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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번의 장례식, 423명의 무연고 사망자
[나눔과 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2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20년01월09일 11시21분 ]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함. 사진 나눔과 나눔
 

이름도 모르는 시신이 떠내려오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서 고인의 사진이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혹시라도 연고자나 고인과 생전에 각별한 사이였던 지인(쪽방촌 주민, 종교단체 등)이 장례에 참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장례에서 고인의 얼굴을 알 수도 없고, 심지어는 참석하는 이조차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 언론사의 기자는 무연고 장례를 ‘얼굴 없는 장례’, ‘상주 없는 장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경우보다도 더 마음 아픈 장례는 이름조차 모르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입니다. ‘성명불상’, ‘신원미상’, ‘불상’, ‘무명남’, ‘무명녀’ 등. 무연고 장례에서 만나게 되는 이름 모를 이의 마지막은 참으로 쓸쓸합니다.

 

2019년 12월 막바지 서울시 공영장례 수행업체의 운구차 뒷문이 열리고 두 개의 관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았습니다. 평범한 관 옆에 작은 관이 실렸습니다. 이름은 ‘불상’과 ‘불상 아기’였습니다. 두 시신은 각각 6월과 10월에 한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신원을 알 수 없으니 연고자를 찾지 못했고, 6개월과 2개월여 만에 합동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과학수사대는 아기의 신체는 생후 11개월 정도이지만, 치아 발달 정도는 18개월 정도로 추정되었습니다. 두 시신 모두 어떤 사연으로 한강에서 발견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날씨 속 서울시립승화원 화장로로 두 시신의 운구는 진행되었고, 장례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의 눈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고 싶었던 딸들

 

1928년생인 ㄱ 님은 연고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ㄱ 님의 장례에 참석한 지인분들은 ㄱ 님과 10년을 넘게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었어요.” 이미 고인이 된 지인분들의 아버지는 이웃에 홀로 사는 ㄱ 님을 잘 보살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며 각별히 서로를 챙겼던 인연은 대를 이었고, 딸들은 ㄱ 님을 정성껏 돌봤고 최근 5년 동안은 큰딸의 집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저희랑 함께 지내시는 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특별히 병치레도 없이 건강하셨어요. 최근에 기력이 떨어져 거의 거동을 못 하셨지만 돌아가시던 날도 저녁 잘 드시고 농담도 하셨어요.”

 

ㄱ 님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쉬시던 중 호흡곤란이 와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딸들은 가족처럼 살았으니 장례를 하려 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특기할 만한 병을 앓고 계시지 않은 탓에 사인은 ‘불상’이었는데, 사망진단서도 발급받지 못했습니다. 연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류 문제로 장례는 미뤄졌고, 결국 한 달이 지나서야 무연고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ㄱ 님을 잘 모셨지만 딸들은 자신들이 직접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무연고 사망자로 고인과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무연고 장례를 통한 따뜻한 나눔

 

2019년 1월 중순 무연고 사망자 ㄴ 님의 장례에 지인분이 참석했습니다. 두 분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ㄴ 님은 생전에 지인분을 친형님처럼 생각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ㄴ 님은 암에 걸렸고, 혹시라도 자신이 죽으면 장례를 치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지가 어려웠던 지인분은 “수급자가 죽으면 나라에서 돈이 나온다”라는 ㄴ 님의 말을 믿고 장례를 치러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ㄴ 님은 끝내 숨을 거두었고, 지인분은 병원에서 시신을 인수받고 장례식장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돈이 나온다는 고인의 말은 사실과 달랐고(기초생활수급자 장제비는 75만 원), 혈연관계가 아니었던 지인분은 하루 장례로 발생한 230만 원을 장례식장에 지급하지 못하게 되어 ㄴ 님은 무연고 사망자 확정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지인분은 수급비를 받으면 몇 달이 되더라도 장례식장에 조금씩 갚아나가기로 약속했다고 했습니다.

 

2019년 서울시의 공영장례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기관인 나눔과나눔에 많은 언론사들로부터 취재 요청이 줄을 이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취재 열기는 뜨거웠고, 한 언론사는 기획연재기사에 ㄴ 님의 사연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은 한 독자분께서 나눔과나눔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독자분은 기초생활수급비로 ㄴ 님의 장례비를 갚아나가고 있다는 사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아직 갚지 못한 나머지 비용을 나눔과나눔에 후원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독자분의 따뜻한 마음을 ㄴ 님의 지인분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곧 후원금을 전달해드렸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통해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한 후원자의 나눔은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만들었습니다.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한 아들 그리고 어머니. 무연고 사망자가 된 모자의 유골함 앞에서 종교단체의 추모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나눔과 나눔
 

누가 당신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12월 초 서울시의 한 지자체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공문을 받았습니다. 성씨도,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거의 30년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11월 중순의 어느 날 거주하던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망 발견 날짜와 사망 장소는 같았습니다. 시체검안서에는 병을 오래 앓아온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적혀있었습니다.

 

‘간병살인.’

 

어머니는 파킨슨병을 오랫동안 앓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몸에 떨리다 서서히 마비 증세를 보이고 점차 우울증에 치매까지 이어지는 난치병. 어머니와 아들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려운 형편이었고, 수년간 방 안에 누운 어머니를 간호하던 아들은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의 시체검안서에는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삶의 희망이 사라지고 아들은 끝내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스스로도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에겐 연고자가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할 처지가 아니어서 결국 어머니와 아들은 한날한시에 무연고 사망자로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삶을 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모자의 시신이 화로에 들어가는 장면은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가혹한 운명의 현장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과연 누가 당신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423명의 무연고 사망자를 떠나보내며

 

2019년 한 해 동안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기관인 나눔과나눔은 240번의 장례식을 치렀고, 423명의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이는 188회, 362명이었던 전해(2018년) 대비 장례식은 52회, 무연고 사망자 61명이 증가했습니다.

 

2018년 5월부터 서울시 공영장례가 시행되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렀고, 2019년에는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 사망자까지 그 대상으로 범위를 확대하여 안정적으로 장례를 치러왔습니다. 공영장례 수행업체로 선정된 의전업체는 모든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 염습과 수의 착용에 정성을 다했고,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기관으로서 서울시 25개 구청 및 복지단체, 장례식장, 연고자 및 지인들과의 상담을 통해 장례 일정과 방식, 장례 참여 방법 등을 안내했고, 의전업체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구축하여 고인과의 마지막 동행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많은 종교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무연고 장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이런 사례들을 언론 등에 홍보하여 많은 시민들이 무연고 사망자에게 관심을 갖는 데 기여했습니다.

 

서울시가 광역단체 최초로 공영장례를 시행하여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가족과 지인 등이 장례를 치르지 못해 무연고 사망자가 된 망자들의 장례를 치름으로써 국가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습니다. 물론 장례를 진행하면서 따르는 미비점은 존재했습니다. 서울시의 의지와는 달리 동주민센터까지 지자체 차원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공영장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연고자나 지인들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않거나 공영장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임에도 누락되는 등 시행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숙제로 남았습니다. 새로운 2020년에는 이런 점들을 보완하여 공영장례로서 많은 분들이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제도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서울시 공영장례에 고인의 조카의 가족이 참여하여 함께 장례를 치르고 있다. 사진 나눔과 나눔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 12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병철, 신영철, 이봉순, 천진영, 김현숙, 박제성, 오판용, 서재영, 박원순, 박창기, 송석강, 오은석, 김영철, 김재성, 장금수, 김선휘, 김영현, 최진원, 허영선, 유영림

 

- 12월 무연고 사망자
 

리송휴, 김명진, 나승옥, 최영달, 김창근, 이상업, 강석웅, 김민식,정옥희, 유세진, 신영식, 윤담호, 김OO, 이OO, 이OO, 이OO, 주명덕, 김선용, 김희진, 민경민, 이춘길, 불상, 불상아기, 박춘성, 윤선로, 김영일, 유천덕, 정영순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마흔여덟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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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활동가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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