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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대표의 발언이 답답한 네 가지 이유
“선천적 장애인은 후천적 장애인보다 의지가 약해” 논란 일파만파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 서열화하고… 발언의 네 가지 문제점
등록일 [ 2020년01월16일 15시19분 ]

2019년 12월 26일,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인재영입 1호’로 발탁한 최혜영 교수. 옆에는 1년 전에도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이해찬 대표가 앉아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2020년 1월 15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대표는 21대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인재 영입 과정에서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던 중 인재영입 1호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를 언급했다. 이 대표는 최 교수가 역경 등을 이겨낸 인재라며 칭찬하고자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한 반면, 최혜영 교수와 같이 사고가 나서 (중도에) 장애인이 된 분들은 정상적인 삶에 대한 꿈을 갖고 있어 의지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이 대표의 짧은 발언 속에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장애 차별과 비하를 연상케 하는 이 대표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12월 28일,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행사에서도 “정치권에 와서 말하는 것을 보면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 정신장애인이 많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날 “물론 선천적인 장애인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분이 많아 저도 놀랄 때가 있다. 그런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 이라는 발언을 하던 중 그 자리에서 사과하기도 했다. 지난 1년여간 이해찬 당대표의 장애인 비하 주요 발언을 정리해보면 아래의 세 가지로 함축할 수 있다.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
“정치권에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 정신장애인이 많다.”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다.”

 

가장 어이없는 점은 이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이 민주당 내 장애인위원회 행사 축사 또는 총선 예비후보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즉, 이 대표는 민주당 내 예비 정치인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장애인 당사자를 앞에 두고 이와 같은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위 발언 중 최초 한 번은 말실수라고 하더라도, 두 번째부터는 그 사람의 생각인 셈이고, 세 번째부터는 다분히 고의적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준이다.

 

특히 어제(15일) 언급한 세 번째 발언은 위 세 발언 중에서도 가장 차별적이라 느껴지는데, 장애에 관한 담론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이해찬 의원의 발언을 논리 순서에 맞게 도식화하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 도식화
 

이 도식은 15일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방송된 이 대표의 문제 발언을 토대로 한다. 이 대표의 발언 원문은 아래와 같다.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의지가 좀 약하다…(반면)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해 꿈이 있어서 그분들이 더 의지가 강하단 얘기를 심리학자한테 들었다. (최 교수와) 대화를 해보니까 의지도 강하면서 선하다. 그 역경을 이겨내고 자기가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으로 전환을 시킨 것 아니냐. 보통내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네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1. 이분법적 사고: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

 

이 대표는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 개념을 통해 장애인의 의지, 역경을 이겨내는 태도, 선함 등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것인데, 과연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가 현실적으로 명확히 나누어지는지 모를뿐더러,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 여부가 의지와 역경을 이겨내는 태도, 선함과 같은 심적 자질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유의한지에 관한 문제가 있다.

 

먼저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의 모호성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장애인 중에는 태어나는 그 순간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 즉 장애가 선천적으로 잠복해있다가 발생한 것인지, 후천적으로 장애를 유발하는 환경에 노출되면서 발생한 것인지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다. 예컨대 나의 경우, 척수공동증이라는 척수에 구멍이 발생하는 증상으로 인해 허리가 휘고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생후 10개월에 발생한 나의 장애는 곧 서른을 앞둔 아직까지 의사의 잘못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지, 척수의 발생 과정에서 선천적인 결함으로 발생한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하는 채로 살아가고 있다. 이를 밝혀내기 위해 법정까지 서 보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의 장애가 선천적 장애인지 후천적 장애인지 밝혀내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의 경계에 있는 나의 장애는 무엇인가. 내가 선천적인 장애인도, 후천적인 장애인도 아니라면, 내 의지와 역경을 이겨내는 태도, 선함은 과연 어떻게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는가? 선천과 후천으로 밝혀낼 수 없는 장애의 원인은 단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많은 장애인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인데, 우리의 의지와 선함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대표의 이분법적 사고는 겉보기에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라는 용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장애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장애인의 불투명한 삶, 복잡한 장애의 기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이들만이 주장할 수 있는 이분법이다. 참고로, 2017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원인 불명의 장애인이 5.4%로, 이는 자신이 선천적 장애인이라고 응답한 수준(5.1%)보다 더 많은 수준이다. 상당수의 장애인은 자신이 왜 장애를 갖게 됐는지 모르는 채로 선천과 후천 사이의 어떤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가 장애인의 의지, 역경을 이겨내는 태도, 선함을 결정한다고 바라보는 이 대표의 발언이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어느 정도 정당화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한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사고 등으로 인하여 후천적인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이 88.1%로, 선천적 장애(5.1%) 대비 16배가량 많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00명 중 88명은 후천적 장애인이고, 오직 5명이 선천적 장애인인 셈이다. 즉, 선천적 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극소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의 대표가 후천적 장애인은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선천적 장애인은 “좀 약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가뜩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한 선천적 장애인을 ‘더 약한 의지를 지닌 존재'로 환원하여 이들에 대한 상대적 차별을 더불어 정당화하는 셈이 된다.

 

2. 정상성에 대한 환상

 

이 대표의 발언 중 두 번째 문제는 “정상인”의 삶이 기준이 된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이었던 사람과 달리, 최 교수와 같이 중도로 장애인이 된 경우 정상적인 삶에 대한 꿈이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유아 시절부터 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정상인의 삶을 꿈꾸지 못하지만, “정상인”으로 살아가던 중 중도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정상인으로 살아보았기 때문에 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논리적 정합성을 떠나, 우리는 과연 장애를 지닌 유아와 아동들이 삶을 이루고자 하는 꿈에는 정상적인 삶이 기대되지 않는다고 이를 격하할 수 있는가? 설령 “정상인”이 되려는 꿈을 꾸지 않더라도, 장애와 함께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써 행복하게 꾸려나가려는 각자의 꿈을 지닌 장애인들의 꿈에 대체 무슨 우열의 문제가 있는 것인가. 대체 언제부터 정상성이 참된 꿈을 이끌어낸다는 전제가 되었는가. 아니, “정상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장애인의 꿈이 되어야만 하는가?

 

3. 위계화된 의지

 

세 번째 문제는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 여부에 따라 더 강한 의지와 더 약한 의지가 위계적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선천적 장애인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이어서 좀 약한 의지를 갖고 있는 반면, 후천적 장애인은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어서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았는데, 어떻게 장애 원인에 따라 생의 의지가 결정될 수 있는가. 이 대표에게 묻고 싶다. 수많은 선천적 장애인이 유전적 이유로 죽지 않고자 수술실 앞에서 보이는 생의 의지는 어떤 의지인가. 더 강한 의지인가, 더 약한 의지인가? 반대로, 수많은 후천적 장애인이 사고를 겪은 뒤 달라진 자신의 신체를 낯설어하고 집 안에서 우울증을 겪거나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더 강한 의지인가, 더 약한 의지인가? 

 

장애 당사자로서 이 발언은 너무 슬픈 말이다. 자기 삶에 대한 의지는 한낱 장애 원인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당연할뿐더러, 수많은 억압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장애인들이 심적 의지를 기준으로 ‘강하고 약한’ 정도로 서열 정리가 된다는 점은 너무도 애통하다.

 

그뿐만 아니라, 의지를 위계적으로 파악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관심법이 없는 한, 당사자의 표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즉, 과연 무엇이 강한 의지인가, 약한 의지인가를 구분할 수 있으려면, 개개인의 의지가 필수적으로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사회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연 2020년 한국 사회의 모든 장애인은 개개인의 의지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조차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수많은 중증장애인, 시설에 갇혀 표현이 억압된 장애인들은 이 대표의 눈에는 ‘강한 의지’를 지닌 자로 지칭될 것인가, ‘약한 의지’를 지닌 자로 지칭될 것인가. 논리적 명제조차 될 수 없는 이 차별적인 위계화된 의지를 정당화하고자 심리학까지 운운하는 것이 참 어처구니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에서 또다시 망언을 했다. 이 대표가 “나도 몰랐는데 선천적 장애인은 후천적 장애인보다 상대적으로 (의지가) 약하데요”라고 발언하는 모습.

 

4. 역경 극복 신화

 

민주당에서 인재영입 1호로 최혜영 강동대 교수를 지목했을 때, 수많은 언론이 최 교수의 장애 극복에 집중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재영입 과정 중 조명된 장애 극복 서사가 민주당도, 장애인 당사자도 의도한 바 없는 기자들의 수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나 이 대표의 발언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이 대표가 “최 교수는 의지도 강하고, 선하다… 그 역경을 이겨내고… 보통내기가 아니다”라고 치켜세우면서 장애인의 극복 서사를 다시 한번 강조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와 살아간다. 자신의 장애로 인해 여러 사회의 불합리성, 초대받지 못함, 소외감 등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것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장애로 비롯된 자신의 역경을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무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곧 역경을 이겨낸 세상이라고 치환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존중받는 세상을 역경을 이겨낸 세상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장애인에게만 역경을 이겨내는 것을 기대하는가. 그런 삶을 살면 왜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칭송받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몸이 역경이 되었으며, 우리의 몸이 극복의 대상이 되었는가?

 

이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최 교수를 보며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는 태도였다. 과연 당내 최다선인 7선을 하고 30년 넘게 정치를 하는 동안, 장애인이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 차별을 감내해야만 했던 점,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하면서까지 이 자리에 겨우 나란히 앉았을 때 느껴지는 상대의 얼굴에 대한 정치인으로서 반성과 면목 없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직업으로서 민의를 대신하는 7선 국회의원으로서 일임했다면, 그래서 현재 한국 사회의 다수당의 대표라면, 당신과 마주한 장애인에 대해 ‘역경을 이겨냈다’는 한가로운 감상평보다, ‘하나의 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을 7선이나 한 자신이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에 관한 책임 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같은 날, 이 대표의 발언에 박용찬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삐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고 비판하였다. 자유한국당의 이 논평은 분석할 가치조차 없다. 장애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비판하고자 더 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최대의 모욕으로 ‘장애인’이 비유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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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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