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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유예된 빈곤 해결, 오늘 죽어가는 사람들
‘현재’의 빈곤보다 ‘미래’에 주목하는 사회투자론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현재의 빈곤이 사라질까?
등록일 [ 2019년11월08일 15시01분 ]

지난 8월, 관악구에서 일어난 북한이탈주민 모자 사망에 대한 추모제에 참가한 사람이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액자와 국화를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아동 빈곤만큼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도 없을 것이다. 아동에게 경제적 빈곤은 그들의 노력 여하와는 무관하며, 무엇보다도 자력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생애 초기단계의 빈곤과 불평등은 사회정의에 위배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 빈곤에 직면한 부모가 아동을 살해 후 자살했다는 기사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연민과 동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최근에는 관악 모자가 아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필요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빈곤한 부모와 아동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아동 빈곤에 관한 정책 이슈는 관악모자나 증평모녀 사건이 암시하는 것처럼 부모의 빈곤에서 기인하며, 무엇보다도 엄마가 한부모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보살핌노동에 따른 노동시장의 배제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아동의 빈곤은 부모의 경제적 빈곤과 함께 자연스럽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로 수렴된다. 물질적 박탈에 직면한 부모와 아동의 빈곤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식주와 의료적 욕구와 같은 기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구는 여기에서 배제되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도 제도 개선이 더딘 것일까? 그리고 아동과 부모의 죽음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정부 관료들은 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성을 강화하기보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주류 담론이자 한국의 사회정책 기조에 짙게 밴 사회투자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동빈곤에 대한 사회투자론

 

사회투자론은 에스핑 안데르센(Esping-Andersen)이나 기든스(Giddens) 등 영국이나 유럽 연구자들이 제안하였다. 국제적인 논의로 확산된 시점은 OECD나 EU 등 국제기구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소위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를 복지국가의 현대화를 위한 ‘유력한 전략’으로 내세우면서부터이다.1) 특히 에스핑 안데르센은 ‘아동중심적 사회투자전략’을 정립하면서 이를 젠더평등을 도모하고 계층 간 불평등을 시정하며 공적연금의 재원 확보를 위한 유력한 수단이라고 의미 부여하였다. 한국에서는 2000년 중반에 기든스의 ‘사회투자국가’ 개념이 소개되면서 확산되었지만, 그 시초는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제적인 논의에서 사회투자론은 사회지출의 생산적 투자와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수익을 강조하는 시각을 반영한다. 사회지출의 생산적 투자는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를 지칭하며, 사회적·경제적 수익은 이 같은 사회투자에 따른 비용 대비 성과를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투자론은 경제적 자원이 결핍된 시민에게 현금을 제공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소득보장의 확충보다, 인적자본 향상과 고용촉진을 장려하기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보육 및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 ‘결과적 평등’을 진작하기 위한 누진세 인상이나 소득보장의 확충보다, ‘기회의 평등’에 입각하여 동일한 출발선을 제공하는 것이 비용 효과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여기서 사회적 수익은 취약계층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여 빈곤 탈출을 꾀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계급 간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미래 전망과 관련된다. 반면 경제적 수익은 양질의 인적자본을 갖춘 비고용 인구를 노동시장에 공급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함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의미한다. 사회투자론에서 이 같은 경제적 부가가치는 노동력이 부족한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복지국가의 현금성 복지지출을 축소하고 조세기반을 넓히기 위한 물적 토대로서 그 중요성이 더해진다. 따라서 사회투자론은 비고용 인구 중 최대 집단인 아동과 여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무엇보다도 저소득 아동 및 청년, 그리고 저학력 노동계급 출신의 엄마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 및 노동시장 참여를 강조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육서비스나 방과후 보육, 아동발달지원계좌와 같은 사회투자는 교육 자원이 부족한 빈곤 아동에게 고소득층 아동과의 ‘동일한 출발선’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며, 인적자본 강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적극적 수단’으로 재현된다. 마찬가지로 (빈곤) 여성에게 보육서비스는 남성과 동일하게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경제적 활력을 제고하는 정책으로 호명된다. 반면 소득보장의 확충은 이 같은 아동과 여성의 기회를 박탈하고 복지의존과 빈곤의 대물림을 심화시키며 복지국가에 재정적 부담을 주는 ‘비생산적’이고 ‘수동적인 대책’으로 치부된다.

 

‘현재’의 아동 빈곤보다 ‘미래’에 주목하는 사회투자론2)

 

아동복지 측면에서 사회투자론의 중요한 특징은 아동의 지위가 ‘미래 노동자’로서의 생산성 차원에서만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아동을 미래 노동자로 육성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아동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관념이다. 특히 사회투자론은 0~2세 영아반 보육서비스나 조기 교육프로그램을 아동의 인지발달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영유아기의 높은 인지발달은 향후 정규교육과정에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달성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고용주에게 노동력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요소인 만큼, 사회투자 담론에서는 유연한 노동시장에서 아동기를 벗어난 청년의 고용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충분한 조건으로 인식된다.


인적자본으로서 영아의 인지발달을 중시하는 사회투자론은 아동의 빈곤을 부모와 분리하여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의 잘못된 행동과 양육태도가 아동의 인지발달에 악영향을 주어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박탈의 순환’ 가설에 입각하여 사회투자론은 세대 간 빈곤의 대물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영아때 부터 ‘부적절한 부모’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주양육자인 엄마가 보살피는 것보다 만 1세 때부터 보육서비스에 등록하여 전문적인 돌봄을 제공받는 것이 아동의 인지발달과 향후 인적자본의 축적에 도움을 주어 아동이 청년으로 성장하였을 때의 고용가능성을 증대시키므로, 이 같은 ‘빈곤의 대물림’을 근절할 수 있다고 피력한다.


자연스럽게 빈곤엄마에게는 어린 자녀를 보살피는 ‘모성’보다 경제적 자원을 조달하는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이 중시되는데, 이처럼 엄마의 경제활동은 빈곤과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격상된다. 반면 소위 공공부조 급여를 통한 엄마의 보살핌노동은 빈곤의 위험을 영속화하는 ‘복지의존’의 대명사로 부각된다.3) 따라서 사회투자론은 한부모를 비롯한 빈곤엄마에게 복지수급을 조건으로 자활의무를 부과하고 노동시장 진출을 강제하며 이를 위반할시 복지삭감과 같은 재정적 벌칙을 가하는 복지정책의 기조와 공명한다. 빈곤위험에 직면한 엄마들은 영아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유급노동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책무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빈곤 엄마의 경제적 자립, 즉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과 아동에 대한 사회투자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경제성장과 복지국가의 재정안정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는 ‘마법의 탄환’으로 간주된다. ‘아동’과 ‘여성’을 경제적 차원에서 ‘(노동) 생산성’으로만 평가하는 사회투자론은 이처럼 도구주의적 시각이 짙게 배어 있다. 국제적으로 각국의 정책 기조에서 사회정책은 경제정책의 목적에 종속되며, 무엇보다도 복지정책, 가족정책은 아동과 여성을 (예비)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동시장정책, 즉 고용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까닭이다.

 

서울역 광장 앞 계단에 홈리스 추모공간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홈리스 한 명이 계단에 누워 있다. 사진 박승원
 

미래로 유예된 빈곤 해결, 오늘 죽어가는 사람들

 

사회투자론은 이처럼 현재 아동이 처한 ‘빈곤’ 상황보다 ‘미래’ 전망에 주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빈곤의 해결은 아동이 청년으로 성장한 후 괜찮은 직업을 가질 때까지 유예되는 것이다. 아니면 빈곤한 엄마가 괜찮은 직장(?)을 얻어 경제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이처럼 빈곤을 미래에 해결되어야 할 이슈로 유예시키는 만큼 사회투자론은 소득보장 확충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무엇보다도 경제적 차원에서 ‘고용촉진’과 ‘인적자본 투자’를 중시한다. 그래서 ‘물고기’를 제공하는 소득보장의 확충보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서비스나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이런 까닭에 서구 복지정치에서 공공부조나 실업급여 인상과 같은 소득보장의 확충은 유의미한 정책 선택지에서 멀어지는 형국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사회투자론은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나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나 보수주의를 막론하고 한국의 사회정책을 규정하는 정책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시민사회진영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요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사회투자론은 이를 어렵게 하는 정치적 환경을 창조하는 데 일조하였다. 긴축재정을 절대시하는 한국의 정책결정자에게 사회투자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비생산적이라고 치부되는 소득보장 확충을 도외시하는데 충분한 명분으로 작용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나 완화를 공언해 왔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에서는 빈곤층의 노동유인을 개선한다는 명목 아래 맞춤형 급여체계로 전환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성을 약화시켰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생계급여의 실질가치를 떨어뜨렸다. 이와 달리 무상보육, 방과후 보육, 드림스타트, 아동발달지원계좌, 근로장려세제(EITC) 및 자녀장려세제(CTC), 자활소득공제 등은 집권정부의 성향을 막론하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고 경제적 활력을 제고하며 아동빈곤을 예방하는 ‘적극적인 사회투자’라고 추켜세웠다.


사회투자론의 문제점은 ‘생산적’이라고 평가되는 보육서비스가 경제적 고난에 직면한 부모와 아동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드러낸다. 사회투자론의 시각에서 보육서비스는 ‘기회의 평등’ 차원에서 아동의 인적자본 투자와 엄마의 노동시장 진출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당장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적 자원’을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육수당이 저소득 여성의 노동유인을 떨어뜨린다는 사회투자론자들의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관악모자의 월수입은 양육수당 10만 원이 전부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육수당은 부모가 자녀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는 조건에서 제공된다. 증평모녀의 월수입도 관악모자 가구와 마찬가지로 양육수당 10만 원이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역설적으로 ‘생산적인 사회투자’로 평가되는 보육서비스보다 저소득 여성의 노동유인에 악영향을 준다는 양육수당의 보장성이 충분했다면 이들 가구는 경제적 결핍을 어느 정도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관악모자를 비롯한 수많은 죽음이 암시하듯이 경제적 빈곤의 결과는 한 가정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다. 많은 아동들이 부모의 경제적 고난으로 인해 빈곤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결과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극단적인 선택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동’과 ‘여성’을 ‘노동 생산성’으로만 평가하는 사회투자론의 도구주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빈곤위험에 직면한 부모와 아동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키는 정책적 대안이 충분히 모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의 ‘미래’가 아닌 ‘현재’의 아동과 부모의 경제적 빈곤에 주목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소득보장의 확충이 필요하다.


물론 이 같은 제안이 보육서비스가 아동복지에 필수적 요소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빈곤 위험을 감안할 때, 경제적 자원을 조달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소득보장의 확충이 충분히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또한 보육서비스를 아동의 인적자본 투자나 여성의 고용촉진 수단쯤으로 여기는 사회투자론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제기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차원에서 ‘현재’의 부모와 아동의 빈곤 상황에 주목하고 계급 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결과적 평등’에 입각하여 누진세 인상과 소득보장의 확충, 그리고 보육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포괄적으로 모색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 사회투자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이를 고민하는 출발선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               *


1) 유럽에서 ‘사회투자’ 주창자들의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에스핑 안데르센 외, 2006, 『21세기 새로운 복지국가』, 유태균 외 역, 나남출판.
에스핑 안데르센, 2014, 『끝나지 않은 혁명』, 주은선·김영미 역, 나눔의 집.
Hemerijck, A(ed.), 2017, The Uses of Social Investme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 사회투자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다음을 참조 바란다.
Cantillon B and Van Lancker, W. m,, 2013, ‘Three Shortcomings of the Social Investment Perspective’, Social Policy and Society 12(4), 553–564.
Laruffa, F., 2018, Social investment: Diffusing ideas for redesigning citizenship after neo-liberalism?, Critical Social Policy, 38(4), 688-706.
Lister, R., 2003, ‘Investing in the Citizen-Workers of the Future: Transformations in Citizenship and the State under New Labour’, Social Policy and Administration 37(5), 427–443.
Saraceno, C., 2015, “A Critical Look to the Social Investment Approach from a Gender Perspective”, Social Politics: International Studies in Gender, State and Society 22(2), 257-269.

3) 사라세노(Saraceno)나 리스터(Lister) 등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은 이 같은 사회투자론에 대해 유급노동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여 엄마의 돌봄 노동 지위를 아동빈곤의 원인이자 젠더 불평등의 전형으로 간주하고, 경제적 부담으로 인식되는 복지 의존으로 치부한다. 따라서 보살핌노동 가치를 평가절하하며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성별 불평등과 소득보장의 중요성 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여성의 고용을 강조하는 사회투자론은 페미니스트 연구자에게 ‘엄마로서의 복지권’, 즉 ‘돌봄에 기초한 사회권’을 박탈하고 유급노동을 사회적 시민권의 기초로 재설정하는 정책적 지향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공급 위주의 사회투자론은 돌봄의 가치 인정이나 남녀 간 돌봄 분배, 젠더형평성(gender equity)보다 ‘여성의 경제적 활용’이나 ‘남녀 간 기회의 평등’에 방점을 두는 만큼, 젠더평등에 관한 협소한 관점을 내비친다고 비판하였다.
여기서 남녀 간의 ‘기회의 평등’은 여성에게 노동시장 참여가 가능하도록 기회를 제공한 후 나타나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결과적 평등이나 형평성(equity)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여성 직원보다 남성 직원이 해외파견 근무를 더 많이 신청하거나 초과 노동을 감수하는 등 더 높은 성취를 보이면서 나타나는 승진이나 직업적 전망, 또는 연봉 등에서의 불평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그래서 사라세노(Saraceno)는 유급노동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투자정책에서도, 고학력 중산층 여성은 저학력 노동계급 여성보다 전문직으로서 직업적 전망이 있지만 주 양육자로서의 돌봄 책무를 피하기 어려운 만큼, 동등한 학력의 동년배 남성에 비한 불리한 위치는 불변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4)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사회투자정책으로 거론되는 아동발달지원계좌와 같은 자산형성 프로그램도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저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당장의 빈곤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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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인 성공회대 강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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