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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을 지켜라
[칼럼]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등록일 [ 2019년08월23일 12시09분 ]

지난 7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아들과 딸이 만들어 운영한 ‘장애우와 함께하는 청소년 모임’ 사이트에 관해 보도한 경향신문 화면 갈무리.

 

장애우와 함께하는 모임
 
지난달 언론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자녀들이 고교시절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친구를 맺어주는 인터넷 사이트 ‘장함모’(장애우와 함께하는 청소년 모임)를 개설해 운영했고, 그 활동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장함모는 2001년 4월 만들어졌는데, 같은 해 11월 고등학생이던 황대표의 아들과 중학생이던 딸이 함께 장관상을 받았다(그리고 두 사람 모두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현재는 폐쇄된 이 사이트의 기록을 한 언론에서 추적한 바에 따르면, 장함모의 게시물은 2001년 380여 건이 올라온 이후 매년 급격히 줄다가, 2005년 이후에는 게시물이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 기사는 황 대표의 자녀들이 장애인을 ‘이용’해서 대학에 진학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고 있다(이번 달은 내내 다른 정치인의 자녀 이야기로 뜨겁지만). 사실 장애인을 ‘돕는’ 일은 거의 모든 경우 사회적인 논란 없이 ‘좋은 일’로 여겨진다. 내 고교시절에는, 어느 날 갑자기 등교 시간의 언덕길을 밀어주겠다는 기숙사 동기가 나타났다. 그와 나는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일주일쯤 같이 다녔을 때 그가 시각장애인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여자 후배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과 친구라는 사실은 때로 진보적이고 교양있는 시민의 내세우기 좋은 커리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울대 총장 시절 정운찬 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과거 장애학생들과 10분간 허락된 대화자리에서 8분을 자신이 어린 시절 이웃에 살던 장애인 선배와 친했고 그의 등교를 종종 도왔다는 말을 하는 데 썼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친구가 되면 종종 주위에서 괜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같은 공간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며 친구가 되었을 뿐, 이 관계에 특별히 숭고한 희생이나 진보적인 정치적 실천이 배경에 놓이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장애인과의 관계가 대학이나 로스쿨 등 입시에서 활용 가능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경력’이 되고, 자신의 도덕성과 진보성을 뽐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알리바이처럼 이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등한 존재로서 자율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사적 관계가 이처럼 특정한 ‘경력’이나 공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의미화되면서,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사생활’이라는 개념은 소거된 것이 아닐까?

 

가상이 아닌 만남은 어떻게 가능할까

 

어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나 복지관들은 장애인을 위한 ‘소개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난민이나 노인을 위한 소개팅 프로그램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모임을 만들면 월 얼마씩 지급하는 사업을 수행한다. 이동에 제약이 있고, 다양한 사회관계의 참여가 어려운 장애인들은 연인을 만들거나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이 있고, 비장애인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과 자연스러운 교류를 하기 쉽지 않기에, 이런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금 우리에게 공공에 의해 기획되고 평가받지 않는 장애인의 사생활이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장애인거주시설 등에서 생활하는 경우) 장애인은 때때로 동물과의 관계를 맺는 일도 ‘사회재활프로그램’의 이름으로 관리된다. 장애인의 복지, 인권에 관한 촘촘한 접근은 동물과 관계 맺고, 친구를 사귀고, 연인을 만나는 우리의 사적 삶의 구석구석을 공공서비스의 전달체계 안에 포섭시켰다(장애인의 ‘성서비스’ 담론은 이러한 사적 삶의 공공화를 둘러싼 가장 극단적 버전이 아닌가?).

 

물론 정치나 권력, 공적인 자원배분과 무관한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권과 복지의 이름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이나 법적 규율은 그동안 장애인들이 사적이라고 불린 그 관계망 안에서(가족, 거주시설의 ‘식구들’, 종교시설, 연인 등등) 착취당하거나 철저히 소외당했던 시간들의 반작용이다.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페미니즘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나는 ‘사생활’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 삶의 모든  장면들을 누군가 기획하고, 프로그램화하고, 거기에 국가나 권위 있는 기관이 공적인 가치를 부여하는(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주거나, 로스쿨 입시에 가점을 주고 복지기관에 지원금을 제공하는) 행위들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직접 평가하는 영역을 빼앗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맺는 친구 관계나 반려견 양육이 누군가에 의해 그 ‘효과성’의 측면에서 평가되고, 성공 여부를 진단받는다고 상상하면 불쾌하다. 이런 관리하에서 형성된 관계란 다른 가치나 목적에 종속된 가상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대학로에서 작성하는 중이다. 노들야학과 이음센터가 있는 마로니에 근처를 보라. 이곳에서 수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만남이 이뤄지는 중이다. 노들야학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친구맺기 프로그램을 기획한 적이 없지만, 다양한 삶을 살던 교사들과 거주시설에서 40년을 살던 중증장애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마로니에는 10여 년 전만 해도 지금의 홍대입구와 같은 분위기였고, 이 공간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의 풍경은 완전히 다른데, 이 변화는 종로구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이 가능한 마로니에”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장애인과 함께 공연한 대학로 연극인들에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에 가산점을 주거나 국회의원 비례대표 5번을 수여한 결과물이 아니다. 

 

마로니에의 변화가 보여주듯이, ‘장함모’ 사이트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인연맺기 행사 대신에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누구에게든 열려있도록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중요할 것이다. 이는 물론 봉사점수와 입시경력을 채우기 위해 달려온 ‘비장애인 친구들’보다는 느리고 덜 적극적인 파트너들과의 시간이겠지만, 가상이 아닌 실재라는 점에서 그 밀도는 훨씬 높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비마이너 출범부터 함께 했지만 1년에 글 두 개 쓰는 게으른 칼럼니스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을 썼다. 법, 장애, 예술에 관심을 두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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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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