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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장애인도 동네에서 보내고 싶다
‘탈시설지원법’ 제정 촉구 릴레이 기고 ④
등록일 [ 2019년12월24일 16시10분 ]

“시설에 온 지 저도 20년 넘었는데요.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손님이 많이 와요. 와서 방마다 보러 다니고 그러는데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취급해요. 교회에서 온 사람들은 선물 나눠주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가고요. 큰 회사 같은 데서 온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날 와서 우리랑 담소를 나누다가 갈 때가 되면 꼭 우리 모아 놓고 사진을 찍어요. 봉사하러 온 게 아니라 우리는 이런 일을 했다 선전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아요.” _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석암비대위) 김동림

 

“솔직히 크리스마스 되면 괴로울 때가 많아요. 손님들이 와가지고 갖은 얘기 하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우리보고 불쌍하다고 울고, 측은해서 울고... 우리를 아주 불쌍하게 보고, 그런 거예요. 근데 솔직히 그런 사람들 보는 우리가 더 괴로워.” _ 석암비대위 하상윤

 

- 2008년 12월 24일 ‘시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이야기’ 촛불문화제 중 (참세상 기사 인용)


2008년 크리스마스였다. 서울시청 광장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만들어지고, 석암 베데스다요양원의 장애인들은 ‘장애인도 크리스마스를 동네에서 보내고 싶다’는 플래카드를 걸고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시청광장에 설치된 아이스링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탔고, 칼바람 속에서 ‘우리도 당신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갖고 싶다’고 목놓아 외쳤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가 봉사와 동정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날이었다고 증언했던 그때로부터 지금, 세상은 달라졌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인거주시설에는 여전히 3만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장애인야학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사진 강혜민

 

2009년 ‘마로니에 8인’으로 불리는, 당시 석암 베데스다요양원에서 시설을 박차고 나온 이들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을 갖고 싶어서 시설을 박차고 나온 이들은, 서울시에 ‘탈시설-자립생활권리’를 요구했고, 질긴 투쟁 끝에 서울시의 탈시설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정책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시·도 정부 차원의 탈시설정책들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전국의 탈시설정책 시행 10년의 노하우가 모여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윤소하 의원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정치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전남의 한 시설에서 서울로 탈시설을 결행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꽃님’이라고 불리길 바랐다. 주변 사람들은 최중증장애인인 그녀에게 ‘시설에서 나가면 위험해서 당장 죽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자립한 지 15년이 지난 2019년의 크리스마스도 서울 강서구 자신의 아파트에서, 혹은 그녀가 다니는 장애인야학에서 친구들과 잘 보내게 될 것이다. 최근 일부 학자들은 탈시설을 이야기하면서도 ‘중증장애인은 그래도 결국 시설에 있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전문요양기관, 집중치료시설’을 설립하여 종합점수 기능제한(X1)영역에서 240점 이상인 경우 시설입소대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학자들에게 꽃님을 소개하고 싶다. 학자들이 말하는 ‘최중증 장애인=240점 이상’의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거주시설이 아니라, 당신의 옆집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인간 모두가 가진 본연의 삶을 찾아줄 수 있도록 복지를 설계하는 것이 당신들의 의무라고 말해주고 싶다.

 

‘종합점수 기능제한 240점’이라는 잣대는 결국 현재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실제 종합점수가 240점이 돼도 그럴 것이고, 안 돼도 되게 만들 것이다. 지금 시설에 거주하는 3만 명의 장애등록과 장애등급이 엉망이라는 것은 소위 복지한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즉, 장애인의 장애정도 때문에 시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시설의 유지가 필요한 사람들 때문에 장애인은 시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공관에 찾아가서 ‘탈시설-자립생활권리’를 요구하는 ‘마로니에 8인’의 모습. 사진 전진호

 

2002년, 경기도의 한 미신고시설에서 불이 나서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시설은 ‘미신고시설’이었고, 정부는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했다. 바로 ‘미신고시설 양성화대책’이었다. 미신고시설에 국고보조금을 줄 수 없었던 정부는 복권기금에서 1200억 원을 들여서 미신고시설들을 양성화했다. 그 당시 장애계는 ‘시설화를 중단하고 시설이 아닌 장애인 개인에게 집과 서비스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됐다. 정부는 미신고시설의 문제점은 알지만 ‘옥과 석’을 가릴 능력과 제어장치가 있다면서 염려 말라고 했다. 그러나 복권기금 지원에 혈안이 된 ‘시설운영사업자’들만 양성됐고, 정부의 옥과 석을 가린다는 제어장치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했다. 그때 미신고시설운영자들은 ‘장애인이 갈 곳이 없다, 너희들이 장애인 데리고 일주일만 살아봐라’며 언성을 높이곤 했다.

 

최근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가 주관한 토론회장에서도 ‘장애인을 데리고 일주일만 살아봐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말에 박수갈채를 보낸 사람들이 있다. 낯이 뜨거워진다. 장애인을 대놓고 대상화하고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한지도, 무엇에 박수를 보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복지를 한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것이 우리나라 거주시설의 대표조직이 만든 토론회장이었다는 것이 더욱더 낯부끄럽다.


20대 국회는 정치싸움으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뿐 아니라 다수의 장애 관련 법안들을 검토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탈시설로드맵을 수립하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침묵하고 있다. 또한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5에서 적극적인 탈시설 정책을 이행하라고 했지만 이러한 국제규약도 무시하고 있다. 3만 명의 장애인에게 ‘그저 평범한 그 나이 때의 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장애인도 크리스마스를 동네에서 보내고 싶다”던 12년 전의 외침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제발 이 목소리 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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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footact0420@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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