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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의 장례식, 서울시 공영장례 시행 후 남은 고민들
[2019 결산 인터뷰]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하는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
민간과 공공의 경계에서 ‘진정한 애도’ 고민, 법 개정 없이는 무연고자 장례 여전히 어려워
등록일 [ 2019년12월31일 10시51분 ]

지난 24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의 배경은 서울시 공영장례 ‘그리다’가 시작되면서 마련된 전용 빈소. 사진 이가연

 

‘나눔과나눔’은 서울 지역의 기초생활수급자 및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비영리민간단체이다. 2011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위한 장례지원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를 지원했다. 이들은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지 않는 장례를 대신 지원하는 한편,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2018년 9월 23일, 마침내 조례가 시행되면서 서울시 공영장례 사업 ‘그리다’가 시작되었다. 현재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공영장례가 잘 이뤄지도록 서울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2019년 3월 4일부터는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비마이너는 지난 24일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를 만나 서울시 공영장례가 시행된 지 1년이 넘은 지금, 공영장례와 상담센터 업무를 하며 느꼈던 고민과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더불어 올 한해 빈곤과 생활고에 의한 죽음이 잇따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이러한 ‘사회적 죽음’과 장례 이후 남은 문제들을 점검해본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어김없이 무연고자 공영장례가 있었다.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시립승화원에 도착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무연고자의 장례가 어디서 치러지냐고 물었다. “무연고자요?” 처음 들어본 단어인 것처럼 낯설어하는 그에게 두 분의 성함을 알려드렸다. 윤○○, 박○○. 두 사람은 서울에 있는 서로 다른 병원에서 질환으로 돌아가셨지만, 형제·자녀가 시신인수를 거부하여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그들의 이름을 확인한 직원은 1,2번 화장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사람들’은 저기서 화장을 해요.” 화장장 근처로 다가가자, 검은 옷을 입은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와 포천에서 온 한 젊은 신부가 나란히 서있었다. 

 

두 고인을 화장장으로 인도하고 화구에 모시는 동안,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용 빈소’로 자리를 옮겨 고인들의 죽음을 추모했다. 서울시 공영장례 ‘그리다’가 시작되면서 2018년 5월 9일, 서울시립승화원에 공영장례를 위한 전용 빈소가 마련되었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빈소가 마련되기 전에는 장례 때마다 가족대기실에 임시로 빈소를 만들어야했다”며 “애도할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장례를 마친 뒤, 모두가 떠난 빈소에서 박진옥 상임이사와의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화장이 주로 이뤄지는 1, 2번 화장대. 이날도 고 윤○○, 박○○님을 이곳으로 모셨다. 사진 이가연
 

# 진정한 애도란 무엇인가, 제도와 함께 ‘사회적 분위기’ 만들어가야  

 

- 무연고자 장례를 지원하다 보면 종종 힘든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한숨) 어제 장례는 너무 힘들었어요. 18개월로 추정되는 아이였어요. 한강에서 발견되었는데, 부검해보니 18개월로 추정된 거죠. 영양 상태로는 11개월 정도였어요. 아마 유기된 거겠죠. 저는 이 활동을 하면서 삶의 조각들을 모아 삶을 그려봐요. 그 삶이 어땠을까? 아마 여성 혼자 아이를 키웠을 것 같고, 많이 버거웠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의 영양 상태도 안 좋았겠죠. 요즘에는 12개월, 돌 정도 되면 걸어요. 그런데 그 아이도 제대로 걸었을까요?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갑자기 아이가 죽었을 테고. 엄마가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다 문의를 해야 할지 모르다가 아이를 한강에…(눈물) 

 

이 엄마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어떤 사람은 매정한 엄마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설령 매정한 엄마라고 해도 그 아픔을 어떻게 짊어지고 살겠어요. 사실 저는 장례를 하면서 그런 생각에 더 힘들었어요. 아이를 유기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사회는 여성에게 손가락질하죠. 그런데 만약 그분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면요? 저는 그분들도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센터에 편하게 전화했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아이가 죽으면 어떻게 되죠?’라고 물어보시면, 저희가 장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안내하고 잘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성북 네모녀’ 같은 사건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가끔 들어요. 서울 관악구에서 아사한 탈북 모자에게도 손가락질하죠. ‘애 키우는 여성이 그렇게 생존력이 없어서 어떻게 살아?’ 이렇게 툭툭 던지는 말들이 많아요. 하지만 사람은 특수한 상황에 한 번 내몰리면 그냥 포기해버릴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다거나, 나 혼자 죽으면 깔끔할 것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죠. 그런 상황들을 다 무시하고 우리 사회는 죽음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똑같이 적용해요.

 
- 방금 말씀하신 ‘사회적 죽음’들이 올해에는 특히 더 많이 보도된 것 같아요. 상담·장례 업무를 하시면서 사회적 죽음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체감하셨나요?

그렇죠. ‘성북 네모녀’와 2014년에 있었던 ‘송파 세모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죽음 이후의 장례’라고 생각해요. ‘송파 세모녀’의 장례는 누가 치렀는지 아세요? 전혀 보도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장례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장례를 치러야 하잖아요. 그런데 ‘송파 세모녀’ 사건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이 ‘성북 네모녀’를 위해 추모제를 하죠. 저는 우리 사회가 죽음들을 많이 목격해서라고 봐요. ‘세월호’를 경험했잖아요. 누군가의 죽음이 그 가족만의 아픔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치유하는 사회적인 고민들이 그사이에 축적되었어요. 사회적 애도인 거죠.

 

- 서울시 관악구에서 아사로 돌아가신 탈북 모자의 경우, 장례를 치르기까지 넉 달이나 걸렸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탈북 단체가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그리고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 했어요.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모자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서요. 장례식은 거의 첩보 작전이었어요. 세 번째로 화장을 예약한 끝에 장례를 치렀어요. 분신자살하겠다, 용인할 수 없다면서 부고실의 부고 안내를 내리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탈북 단체들은 시신에 대해 “우리가 상주다”라고 주장했어요.

 

- 그들이 했던 방식이 애도의 한 방법일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우리는 세월호 참사나 고 김용균 씨의 경우 장례를 안 하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유가족이 있었잖아요.(한숨) 고민스러운 지점이 거기였어요. ‘나눔과나눔’은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면서, 탈북 단체에는 ‘가족이 아니니까 안 된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러면서도 모자 두 분이 계속 안치실 냉동고에서 부패되는 걸 지켜보면서 ‘마무리를 빨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신이) 부패한다는 특수성이 있어요. 당시 아이의 시신 상태가 말도 아니었어요. 고인의 존엄함은 어디에 있는지, 고인들이 정말 원했던 건 무엇인지, 아사로 인해 안타깝게 돌아가신 두 분을 잘 보내는 방법이 무엇일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가 만들어져서 형식적으로 절차를 정해놓기는 했지만, 장례에는 법과 제도 안에서만 해결될 수 없는 장례만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도만이 아닌 ‘문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생전에 잘 살았고 못 살았고가 아니라 누구나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잖아요. 우리 사회가 이를 하나의 권리로 인정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직은 멀었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인종분리법이 없어지고 법적으로는 흑인과 백인이 가는 식당을 더는 구분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차별이 존재했고 백인들만 가게 되는 식당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흑인들이 백인들만 가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캠페인을 했죠. 비난을 받으면서도 계속 식당에 가는 행위가 문화를 바꿔 나갔잖아요. ‘나눔과나눔’ 또한 존엄한 삶을 마무리하는 권리 담론을 어떻게 공영장례를 통해 만들어나갈지, 이를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24일,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신부와 신자들이 화장장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나눔과나눔
 

# ‘장례의 본래 의미’ 잃지 않기 위해, 민간과 공공의 영역 사이에서 쌓이는 고민

 

- 2018년 9월 23일,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가 시행되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울시 공영장례를 치르면서 가지게 된 고민이 있으신가요?

 

지금의 소회를 말하자면, (침묵) 과연 ‘잘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눔과나눔’은 2015년 전까지 위안부 할머니와 기초생활수급자를 중심으로 장례를 지원했어요. 그러다 2015년부터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시작하면서 공공의 영역으로 한발 들어섰어요. 공영장례가 없을 당시에는 무연고자 장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위적인 제안과 호소에 집중했다면, 서울시 조례가 만들어지고 공영장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은 ‘나눔과나눔’이라는 민간기관이 공영장례를 어떻게 잘 실현할 수 있을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 서울 말고 다른 지방에서는 공영장례가 이뤄지고 있나요?

 

부산에서는 조례가 만들어지고, 올해 김해시에서도 공영장례조례가 제정되고 지원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실 2013년, 서울 서대문구에서도 저소득층 시민을 위한 '두레'라는 장례 제도를 만들어서 이미 장례를 지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공무원 한 분이 열심히 일하다 순환보직으로 다른 부서로 옮긴 뒤에는 사실상 없어졌어요. 마찬가지로 서울시도 조례가 있어도 매년 서울시가 위탁 주는 의전업체가 바뀔 수 있는 구조에요. 내년에 의전업체가 바뀌면 완전히 새로울 테니 저희가 상담센터로서 업무 협조를 요청할 거예요. 따라서 현재 ‘나눔과나눔’의 핵심 기능은, 설령 서울 시청의 공무원이 바뀌어도, 25개 구청의 공무원이 바뀌어도, 공영장례 의전업체가 바뀌어도 ‘나눔과나눔’이 중심을 잡고 계속 공영장례 시스템을 움직일 수 있는 중간 기관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 작년에 비마이너에서 주최한 ‘무연고자 토론회’에서 동자동 쪽방 주민 김정호 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나눔과나눔’에서 장례를 치를 때는 예를 갖추고 조문객이 충분히 대기실에서 이야기할 시간도 주었는데, 공영장례로 제도화되고 나서는 그렇지 않다”고요.

‘장례를 계약 관계로 만들어 놨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신 거예요. 본래 장례의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거죠. 특히 무연고자의 장례는 어떤 사람들이 오고,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가 주요하게 작동해요. 그런데 계약관계에서는 서울시가 해놓은 과업지시, 예컨대 ‘1번 상차림, 2번 고인 예식, 3번 산골’ 이런 식의 어떤 절차에 따라서만 진행하기 때문에 과업으로만 이해하는 거죠.  수의도 2019년부터 입히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나눔과나눔’은 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고민해요.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처음 시작하고 3년 동안은 서울시에 제도화하라고 주장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제도화됐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장례가 되는 건 아니고 민간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2019년에 서울시에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를 제안했어요. 우리에게 돈 안 줘도 되니까 상담센터의 역할을 하겠다고요.

 

- 그럼 무연고 사망자 장례 상담센터를 서울시 재정 지원 없이 하는 건가요?

 

서울시로부터 대표전화인 ‘1688-3412’ 전화비만 지원받아요. 직원은 총 세 명인데 지금 한 분 출산휴가 가시고, 실제로 전화는 저 혼자 받죠.(웃음)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가 되면서 한 분이 퇴사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과중한 업무에요. 25개의 구청과 시민들이 상담센터로 전화하고, 장례 업무도 진행 되다 보니 과부하가 걸리는 거죠. 게다가 무연고 사망 자체도 증가했어요. 그럼에도 이 상담센터도 3년 정도 운영하다 보면 방향이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2011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장례 지원해 봤던 경험과 2015년부터 3년 동안의 무연고자에 대한 장례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공영장례를 현실화시키고 있죠. 이 방식을 서울시가 그대로 가져가서 지금 운영하는 거예요. 그러면 상담센터도 내후년까지 3년 정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운영하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 내년에도 ‘나눔과나눔’이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진행하게 되면 이 상담센터를 지속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희가 위탁받게 되면 재정적으로는 안정되겠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순간 과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에요. 저희는 올해 초, 공영장례 사업의 입찰을 고민하다가 결국 안 했어요. 2018년에 공영장례가 잘 진행되지 않는 걸 보면서 우리가 직접 무연고 사망자를 운구하고 장례를 치를까 생각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멈추게 된 계기는 입찰에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가 ‘그렇지, 쟤네 저거 하려고 했던 거야.’라고 할 것 같았어요. 고민 끝에 안 했는데 너무 잘한 판단 같아요. 공영장례의 본질은 ‘애도를 잘 하는 것’인데, 저희가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상담’이라고 판단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센터를 24시간 운영하고 있어요.

 

장례에는 시급성과 전문성이라는 특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금요일 일곱 시에 어떤 분이 돌아가셨어요. 담당 공무원들이 퇴근한 상황에서 공영장례가 지원될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저희와 먼저 상담해 본 결과, 공영장례의 요건이 될 것 같단 말이죠. 그러면 일단 월요일 아침으로 화장 및 장례 예약을 해 놓아요. 그다음 만일 담당 공무원이 공영장례가 안 된다고 하면 ‘나눔과나눔’이 지원하겠다고 해요. 돌아가신 분을 그냥 둘 순 없잖아요. 누군가는 지원하고 빨리 움직여야 하죠.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조치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요.

 

만일, 상담센터가 공공기관이 됐을 때는 형식적인 상담이 될까 걱정되죠. 지금도 전화 상담이 오면 한 시간이 훌쩍 가요. 장례 절차가 어렵고 복잡해서 많은 설명이 필요하니까요. 새벽 네 시에도 전화가 와요. 그런데 과연 상담센터가 공공 기관이 됐을 때 이러한 기능이 가능할까요? 장례에 있어 민간과 공공의 기능과 역할이 각각 어디까지인지가 제 끊임없는 고민이에요.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유골함과 위패를 들고 유택동산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 나눔과나눔
 

# 무연고 사망자 장례, 법은 그대로인데 지침만 수정해봤자… ‘법 개정 절실’ 

 

- 얼마 전 있었던 ‘홈리스 추모제’ 기고에서 정부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통계를 지적하며 “무연고 사망자가 2,549명이었다가 언제는 2,447명으로 발표하는데, 그럼 102명이 어디로 갔냐”고 하셨어요. 저는 마치 국가가 무연고 사망자를 '처리'하고 죽음 이후에 남은 흔적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련 기사 : 102명의 사망자는 어디로 갔을까, 오마이뉴스)

2014년에 처음으로 한 국회의원이 무연고 사망자의 통계를 발표한 뒤로 매년 무연고 사망자 통계가 발표되고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보건복지부에 자료를 요청해서 앞 다퉈 발표하는 것이죠. 처음 3~4년간은 무연고 사망자에 관한 통계가 의미있었다고 봤어요. 그런데 요즘은 의문이 들어요. 보건복지부는 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의원실에서 수치를 달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주는 거죠? 더군다나 보건복지부는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고민하지 않아요. 정부가 통계를 내는 의미는 분석을 통해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거 잖아요.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단 한 번도 그 통계의 의미를 분석해 본 적이 없어요. 여전히 숫자만 남아있고 거기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들어가요.

- 보건복지부는 10월 22일, 오히려 무연고 사망자가 증가하는 통계를 대면서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이나 유골 안치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겠다고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사법)’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 했어요. (12월 30일, 보건복지부는 국무회의에서 해당 시행령 개정이 의결되었다고 밝혔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재정적 문제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서울시에는 ‘무연고 추모의 집’이 있어요. 무연고자에 대한 공간을 마련하는 게 결코 쉽지는 않지만, 의지만 갖추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은 가능하지 않아요. 국립 화장장과 묘지가 거의 없어서 사설을 이용해야 해요. 여기에 10년 동안 계속 보관하면 다 지자체의 예산부담 인거에요. 그러니 지자체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보관 기간을 단축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는 결국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정책이죠.

- 장례식장은 대부분 사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공영장례 협조를 구하는 일이 어려울 거 같아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공영장례를 자주 치르는 것도 이 때문인데, 만일 공설장례식장이 많아진다면 어떨 것 같아요?


전혀 달라지죠. 예를 들면, ○○구에 소규모의 공설 장례식장이 만들어지고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기본적으로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예요. 장례에서 제일 중요한 건 병원비와 안치비 지불이에요. 만일, 의료비와 마지막 병원비가 긴급지원 되고 안치비가 감면된다면 어떨까요? 대신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장제급여가 지금과 같은 현금 지급이 아닌, 현물서비스가 되어야 해요. 유가족은 장제비의 금액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죠. 빈소를 마련하고 화장장과 운구까지 장제급여 하나로 다 된다면 좋죠.

-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 사망 시, 장례를 치르는 사람에게 장제급여 75만 원이 현금으로 제공되고 있죠?

여기서 75만 원은 후불이에요. 장례가 다 끝난 다음에 신청하면 그제야 나오는 거예요.

- 그 전에 돈이 없으면 어떻게 장례를 치러요?

 

당장 75만 원이 없으니까 장례를 포기하는 거예요. 그럼 누구는 ‘현금 없으면 신용카드 쓰면 되잖아?’라고 쉽게 이야기해요.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신용카드가 없어요. 신용카드가 있어도 정지됐거나 한도 초과거나. 게다가 신청한 사람은 돈 주고, 신청 안 한 사람은 돈 안 주는 구조에요. 몰라서 신청 못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지금의 장제급여 75만 원을 100만 원으로 늘린다고 해서 그 효과가 과연 25만 원만큼 인상할까요? 저는 없다고 봐요. 장제급여가 50만 원일 때가 있었어요. 75만원으로 오른 거예요. 그러면 오른 것만큼 효과가 있었을까요? 현장에서 체감한 바로는 아니예요. 75만 원이라는 완전히 불가능한 금액을 주고 장례 하라는 거죠.

 

-11월 4일, 보건복지부가 동거인이나 친구 등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밝혔어요. 그런데 법을 개정하기보다 지자체에 업무지침을 내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에 따른 변화가 있나요? (관련 기사 : 무연고사망자 장례 동거인·친구가 치를 수 있게 한다, 연합뉴스)


아직 없어요. 보건복지부나 지자체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발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봐요. 얼마 전, 어떤 분이 그 뉴스를 보고 상담센터로 연락을 하셨어요. 지인이 위독한데 장례를 할 수 있냐고 물었어요. 제가 그분께 방법을 알려줬어요. 일단은 구청 무연고자 담당자한테 가서 자기가 장례 할 수 있는지 확인 및 허락을 받고, 그 공무원을 통해서 병원에 공문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라고요. 법이 바뀌지 않았으니 병원 담당자들은 모르니까요. 병원에서는 가족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주지 않아 시신을 인수할 수 없어요. 사망 신고도 마찬가지예요. 가족 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아래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서 그 친인척이 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친인척이 없으면 사망 신고를 할 수가 없어요. 

 

여전히 그 단계마다 절차적 장벽들이 많아요. 방침이 바뀌어도 법이 바뀐 게 아니잖아요. 만일 장사법 하나가 개정되면 관련된 법률들이 함께 바뀔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장사법에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시신 인수할 수 있다’라고 하면 가족관계등록법이 연관되어 바뀌겠죠. 그런데 법은 그대로고 지침만 바꾸면 장례를 하는 사람이 그 단계마다 계속 그 턱을 넘어야 하는 거예요.

또 다른 문제점은 지금의 공영장례제도는 무연고 사망자인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무연고 사망자가 되기 전에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장례를 치르고 싶어서 ‘나눔과나눔’에 장례를 의뢰하고 싶어도 안 돼요. 혈연을 넘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에게 장례를 부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안 돼요. 지침이 바뀌어도 사후자기결정권에 있어서는 반쪽짜리에도 못 미쳐요. 장례는 지침이 바뀌는 게 아니라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해요. 그래서 내년에는 공영장례를 위한 법 제도의 개선이 ‘나눔과나눔’의 주요한 과제에요. 

 

유택동산에서 박진옥 상임이사가 위패의 지방을 태우는 의식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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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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