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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대신 장례 치를 수 있다면…’ 무연고자를 떠나보내는 남은 이들의 슬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7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19년08월12일 14시40분 ]

친구의 장례를 6개월 동안 기다린 친구들
 

외국인이기에 늦어지는 장례

 

무연고 사망자는 사망 후 바로 장례를 치르지 못합니다. 가족 등 연고자를 찾고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기까지 행정적인 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부득이하게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나눔과나눔은 작년 한 해 장례를 치른 서울 지역 무연고 사망자의 안치 기간을 분석한 결과 병원에서 사망했거나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사망 후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화장이 이루어지는 기간까지 평균적으로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중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들은 상황에 따라 그 기간의 편차가 큰데, 연고자 파악을 본국에 요청해 답변을 기다려야 하기에 유독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7월엔 두 분의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있었습니다. 두 분이 사망 혹은 발견된 시점부터 장례를 치르기까지는 각각 3개월, 6개월이 걸렸습니다.

 

안치료 문제로 미뤄진 장례

 

지난 5월 17일 서울시의 한 구청으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 요청 공문이 들어왔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ㄱ 님은 지난 1월 10일에 서울의 한 고시원 승강기 앞에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사망 후 서울이 아닌 경기도 소재의 장례식장에 안치되었습니다. 공문에 따라 무연고 사망자의 운구와 장례 절차를 수행할 대행업체에서 장례식장에 시신인도를 요청했지만 장례식장은 안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신인도를 거부했습니다.

 

서울 이외의 지역 무연고 사망자는 지자체의 예산이 서울과 다르게 책정되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도 비슷한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해당 구청 주무관은 문제 해결을 위해 장례식장이 있는 지역의 지자체에 문의한 결과 자체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망자의 마지막 주소지가 서울이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행정적인 절차를 서울시 소관으로 넘겼고, 안치료 문제가 해결되어 장례를 치르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애초 5월 중순에 공문을 받은 시점부터 ㄱ 님의 장례에 참석을 원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ㄱ 님의 30년지기 친구분들이셨고, 장례가 미뤄지는 동안 전화로 상황을 전달받으면서도 힘들게 그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ㄱ 님은 국적이 일본으로 어렸을 때 아버지, 형, 누나와 함께 한국으로 와서 살았습니다. 원적은 한국인이었지만 ㄱ 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외국인 체류자였습니다. 그사이 아버지와 형님은 사망했고 누나는 어머니가 계신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한국에 남아 있는 연고자는 없었고, 일본에 있는 누나와 어머니의 행적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라 ㄱ 님은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친구들은 ㄱ 님이 2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한결같은 친구들이었고, 사망 후 발견된 시점부터 장례를 묵묵히 기다려왔습니다. 하지만 화장이 끝나고 유골이 된 친구의 마지막을 확인한 후 친구 한 분이 울음을 터뜨리자 다른 친구들도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10년 동안 가족처럼 돌봤던 분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지인들
 

피보다 진한 물

 

7월 초 ㄴ 님의 장례를 앞두고 한 지인분이 장례일에 꼭 참석할 수 있도록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ㄴ 님은 1958년생으로 지난 5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연고자가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해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복지센터 관계자, 요양보호사, 교회 목사님 등이 장례에 참석하셨습니다.

 

한 요양보호사분은 ㄴ 님을 회상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치매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아저씨(ㄴ 님)를 처음 뵈었어요. 가족분들과 헤어져 사셨는데, 어머니가 그 사연이 너무 딱하다며 아저씨를 잘 챙겨드리라고 말씀하신 게 인연이 되었어요.”

 

지인분과 ㄴ 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어 10년 동안 가족처럼 서로를 챙기며 살았습니다. 당시 ㄴ 님은 반지하 방에 살았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인분은 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직접 발로 뛰며 서류를 준비했고 세간도 모두 자비로 구입해 마련했습니다. ㄴ 님은 지인분에게 고마워하며 입주하는 날만을 기다리셨습니다.

 

“네가 있어서 내가 살 수 있었어. 너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거야. 고마워.”

 

하루 3번 신장투석을 받느라 힘들 땐 지인분께 투정도 가끔 부렸습니다. 그때마다 지인분은 “아저씨 힘내셔. 내가 그동안 아저씨 돌봐드린 보람이 없잖아. 나를 봐서라도 정신 잃지 말아요”라며 피붙이보다 더 마음을 쏟으며 간호했습니다.

 

ㄴ 님이 돌아가시고 지인분은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가족이 아니면 시신인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낙심하셨습니다. 단절되어 살아온 ㄴ 님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장례비용은 자신이 지불할 테니 위임장이라도 써달라고 했지만 가족들은 전화번호도 바꾸면서 거부 의사를 보였습니다.

 

ㄴ 님의 유골함을 안은 지인분은 장례를 치르지 못한 서러움에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록 가족이 아니었지만 ㄴ 님의 곁에는 가족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만난 혈연보다 더 각별했던 지인들은 ‘가족 대신 장례’가 너무나도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노숙인 교화 활동을 통해 만난 분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종교단체 지인들
 

‘가족 대신 장례’가 절실한 사람들

 

7월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는 종교단체 지인분들의 참석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생전에 관계를 맺고 종교 활동을 함께 하다 장례를 부탁한다는 유언까지 남겼지만,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시신인수를 할 수 없었고, 무연고 사망자 확정 절차를 기다려 장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7월 중순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ㄷ 님은 서울의 한 기차역 광장에서 만난 종교단체로부터 노숙인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광장에 있는 노숙인들과 자주 어울렸기 때문인데,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교화 활동을 진행하고 있던 종교단체와의 만남 이후 ㄷ 님은 종교 생활에 열심히 임했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술을 많이 드셨어요. ○○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이랑 섞여 있으니 영락없는 노숙인이라고 생각했죠.”

 

장례에 참석한 지인분은 ㄷ 님이 자신이 살고 있던 집에 노숙인들을 먹이고, 재우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원체 욕심이 없고, 가진 건 다 퍼주는 성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노숙인들이랑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죠.”

 

ㄷ 님은 종교 활동에 매진한 이후 술도 끊고 거리의 노숙인들을 보면 전도도 하며 활발히 사셨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뜸해졌고, 걱정된 지인분들은 집을 방문해 쓰러져 있는 ㄷ 님을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방법을 알아봤지만 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가족들과 단절되어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지만, ㄷ 님은 생의 마지막에 만난 지인들에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지인분들이 장례를 치러주고 싶어 할 만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비록 핏줄은 아니었지만, 관이 화장로에 들어갈 때 울어줄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례는 죽은 사람뿐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절차입니다. 한 사람과 이별할 시간과 공간, 그들을 애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가족 대신 장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지인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동료들
 

뉴스에서 접한 사고소식, 피해자가 무연고로….

 

7월 말 장례를 치른 ㄹ 님의 사망진단서에는 사망원인으로 ‘화재’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망장소로 ‘볼링장’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 인터넷에 사고와 관련해 검색을 해봤더니 2019년 6월 서울의 한 볼링장에서 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러 기사가 있었지만 그중 한 기사에는 의식을 잃은 직원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ㄹ 님에게는 아버지가 있었지만, ㄹ 님이 갓난아기였을 때 헤어져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가족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장례일정이 확정되기 전 담당 구청 주무관으로부터 고인이 다니던 직장 동료들이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분들은 젊은 나이에 떠난 ㄹ 님의 영정사진을 준비해오셨습니다. 젊고 건강한 청년의 모습은 아마도 고인이 더 젊은 나이에 찍은 사진으로 보였습니다. 믿기지 않는 죽음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가슴 아픈 눈물만이 빈소를 채웠습니다.

 

가끔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고립사), 급작스럽게 당한 교통사고, 영아유기 사건 등. 무연고 사망자의 사연 중 사고사일 경우에도 그런 의심이 들 때가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뉴스에 보도된 경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흔히 듣게 되는 사고 소식, 그 희생자가 무연고 사망자가 되어 장례를 치르는 비극적인 결말을 눈으로 확인했던 7월이었습니다.

 

종교단체 봉사자들이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서울시 공영장례 ‘그리다’에 참석해 추모하는 모습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7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영운, 이옥순, 김효성, 김재근

 

7월 무연고 사망자

이헌치, 방성주, 최학승, 김흥곤, 김영민, 김성수, 양대승, 이효원, 문준태, 황송임, 박남진, 박경찬, 이무형, 박정화, 박동운, 이세일, 윤병구, 공준식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스물두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 출처 : 마리몬드)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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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나눔과나눔 장례지원실장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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