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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셀프인터뷰] 올해 비마이너 어떤 기사 쓸지 선공개합니다. 빠밤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 강혜민 편집장
등록일 [ 2019년09월04일 17시52분 ]
최근 최저임금은 급격히 올랐는데 비마이너 후원금은 그만큼 오르지 않아 비마이너 재정 상황이 많이 허약해졌습니다. 기자들 최저임금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이 마음, 어떻게 안 될까요? 비마이너의 소중함을 널리 널리 알려주세요! 이 곡진한 응답들로 더 많은 후원자를 유혹하려고 합니다. 단체후원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비마이너 강혜민 기자. 사진 제공 강혜민

-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비마이너 강혜민 기자입니다. 비마이너에는 2012년 2월에 들어왔고, 2018년 4월부터는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비마이너 기사의 첫 번째 독자이기도 하고, 비마이너의 정기후원자이기도 합니다. 비마이너 내부에선 맛집 알리미 역할도 하며 (맛있는) 간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비마이너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원래 장애이슈에 관심 있었어요?

 

아니요…. 비마이너 들어오기 전까지는 제게도 장애인은 무척 낯선 존재였어요. 장애인과 함께한 일상의 기억은 중3 때 저희 반에 지적장애인 친구가 한 명 있었던 게 전부였습니다. 비마이너가 장애인인터넷 언론사이니 자기소개서에 왠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장애인과 함께한 경험)를 한 줄이라도 적어내야 할 것 같아서 그 친구에 관한 이야길 적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마이너에 어떻게 들어왔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당시 전 개인적 사정으로 돈이 필요하여 취직해야만 했고, 우연히 비마이너를 소개받아 지원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아 채용되었습니다. 장애이슈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기자란 꿈은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으니 그야말로 저는 정말 맨손이었어요. 단신도 어떻게 쓸지 몰라 쩔쩔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매일매일 정말 관두고 싶었어요. 밤 열 시 넘어 퇴근할 때면 늘 다음 달엔 관둬야지, 관둘 거야, 다짐하고는 했는데 어느덧 8년이 다 되어 가네요.

 

처음 1~2년은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할 수 없었고, 2~3년이 지나니 조금씩 재밌어졌습니다. 한 5년이 지나니 그제야 전체 지도가 조금씩 보이면서 쓰고 싶은 기획기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으니깐 계속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원래 집회 나가는 걸 좋아해서 1~2년 차에 다른 건 정말 싫어도 투쟁 현장 나갈 때는 늘 힘이 났거든요. 장애운동 투쟁 현장이 전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잘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내년에 비마이너 10주년인데요, 지난 10년의 투쟁 현장을 기록한 사진집을 비마이너 이름으로 내고 싶은 게 제 목표 중 하나입니다. 뭐, 내년에 꼭 내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내고 싶어요.

 

- 비마이너에서 직접 기자로 활동하니 어떤가요?

 

우선 나가고 싶은 집회 마음껏 나갈 수 있어서 무척 좋고요. 일거양득 일석이조랄까요(…) 멋있는 답변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사실 요즘은 취재기자보다는 편집장 역할이 중심이다 보니, 흑흑. 다음 질문이요.

 

- 그래도 취재기자로 오래 활동했는데 기억에 남는 취재(기사)는 어떤 건가요?

 

되게 많은데요, 우선 하나 뽑자면 2012년 여름에 있었던 원주 귀래 사랑의집이요. 2012년 6월이었으니 비마이너에 들어온 지 4개월 정도 지났던 때네요. 전날 갑자기 어디에 좀 다녀오랬는데 그곳이 원주 귀래 사랑의집이었어요. 개인 미신고시설이었는데, 그곳 원장 장아무개 씨는 1960년대 말부터 장애아동을 자신의 호적에 입양이 아닌 친자식으로 출생신고 하는 방법으로 1986년까지 총 21명을 입적시켰어요. 그는 방송에서 부모도 버린 장애아동을 먹여 살린다는 ‘천사아버지’로 소개되어 후원금을 받아 챙기고, 장애수당,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갈취하며 수십 년을 살았어요. 이러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SBS 궁금한이야기Y에 원주의 병원 영안실에 10년, 12년간 두 사람의 시신이 방치되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그 보호자를 추적해보니 장 씨였던 거죠. 저는 그때 장애인단체들을 따라 그곳에 가게 되었는데, 철문을 뜯고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장 씨 부부와 함께 깡마른 성인장애인 4분만이 계시더라고요. 호적에는 21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나머지 분들은 어디 간 걸까요? 이후 몇 분은 찾았는데 나머지 분들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어요. 그런데도 장 씨는 고작 3년 6월의 형을 받았어요. 지금 원주에서 잘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재판 취재를 하면서 1년 후에 그곳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당사자분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어요. 1년 사이에 ‘취향을 가진’ 한 사람이 된 거예요. 1년 전에는 성별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네 분 다 빡빡 민 머리에 원색의 유아용 티셔츠를 입고 있었거든요.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지역사회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생각했어요.

 

그 외에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분들을 꾸준히 옆에서 만날 수 있는 경험들도 소중하고요, 선감학원 취재도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제겐 큰 배움이었어요. 작년 ‘420장애인차별투쟁의 날’ 때 중증장애인분들이 오체투지한 것에 대해 이후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 인터뷰들도 제게는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2014년 4월에 있었던 고 송국현의 죽음도 잊을 수 없죠. 2017년 7월에 있었던 박종필 감독님의 죽음도요. 박종필 감독님 꼭 인터뷰해보고 싶었는데… 물어보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았어요. 이곳은 죽음의 빈도가 무척 높은 편인데 이 수많은 죽음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정리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 앞으로 또 어떤 거 더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선공개를 하자면 올해 언론재단 사업으로 장애해방열사 기록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순석 열사(1984년)부터 우동민 열사(2011년)까지인데요, 오래된 활동에 대한 기억을 추적하고 기록을 찾는 작업이다 보니 많이 어렵고 다들 엄청 헤매고 있어요. 그럼에도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역사를 안다는 것은 기원을 안다는 것이고, 오늘의 이 운동이 어디서 왔는지, 그 궤적들 속에서 오늘의 나는 어디쯤 서 있는지,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니까요. 이 지도 그리는 작업은 사실 제 머릿속에서는 3부작인데요, 올해 열사 기록을 하고 내년에는 장애운동의 전성기를 만든/보낸 이들을 인터뷰하고, 내후년에는 장애운동현장에 있는 비장애활동가들을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비마이너에 오래 있을수록 기록 작업을 점점 더 하고 싶어져요.
 
그러면서도 동시대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내년에 인공지능, 유전자 등과 같은 과학이 장애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거칠지만 이런 고민을 담은 기획기사도 해보고 싶어요. 당장 오늘의 이슈 따라가기에도 헉헉대는데 내가 언제 이걸 공부해서 제안서를 쓰고 필자 섭외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해져요. 그래도 너무 하고 싶어요. 2015년에 ‘광인일기-무엇이 그들을 가두는가’라는 제목으로 정신장애인 기획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지금 보면 아쉬움이 많아요. 현재 정신장애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는데 ‘광인일기 시즌2’를 하는 것도 제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지역에 오래 상주하면서 그 지역의 장애인복지, 시설 문제, 탈시설-자립생활 현황에 대해서도 취재하고 싶어요. 비마이너 보도가 너무 서울 중심이잖아요.

 

이런 어마어마한 욕심으로 사실 비마이너 하반기 기획기사도 벌써 짰습니다. 올해 말부터 ㅍㄹㅇ ㅎㅇㅇㅈ ㅌㅅㅅ이 시작하는데요, 우선 크게는 이에 관한 기획기사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ㅂㄱ, ㅁㄷㅍㄹㅇ, ㅈㅇㅈㅊ 관한 기획기사를 고민하고 있어요. 이거 어떻게 다 하냐! 싶지만 우선 꿈은 원대하게 잡아봤습니다. 언론 비평, 미디어 비평, 문화 비평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데 정말 여력이 안 되네요. 흑흑.

 

- 거의 ‘내 꿈은 대통령’ 수준이네요.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으시군요. 비마이너는 어떤 언론인가요? 비마이너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요. 비마이너는 대체 왜, 존재해야 할까요?

 

기사를 쓰기 위해 옛날 기사들을 찾아봐요. 주요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장애계 내부에선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데, 그 이야기들은 많은 경우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죠. 우리에겐 중요했으나 주류 역사에선 다뤄지지 않는 사건들, 그렇게 삭제된 역사들. 기록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샅샅이 기록하고 그걸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기사를 쓸 때면 내가 현장에 대한, 역사에 대한 편집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긴장감도 있고요. 내가 오늘 쓰는 ‘이만큼의 사실’만이 이후에 역사적 사실/진실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에요. 그런데 ‘주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당위성만으로는 더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생각을 해요. 당위성을 넘어 어떻게 더 확장하여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늘 고민되죠. 비마이너는 꼭 존재해야만 할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비마이너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지, 그래서 외부에 계속 묻게 돼요. 비마이너를 꾸준히 읽고 모니터링하여 의견을 내줄 독자들이 너무 필요해서 독자위원회도 오래전부터 꾸리고 싶었는데…

 

- 비마이너에, 그리고 비마이너를 읽는 분들께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 하는 말씀 있으신가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무지 많아요. 과거에도 수많은 기사를 기획했는데 사실 그중 절반 이상은 하지 못했어요. 일정 따라가기에도 늘 벅찼거든요. 그래서 절실했어요. 비마이너에 기자가 한 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 비마이너가 오래 있을 수 있는 매력 있는 곳이고, 비마이너에서 나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 역시 처음에 확신을 가지고서 나를 이곳에서 묶어둔 게 아닌데’하는 생각에 ‘누가 그걸 약속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외로워지면서도 그럼에도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있었으면 해요. 이를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게, 그리고 조직이 책임져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재정이어서 요즘은 재정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요즘에 사람들 만나면 돈 이야기밖에 안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매력 없고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정말 필요하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니깐.

 

비마이너는 연차 상관없이 동일하게 최저임금을 주고 있어요. 그럼에도 두 사람의 인건비가 빵꾸 나는 상황이에요. 이제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면서 살았는데 이제 더는 미래를 담보할 수가 없어요. 사실 안정되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불안정한 상태가 비마이너 상황에서는 당연한데, 이게 사실 당연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비마이너 기사를 유익하게 읽고 계시다면, 혹은 읽지 않으시더라도 이 언론 괜찮다, 앞으로도 있으면 좋겠어, 싶다면 취재비 지원을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비마이너 정기후원이요. 비마이너 후원금은 온전히 기자들의 인건비와 취재비, 외부 필진 원고료로 사용됩니다. 장애계 단체에서 신입활동가 교육할 때 비마이너 기사를 많이 활용한다고 해요. 신문 구독한다고 생각하고 구독료 차원으로 단체에서 정기후원 할 수도 있죠.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비마이너 창간일이 2010년 1월이고, 제가 2012년 2월에 들어왔는데요. 장애인연금법이 2010년에 제정됐고,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 2011년에 제정된 것을 생각하면서, 그 역사의 흐름 어딘가에 비마이너 창간이 있고 저의 비마이너 입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감회가 참 새로워요. 이렇게 비마이너에 있으면서 2019년 7월에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역사의 시간을 함께 지나왔는데 앞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고 시설폐쇄법이 제정되어 장애인 자립생활이 특정 소수가 추구하는 이념이 아니라 시대의 보편적 상식이 되는 시대를 만나고 싶어요. 그때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그때가 되면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오늘의 기사들이, 제가 요즘 읽은 90년대의 장애인 신문 기사들처럼 낯설어질까요. 언젠가 도래할 그 날의 현장을 비마이너가 취재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 어떤 언론사보다 잘 취재할 자신이 있거든요. 비마이너를 지켜주세요. [일간 비마이너] 구독료 만 원씩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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