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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 김지혜, 창비) 함께읽기 열려
“구조적 차별 안에서 차별을 안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결심’이 필요해”
등록일 [ 2019년09월03일 15시50분 ]

지난 8월 30일, 저녁 7시 창비 서교빌딩 50주년 홀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함께 읽기에서 저자 김지혜 교수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허현덕
 

“우리는 차별을 당하고 싶지는 않은데, 차별하기는 쉽습니다. ‘내가 차별을 했을 때 책임을 지라고 하면 받아들여야 하나?’라는 물음이 들죠. 그런데 스스로 차별을 하지 않기로 하고 차별이 없는 사회를 열망하고 있다면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폭력 없는 사회를 위해서 폭력을 안 하기로 하고 그에 대해서 교육을 받고,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지우는 것처럼 말이에요.”

 

지난 8월 30일, 저녁 7시 창비 서교빌딩 50주년 홀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함께 읽기(아래 함께 읽기)’가 열렸다. 최근 ‘차별’이나 ‘혐오’ 등의 관심을 반영하듯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7월 17일 초판 발행 후 2개월 만에 8쇄를 찍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다.

 

함께 읽기는 정혜실 이주민방송 MWTV 대표의 사회로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 박정형 한국인권이주센터:와화 활동가, 잇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부설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장, 독자 60여 명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이날 행사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책표지, 네이버 책 소개 캡처

 

- 당신의 ‘결정장애’가 누군가에게는 웃음이 되지 못할 때

 

저자인 김지혜 교수는 ‘결정장애’라는 말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이 많은 상황에 ‘결정장애’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한다. 김 교수도 이 말을 재밌다고 느꼈다. 그런데 한 혐오표현에 토론회에 참석했던 그가 무심코 내뱉은 ‘결정장애’라는 말에 대한 한 참석자의 물음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어요?’

 

김 교수는 서둘러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부끄러움과 함께 ‘그 말이 왜? 뭐가 문제인 거지?’라는 반발심이 일었다. 인권운동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활동가는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것은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혐오표현과,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는 표현을 수집했어요. 우리가 쉽게 쓰는 표현 중에 ‘짱깨’, ‘왜놈’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써서 비하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주민들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말이 돼요.”

 

이 밖에도 ‘희망을 가지세요’,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 ‘한국 살기 좋죠?’ 등의 말 따위는 호의를 가지고 하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내게 희망이 없다는 것인가’, ‘한국인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살기 나쁘다는 것인가?’ 등의 생각을 불러올 수 있다.

 

이처럼 김 교수는 “자신의 위치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차별에 대한 생각도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차별에 가담하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차별은 잘 보이지 않게 되는데, 어떻게 안 보일 수 있는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구조적인 차별 안에서는 차별을 안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차별을 하지 않기가 힘들어요. 이러한 차별을 보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그리고 차별을 안 하기로 결심해야 해요. 이것은 기존 세계의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프로젝트예요. 한나 아렌트가 ‘평등은 변화의 두려움을 딛고 온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죠.”

 

왼쪽부터 조미경 소장, 박정형 활동가, 잇을 활동가, 정혜실 대표, 김지혜 교수가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허현덕

 

- 우리는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함께 읽기 참가자들은 책을 읽고 느낀 점과 일상 속의 차별을 털어놓으며,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차별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했다.

 

“활동하는 지역에 이주민들이 늘어나서 특정 초등학교에서 한국어가 어려운 아이들과 선주민 아이들을 분반했어요. 이주민 아이들에게는 한국어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규 교과시간에 한국어 수업을 하는 거죠. 물론 이주민 부모 중에는 찬성하는 쪽도 있었어요. 그러나 방과 후 수업을 통해 한국어를 가르치고, 함께 교과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쪽도 있었죠.” (박정형 한국인권이주센터:와화 활동가)

 

“작년 성소수자 스포츠대회 ‘퀴어여성게임즈’ 대관이 취소된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때 대관 취소 사유가 ‘내 동네에서 레즈비언들이 체육대회를 하는 걸 볼 수 없다’였어요. 민원게시 글에서 시작됐는데, ‘실내에서 하는 걸 막을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글이 달리자 반대했던 사람이 ‘이런 걸 방치하면 나중엔 밖으로 나온다. 나중에는 우리 동네가  레즈 소굴이 된다’는 거였어요. 물론 대관 취소가 되면서 여론이 형성됐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지만요(웃음). 반대하는 사람들은 행사의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행사를 하느냐가 중요했던 거죠. 아이들이 보게 된다, 주민들이 보게 된다는 이유로요. 어떤 사람은 과도하게 눈에 띄면 안 되는 것인가요? 여성이나 성소수자의 경우 길거리에서 ‘성소수자야? 여자야? 남자야?’라며 빤히 쳐다볼 때가 있어요. 하지만 남성들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잇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언니네트워크 활동가)

 

“며칠 전 지하철에서 어떤 분이 ‘몸도 힘든데 왜 밖에 나왔어? 복지관 나왔나 봐’라고 말하더라고요. 장애여성은 집에만 있고, 복지관만 다니는 존재로만 인식하는 거죠. 그리고 장애여성이 독립생활을 하려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말들이 장애여성을 위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거죠. 하지만 실상은 장애여성은 집이나 시설에서 살아야 하고 어떤 삶의 선택권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말이라는 걸 몰라요. 특히 이상하게 저 같은 장애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말 걸기가 편한가봐요. 저도 피곤하거든요(웃음).”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부설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장)

 

이날 한 독자는 조심스레 이야기 손님의 구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이주여성이자, 다문화가정의 외국인 어머니, 결혼이민자입니다. 이런 말을 이곳에서 꼭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 말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주민은 이주민 활동가보다는 이주민 당사자가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이주민을 선량하게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아요.” 

 

이날 책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나타내듯, 독자 60여 명이 모여 함께 읽기에 동참했다. 사진 허현덕
 

- 차별에 저항한 연대, “뭐가 힘든지 같이 듣고, 다른 것을 같이 듣는 작업이 물꼬 틀 것”

 

지난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명이 입국했을 때, 남성보다 여성의 반대가 더욱 극심했다. 이때 인권운동가들은 놀랐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약자인 난민 입국을 더욱 꺼렸던 이유는 ‘안전상의 우려’였다. 이 밖에도 온·오프라인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불행 배틀’은 쉽게 접할 수 있다. 남성은 ‘군대 이슈’ 여성은 ‘생리 이슈’를 내세워 각자 사회적으로 얼마나 불이익을 당하는지,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불행에 대한 설전을 이어간다. .

 

이날 함께 읽기에서는 약자와 약자의 연대, 당사자와 활동가들의 연대, 소수자와 소수자의 연대, 소수자와 비소수자의 연대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퀴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에요. 이들을 위해서 운동에 동참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학내 분위기가 두렵습니다. 당사자도 아니니까 더 꺼려지는 거죠.” (독자 2)

 

“저는 성소수자도 아니고,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아닙니다. 그런데 현재 한 신학대학에서 ‘퀴어는 죄’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그러한 생각을 공표하라는 협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핍박받는 학생들의 편에 서서 연대하고 싶은데요. 연대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인가요?” (독자 3)

 

김지혜 교수는  “당사자 운동만으로는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며 “차별당하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의 연대가 가장 중요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섞여 이야기를 듣는, 들어주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가 책에서도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연대의 중요성이에요. 여성의 이슈에는 남성이 함께 움직여줘야 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의 운동에 우리 모두가 긍정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선량한 의도가 없어서 차별 발언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당사자가 옆에 있으면 그런 발언은 잘 하지 못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오늘처럼 다양한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월 30일, 저녁 7시 창비 서교빌딩 50주년 홀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함께 읽기가 열렸다. 사진 허현덕
 

* 독자들이 그은 밑줄

 

차별에 관한 책을 한권 마치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차별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둘러싼 세상을 자각하고 나 자신을 성찰하며 평등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헛된 믿음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 긴 여정을 열어준, 3년 전 토론회에서 만났던 그분의 질문에 감사드리며,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그런 질문으로 남기를 바란다. (13쪽)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한다.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견’인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중략)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한국에서 사는 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는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발견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자신의 특권을 눈치채지 못하곤 한다. (28~29쪽)

 

그러나 누구의 삶이 더 힘드냐 하는 논쟁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모두가 똑같이 힘들다”는 말도 맞지 않다. 그보다는 서로 다르게 힘들다고 봐야 한다.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기회와 권리가 다르게 분배되고, 그래서 다르게 힘들다. 여기서 초점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삶을 만드는 이 구조적 불평등이다. 그렇기에 불평등에 관한 대화가 “나는 힘들고 너는 편하다”는 싸움이 되어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너와 나를 다르게 힘들게 만드는 이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공통의 주제로 이어져야 한다.
평등하기만 하면 모두의 삶이 쉬워질까? 대답에 매몰되지 말고 이 질문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권리와 기회를 요구할 때 그 결과로 기대하는 것은 편한 삶이 아니다. 우리는 시설에 갇혀서 남이 주는 대로 먹고 자고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으며 생애를 보내는 인생을 인간답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삶은 동물에게도 가혹하다.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요구하는 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하면서 나름의 삶을 헤쳐나가겠다는 의미다. (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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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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