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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은 진짜 아플까’라는 의심에 관하여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질병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문제점
등록일 [ 2019년10월08일 22시45분 ]

조국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건강상의 이유로 검찰 조사를 하루 미뤄 받았다는 내용의 MBC 뉴스. 자막에는 ‘검, 정경심 오늘 재소환‥ “건강상태 매우 심각”’이라고 써있다. 지난 5일 MBC에 보도된 뉴스 영상 캡처.
 

지난 글에 질병이 약자의 피해와 국가폭력을 탈정치화하는 데에 활용된 사례를 썼다면(관련 기사 : ‘병사’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이번에는 질병이 강자의 몸에서 활용되는 사례를 본다. 조국의 수사에서 정경심의 ‘지병’에 조국의 지지자들은 강한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아픈 당사자가 의도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이들이 질병과 불행, 불쌍함을 하나로 여긴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이 사고방식은 여태 수많은 정치인과 재벌이 활용한 바 있다. 당장 며칠 전까지 두 다리로 걷던 사람이 구속되거나 경찰서에 출석할 때만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거나 침대에 누운 채 이송된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을 기억할 것이다. ‘건강’하던 사람이 감옥에 가자마자 갑자기 ‘지병’이 발견되거나, 다치거나, 아프거나.


그런 사례들을 보며 나는 그들의 진실성을 의심했다. 중요한 수사를 피해가려는 면피 수단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이 사회는 질병과 장애를 사실상 구분하지 않으며, 이 둘을 모두 불행으로 개인화한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이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를 휠체어와 환자 이송 침대 위에서 회피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사실 여부가 딱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권력은 진단서도 만들어 낼 수 있고, 통증은 사실상 당사자만이 느끼고 확인할 수 있다. 똑같은 증상이 성별/나이 등의 요인에 따라 의사에게 전혀 다르게 대우받기도 하고,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나조차도 그러한 상황에서 의심부터 하곤 했지만, 이제는 잠시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스트레스 때문에 갑자기 쓰러진 경험들, 그리고 나의 말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픈 사람, 만성질환자 중에서는 휠체어와 다리를 번갈아 가며 이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때로 몇 시간, 혹은 몇 분 간격으로 건강 상태가 오락가락하곤 한다. 어제 쌩쌩했다가 오늘 초주검인 상황도 흔하다. 아픈 몸의 이러한 변동성은 아픈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낙인찍는 가장 주된 근거가 된다. “안 아파 보이는데.” 혹은 “멀쩡하더니 왜 갑자기 아파?”와 같은 의심의 말들은 아프다고 말하는 몸에 낙인을 찍음으로써 만성질환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고, 이는 이들의 몸이 제도와 관계 속에서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한다. 질병은 거짓말과 불행 중 하나로 수렴된다. 자신의 몸을 위한 그 이상의 요구나 지원은 가볍게 기각된다. 나는 내 몸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한다.


이는 질병이 그 자체로 고민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질병을 맞닥뜨렸을 때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꾀병’이 아닌 이상, 질병은 ‘아프고 불행’하기에 얼른 치료해 줘야 하고, 그렇기에 ‘안 그래도 아픈 사람’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은 무조건 악하다. 이는 아픈 사람을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다. 누누이 말해 왔지만, 질병은 삶의 조건이다. 그러나 질병이 있다고 하여 관계나 제도에서, 기회에서 배제된다면 질병은 삶의 조건으로 기능할 수 없다. 아픈 사람들은 종종 ‘깍두기’가 되곤 하는데, 건강한 사람들은 바로 이 사고방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권력자는 이를 위해 의료권력을 적절히 활용한다. 이는 질병에 대한 편견을 활용함으로써 질병에 가해지는 거짓말쟁이 낙인을 강화하게 된다.


질병이나 통증에 대한 편견을 이토록 가볍게 활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확고한 시민권으로서의 건강 권력이다. ‘깍두기’는 흔히 사람들이 모여 경쟁 놀이를 할 때 게임의 규칙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특권처럼 느껴지지만, 특권은 어디까지나 성원권이 분명히 보장되어 있을 때만 성립한다. 많은 경우 게임에 함께하고 있다는 인식이 없어서, 깍두기는 번외 내지는 엑스트라일 수밖에 없다. 아픈 사람, 질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상황과 몸에 맞는 적절한 지원이 필요할 뿐이다. 개별의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 고려하지 않고, ‘쉬게 해 주면 되겠지’ 정도로 상황을 얼른 해결해 버리려는 생각은 아픈 몸을 차별하고, 동시에 아픔을 표면적으로 특권과 연결한다. ‘권력자의 아들’에게는 경우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질병으로 인해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도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처럼 질병에 대한 차별은 기괴하게도 시민권의 박탈로써 표면적 특권을 부여하며, 이를 통해 ‘역차별’ 담론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나도 권력자들이 질병과 장애에 대한 편견을 활용하여 면피할 수 있는 구조와 정황을 알고 있다. 그러한 면피는 질병과 장애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핵심은 그들의 질병이나 건강의 진실성이 아니다. 지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죄를 회피할 권리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죄를 지은 사람이 아프다면, 그 와중에도 혐의에 맞는 절차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농인의 변호에서 수어통역사나 농통역사가 필요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초점을 권력자들의 몸이 아니라, 그들이 활용하려는 편견과 건강 중심성에 두려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픈 몸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현상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질병을 의심하는 행위는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과의 관계에서 갖게 되는 권력의 표출이다. 여기에는 ‘진짜 아프면 인정해 줄 수도 있다’라는 불합리한 사고방식이 전제되어 있다. 이는 질병이라는 조건에 처한 사람을 시민권에서 더욱 멀어지게 한다. 증상의 진실성과 무관하게 몸은 존중되어야 하며, 동등한 시민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 질병과 증상이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로 여겨져야 한다. 질병 차별은 아직 제대로 논의된 바도 많지 않아서, 장애인의 편의에 대해 당사자에게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아픈 사람의 몸은 너무나 쉽게 단정 짓곤 한다. 타인의 질병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나의 태도부터 바꾸기 위해 다시 한번 되새긴다. 타인의 몸을 의심할 권리는 없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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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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