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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시민단체, ‘성북 네모녀’ 죽음 추모하며 시민분향소 차려
빈곤문제 해결 미루는 정부에 책임 물으며 ‘복지 제도 개선’ 촉구
“위기 가구 발굴만 하면 뭐하나… 받을 수 있는 공적 지원 없어”
등록일 [ 2019년11월21일 16시02분 ]

성북구 시민사회단체는 ‘성북 네모녀 추모위원회’를 구성하고 21일, 한성대입구역 2번 출구 앞 성북천 분수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했다. 시민분향소에 마련된 ‘성북 네모녀’ 위패 앞에 향로와 하얀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 강혜민


영정사진 없이 위패만이 놓였다. 위패에는 ‘성북구 네모녀’라고 쓰여 있다. 네 사람의 혼이 하나의 좁은 위패 안에 갇혔다. 그 앞에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국화를 올리고, 묵념을 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뭇사람들이 가난으로 죽어간 성북구 네 모녀의 명복을 빌었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 2번 출구 앞, 성북천 분수 광장에 시민분향소가 차려졌다.

 

지난 2일, 성북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70대 노모와 40대 세 딸이 받았던 복지는 노모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유일했다. 셋째딸은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고, 첫째 딸도 이를 도와 함께 일했으나 올해 7월부터 이들은 건강보험료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건보료 6개월 이상 체납 정보만 수집하기에 이들은 정보망에 잡히지 않았다. 이들 우편함에는 신용정보회사 등에서 온 채무 독촉장이 꽂혀 있었다.

 

이들은 빈곤층은 아니었으나 갑작스러운 경제적 위기에 빠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닥친 경제 위기 속에서 이들은 어떠한 복지도 받지 못하고 죽은 뒤 한참 후에야 도시가스 검침원의 신고로 발견됐다. 시민사회단체는 턱없이 높고 좁은 복지의 문턱, 신청주의  복지제도가 이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다고 분노했다. 게다가 이들 시신을 인수할 유가족도 없어 서울시 공영장례조례에 따라 무연고자 장례를 치르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민사회단체는 이들이 살았던 성북동에 단 하루만이라도 시민분향소를 차리고 쓸쓸히 죽어간 네 모녀의 죽음을 추모하기로 했다.

 

‘성북 네모녀 추모위원회’가 21일 오전 11시, 시민분향소 앞에서 복지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성북시민사회연석회의, 성북나눔의집 등은 ‘성북 네모녀 추모위원회’를 구성하고 21일 오전 11시 복지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시민분향소 앞에서 열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최돈순 성북나눔의집 원장신부는 “국민들이 복지제도 개선을 촉구하면 정부는 ‘다음에 하자, 기다리라’고만 한다. 이렇게 더는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나”면서 “우리는 ‘기다려달라, 나중에 하겠다’는 이야기를 이제까지 무수히 들었다. 세월호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할 때도 들었던 말이 기다리라는 말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연이은 빈곤층 사망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위기가구 발굴’에 대해 비판하며 발굴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적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활동가는 “송파 세 모녀 죽음 이후 이러한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그때마다 정부와 지자체의 반응은 같았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정부는 이들이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아서, 나이가 몇 세를 넘지 않아서, 등록된 장애를 갖지 않아서 등 각종 이유를 대며 위기가구로 발굴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고선 발굴 대상에 추가하겠다며 가난한 이들의 개인정보를 더 모으겠다고 한다”면서 “그래서 발굴한 사람들한테 정부와 지자체는 무엇을 줄 수 있나? 이들이 죽기 전 발굴되었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어 “1, 2, 3, 4, 5차 조사에서 계속해서 위기층이라고 발견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공적 지원으로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김치 한 박스 갖다주고 끝이다”면서 “언제까지 이런 바보 같은 실패만 반복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따라서 빈곤가구들이 복지제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복지 문턱을 낮춰야 한다며, 그 첫 번째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라고 강조했다. 현재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청와대 앞에서 오늘로 36일째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윤 활동가는 “대통령도 공약하고 복지부 장관도 약속했음에도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2023년까지 생계급여에서만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했는데, 그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단계적으로 죽어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정치권이 이 문제에 공감한다면 제도의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이 시급히 수급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예휘 정의당 부대표는 “성북 네 모녀는 결국 자택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회가 더 먼저 발견했어야 할 것은 그들의 생활고였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박 부대표는 “가계부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소득이 적을수록 주거비 등 각종 필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클 수밖에 없다. 노동해서도 삶이 충당되지 않으니 대출을 받고 그로 인해 독촉당하며 살아야 한다”면서 “빈곤은 사회가 책임져야 함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가난을 마치 없는 것처럼 단칸방 안에 치워버리고 숨기고 있다”고 질타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성북갑)은 “기획재정부 상임위에서 성북동 네 모녀 사태를 이야기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재정 지출 제도 개선 방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부총리에게 촉구했다”면서 “사태가 일어난 후에야 수습하려고 하면 이미 때는 늦었다. 보편적 형태로 복지제도를 선진화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찾아가는 방식으로 제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난으로 세상을 떠난 ‘성북 네모녀’를 추모하는 시민들. 사진 강혜민
 

이날 추모위원회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이후 정부가 전국 일제조사를 실시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개정과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으나 빈곤층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수는 여전히 3%대에 머무르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대출에 의존해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자영업자의 상황은 성북 네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의 씨앗이 된다”고 알렸다. 

 

따라서 이들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불안정한 영세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의 급작스러운 위험을 보완할 수 있는 복지제도 마련 등을 요구하면서 “공공적 복지, 보편적 복지, 예방적 복지 3가지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복지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추모위원회는 21일 저녁 7시에는 추모제를 열고, 밤 9시까지 시민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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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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