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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만 가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의 고통… “특별법 제정으로 진상규명해야”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 열려
“국가폭력에 대한 국민의 공모 인정하고, 진상규명 위해 함께 싸워야”
등록일 [ 2019년09월24일 21시59분 ]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선감학원 사건이 알려진 지 수 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요원한 상태다. 그러한 와중에 피해생존자들의 고통은 극심해져만 가고 있다.

 

지난 19일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선감학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관련기사: 선감학원 진상규명 담은 법안, 마침내 국회에 발의)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고, 선감학원 진상규명과 피해생존자들의 지원 대책을 위한 선결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1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피해생존자가 단상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책상 왼쪽부터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김성환, 한일영, 이대준 씨가 앉아서 증언을 듣고 있다. 사진 허현덕
 

- 지워지지 않는 기억,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

“10대 때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 선감학원에 잡혀갔어요. 3년 동안 모질고 모진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 어섬에 잡혀 노예생활도 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기술이라도 배워 어떻게든 살려고 했지만 전두환 때 삼청교육대에 붙잡혔어요. 탈출하다 1년 형을 살았어요. 나와서 기술이라도 배워서 살아가려고 했지만, 삼청교육대 갔다 온 사람이라고 경찰이 감시했어요. 삼청교육대 갔다 왔다고 조심하라고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하니까 회사에서 잘리기 일쑤였어요. 평생 직업이라는 게 없었죠.

 

어떻게 운 좋게 아이도 낳고 살면서 힘들더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기술도 없었는데 뭐라도 해서 먹고살아야 해서 무릎도 안 좋고 했지만 살려고 노가다도 했고, 별짓을 다 했어요. 힘들어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가난에 찌들어서 제 의지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얼마 전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이혼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라도 돼야 내 입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중략)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과거 선감학원에서 지옥 같은 생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감학원에서 살아남은 피해생존자들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해서입니다. 우리가 선감학원에서 당했던 일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피해생존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주고 현실적인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한일영 씨가 힘겹게 말을 마쳤다.

 

이어서 이대준, 김성환 씨를 비롯한 다수의 피해생존자들이 선감학원에서 겪은 기억을 털어놨다. 이들은 모두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만들어진 부랑아 수용소다. 해방 이후엔 경기도가 운영권을 이어받아 1982년까지 직접 운영했다. 당시 경찰과 공무원들은 서울, 경기, 인천지역 아동들을 거리에서 잡아들여 선감학원에 인계했다. 납치인 셈이다. 선감학원은 이들을 ‘부랑아’라고 했으나 사실은 거주지가 명확하고 부모, 가족이 있는 경우에도 무조건 수용했다. 수용 대상은 18세 이하 남성이었는데 대부분은 12세 이하 남자아이들이었다. 피해생존자들 중에는 삼형제가 함께 잡혔다는 증언도 나왔다.

 

선감학원은 교육기관으로 세워졌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원생들은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동원됐으며 갖은 폭행과 기합에 시달렸다. 시설은 퇴비 만들기, 누에치기, 야산 개간, 농사 등의 일을 시켰다. 폭력과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원생들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갯벌에 빠지거나 바다에 휩쓸려 사망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시신이 발견되면 같은 원생들이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힘겨운 경험과 기억을 안고 살아남은 피해생존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혹독했다. 한 씨의 증언처럼 대다수의 생존자들이 선감학원 이후에도 다른 시설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의 무관심과 방관은 이들이 여전히 선감학원의 고통에서 한 치도 나오지 못하고, 악몽의 나날을 보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피해생존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있는 힘껏 냈지만, 상처만 헤집고 대책 마련에는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토론자들의 모습. 왼쪽부터 안경호 사무국장, 이민선 기자, 정진각 소장, 하금철 전 비마이너 편집장. 사진 허현덕
 

- 특별법 제정으로 선감학원 진상규명에 다가갈 근거 마련해야

 

20년 동안 선감학원을 연구한 정진각 안산지역연구소 소장은 진실규명에 턱없이 모자란 자료 수집을 토로했다. 정 소장은 “선감학원이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40년간 존재했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며 “조선총독부가 운영했다는데 관보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조선사회사업협회에서 총독부의 보조금을 받고 운영하는 형태로 위장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하금철 전 비마이너 편집장은 “현재 선감학원의 진실은 피해생존자만 드러나고 구체적인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기형적인 상황”이라며 “선감학원의 초대 원장 정도밖에는 드러난 바가 없는데, 가장 원생들의 피해가 극심했던 60~70년대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각 소장은 이를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피해자 증언만 있는 상황에서는 가해자를 밝혀내는 것은 물론 진실에 다가서기 힘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 소장은 “최근 선감학원 퇴원아대장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많은 아이들이 암매장을 당했는데 영구문서로 보관하는 매장허가서조차 볼 수 없다”며 “많은 아이들이 분명히 죽었고 죽임을 당했는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선감학원 원생들의 피해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선감학원 퇴원아대장이 유일하다. 지난해 1월 선감학원 퇴원아대장 4,691건(1955~1982년, 경기도기록관 보관)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권미혁 의원실에서 퇴원아대장을 분석하고 통계를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선감학원 자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번 발의한 법률안에는 진상규명 조사방법에 ‘조사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서 제출 및 출석 요구, 위원회의 실지조사, 동행명령장 발부, 청문회 실시 등’을 담았다. 또한 피해생존자에 대한 피해보상과 의료지원금, 생활지원 등에 대한 근거도 마련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4년 이상 제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법에만 기대를 걸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선감학원은 1982년까지 경기도가 운영한 만큼 공권력에 의한 폭력에 해당하기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으로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당 법 제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국가폭력에 대한 국민의 공모 인정하고, 진실 규명 위해 함께 싸워야

 

토론회에서는 선감학원 진상규명에 다가가기 위해 무엇보다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 바탕에서 국가 차원의 조사와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금철 전 편집장은 “선감학원 퇴원아대장이 지난해 1월 발견될 당시 보도가 쏟아져 나왔는데, 최근 보도에서는 마치 새로 발견된 것처럼 보도되곤 한다”며 “선감학원 사건이 알려진 지 3~4년이 지나 현재 밝혀진 자료도 제법 있고, 축적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토론회나 언론보도가 나올 때만 관심을 기울이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사회정화’를 위해 부랑아 단속 관행 때 적지 않은 일반 시민이 일조했고,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이 있다”며 “이런 정책을 펼친 국가가 가해자라는 말만 외치고 자신은 도덕적 그늘의 연민 밑으로 숨고 있는 것은 비겁하다. 국민은 국가라는 가해자의 뒤에 숨지 말고 국가 폭력을 드러내고 이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각 소장도 “국민들은 수용소나 부랑아 문제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선감학원 사건을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 안타까워하고 어떤 방법이 없겠냐고 하지만 법을 세우거나 진실을 규명하는 것에서는 한 발을 빼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소장은 국가의 사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국가에 잘못이 있다고 사과한다면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다”며 “선감학원 피해생존자의 명예회복은 현 정부가 과거 정부에 대한 사죄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배 경기도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지금도 어린 시설 납치에 대한 트라우마로 불안에 떨고 오랜 감금 생활로 가족을 만나지 못해 독거노인인 피해생존자가 많다”며 “국가가 일정한 기준 없이 보기 남루하다는 이유로 바다 가운데 있는 섬에 아이들을 수용해 중범죄자로 오해받도록 했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사와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김영배 경기도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이 국가 차원의 사과와 조사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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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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