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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11월, 길에서 죽다
[나눔과 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1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19년12월12일 11시37분 ]

생전에 가족처럼 고인을 돌보던 지인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서 헌화하고 있습니다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달 11월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딸과 헤어져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 홀로 세상과 이별한 아빠, 사춘기 때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가출한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 이복여동생, 평생을 한 방에서 함께 지내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임대료 걱정이 앞선 노모(老母) 등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또 다른 아픈 사연들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길에서 죽고, 굶어 죽는 무연고 사망자의 비참한 현실 앞에 겨울이 한 발짝 더 들어왔습니다.

 

가족 대신 가족이 되어준 지인

 

11월 초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ㄱ 님은 50대 초반의 여성으로 지난 10월 중순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연고자인 오빠는 동생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구구절절한 이유를 시신위임서에 써내려갔습니다.

 

“동생과 못 본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시고, 남동생은 중학교 2학년 때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연락두절 상태입니다. 제가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동생의 장례를 치를 수 없습니다.”

 

ㄱ 님의 무연고 장례식에는 한 지인분이 참석했습니다. ㄱ 님과는 서울역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지인분은 한 여성이 사람들에게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도움을 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했습니다. 당뇨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ㄱ 님을 병원에 데려가고, 사는 곳도 일정치 않아 고시원을 알아봐 주었고, 기초생활수급비를 대신 관리해 주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마치 아버지와 딸처럼 매일 전화를 하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병이 깊어지면서 걱정하는 마음이 커졌고, 열흘에 한 번씩 찾아가던 고시원에서 사망한 ㄱ 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인분은 “병원에 입원했더라면 더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이른 나이에 세상과 이별한 ㄱ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연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인분은 ㄱ님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지만 공영장례 안내를 받고 장례에 참석해 고인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쪽방촌에서 살다 생을 마감한 저소득 시민 장례(서울시 공영장례)에 참석한 어머니와 쪽방촌 주민들
 

가난이 죄, 평생을 쪽방촌에서 살다

 

11월 초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에 서울시의 한 쪽방촌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동네에 사시던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연고자로 어머님이 계시지만 여러 이유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급한 사정을 듣고 저소득시민 장례 지원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해당 지자체에 연락을 해 긴급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장례지원에 관련된 서류를 요청했습니다. 서류가 갖춰지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고, 사망한 지 6일 만에 저소득시민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고인이신 ㄴ 님은 40대 중후반의 남성분으로 장애가 있었고, 함께 살던 어머니 역시 장애인이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어렵게 살다 지난 10월 말 거주하던 쪽방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평생을 쪽방에서 살았습니다.

 

생전에 술 한 잔 같이 마셨던 쪽방촌 주민들은 장례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치러질지 몰랐던 아들의 장례를 기다렸던 어머니는 처연한 표정으로 빈소에 앉아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생전에 아들이 밖에서 얻어온 음식을 함께 먹고, 아들과 함께 잠을 자던 쪽방에 이젠 혼자 살아야 한다며 어머니는 이제 혼자서 부담해야만 하는 방세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평생 가난하게만 살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가 끝나면 혼자 사는 게 더 걱정스럽습니다.

 

딸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아빠

 

11월 말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ㄹ 님은 60대 중반에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지인분은 ㄹ 님이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인터넷언론사를 차렸고, 다른 언론사에 칼럼을 기고할 만큼 글재주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언론사의 운영이 어려워졌고, 이후에는 택시기사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ㄹ 님은 젊었을 때 재외교포 한 여성분과 사랑을 했고, 딸을 낳았지만 처가의 결혼 반대로 혼인신고도 하지 못했고, 함께 살지도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은 딸을 데리고 본국으로 떠났고, 죽는 날까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ㄹ 님에게 가족력이었던 암이 발병했고, 지인분은 치료를 제대로 받으라고 했지만 ㄹ 님은 자신은 암으로 죽지 않을 거라며 굳은 마음을 갖고 택시운전을 하다가 어느 날부턴가 피를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지인분은 끝내 ㄹ 님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ㄹ 님은 출생신고도 못한 어린 딸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딸의 소식을 끝내 들을 수 없었고, 딸에게까지 아버지의 사망소식은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지인분은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무연고 사망자의 친구 및 동거인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의 언론보도를 접했다며, 하루속히 지침이 마련이 되어 친구의 유골을 찾아 자연장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어릴 적 가출했던 배다른 형제의 장례

 

60대 중반에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 ㄷ 님의 장례에 형제분들이 참석했습니다. 본인을 배다른 형제라고 밝힌 여동생에게 고인은 머리가 좋고 똑똑한 오빠였습니다. ㄷ 님이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재혼을 했습니다. 한창 사춘기로 방황할 때 만난 새어머니는 ㄷ 님에겐 충격적인 존재였고, 새로 꾸려진 가정에 적응하지 못한 ㄷ 님은 이내 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곱 살 아래의 여동생은 어렸을 때 학교로 찾아온 오빠가 반가웠다고 했습니다. 보고 싶어서 왔다는 오빠의 말에 동생은 기뻤지만 어머니와의 갈등을 알고 있었기에 무거운 마음이었습니다.

 

이후 성인이 된 오빠는 입대 전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오른쪽 손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심리적인 고통이 심한 와중에 몇 달 뒤에는 교통사고까지 당했습니다.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은 아마도 충동적으로 자살 시도를 한 것 같다는 추측을 했고, 그 사고로 오빠는 다리까지 절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든 후 오빠는 영구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보증을 부탁하러 가족들을 찾아왔지만 부담을 느낀 부모님은 오빠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살면서 가족들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하고 폐 끼치는 것을 싫어했던 오빠였기에 여동생은 그때의 기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평생 힘들게 살다 세상을 떠난 오빠를 생각하며 여동생은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픈 가정사로 만나지 못했던 이복형제의 장례에 참석한 여동생

객사, 아사

 

11월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의 사연들을 살펴보니 유독 눈에 띄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집이 아닌 길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기술하자면 공원벤치, 지하철역 출구, 교각 밑, 주차장 구석진 곳 등의 장소였고, 특히 돌아가신 분들은 모두 50대였습니다. 가족들과 단절된 지 오래되었고, 거주지도 불분명하여 마지막 주소지도 먼 지방이거나 고시원 등이었습니다. 안정된 거주지 없이 떠돌다 잠시 몸을 뉘었다 깨어나지 못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고,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해 무연고 사망자로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11월에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북모자의 장례도 있었습니다. 지난 6월에 공문을 받았지만 장례를 치르기까지 무려 5개월이 걸렸습니다. 힘들게 살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고립되어 아사(餓死)했다는 사연은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습니다. 연고자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사망 후 무연고 사망자로 안타까운 생애를 마감하는 탈북민들의 사연은 이전에도 자주 뉴스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의 발표대로 동거인, 친구 등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연고자의 기준, 장례처리, 행정절차 등을 명확히 하는 무연고 사망자 사후관리 체계가 하루빨리 정비되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점점 줄어들길 바랍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 11월 저소득 시민
 

정용성, 이덕익

 

- 11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배영필, 문평희, 태철주, 김경미, 최영성, 모우, 방인규, 홍해성, 길석현, 이종록, 이영호, 김종식, 김성태, 윤영선, 정구연, 김영철, 윤철호, 강병옥, 김화자, 최영근, 김재옥, 김유진, 김홍성

 

- 11월 무연고 사망자
 

김선자, 이기갑, 권기종, 송기산, 이춘애, 김철, 김동열, 이윤상, 김상철, 정종석, 김금열, 윤진열, 김순택, 김기덕, 이재윤, 이승열, 천재호, 강송미, 한성옥, 김동진, 박계성, 채희홍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마흔일곱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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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활동가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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