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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모자,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복지 못 받아” 시민단체 추모제 열어
북한이주민이었고, 한부모 여성, 장애가족이었던 모자, 복지 가장 필요했는데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하며 임의서류 ‘이혼확인서’ 요구로 수급 신청 좌절
등록일 [ 2019년08월23일 19시14분 ]

추모제 참가자가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액자를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북한이주민이었던 한 씨는 한국사회 빈곤층으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섯 살 난 아이는 뇌전증(간질)으로 유치원 입학을 거절당해, 한 씨는 취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국정부는 수급권을 우선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급자가 되려면 이혼한 남편 소득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혼확인서를 요구했습니다. 이혼확인서는 오백 페이지에 달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업안내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임의서류입니다. 결국 한 씨는 수급 신청을 포기하고 굶어 죽었습니다. 이는 어디선가 이주민, 장애인 가족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지난 7월 31일 관악구 임대아파트에서 북한이주민 한아무개 씨와 그의 여섯 살 아들이 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이들 죽음은 아사(餓死, 굶어 죽음)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있다니, 사회는 화들짝 놀랬다. 북한이주민이었고, 한부모 여성이었으며,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양육하는 한 씨는 누구보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어떠한 복지도 받지 못한 채 아이와 함께 숨졌다. 죽음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그곳엔 빈곤·시민사회단체가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부양의무자 기준과 까다로운 수급 신청 제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한국한부모연합 등은 23일 오후 1시 30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난으로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를 위한 추모제를 열고 이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몬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가난으로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를 추모하는 이삼헌 씨의 진혼무. 사진 강혜민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2009년 태국을 거쳐 한국에 온 한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되었으나 이듬해 2010년 아르바이트로 소득이 생기면서 수급이 중단됐다. 중국 국적의 남성과 결혼한 한 씨는 중국에 건너가 살다가 지난해 10월 아이와 함께 다시 한국에 돌아온 상황이었다. 그는 올해 1월경 남편과 이혼하고서는 홀로 아이를 양육해왔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라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주민센터에 수급 신청을 하러 갔지만 ‘남편과의 이혼확인서를 받아오라’는 주민센터의 응대에 신청을 포기해야만 했다. 주민센터 측이 이혼서류 외에도 이혼확인서를 요구한 배경에는 이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배우자가 자녀의 부양의무자(1촌 혈족)가 되는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과, 수급 신청 시 의무서류 이외에도 임의서류를 요구하는 주민센터의 관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의 죽음은 수도검침원이 한 씨의 집이 요금 미납으로 단수 조치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식이 없어 방문했다가 심각한 악취에 의아함을 느끼고 아파트 관리인에게 알림으로써 발견됐다. 발견 당시, 집에는 어떠한 식료품도 없이 고춧가루만 있었고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지난해 10월 입주한 임대아파트 월세도 수개월 동안 내지 못한 상태였다. 이들의 유일한 수입은 양육수당 10만 원뿐이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은 23일 오후 1시 30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난으로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를 위한 추모제를 열고, 이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몬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사진 강혜민
 

- 임의서류 요구 전면 금지하고 수급 신청 간소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해야

 

오진방 한국한부모연합 사무국장은 “한 씨처럼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전 남편의 소득 때문에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한부모여성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면서 “남편이 집을 나가 생사조차 알지 못해도, 미혼모들이 인지청구(혼인 외의 자녀에 대해 생부 ·생모가 자기 자녀라고 인정하는 것) 후 양육비를 받지 못해도 유명무실한 아이 친부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된다”고 성토했다.

 

오 사무국장은 “북한 이주여성, 다문화 이주여성, 이주 난민여성처럼 남성 생계부양자 없이 아이를 키우는 이들에게 대한민국 복지제도와 저출산 정책은 진입 자체가 어렵고, 이념과 인종차별이라는 큰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한 씨가 요구받은 이혼확인서와 관련해 지난해에 복지 수급 과정에서 실제 접한 사례에 대해 말했다.

 

“작년에 한 한부모 여성도 아동수당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이혼확인서를 요구받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제외한 3명의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이름과 서명을 통해 ‘이혼했다’는 것을 증명해오라는 것이었는데, 이 사실이 거짓일 경우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문구에도 서명해야 했습니다. 그 여성은 현재 진행 중인 이혼소송의 법원 접수증까지 내밀었는데도 공무원이 이혼했다는 말 한마디 믿지 못해서 나를 부정수급자로 의심하는 걸까, 아연실색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그래도 이걸 써낼 수 있었는데 여기에 서명해 줄 3명의 지인이 없는 사람은 어떡하냐고. 두 달 동안 아무도 죽음을 몰랐을 한 씨 역시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가족 한 명 없는 낯선 땅에 와서 살아야 했던 그의 현실이 어땠을까요.” 

 

김 사무국장은 “‘임의서류 요구를 전면 금지하고, 서류 요구 시에 그 필요를 정부 스스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수년째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면서 “당사자 입장에선 서류 준비를 포기하면 복지를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로 남는다. 그러나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가 아니라, 정확히는 행정에 의해 밀려난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에 대해 지적하면 복지부는 ‘정부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따르지 않는다’고 면피한다. 이는 사회복지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면서 “일선의 사회복지노동자들에게 충분히 복지 행사할 권한도 주지 않은 채 노동자만 탓한다고 뭐가 나아질 수 있나”라고 분개했다.

 

이날 추모제에선 탈북이주민에 대한 지원 정책도 전면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탈북이주민의 경우,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를 나온 후엔 5년간 경찰서의 신변보호 담당관에 의해 보호받는다.

 

윤영환 이주민센터 친구 대표는 “정착지원기간 5년 후에도 개별적 상황을 파악하여 별도의 지원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탈북이주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탈북민들은 법적으로는 국민의 틀에 포함되어도 본질적으로는 이주민이라 한국사회가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 수 있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악구 모자를 추모하는 위패 앞에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추모제를 마친 참가자 30여 명은 효자동 치안센터까지 행진하고,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공동행동 측은 “2011년 발간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서’에 따르면 공적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에 대한 조건 강화는 빈곤을 형벌화하는 하나의 유형이다”라고 짚으며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단순하며, 누구나 신청할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해야 한다”면서 “수급신청절차의 간소화와 ‘임의서류 요구 전면 금지’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해 공동행동 측은 “2019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가 장애인이거나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가구인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을 미적용하는 완화안이 시행되었으나, 주거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을 비교하면 생계급여 수급자는 도리어 0.3% 감소하고, 의료급여 수급자는 0.15% 증가에 그쳤다”면서 “기준을 완화해봤자 수급자는 늘지 않는 현실에서 ‘일부 완화’를 대책으로 내놓는 것은 가난한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지적하며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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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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