를 부르며 경매를 하는 방식이었다. 물건들은 참, 사기 애매한 것들이었다. 미국 수어로 CODA 지화 모양이 그려진 조각, 책의 페이지를 접어 CODA라는 글자 모양을 만든 책 장식품(농인 부모 제작), I LOVE YOU(사랑해)라는 뜻의 수어가 그려진 그림, CODA LOVE(코다 사랑) 수어를 3D 프린터로 직접 제작해 만든 장식품 등. 돈을 주고는 사지 않을 물건들이 경매에 부쳐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코다들은 치열하게 값을 올렸고, 경매를 부치는 코다들은 신나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시다시피 이 수익금은 전 세계의 우수한 코다들을 지원하는 코다 장학금 기금으로 전액 사용됩니다. 아까 보셨던 올해 장학금 수여자들의 얼굴 기억하시죠? 그들이 각 분야에서 코다라는 이름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겁니다. 코다의 힘으로 코다를요.”


그랬다. 2017년에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기 위해 국내외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전부 뒤져볼 때였다. 예술 전공, 그것도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은 전무했다. 그때 해외의 두 곳에서 어렵사리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코다 인터내셔널 코다 장학금이었다. ‘코다’라는 이름으로 받는 장학금은 처음이었다. 부모가 장애인이라, 불우한 가정이라 주는 장학금이 아닌, 코다가 코다를 지지하며 수여하는 장학금. 나는 그것으로 2년간의 유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기금이 어디서 왔을까, 했는데 바로 이 경매 프로그램에서 나온 것이었다. 먹먹했다. 2년 전에도 이들은 장학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경매 물품을 받고, 값을 올리려 소리를 지르고, 큰돈을 얹어 아무것도 아닌 물건들을 샀을 것이다. 이들의 열정과 사랑으로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콘퍼런스 마지막 밤인 7월 13일에 열린 엔터테인먼트의 밤. Sherry Hicks가 미국수어로 노래하고 있다. 사진 이길보라
 

경매가 끝나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엔터테인먼트의 밤(Entertainment Night)이었다. 장기자랑 같은 순서였는데 각자가 준비해온 노래, 공연,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다 큰 성인들이 콘퍼런스에서?’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이것은 코다들의 유산이자 보고였다. 미국수어 이야기꾼(ASL Storyteller)으로 활동하는 셰리(Sherry)가 경쾌한 음악으로 코다의 삶을 노래했다. 미국수어로 말이다. 단순히 음악에 맞춰 손만 까딱까딱 움직이는 그런 수어 노래가 아니었다. 표정과 몸동작이 살아 있는, 마치 하나의 연극 혹은 퍼포먼스 같은 무대였다. 그건 배우이자 작가, 수어통역사, 밴드의 리드 보컬인 폴(Paul)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수어로 락(Rock) 공연을 했다. 데프 클럽(Deaf Club)이라는 노래였는데 한국으로 치면 농아인협회 같은, 농인 부모를 따라 농인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콘퍼런스 기간 내내 미국 및 유럽 코다들은 어렸을 적 부모와 함께 데프 클럽에 갔던 기억을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그건 농인 부모와의 기억, 농문화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었다. 그는 손을 움직이며 동시에 입으로 노래를 했다. 록과 수어라니, 그것도 코다가! 문화충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 이야기꾼 중 한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는 어렸을 적 아빠가 데프 클럽에서 했던 이야기, 아빠가 물려준 유산 중 하나라며 수어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미국수어로 진행되었다. 한국수어 말고는 어떤 수어도 알지 못해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이야기가 시작되니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표정과 동작이 워낙 시각적이라 기본적인 수어만 알고 있어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농사회와 농문화의 코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들을 코다들은 ‘이야기(Story)’라고 불렀다. 병원의 방에서 주로 하는 것도 이야기였다. 코다들은 돌아가며 수어로, 음성언어로, 혹은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쓰면서 각자의 농·코다 이야기를 풀어냈다. 농부모 아래서 나고 자라며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건 코다이기 때문에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 가령 이런 것이었다. 더운 날,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는데 농인인 아빠는 내가 넘어지는 소리,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해 저 멀리 안 보이는 데까지 가버렸고, 나는 다쳤지만 어쩔 수 없이 피를 흘리며 페달을 열심히 밟아 아빠를 좇아갔는데 아빠가 왜 이렇게 늦게 오냐며 화를 냈다는 그런 이야기. 국적에 상관없이 코다라면 배를 부여잡고 울고 웃으며 공감할 이야기. 슬픔과 애정과 그리움이 담긴 코다만의 애환.


어떤 이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어떤 이는 손으로 수어 노래 공연을 했다. 한 코다가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하자 함께 무대에 선 코다가 그걸 수어로 옮겼다. 사람들은 두 팔을 올려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보냈고,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뒤따랐다. 이곳의 언어와 문화는 두 가지였다. 음성언어와 수어, 농문화와 청문화. 이들은 이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야기로, 락으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연극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단단한 코다 정체성이 되어 코다 월드(Coda World)를 형성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수어와 농문화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무척 얕고 빈약했을 거예요.”

 

- 아시아 코다 콘퍼런스를 꿈꾸며


병원의 방에서 밤을 지새울 때였다.


“2023년 코다국제콘퍼런스를 아시아에서 해보는 건 어때? 지금 당장은 아시아의 그 어떤 단체도 그만한 역량이 없지만, 2021년 정도에 코다아시아콘퍼런스를 연다고 생각하고 아시아 코다들이 모여 본다면 가능할 수도 있어. 국제콘퍼런스보다 중요한 건 아시아 코다들이 먼저 모이는 거라고 생각해.”


캐시아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시아의 코다 단체 및 모임들을 읊기 시작했다.


“일본, 중국, 홍콩, 대만, 한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 어, 그래도 꽤 있네? 아는 사람들도 있고.”

 

콘퍼런스에 마련된 ‘병원의 방’. 농인들이 종종 환대라는 뜻의 영어 단어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를 보고 병원이라는 뜻의 호스피탈(Hospital)로 착각하여 쓰는 것을 보고 붙인 애칭이다.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사진 Catherine White

캐시아는 콘퍼런스 개최가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모일 수 있는 이벤트 같은 것도 좋을 것 같다며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옆에 있던 미국, 괌, 호주 코다들이 필요하다면 코다 인터내셔널이 적극 지원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행사, 아니, 아시아 코다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내려면 엄청난 사전 작업이 필요할 터였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지원금은 어디서 끌어오지, 이 모든 실무는 누가 하지, 코다 코리아는 아직 공식 단체도 아닌데.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머리를 스쳤지만 동시에 아시아 코다 네트워크를 만들고 확장할 수 있겠다는 설렘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다. 코다 프랑스 홀로 이 큰 국제행사를 개최한 것이 아닌 것처럼, 코다아시아콘퍼런스를 연다고 하면 전 세계의 코다들이 발 벗고 도와줄 터였다.

 

콘퍼런스가 끝난 후, 캐시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올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농아인연맹총회(World Congress of the World Federation of the Deaf)와 세계수어통역사협회(World Association of Sign Language Interpreters) 콘퍼런스에서 2023년 개최지를 발표했는데 그게 바로 한국 제주라는 소식이었다.


“올해 프랑스 파리에서 이 모든 콘퍼런스가 한 번에 열려 정말 좋았거든. 콘퍼런스 끝나고 다음 행사로 국가, 도시 이동 없이 바로 넘어갈 수 있었어. 농인, 청인, 코다 모두 한 번에 다 만날 수 있었고 말이야. 2023년에는 코다국제콘퍼런스 한국에서 해보자. 코다 홍콩이 적극 도와줄게!”


캐시아는 물론 옆에 있던 코다수어통역사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4일간의 콘퍼런스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영상 통화를 하고, 페이스북 그룹에 보고 싶다며 사진을 올리고, 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그리움을 담아 사진을 올리고. 내년 콘퍼런스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다며 각국에서 번개 모임을 제안하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코다 네트워크를 예찬했다. 꼭 집에 온 것 같다고, 이제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나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을 찾은 것 같다고 말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릴 2020년 코다 콘퍼런스에는 더 많은 한국 코다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그리고 캐시아가 말했던 것처럼, 아시아 코다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코다들의 유산과 보고를 찾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2019 코다 국제 콘퍼런스 로고. CODA LOVE Pari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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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nomadbora@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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