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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보러 왔다가 한국 장애인운동에 반했어요”
[인터뷰] 서울IL센터에서 1년간 연수 마친 일본인 오시로 료 씨
“한국과 일본의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연결하는 사람이 될래요”
등록일 [ 2020년01월29일 12시05분 ]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광화문에 모인 인파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600여 명이 한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일본에서는 장애인들이 대규모 집회를 하지 않거든요. 한국 장애인들이 단결력도 세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인 오시로 료 씨(28세)가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서울IL센터)에서 연수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 28일이다. 지난 27일 그는 1년간의 서울 연수를 마치고 일본 오키나와로 돌아갔다. 앞선 21일, 그는 서울IL센터에서 연수보고회를 열고 그간의 생활을 발표했다. 보고회를 마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모두 한국어로 진행됐다.

 

일본인 오시로 료 씨가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1년간의 서울 연수를 마치고 27일 일본 오키나와로 돌아갔다. 지난 21일 서울IL센터에서 연수보고회를 열어 그간의 생활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연수 1년, 한국문화에서 한국장애인운동으로 관심사 넓어져

 

오시로 씨는 일본 더스킨사의 ‘사랑의 고리’ 공익재단의 ‘장애인 리더 육성 해외연수생’으로 선정돼 한국에 오게 됐다. ‘사랑의 고리’에서는 1981년부터 해외연수생을 선정하고 있는데, 아시아로 연수지를 선택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대부분 복지 선진국으로 여기는 북유럽을 선택한다. 그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개인적인 관심사 덕분이다.

 

“처음에는 트와이스, 한식, 그리고 한국의 전통 악기에 관심이 많았어요(웃음). 한국에 친한 친구도 살았고요.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루에 7시간씩 3~4년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유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어요. 그런데 외국인은 장애인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더스킨 해외연수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더스킨에서는 연수비, 생활비뿐 아니라 활동지원비(월 150시간가량)를 지원해줘요. 지인 소개로 서울IL센터에 인연이 닿아 오게 됐죠.”

 

그에게 한국 생활이 무엇보다 특별했던 것은 생애 첫 자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와서야 가족이 아닌 활동지원사에게 활동지원을 받았다. ‘선천성 다발성 관절구축증’인 그는 목욕, 옷 갈아입기, 화장실에서 대변보기 등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일본에서는 어머니의 지원을 받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장애를 가진 저를 낳은 것에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활동지원제도를 마다하고 본인이 손수 저의 활동지원을 했어요. 초·중·고는 특수학교에 다녔고, 대학에서는 장애학생 활동지원이 따로 있어요. 그래도 집에서는 계속 어머니가 활동지원사 역할을 했어요. 어머니도 많이 힘드셨겠지만, 사실 저도 많이 답답했어요. 방이 따로 있더라도 친구를 부를 수도 없고,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한국에서 혼자 살게 되니 너무 자유롭고 좋아요(웃음).”

 

그는 한국으로 오기 전 일본의 이루카IL센터에서 7개월간 동료상담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동료상담이 장애당사자끼리 고민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사실 아직 장애수용을 하지 못한 그에게는 IL센터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다 서울IL센터에서 동료상담 집중강좌와 장애인자립생활기술훈련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장애인과 교류를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여전히 100% 장애수용이 이뤄지지는 않았어요. 다만 예전보다는 나의 장애 자체를 인정하게 됐어요. 저는 늘 연애에 대해서 고민을 했거든요. 어떻게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늘 고심하고, 절망했어요. 자신감이 없었죠. 그런데 이곳에 있으면서 자신을 그 자체로 사랑하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차츰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이번 연수를 계기로 일본에서도 자립생활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또한 활동지원이 자립생활의 성패를 결정한다. 특히 ‘중증인정’이 중요하다. 중증인정이 되면 최대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중증인정을 받지 못하면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가사지원, 설거지, 빨래, 이동지원 등 세부적으로 나뉜 항목 이외에는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일본의 모든 장애인들은 ‘중증인정’을 받기 위해 지자체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는 한국의 ‘장애등급제 폐지’ 싸움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오시로 료 씨가 행진에 참여한 모습. 사진 서울IL센터


- “서울 중심부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장애인운동 인상적이에요”

 

서울IL센터에서 연수생활을 하면서 지난해 있었던 굵직한 장애인운동 투쟁에 참여한 것도 그에게는 좋은 경험이 됐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 촉구,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에 있던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폐지 촉구 농성장에도 함께 했다. 그는 지난 23일 서울역에서 열린 고 설요한 동료상담가 49재에 참여해 연대발언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집회 자체가 처음이라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장애등급제가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이 왜 문제인지 서울IL센터 박찬오 소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조금씩 수긍됐어요.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부가 장애인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서울 중심부에서 장애인들이 구호를 외치고, 행진하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에요. 일본도 70~80년대 장애인운동이 꽤 격렬했다고 해요. 하지만 최근에는 장애인들이 대규모 집회를 하거나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일이 드물어요. 오키나와는 미군기지 신설로 주민들이 반대 집회를 하기도 하지만, 도심 중심부에서 하지는 않아요. 일본은 장애인운동 방식도 한국과 차이가 있지만, 장애인 단체명도 느낌이 달라요. 일본은 이루카(돌고래), 미깡(귤) 등 귀엽고 친숙한 이름을 붙인다면, 한국은 ‘서울IL센터’처럼 지명을 넣거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처럼 의미심장해요. 개인적으로 한국식 이름 짓기가 마음에 듭니다(웃음).”

 

그는 한국의 2000년대 초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영상으로도 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일본의 70~80년대 장애인운동을 연상하게 했다. 그러나 처절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이동권은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 2박 3일간 오키나와에 다녀왔는데, ‘오키나와 휠체어 접근이 이렇게 좋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떠올려보면 일본에서는 음식점도, 거리도 편하게 다녔거든요. 오사카와 도쿄 같은 대도시는 시내버스의 90%가 저상버스이고, 오키나와도 그에 비해 작은 섬이지만 시내버스의 70%가 저상버스예요. 한국은 여전히 시내에도 저상버스가 적고,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식당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장애인이동권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에서 열린 ‘2019년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결의대회 및 장애인차별철폐 2020 총선연대 출범식’에 참석한 오시로 료 씨. 뒤에 국회의사당 지붕이 보인다. 사진 서울IL센터


- “한국 IL운동과 일본 IL운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는 그동안 일반 기업에서 일하는 걸 꿈꿨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 진로도 바뀌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장애인자립생활운동에 뛰어드는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오키나와 이루카IL센터에서 일할 예정이다. 그는 최근 오키나와의 장애 이슈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은 여전히 ‘분리교육’이 심한 편이에요. 최근 오키나와에서는 발달장애학생이 일반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일본은 여전히 고등학교 시험을 보고, 성적에 맞춰서 학교가 배정되거든요. 발달장애학생이 시험을 치르기 어려워서 통합학교로는 진학할 수 없었던 거죠. 저도 초등학교 입학할 때 구청에 일반학교 입학 상담을 했어요. 하지만 구청에서는 일반학교는 장애학생 지원을 할 수 없다, 즉 통합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포기했죠. 어머니는 ‘구청을 이길 수 없었다’라고 말씀하시곤 해요. 일본의 지자체 교육위원회와 정부의 생각이 바뀌지 않은 한 변화는 힘들어요. 일본에 가서 처음으로 할 일은 아마 장애학생 통합교육에 대한 권리 주장이 될 거예요.”

 

한국의 장애인운동처럼 하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달라도 장애인의 보편적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의 장애인운동이 표면적으로는 한국정부를 향하지만, 분명히 한국에 한정된 운동이 아니라 전 세계 장애인이 지닌 보편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매우 중요다고 봐요. 일본은 같은 장애유형이라도 개인별로 문제와 관심이 다르면 한목소리로 모이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현재 직면한 문제점이 없을 수 있지만, 정말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떻게 대응할지 모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일본 나름대로의 IL운동의 방향이 있죠. 일본으로 돌아가더라도 서울IL센터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IL운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가 한국과 일본의 IL운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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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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