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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랑 협의해도 기재부가 ‘노’하면 끝, ‘기재부 개혁’이 필요하다
[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등록일 [ 2020년02월06일 19시27분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과거 장애계가 각 부처 면담을 할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가 승인을 안 해준다.” 실제 정부 부처와 협의되더라도 기재부의 승인이 없으면 예산 확대는 어렵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중구에 있는 나라키움저동빌딩을 점거하고서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대대적인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건물주 기획재정부는 나와라”고 외쳤다.

 

지난해 7월 1일 시행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앞둔 인터뷰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를 어떻게 규정하고 적용하는가의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화”라면서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관계, 권력과 사회와 장애인과의 관계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이제 장애계는 등급제 폐지 이전과 이후의 역사로 기록될 것”) 즉,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통합과 참여를 향한 과정 중 하나인 것이다. 그 길목에 장애인 노동권, 탈시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 선언에도 이들의 투쟁 강도는 좀처럼 약화될 줄을 모른다. 오히려 핵심으로 파고들어 더욱 집요해졌다.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각 정부 부처는 예산을 편성하여 기재부에 올린다. 기재부는 부처 예산을 최종 조율하여 9월 초에 국회에 정부 예산안을 제출한다. 국회에서는 기재부가 제출한 정부 예산안을 바탕으로 다음 해 예산을 논의하는데 삭감은 할 수 있지만 증액을 위해서는 기재부 장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만약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를 보지 못해 국회가 파행되면, 애초에 기재부가 제출한 정부 예산안으로 내년도 예산은 확정된다. 즉, 국가 예산 편성의 꼭대기에 기재부가 있다.

 

정부 부처는 기재부 핑계를 대며 기재부의 뒤에 숨고, 기재부는 장애인 관련 예산은 우선순위에서 배제한다. 바로 그 기재부와의 싸움을 선포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만났다.

 

# ‘마중물의 투쟁’으로 만들어낸 3억 원의 예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

 

- 작년 7월 1일에 시행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전후로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서는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며 줄곧 기재부를 호출했습니다. 기재부가 건물주인 빌딩에서 농성도 했고요. 투쟁 강도가 주춤할 법도 한데 오히려 거세진 느낌입니다.

 

7월 이후부터가 ‘진짜 투쟁’의 시작이었죠. 그 시작이 7월 1일 잠수교 행진이었고요.

 

- 그 전의 투쟁들은요?

 

장애인운동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기 위한 ‘마중물의 투쟁’이었죠.

 

-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로 31년 만의 체계가 실제 변화를 맞이했죠. 장애학에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정책적으로도 수용되어 변하기 시작한 겁니다. 정책으로 보자면, 활동지원서비스의 종합조사표, 두 번째는 중증장애인 노동의 기준에 대한 변화, 세 번째는 탈시설이죠. 그리고 부양의무자 기준 문제는 장애인을 넘어선 가난한 이들의 과제이지만 장애쪽에서 보자면 소득 정책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고리와 연결되고요.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은 2006년 1945억 원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전년도인 2018년에는 2조 2213억 원으로, 12년 사이 2조 268억 원 증액됐다. ⓒ박경석
 

예산으로 보자면, 2006년도 보건복지부 장애인 정책국 예산이 일반회계로 1945억 원이었어요. 이때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았죠. 이게 2018년에는 2조 2213억 원이 됩니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2조 268억 원이 늘어난 거예요. 그리고 장애등급제 폐지가 시작된 2019년도에는 2조 7772억, 올해에는 3조 3100억 원이 됐죠. 2018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거의 1조가 늘었어요.

 

2020년 올해 예산 중에 활동지원이 45%, 소득(장애인연금)이 30.1%, 거주시설 예산이 17.9%예요. 활동지원은 2007년, 장애인연금은 2010년도에 만들어졌어요. 이러한 개인별 지원서비스가 현재 예산의 75%를 차지합니다. 전 이걸 ‘마중물의 예산’이라고 봐요. 그럼 도대체 얼마나 더 만들어내야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 이건 앞으로 어떤 전망을 가질 것인가, 가 핵심이죠. 이걸 위해 이제는 장애에 대한 개념, ‘기준 자체를 바꾸는’ 투쟁을 할 겁니다.

 

- 어떤 전망을 갖고 계신가요? 구체적인 투쟁 의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10년 후인 2030년에는 장애인 중심의 개인별 맞춤형 지원, 지역사회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가 가능해야 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장벽이 장애인거주시설이죠. 두 번째가 노동. 이 두 가지 문제의 큰 전선을 풀어야 합니다. 노동과 대비·대체되는 게 소득 보장인데 ‘중증장애인들에게 어려운 노동시킬 바에 소득 보장해주는 게 낫지 않냐’, ‘아니다, 중증장애인 기준에 맞게끔 노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두 가지 목소리가 있죠. 이는 서로 논쟁될 수 있는 지점인데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으로 가느냐, 아니면 ‘공공시민노동’에 대한 운동의 전망을 가지느냐에 대한 차이죠.
 
이런 차이들 속에서 지역사회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위해 장애인운동은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그러한 고민들 속에서 각각의 전장에서 지금 불을 지르고 있죠.

 

# 부처 투쟁에서 기재부 투쟁으로 옮겨간 이유는?

 

- 이러한 문제는 결국 예산 문제와 직결되죠. 그래서 작년에 그 예산의 키를 쥐고 있는 기재부를 타격하기 위해 기재부가 건물주인 나라키움저동빌딩에서 87일간 점거농성하기도 했어요. 과거엔 정부 부처를 많이 쫓아다녔는데 기재부로 대상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제도를 만드냐, 안 만드냐, 이건 부처의 문제가 강했죠. 제도가 새로 만들어지면 처음 1원에서 10원까지는 무조건 가요. 자연증가분이죠. 제도 처음 만들 때 이런 말이 있죠. ‘일단은 만들자, 그리고 가자.’ 일단 제도적 근거를 만들자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많은 모순들이 생겼죠. 활동지원 65세 연령제한, 활동지원 24시간 문제 같은…. 일정 정도의 틀은 만들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양을 확보해서 질적 변화를 가져야 해요. 양질의 변화의 시대를 맞이한 거죠. 그 양을 결정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기재부죠.

 

- 기재부 장관을 만나면 해결될까요?

 

관료 한두 명 만나서 해결될 문제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 전체가 이동해야지. 기준을 바꿔야죠.

 

- 그러면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기재부를 타격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죠.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는 힘이 있어야 기재부가 움직이죠. 그 핵심적인 것을 잡고 있는 게 기재부인 거죠. 바로 예산 문제.  

 

- 그런데 지난 1월 17일, 농성장을 철수했어요. 그 배경에는 기재부의 손배가압류 압박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 또한 이제까지 대꾸도 안 하던 기재부의 반응이라면 반응일까요.

 

기재부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속물들인가?(웃음) 내부 논의를 통해 장소에 갇혀 있기 보다는, 다시 전략적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가자고 결의해서 농성장은 일단 철수했어요. 2021년 예산 확보를 위해 각 부처 투쟁을 준비해야 하니깐요. 부처 투쟁 후에 다시 기재부 투쟁을 지속해야지요.

 

- 그래서 지난 1월 28일 고용노동청을 점거하신 건가요. (관련 기사 : 장애계, 또다시 서울노동청 점거 “이재갑 장관은 사과하라”)

 

네, 부처 투쟁 1호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문제예요. 이 문제 해결하고, 보건복지부 찾아가고, 그다음에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국토교통부 등 하나씩 우리 의제 가지고 싸울 겁니다. 그 싸움의 과정 중 하나죠.

 

박경석 대표가 인터뷰 중 답답함을 토로하며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부처랑 협의해도 기재부가 ‘노’하면 끝, ‘기재부 개혁’이 필요하다

 

- 결국 다시 기재부로 올 예정인데, 예산 문제는 ‘이 사회가 돈을 어디에 쓰는가’의 문제인데요. 정부는 장애인에게 왜 돈을 쓰지 않는 걸까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깐. 기재부는 경제 관료들잖아요. 그런 것(장애인)은 우선순위에서 부차적인 거예요.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약속한 거지, 현실적으로는 맞지 않다, 이런 이야길 해요.

 

- 사실 ‘장애인도 지역사회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런 선언은 투쟁의 힘으로 대통령이 말하게끔 할 수는 있는데, 그만큼의 예산을 끌어오는 것은 진짜 어려운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지향을 밝히는 문제와 이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경제 관료들과의 간격의 문제가 있죠.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선포하더라도 결론적으로 그들은 권력이 바뀌면 또 바뀌어요. 그런데 기재부 권력은 안 바뀌어. 그래서 그들을 마피아 중의 마피아, 돈줄 잡고 있는 마피아, ‘모피아’라고 하잖아요.
 
기재부가 갖고 있는 권력에 비하면 정치인들의 권력도 제가 판단하기엔 굉장히 한시적이에요. 기재부는 경제 분야에서 기득권자예요. 검찰 개혁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기재부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도록. 이런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기재부 개혁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데요. 좀더 설명을 부탁드려요.
 
직접 선거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 국회의원이면 이쪽에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부에서 내년도 예산을 짰는데 여야 합의가 안 돼서 국회를 통과 못 하면 기재부가 짠 정부 예산안 그대로 가요. 그래서 어떻게든 의회 권력은 법적으로 합의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 기재부 입장에서는 통과돼도 안 돼도 밑질 게 없거든. 자기가 올린 정부 예산 그대로 가니깐.

 

그런데 선출된 권력에 의해서 예산 논의를 할 때 만약 합의가 안 되면 2020년 예산을 못 쓴다, 미국처럼 셧다운해서 공무가 다 막히고 공무원 월급도 안 준다고 하면 기재부는 끝까지 합의하려고 노력하겠죠. 기재부가 가지고 있는 월등한 권력을 의회가 통제하는 거예요. 이걸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방안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기재부의 결정권은 너무 세잖아요. 대통령조차도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진 권력 집단이죠.

 

- 그러한 맥락에서 현재 전장연이 기재부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 사회 전반의 진보 진영의 싸움과도 연결될까요?

 

고립되어 있는 이 싸움들을 연결시키고 싶지만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지요. 각자 분산되고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기재부 때문에 피해받는 사람 많잖아요. 공공 쪽에도. KTX 파업도 기재부랑 협의가 안 되어서 일어났고. 부처랑 논의해도 기재부가 ‘노’하면 끝나요.

 

2019년 5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을 ‘긴급 현상수배’하는 대형 현수막을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 내걸었다. 사진 박승원
 

- 기재부는 ‘돈이 없다’는 이야길 참 많이 하죠. 실제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깐.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죠. 

 

- 그와 동시에 결국엔 없던 예산을 쓰는 거기 때문에 복지 예산 확대를 위해 결국 증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장애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기껏해야 5~6조예요. 증세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냐, 근본적 취지에서는 맞죠. 그런데 증세 없이는 모든 것이 안 된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거잖아요. 증세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고, 현재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그걸 양자택일의 개념으로 이야기할 순 없죠.

 

- 그렇군요. 지난 20여 년간 ‘마중물의 투쟁’을 했고 올해 ‘진짜 투쟁’이 시작된다고 하셨는데, 기재부 상대로 한 투쟁은 정말 쉽지 않아 보여요. 올해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지금까지의 마중물로 드디어 기준을 변화시켰어요. 이제 알고는 있지만 숨겨져 있었던 ‘진짜 사장’,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권력 집단에 대한 본격적 투쟁을 하지 않고서는 이 방향을 힘있게 갈 수 있는 추진력을 상실할 거라고 봐요. 지금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죠. 그러면 장애인들은 여전히 부모에게 죽임당하고, 시설에 갇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가겠죠. 이런 세월들을 더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끝낼 것인가, 그에 대한 결정은 투쟁이 결정할 수 있다고 봐요. 우선 4월 총선 대비 투쟁을 하고, 총선 이후에는 탈시설과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중심으로 구체적 투쟁을 고민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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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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