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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을까
독일 나치의 Aktion T4 작전 ②
등록일 [ 2019년11월19일 10시51분 ]

우생학, 미국에서 중흥기를 맞다

 

우생학은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자금을 많이 확보하지 못하여 독일을 제외한 서유럽에서는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 켈로그(Will Kellogg, 1860~1951)와 같은 거부들에게 자금을 조달받아 사회 전반으로 상당히 빠르게 퍼져나갔다. 우생학 소사이어티, 콘퍼런스, 연구기관들이 설립되었고, 과학논문들이 출판되었으며 각 대학에는 우생학부와 학과들이 세워졌다.


제2차 국제우생학대회 로고 ⓒWikiCommons
 

이러한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우생학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반적으로 1900년 멘델 법칙의 재발견은 유전 형질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으며, 유전학자들과 사회개혁가들에 의해 우생학이 대중적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20세기 초반의 많은 미국인들은 혈통과 유전 형질이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으며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회적 위계질서를 결정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미국인들에게 우생학 사상은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까지 발전했다.

 

버지니아주는 유전적으로 열등한 아동의 출산을 막는다는 핑계로 간질환자, 정신박약자, 저능아 등에 대해 강제 불임수술을 실시하는 단종법을 1924년 제정해 시행했다. 1974년 이 법이 공식 폐지되기까지 50여 년간 강제 불임수술로 8,300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법의 첫 피해자는 캐리 벅(Carrie Buck)이란 여성이었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가 ‘정신박약자’여서 린치버그에 있는 ‘간질환자·정신박약자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캐리 벅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17살 때 임신을 하게 된다. 그녀는 조카에게 성폭행당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양부모는 그녀를 어머니가 있는 수용소로 보냈고, 그녀가 출산한 아이조차 빼앗았다. 수용소 측은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에 따라 그녀에게 불임수술을 시도했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으로 옮겨갔다.

 

이 소송은 벅과 수용소장인 존 벨의 이름을 딴 ‘벅 대(對) 벨(Buck v. Bell)’ 소송으로 불렸다. 이 사건을 추적한 학자들은 애초부터 수용소 측이 단종법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의도로 이를 법정 소송으로 비화시켰다고 말한다. 왜 이런 주장이 나왔을까.

 

캐리 벅의 국선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어빙 화이트헤드 변호사는 단종법 찬성자로 간질환자 수용소장을 지냈고 수용소 측 변호사와 친구인 점 등으로 볼 때 한마디로 ‘짜고 치는’ 재판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미 대법원은 1927년 “3대에 걸쳐 저능아라면 충분하다”며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이 다수의 안전과 복지를 추구한다는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결국 캐리 벅은 버지니아주 단종법의 첫 희생자가 된다.

 

벅의 불임수술을 허용한 대법원판결 이후 미국 33개 주에서 단종법이 시행되어 1970년대까지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수가 6만 5천여 명이 넘는다. 2차 대전 종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이 미국의 유전학 프로그램과 ‘벅 대 벨’ 소송을 인용하며 자신들의 유대인 학살정책을 변명할 정도였다. 유럽에서 시작된 우생학이 미국으로 건너가 중흥기를 맞았고 이러한 영향이 다시 독일로 돌아온 것이다.

 

우생학,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은 어떨까. 2005년 가을 즈음, 평소 친하게 지냈던 고향 교회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잘 지내죠. 형, 고민도 있고 상의 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어요. 양수 검사를 했는데 아이에게서 다운증후군이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태어나 청천벽력(靑天霹靂)이라는 말을 이렇게 실감 나게 경험했던 순간도 없었다. 도대체 후배에게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한참을 침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건넸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오래 못 사는 건 알지. 아이가 자라는 중에 또 다른 질병이 없고 잘 보살피면 50살까지는 산다고 하더라. 어쩌면 아이를 먼저 보낼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냐.”

 

또다시 한참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수화기 너머 후배의 답이 돌아왔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낳아 키워야지요.”

 

나도 이내 후배에게 한마디 더 건넸다.

 

“그래, 그러면 됐지. 아프지 않게 잘 키워.”

 

나는 우생학이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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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typology@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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