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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위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란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19년08월07일 18시42분 ]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라는 글자가 쓰인 분홍색 풍선이 휘날리고 있다. 사진 박승원


나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한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에 관한 기준”의 “희귀질환자 산정특례 대상” 중 “소장 및 대장 모두의 크론병”에 따라서 진료비의 90%를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또한, 나는 병역법 시행령 제135조, 국방부령인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라 신체등급 5급을 부여받아 군사적 훈련도 받지 않고, 군대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근무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현 상황의 직접적인 연장선에서 장애인복지법과 관련될 수 있는 상태는 하나다. 크론병 증상이 심해져 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장루 시술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별표1]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따른 장애인”의 “14. 장루·요루 장애인”에 해당하여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라 ‘장애인’으로 등록되고, 장루 외에 다른 시술도 받았는지 아니면 합병증이 있는지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혹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판별될 것이다.

 

‘장애의 정도’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정되어야 하는가? 장애는 내 몸에 가해진 시술과 필요한 보장구만을 토대로 판정될 수 있을까? 물론 의료적 기준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관리 약물을 통해 계속 내 몸을 통제해야 한다. 이는 내 생활의 기초 조건이다. 내 활동과 공부는 병을 초기에 발견하여 빠르게 관리한 덕에 가능하다. 지금의 생활은 병원에 크게 빚지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나의 생활을 설명해낼 수 없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피를 뽑고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고 약을 받아 오는 것은 내 생활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매일 면역억제제를 먹으며 지내지만, 이 또한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나는 책을 읽고, 스터디 모임에 나가고, 회의 준비를 하고, 회의에 나가고, 과외 준비를 하고, 과외 선생님으로 출근하고, 수업을 듣고, 보고서를 쓰고, 시험을 보고, 학업과 무관한 글을 쓰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일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에서 크론병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이런 일상에서 크론병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약은 적어도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 안에는 없다. 지금 먹는 약물은 나의 면역력을 낮춘다. 그래서 나는 쉽게 아프고 더디게 낫는다. 덕분에 7월 말은 집과 병원뿐이었다. 무기력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만성적인 피로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자주 ‘이 정도가 어디냐’ 생각하지만, 사실 이 정도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나는 더 많은 걸 원한다. 삶은 기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년 전에는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얼마 안 되어 일을 그만두었다. 사장님과 동료들도 정말 친절하고, 심지어 매주 일하는 시간을 새로이 정하는 사업장이었는데도 내 몸은 그곳의 일정에 맞지 않았다. 몇 번이나 쓰러질 것 같았다. 가장 편하다는 과외에서마저 수업 일정을 바꾸기 일쑤이며, 아파서 과외를 미루거나 취소하느라 월급이 밀린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책을 반복해서 묶다가 왼쪽 팔 근육 안에 염증이 생겼다. 정형외과에서는 크론병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고, 크론병 담당의 선생님은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희박한 확률의 부작용이나 증상을 여러 번 겪어 봤다. 약을 먹고 호흡곤란이 온 적도, 가라앉히려던 증상이 심해진 적도 있었으니까. 원인은 모르지만, 운동만 하려고 하면 수술 부위 근처와 좀 더 멀리에 계속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복싱과 헬스도 포기한 지 오래다.

 

이 중 어느 것도 의료적으로 해결되지도, 충분히 설명되지도 않는다. 외부 염증은 대장항문외과 협진으로 수술이나 항생제를 통해 없애곤 했지만 계속 다시 생긴다. 의료적 조치는 필수적이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은 생각보다 아주 많고, 의료적 조치가 닿지 못하는 삶의 영역이 너무나 많다. ‘정상’치 미만을 유지하는 면역력과 0.8이라는 낮은 염증 수치가 의사에게는 성공이지만 나에게는 불안이다. 통증은 없지만 감염은 쉽다는, 염증 수치가 낮지만, 언제나 염증이 존재하며 증가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다.

 

이런 불안과 그로 인해 내 사회적 생활에 생기는 제약은 의료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언제 아플지 몰라서 사람들과 편하게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아파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고, 면역력이 낮아져서 여름에도 목도리를 챙기곤 하는 나의 경험은 의료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몸과 삶보다 “팔을 움직일 수 있나요?” 따위의 질문들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은 의료적 조치만으로 몸을 꿰뚫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에 근거한다. 의료적 조치는 기초일 뿐이다. 장애등급제는 그런 기초를 절대시하여 장애인의 삶을 목숨으로 축소하며,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일방적으로, 매우 적게 책정함으로써 목숨마저도 빼앗고 있다.

 

‘장애의 정도’가 심하다/심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사회가 아닌 장애인의 몸을 통제 대상으로 볼 때만 나올 수 있다. 사실 몸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각각의 몸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지원은 삶을 지탱하되 통제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하고 개별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외친다. 나는 건강한 몸을 위주로 만들어진 사회의 문화로 인해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으로서, 의료적 기준에서 ‘아픈’ 몸에 낙인을 찍는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규탄한다. 나는 여러 방식으로 아픈 사람으로서 의학으로 포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삶을 담지 못하는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규탄한다. 나는 만성질환자로서 의료를 삶보다 중시하여 삶을 소외시키는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규탄한다.


어떤 몸이든 적절히 의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원한다. 아파도, 장애가 있어도, ‘손상’보다 지원을 먼저 떠올리는 세상을 원한다. 기존의 범주나 규칙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모두가 자신의 삶을 원하는 만큼, 자기 뜻대로 지속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는 몸을 존중하는 세상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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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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