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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유동하는 시설의 경계
[교차적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⑭
시설의 경계: 물질-사회적 경계의 수행과 그 수행 ‘사이’의 가능성
등록일 [ 2019년08월05일 18시46분 ]

/기획의도/
 
장애여성공감은 [IL과 젠더 포럼]을 통해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을 통해 증명하듯이,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지 삶의 장소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시설에 수용된 역사를 재해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를 해나가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건과 권력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설을 폐쇄해서 더이상 시설에 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은 등록된 장애인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부랑인, 홈리스를 비롯해서 정신병원에서 심지어 지역사회와 집에서 사실상 감금된 채로 살아온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드러내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억압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에 대한 억압과 정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동시에 필요하며 다양한 해방의 관점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설화에 저항하는 동료들을 만들고, 누구도 시설에 수용되지 않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과 집단(부랑인, 정신장애인, 소위 요보호 아동, 여성, 성폭력 피해자, 난민,  HIV 감염인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시설화의 양상들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 나가는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연재순서/
 
1. 시설화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며 :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2. 사회복지체계에서 탈시설 운동의 의미: 김지혜(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3. 탈시설 운동의 확장: 조미경(장애여성공감)
4. 홈리스 시설: 김윤영(빈곤사회연대)
5. 한부모 시설: 오진방(한국한부모연합)
6. 입양/미혼모 시설: 김호수(뉴욕시립대학교 사회학과)
7. 정신병원/요양시설: 노다혜(장애여성공감)
8. 성폭력 피해자 쉼터: 여름(장애여성공감)
9. 난민 시설: 고은지(난민인권센터)
10. (탈가정) 청소년 시설: 변미혜(함께걷는아이들)
11. 요양병원: 권미란(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12. 가족: 김순남(가족구성권연구소)
13. 성매매피해자 자활시설: 김주희(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14. 시설의 경계: 김현철 (토론토대학교 지리학과)
15. 탈시설, IL센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다혜(장애여성공감)
16. 탈시설과 중증장애인 노동권: 정다운(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17. 시설의 문화적 재현과 이미지: 김은정 (시라큐스 대학교 여성과 젠더학, 장애학)
18. 탈시설과 난민: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 필자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시설의 세 가지 경계

 

시설은 ‘경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경계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다. 첫 번째 경계는 물질적 경계(physical boundaries)로, 만져질 수 있는 건조물의 형태를 띤다. 예컨대 시설이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해당 건물 자체의 외벽이, 시설이 두 개 이상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시설 전체를 아우르는 벽이나 울타리가 이러한 물질적 경계에 해당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경계(social boundaries)로, 지속적이거나 분절적인 시간들 속에서 ‘시설’이라는 기관의 성격과 운영방식을 구분 짓고 정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담론적 경계이다. 이 물질적 경계와 사회적 경계는 기본적으로 내부와 외부를 나눈다는 점에서 한 줄로 길게 이어진 ‘단선(單線)’으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다.

 

이 물질적인 경계와 사회적인 경계는 서로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지 않다. 물질적이자 사회적인 경계가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경계가 바로 세 번째 경계인 물질-사회적 경계(physical-social boundaries)이다. 이 물질-사회적 경계는 단선으로 자주 인식되는 물질적 경계와 사회적 경계들이 특정한 사회규범이나 물리적 상황에 따라 때로는 그 단선의 성격이 강화되거나 때로는 단선이 아닌 ‘점선(點線)’이 되는 경우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저녁 8시 이후로 시설의 전체 현관문을 잠근다’라는 규칙이 있다면, 이때 내외를 구분하는 ‘단선’으로서의 시설 외벽 기능은 더욱 강화된다. 반대로 예컨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면회 시간이라거나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외출이 허용되어 시설 현관문이 열린다면, 해당 시간 동안 건물 외벽은 하나의 단선이 아닌 점선으로 기능하며, 이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내외부를 나누는 경계가 변화한다. 또한 시설 내 거주인원이 변화함에 따라서 시설의 건축물과 외벽의 형태가 축소, 혹은 확대하며 변화하는 것 역시 그 예가 될 수 있다.

 

철조망 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시설의 물질-사회적 경계: ‘되어가는 수행’으로 이해하기

 

시설의 물질-사회적 경계의 예들은 시설의 경계가 흔히 은유되듯 내외를 가르는 ‘배제’에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명확히 말해서 ‘경계’ 자체가 곧바로 배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경계’의 방향과 강도가 어떠한 사회적 담론과 건축 구조, 몸의 규율을 토대로 조율되며 수행되느냐에 있다. 시설의 외벽이라는 존재 자체가 곧바로 배제를 일컫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설인과 방문객이라는 사회적 구분이 존재하고, 특정한 행사기간 외에는 시설인이 외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행위가 금지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시설의 외벽은 내외를 가르고 특정 인구를 배제하는 수행을 하기 시작한다.


시설의 경계가 수행적 성격을 띤다는 것, 즉 시설 경계의 성격이 확정된 것이 아니며 지속적인 반복 속에서 재구축되어가는 것이라는 점은 시설화의 교차적 논의를 보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까?

 

시설 경계의 수행 - 생명의 모호함을 지속적으로 도식화하기


우선 시설의 경계를 수행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해당 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인구를 나누고 배치하는 과정이 인구 간의 확고한 ‘차이’에 기반하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인구라고 합의된 몸을 지속적으로 나누고, 그 ‘나눔’을 확고함의 영역으로 위치 짓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즉, ‘몸’을 인구로 환원하기 위해 법과 규범들이 생성되고 지속적으로 재생성되어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몸과 생명이 완전히 특정한 인구로 명명될 수 없다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노숙인시설 중에는 정신장애인의 비율이 높은 시설들이 종종 존재한다. 노숙인 중 정신장애인이 많아서 노숙인시설에 정신장애인이 많은 것인가, 혹은 노숙인이 시설에서 정신장애인이 되는 것인가 - 그 인과관계는 분명치 않다. 중요한 것은 노숙인시설에  존재하는 몸의 다층적 교차점과는 상관없이 노숙인시설이 스스로를 명명하는 방식이 ‘노숙인시설’이라는 것이며, ‘노숙인’라는 인구의 경계에 따라서 보조금을 지원받고 건물의 경계와 구획을 구축해나간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노숙인이자 동시에 정신장애인인 존재는 지워지고 노숙인만이 남는다. 인구 명명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몸은, 그렇기에 특정한 순간에는 입소기준을 충족하지만, 특정한 순간에는 입소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몸이 된다. 장애인거주시설 입소에 ‘최적화’된 몸이 여성쉼터라는 공간의 입소기준에서는 ‘마땅치’ 못한 몸이 되는 것 역시 시설의 물질-사회적 경계가 형성되어왔던 과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인구에의 명명과 ‘입소기준’이라는 사회적 경계는 현재 2019년 7월 1일, 장애등급제의 단계적 폐지와 더불어서 재조정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정부는 조사원이 장애인이 거주하는 곳을 직접 방문해 ‘종합조사’를 실시, 수요자 개개인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를 진행하겠다는 기조를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기능제한에 관련된 점수가 종합점수에 많이 반영되고 있고, ‘심한 장애(중증)’와 ‘심하지 않은 장애(경증)’라는 변화한 기준이 등장했다. 현재까지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해 변화한 종합조사표가 확정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후 그 조사표가 확정되어나갈 때, 장애인거주시설에 들어갈 ‘입소 기준’과 인구를 결정짓는 분류의 경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시설 입소의 경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몸이 ‘장애등급제 폐지’라는 담론 하에서 재분류되어 수용되거나 시설의 문턱에서 배제되어 다른 시설로 옮겨질 것인가? 그 사이에서 생명을 나누는 과정은 또 어떠한 모호함들을 모두 뭉갠 채 도식화될까?

 

시설 경계의 재구축 - 자본과 도시구조, 돌봄을 전유하며


시설의 경계를 수행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은 또한 특정한 인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시설의 경계가 인구 외 어떠한 조건들을 흡수하며 그 경계를 재구축해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한다. 나이젤 쓰리프트(Thrift, 2008)는 ‘인지가능한 것(the sensible)’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개념과 관계가 질문 가능한 것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반면, 그 외 어떠한 것들이 질문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며 무의식에 잔류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이 논의를 시설 경계의 실천과 더불어 생각해본다면, 기존 시설 담론에서 시설의 경계가 형성되는 데 주요한 기준으로 여겨졌던 것은 몸에 대한 규율과 인구에 대한 통치였다. 그러나 시설 경계의 수행은 규율당하는 몸과 낙인찍힌 몸의 효과가 해당 몸의 ‘몰인격화(dehumanization)’와 같은 소멸적 힘으로만 향하는 것과 더불어 그 소멸적 힘이 어떻게 생산적 힘, 예컨대 자본의 새로운 가치와 이익을 창출해내는 부분으로 나아가며 시설의 경계를 확장해가는가를 더불어 볼 필요가 있다.


북미에서 형성되어온 감옥산업단지(Prison Industrial Complex)라는 개념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Girls incarcerated’라는 북미의 한 TV 시리즈는 청소녀감옥이라고 하는 북미의 시스템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과 교육권력이 어떻게 이 감옥 정치에 개입되어가는지 보여준다. 그녀들이 쓰는 전화기와 매번 공급되는 식사를 포함하여 종종 참여하게 되는 감옥 안에서의 ‘재활’이라는 이름을 통해 이루어지는 노동과 교육, 그 노동에서 주어지는 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임금체계는 특정 인구에 대한 규율과 자활이라는 담론 속 신자유주의적 경제체계가 부착(attachment)되어 새로운 자본의 영역을 생산해나가는 지점을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고정된 시스템이 아니라 가치를 수행하며 재구축되는 과정으로서의 구조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감옥산업단지라는 개념은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시설의 경계를 형성해나가는 수행과 실천 중 어떠한 것들이 기존의 시설화 담론, 혹은 탈시설 담론에서 잡히지 못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하게 한다. 장애인‘주거’시설이라는 표현 그 자체가 보여주듯, 해당 시설은 주거에 필요한 상품과 인프라가 시설을 경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화에서부터 식자재, ‘녹지’조성에 필요한 돈과 건축산업, 시멘트, 수도, 가스 등 다양한 경제적 단위들뿐 아니라 활동’서비스’와 돌봄노동과 같은 노동이자 동시에 친밀성의 영역 역시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해당 시설을 순환하며 시설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재구축해나간다. 이처럼 시설의 경계를 수행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규율이나 비정상성과 같은 담론뿐 아니라 자본주의와 도시 인프라, 친밀성과 노동, 감정이 어떻게 시설의 경계가 확장, 변화, 재구축해가는 과정에 전유되는지 추적할 수 있게 한다.

 

사진 픽사베이
 

시설 경계가 ‘되어간다는 것’: 그 수행의 가능성을 질문하기


마지막으로 시설의 경계를 수행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놓는다. 앞서 말했듯, 시설의 경계는 경계 그 자체로 이미 확정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경계가 수행되는 방향과 강도가 그 경계의 성격을 형성해가는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탈시설을 추구해나가기 위해서 형성해나가야 할 시설의 물리-사회적 경계는 어떠한 방향과 강도를 전제로 해나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정신장애인운동에서는 ‘폐쇄’적이지 않은 개방병동을 전면적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폐쇄적이지 않은 개방병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재와는 다른 물리적, 사회적 경계에의 수행이 필요하다. 폐쇄병동에 존재하는 ‘독방’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철창을 제거하는 물리적 경계의 변화와 더불어 민간폐쇄병동을 기반으로 한 현 시스템의 재생산을 막는 것 등이 그 수행의 시작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폐쇄병동뿐 아니라 장애인거주시설, 노숙인시설, 성매매 시설 등 다층적 시설들의 경계를 형성해온 규율과 통제적 수행에 분열을 가하고 궁극적으로는 소멸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생성적 수행들이 필요할 것인가?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시설을 인구로 나누어 생각하게 하는 이 지난한 시설 경계의 수행을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설에 대한 재상상과 새로운 수행들이 필요할까? 서로 연결되지 않았던, 혹은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시설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그 만남의 과정에서 앞으로 시설의 경계를 기반으로 진행되어왔던 시설 정치에 대한 논의가 보다 풍성해지고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 참고문헌
Thrift, N. (2008). Non-Representational Theory: Space, Politics, Affect. New York: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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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토론토대학교 지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hchul.kim@mail.utoronto.ca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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