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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법정에서 지적된 국민연금공단·수원시의 위법성
“국민연금공단, 병원 평가 무시하고 최 씨 상태 양호하다고 판단”
수원시는 어떠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근로능력없음→있음’으로 전환
등록일 [ 2019년10월24일 12시40분 ]

22일 수원지법에서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이라 불리는 고(故) 최인기 씨의 변론기일이 열렸다. 재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비현실적인 근로능력평가와 강제노동이 빈곤층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고 최인기님의 죽음에 사죄하라”고 든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이라 불리는 고(故) 최인기 씨의 변론기일이 22일 오후 4시 40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변론기일에서 원고 측 소송대리인은 피고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의 위법행위를 증명하며, 이들의 위법행위로 최 씨가 사망했다고 조목조목 주장했다.

 

수원에 살던 기초생활수급자 최 씨는 2005년 심장 대동맥을 치환하는 큰 수술을 받은 후 더는 일하기가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2008년에는 2차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2013년 11월, 그는 갑자기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받으면서 조건부 수급자가 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자활사업에 참여해야만 수급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최 씨는 ’일하기 어렵다‘고 항변했으나 일을 하지 않으면 수급권을 박탈하겠다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2014년 2월부터 강제로 일자리에 참여한 최 씨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부종과 쇼크로 병원에 입원, 2014년 8월 28일 사망했다.

 

이에 대해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는 “고인의 죽음은 근로활동을 강제하는 복지제도가 비현실적인 근로능력 평가를 통해 열악한 일자리로 빈곤층을 내몬 결과”라고 비판하며 지난 2017년 8월 28일 국가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변론기일 끝에 소송은 이제 선고만을 앞두고 있다.

 

- “국민연금공단, 병원 평가 무시하고 최 씨 상태 양호하다고 판단” 위법성 지적 

 

이날 원고 측 소송대리인으로 나선 서채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공단이 최 씨의 근로능력을 ‘1단계’로 평가한 것 자체가 위법했다”고 지적했다. 의사는 ‘근로능력평가 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명시된 평가기준에 따라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발급한다. 근로능력판정을 받기 직전 2012년 당시 주치의는 최 씨가 중한 상태인 ‘3단계에 해당한다’고 평가했으나, 공단은 고인을 가장 양호한 상태인 1단계로 평가했다. 이러한 공단 평가는 최 씨에게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하는 근거가 됐다.

 

하지만 공단의 평가는 이후 법원에서 진행한 감정 결과에서도 반박당한다. 법원은 감정평가에서 최 씨의 병원 기록을 근거로 “심장질환이 진단되었고,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받고 있으며 가벼운 정도의 일상생활에 제한이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2단계에 합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한, 공단은 고인이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서 변호사는 “활동능력평가내용에 ‘수술을 2차례 하신 분’이라고 명시되어 있어 공단은 분명 수술 내용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날 서 변호사는 공단의 근로능력평가 자체가 매우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2015년 KBS 보도에 따르면 공단은 한 해 20만 건가량의 평가를 내리는데 한 건당 겨우 2분을 할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서 변호사는 최 씨의 이러한 급작스러운 자격 변동이 2012년 12월 1일, 지자체에서 하던 근로능력평가가 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양되면서 강화된 근로능력평가 심사와 관련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국민연금공단으로 이관되면서 ‘근로능력있음’ 판정은 기존 5%에서 2013년 15.2%, 2014년 14.2%로 3배가량 증가했다. 실제 최 씨 또한 그전엔 한두 차례 병원 정기검진을 받는 게 전부였으나 공단으로 근로능력평가가 이양된 후, 6개월에 한 번씩 근로능력진단서 제출을 요구받았다.

 

서 변호사는 수원시에도 법적 책임을 물었다. 수원시는 2005년부터 ‘최 씨가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정해왔음에도 2013년 11월, 어떠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하고 조건부 수급자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자활상담 참여를 안내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추정소득을 부과하여 수급비가 감소 또는 중지된다고 통보했다. 원고에 따르면 실제 최 씨의 수급비는 62만 원가량 삭감되면서 자활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2014년 서울행정법원의 판례(2013구합51800)에 따르면 이는 위법하다. 당시 재판부는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여 추정소득 부과처분을 할 수 있는 법령상의 근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 변호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수원시는 자활역량평가와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이를 수립하지 않은 채 고인을 고용센터의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시켰다”며 수원시의 위법행위를 지적했다.

 

2017년 8월, 국가손해배상소송 제기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고 최인기 씨의 부인 곽혜숙 씨가 수술 후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고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의 위법한 근로능력평가로 최 씨 사망한 것” 인과관계 주장 

 

이러한 피고(국민연금공단, 수원시)의 위법한 행위와 최 씨의 죽음 사이에 실제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다툼도 이어졌다.

 

최 씨는 2014년 2월 17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했다. 주 6일 근무(오전 9시~오후 6시)로 주 48시간 일했다. 그는 탑승식 바닥청소차로 지하주차장 바닥을 청소하는 일을 했는데, 청소차 운행을 위해서는 물을 받고 버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주치의는 최 씨에게 4kg 이상의 무거운 물건은 절대 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바 있다. 최 씨의 부인 곽혜숙 씨 또한 “집에 오면 ‘나 물드는 거 너무 힘들어’라며 호소하곤 했다”고 당사자 신문조서에서 밝혔다.

 

최 씨가 일한 공간은 위생상태가 좋지 않고 햇볕도 들지 않았으며 공기 또한 좋지 않았다. 휴게시간에도 지하주차장 대기실을 이용해야 해서 사실상 최 씨는 하루 종일 지하주차장에 상주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을 시작한 후, 최 씨는 다리가 심하게 붓고 지속적인 발열, 오한, 통증, 호흡곤란을 호소하다가 일한 지 4개월 되던 2014년 6월 16일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입원 2개월 뒤인 2014년 8월 28일 끝내 사망했다. 두 차례의 큰 수술에도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건강상 별문제 없이 지내던 최 씨였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 황준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공단이 위법하게 근로능력을 평가·판정했고, 그로 인해 조건부수급자로 선정된 고인은 구직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하게 되면서 감염이 악화되면서 사망에 이르렀다”며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례(99두11424)에 따르면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기존의 질병이더라도 그것이 업무상 사고나 과로·스트레스 등으로 더욱 악화하거나 증상이 비로소 발현된 거라면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주치의도 최 씨의 사망에 “과로가 상당히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언론에서 밝힌 바 있다. 황 변호사는 이러한 대법원 판례와 전문가 소견을 제시하며 “최 씨의 죽음과 피고 측의 위법행위 간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충족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원고 측 소송대리인은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의 위법한 근로능력평가와 판정으로 최 씨는 사망에 이르게 됐다”면서 “피고들의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여 두 번 다시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전했다.

 

22일 수원지법에서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이라 불리는 고(故) 최인기 씨의 변론기일이 열렸다. 재판에 앞서 시민사회단체는 “가난이 형벌이 되지 않도록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을 촉구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재판에 앞서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 씨의 부인이자 소송 원고인 곽혜숙 씨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도, 수원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질 않는다”면서 “이런 불행한 일을 두 번 다시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복지수급자 사망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제기한 첫 번째 소송”이라면서 “가난이 형벌이 되지 않도록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음 변론 기일은 11월 26일이며, 그 후 1심이 선고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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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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