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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어떻게 ‘잘’ 지원할 수 있을까?
‘주택 마련’이 가장 어려워, ‘주택·지역 선택권’부터 자립의 시작
충현복지관, 지역사회 발달장애인 대상으로 지원주택 시범사업 시행
등록일 [ 2019년12월26일 15시08분 ]

[편집자 주] 지난 2일,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장애인 지원주택을 선보였습니다. 지원주택은 기존에 공공에서 주택만 제공하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공임대주택에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새로운 주거모델입니다. 지원주택으로 장애계는 최중증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실제 이번 서울시 지원주택으로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향유의집에 있던 장애인 32명이 탈시설했습니다. 2009년 같은 시설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문제를 고발한 ‘마로니에 8인’의 투쟁으로 탈시설 제도의 초석을 놓은 지 10년만입니다.

 

비마이너는 두 차례에 걸쳐 서울시 지원주택 제도를 살펴봅니다. 탈시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주택 제도를 점검하고, 나아가 지역사회에 사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충현복지관 지원주택 시범사업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물리적 주거 제공을 넘어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논의하고자 합니다.

 

① ‘주거+맞춤형 서비스=지원주택’, 장애인자립생활의 새 모델 될까?
②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어떻게 ‘잘’ 지원할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이 주거코치와 함께 화분에 나무를 심고 있는 모습. 사진 충현복지관
 

“80세가 넘은 노모가 어느 날 40대 발달장애인 딸의 자립 상담을 하러 오셨어요. 그런데 자립상담을 하겠다는 말을 들은 남편이 ‘돌보는 게 귀찮아서 그러느냐?’고 힐난하는 말을 해서 무척 속상하다고 하시며 우시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발달장애인의 돌봄이 가정에서 이뤄져야 하고, 의무라는 생각이 여전히 강합니다.” (이선영 충현복지관 자립생활 팀장)
 
2018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거주시설 장애인은 3만 693명으로, 그중 발달장애인은 2만 3,971명이다. 전체 발달장애인 23만 3,620명(2018 보건복지부 장애인현황) 중 10%가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90%의 발달장애인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발달장애인 돌봄의 대부분은 부모들의 몫으로 맡겨져 있고,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거주시설에 강제로 보내진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에 관한 논의는 탈시설의 흐름 속에서 최근에서야 시작됐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모델과 환경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는데, 그중 하나가 지원주택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부모연대 서울지부의 삭발농성을 계기로 지원주택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충현복지관은 지난 2017년부터 ‘서울시 지원주택 주거서비스’ 시범사업을 시행했고, 내년부터는 본 사업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충현복지관은 주거매니저와 주거코치가 업무를 나눠 주거지원을 하고 있다. 사진 충현복지관

-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자연스러운 독립 지원 어떻게 이뤄지나

 

지원주택은 저소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공급한 공공임대주택에 주거상담, 일상생활관리, 의료지원, 심리정서치료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결합한 주거모델이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2일 전국 최초로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에서 탈시설한 장애인 32명에게 24호의 지원주택을 공급했다. 그러나 충현복지관의 시범사업은 서울시 지원주택처럼 공공임대주택 제공은 제외하고, 복지서비스 제공만을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다.

 

충현복지관이 진행한 시범사업 모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집을 가진 경우(자가형 지원주택), 두 번째는 갑작스러운 자립생활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기 위한 경우(체험형 지원주택)이다.

 

‘자가형 지원주택’의 경우, 발달장애인이 직접 전세 계약을 맺고 그 안에서 복지서비스를 받는 형태다. 여기에는 상주 인력 없이 주거매니저와 주거코치로 업무 영역을 나눠 서비스지원이 이뤄진다. 발달장애인은 낮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활동지원사와 이동하고, 거주지에서는 2~3일에 한 번씩 주거코치와 함께 장보기와 빨래 등을 한다. 주거매니저는 활동지원사와 주거코치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이들이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계한다. 독립생활을 원하는 발달장애인의 주거지 계약을 조력하는 것도 주거매니저의 역할이다. 자가형 지원주택은 강남구와 양천구에 집중돼 있고, 이 밖에도 강동구와 서대문구에 분포되어 있다. 1~3명씩 함께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충현복지관에서는 1인 가정(24곳), 2인 가정(5곳), 3인 가정(2곳)의 서비스 지원을 하고 있다.

 

충현복지관은 원활한 자립생활을 위해 ‘체험형 지원주택’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가 제공한 체험형 지원주택 4채(양천구 소재)에는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살아볼 수 있다. 참가자들은 6개월~12개월간 직접 자립생활을 해보고 이후 독립을 결정한다. 2017년부터 21명이 참가했고, 그중 8명이 실제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체험형 지원주택에는 1명의 주거매니저와 3명의 주거코치가 배치되어 있다. 상주 인력이 있어 흡사 그룹홈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지만, 개인별 활동지원사 이용이 가능해 자유롭게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다.

 

- 원가정에서의 생활, 발달장애인의 능력 오히려 제한할 가능성 제기돼

 

시범사업 기간 동안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었고, 그에 따라 자긍심도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는 제가 김치볶음밥밖에 못 했어요. 진짜, 한 단계씩 올라가니까. 점점 그 된장찌개도 못 끓였거든요. 된장찌개도 못 끓였는데 선생님이 한번 해준 적이 있어요. 그거 보고 그냥…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다음 주 남자친구 미역국 끓여놔야 되네. 참치 미역국, 그거 진짜 맛있어요. 소고기 안 넣어도 돼요.” (충현복지관 지원주택 시범사업 참가자 발달장애인 ㄱ 씨의 인터뷰, 정소연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지역사회 독립 거주 발달장애인을 위한 생활지원서비스 운영 모델 개발’ 중 인용)

 

충현복지관 자가형 지원주택을 통해 자립생활을 시작한 발달장애인들은 ㄱ 씨처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자립생활 이후 한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립한 발달장애인들은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난 것을 가장 좋은 점으로 여기고 있었다.

 

정소연 교수의 ‘지역사회 독립 거주 발달장애인을 위한 생활지원서비스 운영 모델 개발’에 담긴 당사자 인터뷰 내용. 통제와 간섭에서 벗어난 사실에 만족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같은 자료 캡처
 

함께 사는 동료끼리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최한숙 씨는 “(아들이) 주거코치가 하는 걸 보고서 스스로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하고 싶어하게 됐다”며 “세 명이 함께 살면서 동료끼리 주고받는 말에서 더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고, 집안일에 대해서 의무감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충현복지관 강다영 주거매니저는 “과거 참가자들은 청소는 물론 라면을 끓이거나 설거지조차 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아 쓰레기가 있어도 치우지 않았다”며 “그러나 혼자 살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쓰레기를 치우거나 여러 집안일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가정에서 생활하는 게 어쩌면 발달장애인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주택과 지역 선택권이 발달장애인 자립의 열쇠

 

시범사업을 거치는 동안 발생한 문제를 짚어보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강다영 주거매니저는 “시범사업인 만큼 ‘복지서비스 제공’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잡혀져 있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주거코치와 활동지원사의 스케줄과 역할을 정하는 일이 어려웠다”며 “특히 서비스중개기관이 따로 있는 활동지원사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체계상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분절된 공공서비스를 하나하나 연계해야 하는 일과 행정복지센터의 이해 부족, 복지서비스 신청주의 등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점은 주택 마련이다. 충현복지관 지원주택 시범사업 참여자들은 대부분 65세 이상 고령의 발달장애인으로 무연고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다. 그러다 보니 주택 마련과 계약부터 주거매니저의 역할이 시작된다.

 

강 주거매니저는 “자립생활과 동시에 전세임대주택에 선정된다고 해도 최대 8,000만 원까지밖에 지원되지 않아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 어렵다”며 “구한다고 해도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집주인이 LH와의 계약이라고 계약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겨우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입주인이 장애인이라며 계약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무연고자가 아닌 경우에도 주택 마련은 가장 어려운 점이다. 현재 30대 발달장애인 3명이 함께 사는 강동구의 ‘자가형 지원주택’의 경우 가족이 주거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강동구 자가형 지원지택에 입주한 이동희 씨의 어머니 최한숙 씨는 “전세자금대출은 최대 9,000만 원밖에 대출할 수 없는데 그마저도 셋이서 한 명씩 9,000만 원이 아니라 따로 살아야만 그만큼 대출이 가능했다”며 “결국 집을 담보로 전세자금을 마련해 겨우 주택을 마련했다”고 털어놨다.

 

발달장애인과 주거매니저가 부동산에서 주택 계약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충현복지관
 

주택 마련 문제는 발달장애인의 주거선택권과 지역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은 자신이 태어나 살아왔던 익숙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선영 충현복지관 주거생활지원센터 팀장은 “발달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발달장애인은 낯선 환경에서 새 삶을 조직하는 것이 더욱 오래 걸리고 어려울 수 있다”며 “나고 자랐던 지역에서 산다면 ‘누구누구의 아들, 딸’이 되지만, 낯선 지역에서는 그저 ‘장애인’으로만 각인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현재 강남구, 양천구, 강동구, 서대문구 등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만 제공되는 지원주택 모델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미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과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발달장애인에게도 지원주택과 같은 개인별 서비스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체험형 지원주택을 권역별로 두어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발달장애인은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주거지원,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에 초점 맞춰 이뤄져야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의 경우, ‘낮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구성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체험형 지원주택에서 자립생활을 포기한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주말의 무료함을 참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현복지관의 경우, 복지관 내에서 고령 발달장애인을 위한 낮 시간 프로그램을 운영하나 주말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합복지관에는 고령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없는 경우가 많고, 주말 프로그램 또한 부재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반면, 복지관 프로그램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연계할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1일 열린 ‘충현복지관 시범사업 평가보고회’에서 서혜미 하상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은 “복지관 내 프로그램을 만들어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것은 어쩌면 지역사회와의 분리를 더욱 심각하게 초래할 수 있다”며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내 다양한 시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자리에서 김소영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의 주거지원은 물리적 거주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 지역사회 주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이 살아가던 지역에서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 마련이 현 시점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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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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