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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로 이곳에서, 연립의 장애학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지음, 오월의봄
등록일 [ 2019년12월27일 15시21분 ]

김도현은 활동가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를 사회적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연구하려는 모든 사람의 이론가이기도 하다. 장애를 사회적 관점에서 다룬 글의 참고문헌 목록에는 빠짐없이, 김도현이 12년 전 쓴 책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대 중반 ‘장애학’이라고 분류되는 학문을 전공했거나 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 나 역시 김도현이 개설한 싸이월드 클럽에서 (그가 번역까지 해둔) 마르타 러셀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 장애이론가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장애학의 도전』 표지, 김도현 지음, 오월의봄
 

『장애학의 도전』은 김도현이, 그러니까 한국의 장애학이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의 강고한 차별과 (구조적) 억압에 도전하며 제기하고, 제기 받아왔던 논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손상과 장애는 어떻게 구별되는지, 장애가 어째서 손상 때문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지에 관한 이 논의는 장애학이라는 학문의 기본 테제이면서 한국 장애인운동의 폭발적 성장이 견인했고 또 그 성장을 견인해왔다. 이 책의 2장은 장애를 사회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입문 역할을 한다.

 

과거 장애인을 학살하고 장애인들의 재생산을 강제로 금지했던 우생학의 그림자는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3장,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근거로 전개되는 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이 장애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결론으로 이어질 때, 동물과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가를 묻는 4장,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둘러싸고 이어진 한국 사회의 꽤 오랜 논쟁과 대립을 점검하면서 다양한 정체성을 횡단하고 연결시키는 정치란 무엇인지를 묻는 6장 등,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장애를 둘러싼 뜨거운 쟁점들이 다뤄진다. 이 모든 논의에서 김도현은 근대 자유주의적, 이성중심주의적 주체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른 인간은 물론 다른 동물을 포함하는 타존재자와 연결되고, 여러 정체성을 횡적으로 가로지르고자 하는 현대 사회 이론의 입장을 현실의 장애인운동과 접속시킨다. 

 

『장애학의 도전』이 제시하는 마지막 도전은 ‘공공시민노동 체제’다. 김도현의 장애학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그리고 특정한 이념적 힘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지는 노동 개념에 근본적으로 도전한다. 일정 이상의 급여가 보장되는 공적 일자리를 시민들이 직접 신청하고, 이를 시민들이 심사, 인정하는 구체적인 제도를 제안한다. 중증장애인도 이 체제하에서는 노동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노동할 수 없는 자’가 곧 장애인이었던 근대 장애인 개념을 해체하는 마지막 도전이 노동에 있어야 한다는 점은 이 책에 따르면 명확하다.

 

관련하여 공공시민노동 체제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인간의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머지않아 소멸할 것으로 보이는 이 격변의 시대에 (장애인을 비롯해) 모든 시민은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하는지, 기본소득제도보다 공공시민노동 체제가 더 긴요하다면 왜 그런지 등에 대해 독자는 추가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 책이 제시한 (장애학/장애인운동의) 도전의 역사를 살펴본 독자라면, 미래를 향해 새롭게 제기된 도전이 결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애학은 자기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만 있다면 스스로 휠체어를 밀고 적당한 경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특정 장애인들만을 상정하지 않는다. 장애학은 누군가에게 신체적, 재정적,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일이 불가피한 중증신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빈곤한 장애인 대중 일반을 고려한다. 이 모든 존재자의 삶의 방식과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김도현의 장애학은 독립, 독자성, 자율성이 아닌, 의존과 연립(聯立)의 존재론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장은 그가 오랜 활동 경력 속에서 여러 장애 정도와 유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들뢰즈와 스피노자를 깊이 연구했던 연구공동체 ‘수유너머’가 노들야학과 접속했다는 사실도 그 배경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나는 그가 ‘주체로서 마침내 등장한 장애인들 사이에 존재했던 비장애인’이라는 사실도 언급하고 싶다.

 

당사자주의는 장애인의 문제를 장애인만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일부 타당하겠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자신의 정체성에 지나치게 고정된 이들은 변방의 자리에서 더 먼 곳을 조망하더라도, 자신의 곁은 시야의 사각지대로 남겨두기 마련이다. 장애인 ‘당사자’인지 아닌지는 그래서 항상 중요하지는 않다(일단 누가 ‘당사자’인가?). 장애인이 그저 정치적 목표의 수단이나 들러리가 아니었던 장소에서 활동해왔기에, 김도현은 자신의 ‘성찰된 비장애성’을  연립 존재론의 토대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비마이너 출범부터 함께 했지만 1년에 글 두 개 쓰는 게으른 칼럼니스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을 썼다. 법, 장애, 예술에 관심을 두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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