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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대’ 정확한 규정 없어, 정부 수수방관하는 사이 반복되는 시설 문제
‘2018년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 중심으로 학대피해자 지원 대책 논의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종사자 처우개선과 장애인학대 피해 지원 예산 필요
등록일 [ 2019년10월01일 12시47분 ]

3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장애인학대 예방 및 근절 대책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자들의 모습. 사진 허현덕

 

장애인학대는 장애인의 거주지에서 가족 등 가까운 사람에 의해서 발생하는 비율이 높아 은밀하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학대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머무르기 일쑤다. 드러나기도 어렵고 처벌하기도 어려운 장애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9월 3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장애인학대 예방 및 근절 대책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은 18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2018년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아래 보고서)’를 중심으로 피해장애인의 사례에서 실태를 진단하고, 이에 따른 방안을 모색했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김상희·김승희·최도자·윤소하 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 장애인학대사례 10건 중 7건이 발달장애인… 본인 신고율은 2.9%에 그쳐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된 3,658건 중 장애인학대 의심사례는 1,835건에 달했다. 이 중에서 장애인학대로 판명된 것은 889건(48.4%)이었다. 그러나 학대가 의심되지만 피해가 불분명하거나 증거가 부족해 학대로 판정할 수 없는 ‘잠재위험사례’도 150건(8.2%)으로 추후 장애인학대에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

 

장애인학대사례 10건 중 발달장애인의 학대사례는 7건(70.4%, 62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학대 사례도 마찬가지지만 발달장애인 학대는 본인이 신고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다. 다른 학대 의심사례 본인 신고율 10.6%보다 7.7%포인트 낮은 2.9%에 그치고 있다.

 

이미현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대리는 “학대피해 장애인들이 학대를 인식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당사자 교육, 캠페인, 자료 개발이 필요하다”며 “특히 발달장애인의 본인 신고율을 높이기 위해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도 고안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대피해 장애인 중 남성이 52.9%, 여성이 45.1%였고, 연령은 20대가 23.7%로 가장 많았다. 20대 피해자들은 10대 때부터 피해를 당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학대가 어릴 때부터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10대 피해자들은 가정폭력이거나 아동학대에도 해당하는 만큼 가정폭력 기관과 아동학대 피해자 지원 기관과의 연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이 토론회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 사진 허현덕
 

- 정부의 수수방관으로 20년간 계속된 동향원 시설 문제… 해결은 미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장애인이 학대를 당하는 장소는 거주지(35%)에 이어 장애인거주시설(21.9%)이 가장 많았다. 학대행위자는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28.1%), 장애인이용시설 종사자 (8.3%)로 나타났다. 또한 집단이용시설 학대(313건) 중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62.3%로 가장 높게 나타나 시설에서의 장애인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박용민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20여 년 전부터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동향원 사례를 이야기하며,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장애인인권 문제가 해결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동향원은 입소인들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고, 병원에서 방치되다 죽음에 이르게까지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비슷한 혐의로 1997년에 법인 이사장이 구속됐다. 2007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고 횡령 건에 대해 고발이 이뤄졌다. 박용민 관장은 “2007년에는 법인이사 교체를 포함해서 문제를 해결할 어떤 움직임도 없어 문제가 반복될 여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다시 동향원의 장애인학대 사실이 밝혀졌다. 동향원 원장이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말을 안 듣는다, 사고를 친다’는 이유로 ‘반구대정신병원’으로 강제입원 시켰다는 사실이 공익 제보자와 피해자 면담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박용민 관장은 여전히 정부기관이 장애인학대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와 부산시는 2014년부터 매년 장애인 거주시설 대상 인권실태조사를 시행했지만, 동향원에서의 강제입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또한 부산시의 점검에서도 회계부정이나 학대사건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세 차례 ‘입소자들의 강제입원’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장애 당사자의 진술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이에 부산동부지검에 동향원 관계자 5명을 고발한 상황이다.

 

박 관장은 “계속된 문제제기에도 꿈쩍하지 않던 동향원 운영자들은 이번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동향원 문제 해결에 정부기관의 관심과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장애인학대 범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 규정하고, 금지행위로 명시해야”

 

토론자들은 이러한 장애인 학대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범국민적인 장애인 인식개선 △지자체와의 유기적인 연계 △장애인학대 범죄에 대한 정의 규정과 법적 근거 마련 △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이미현 대리는 “장애인에게 빈번하게 발생하는 횡령, 준사기, 명의도용 등을 ‘장애인학대 범죄’라고 정의하고 이를 장애인복지법에 명시하여 금지행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인학대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학대범죄자를 장애인복지시설에 취업제한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대에 관한 독립법 제정에 대한 제언도 있었다. 현재 장애인·노인·아동 등의 옹호기관이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노인보호전문기관,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관은 각기 장애인복지법, 노인복지법, 아동복지법을 근거로 설립되었다.

 

김용득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장애인·노인·아동 옹호기관의 특수성이 있지만 학대에 관해서는 이 세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법률이 마련되어야 학대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지원 체계가 제대로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개별법 제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장애인학대 예방 및 근절 대책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자들의 모습. 사진 허현덕

 

-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종사자 처우개선과 장애인학대 예산 책정 이뤄져야

 

조현식 강원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은 학대피해자 지원에 대한 지자체의 인프라 구축과 지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은 600여 개의 장애인복지시설이 운영되고, 서울시가 지정한 11개의 공공병원이 운영되고 있어 긴급 상황에 학대피해자의 의료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강원도는 장애인종합복지관 7곳, 도장애인복지관 3곳, 장애인자립지원센터 5곳으로 연계할 수 있는 복지자원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를 메울 수 있는 지자체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조 팀장은 “강원도는 지원체계가 매우 열악해 피해자가 학대피해를 받고 있어도 학대현장을 떠나지 못한 채 가해자에게 협조를 구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며 “지금 당장 학대 피해 장애인의 피해회복을 위한 직접 사업비 책정과 쉼터 확장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의 처우와 예산 부족부터 해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중앙 1곳, 지역 18곳으로 총 19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중앙은 5인, 지역은 4인으로 운영이 된다. 이들은 상담과 사례관리, 사후 모니터링까지 맡고 있어 업무가 과중하다. 업무과중으로 퇴사율도 높다. 상담사가 계속 신입사원으로 채워져 업무효율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상담원 한 명이 150건에 달하는 사례를 담당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피해자 지원이 제대로 이뤄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옹호기관에 접수되지 않는 수많은 피해 장애인에 대한 사례 발굴은 꿈도 못 꾼다”고 진단했다.

 

이날 참석한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계자들은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관심과 예산에 비례한다’며 장애인학대피해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예산 책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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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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