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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한 덩어리 시간
[제1회 대구지역 장애인 탈시설 증언대회] ④ 박태식
등록일 [ 2019년09월11일 14시13분 ]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은 2019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제1회 대구지역 장애인 탈시설 증언대회’를 했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탈시설하며 살아가는 장애인 당사자 여덟분의 이야기를 글로 전합니다.

 

구술자 박태식 씨와 기록자 송효정 씨의 뒷모습. 사진 제공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나는 박태식입니다.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잘 모르겠어요. 잊어버렸습니다. 딴 사람들은 나한테 49살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 그것보다 내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설에서 살다가 지금은 (자립해) 우송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시설에 살 때는 다섯 시에 일어나 복지관에 가서 청소를 했습니다. 아홉 시에 출근해 네 시에 퇴근을 했고, 시설에 들어가면 다섯 시였습니다. 사람들이 내 밥을 따로 퍼 놔서 그걸 먹은 뒤 잤습니다. 그냥 해야 되니까 그렇게 지냈는데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복지관에서 일할 때는 사십이만이천 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는데 매달 통장에 돈이(수급비) 나옵니다. 예전에 나는 일을 많이 했는데 돈을 받지 못했어요. 부산에서 일할 때는 새벽 세 시에 나가서 일하고 라면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배 타고 나가 양식장에서 물고기 잡는 일이었습니다. 딴 사람들은 40만 원 받았는데 나한테는 돈을 안 줬습니다. 매일 라면만 줬습니다. 구미에 가서 노가다를 했습니다. 거기에서도 돈을 안 받았습니다. 그리고 의성으로 가서 담배와 고추 따고 깨 터는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돈을 안 줬습니다. 안동에 가 지냈는데 사람들이 그곳을 수용소라고 했습니다. 거기서도 사과, 고추, 옥수수, 복숭아 따는 거랑 깨 터는 일을 했는데, 찬송가 부르고 기도도 했습니다. 밤에는 이불에 뒤집어 씌워진 채로 많이 두들겨 맞았습니다. 수용소 이름은 기억이 안 납니다. 잊어버렸어요. 거기 살고 있을 때 외국인이 와서 나를 차에 태우고 몇 시간 동안 달려 전라도로 갔습니다. 거기서 소금 캐는 일을 하다가 광주로 넘어갔습니다. 일은 내가 했는데 돈은 다 외국인이 가지고 갔습니다. 돈 달라고 말할라 하면 조용히 하라고 해서 말을 못 해봤습니다. 구두도 닦고 다른 일도 했는데, 입 다물라고 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구에 일하러 왔다가 시설에 들어가서 20년 살다 우송아파트에 나오게 된 겁니다.

 

요즘에는 야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산수 공부하고 끝나면 밥 먹고 쉬다가 다시 공부하는데, 끝나면 외국 사람이 집까지 태워다 줍니다. 라면 말고는 모든 음식을 좋아합니다. 사 먹는 음식이 맛있습니다. 다리가 퉁퉁 부어서 한의원에 가 침 맞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도 다 빠져서 얼마 전에 (틀니를) 해 넣었습니다. 몸에 흉터가 많아요. 낮에는 일 시키고 밤에는 때렸기 때문입니다. 우송아파트로 나와 사는 게 재밌는지는 모르는데 시설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 박태식은 자신의 나이가 서류상의 나이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시설에서 보내온 서류에는 그가 시설들을 전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는 자신이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무임금 노동을 했다고 말한다. 강도 높은 노동을 감당해야 했지만 어떤 보상도 없었던 그의 시간을, 그는 기억하고 있지만 발화되긴 어려워 기록에 옮길 수 없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기록지에 있는 모든 시설명을 정확히 호명하던 중 안동의 수용소(기도원)에 살았고, 청주○○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국가등록번호에는 누락된 한 덩어리의 시간이, 박태식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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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박태식·기록 송효정 saramcil@empas.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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