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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등록일 [ 2020년02월10일 19시30분 ]

우리사회는 장애인을 성적 주체로 보지 않는다. 무성적 존재, 혹은 일방적 피해자로 바라볼 뿐이다. 장애인은 사랑의 주체에서도 박탈된다. 이들의 사랑은 ‘불완전한 이들이 만들어낸 감동 스토리’로 소비된다. 사회는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연결하여 사유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를 한 사람의 삶의 서사 속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랑과 성과 욕망은 인간 관계의 자장 속에서 일어난다.

 

대만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 돌봄노동자, 활동가, 특수교사 등을 인터뷰하여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담은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강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을 펴냈다. 비마이너는 이 책을 매개로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발달장애인 어머니, 오랜 시간 발달장애여성의 성에 대해 고민해온 활동가의 글을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글을 통해 거세된 욕망의 언어가 한국에서도 섬세하게 피어오르길 기대한다. _ 편집자 주

 

①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_ 변재원


정확히 몇 살 때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섹스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섹스를 못 할 것이다”고 직설하지는 않았다. 다만 애인과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거나, 아기를 못 낳을 수도 있다고 돌려 말했다. 당시 엄마가 나에게 일찍이 섹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젠더 없는 삶’을 주입시킨 이유는 의료적 이유 같은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형태의 성교육이었다. 머지않아 사춘기에 이를 장애인 자녀가 서서히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욕망을 깨닫게 될 때, 그러다 아빠가 되는 것을 꿈꾸게 될 때, ‘섹스’가 무엇인지 자세히 물어보거나 기대할지도 모르니 미리 그 싹을 자르기 위했던 것이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지 못할 테고, 아기도 갖기 어려울 거야’라는 식으로 얘기함으로써 장애인 자녀의 성욕을 좌절시키고, 일찍이 성적 무기력함을 주입하고자 했다. 어릴 적 나는 기껏해야 다리를 절뚝이거나 허리가 비뚤게 휜 것이 내 불행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먼 훗날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는 사실을 엄마의 말을 통해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 또래의 친구들이 성관계와 야동(야한 동영상)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치 TV 속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수다를 떨듯 야동 이야기를 종종 했고, 그러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반 전체가 모두 이러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당시 얼마나 많은 남학생이 야동을 실제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10살이 넘어갈 때쯤 내 주변 대부분의 남학생이 야동의 의미를 알고 성관계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남녀가 분반되어 따로 학교생활을 하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반에서는 성관계와 더불어 더 자연스럽게 ‘탁탁이’ 또는 ‘딸딸이’라는 자위를 가리키는 은어가 쉼 없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천자오루 지음, 앙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 표지 이미지 ⓒ사계절출판사
 

이처럼 초등학생 때는 사랑의 행위가 곧 엄마와 아빠가 한 침대에 누워 성관계를 갖는 행위임을 깨닫는 시기였다면, 중학생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끼리 성관계를 갖지 않아도, 혼자서 자위하고 성욕을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년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곧 섹스라고 부름을, 섹스는 어떠한 육체적 행위임을, 섹스는 인류의 재생산 행위가 아니라 성욕에서 비롯된 본능적 행위임을,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섹스를 할 수도 있지만, 자위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을 매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교실에서 성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회자될 때 나는 흥분 대신 절망을 느끼곤 했다. 분명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게 ‘사랑을 나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 뜻이 곧 ‘섹스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섹스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남모를 무기력함과 절망을 느꼈다. 성적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어떠한 흥분을 느낄 수 없었고 사정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집에 돌아와서 방문을 잠가놓고 성기를 만지작거리기는 했지만, 이는 성적 흥분을 즐기기 위한 행위이기보다 또래 비장애인 남학생들이 경험한 것을 장애인인 나도 경험할 수 있는지 입증하기 위한 절박한 행위에 가까웠다. 성기를 위에서 아래로 흔드는 것이 ‘탁탁이’라고 하길래, 어설프게 따라 해보기도 했다. 자위행위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친구들과 똑같은 느낌으로 자위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 전부였다. 매 순간 자위행위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내 장애에 대한 두려움, 엄마의 조언이 들어맞았다는 사실 속 무기력함 뿐이었다. 청소년 시절, 또래의 모든 남학생이 성적 욕구를 자위를 통해 해소할 때,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친구에게 말할 때 나는 아무런 경험도 공유할 수 없었다. 장애인인 내게 성적 욕망은 중대한 신체적 결함을 확인케 만드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가까웠다.

 

성인이 되어 연애할 때까지 애인에게 나의 성적 결함을 따로 말하지 않았다. 뽀뽀하는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대뜸 “저기… 사실 나는 사정할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고백하기 싫었다. 연애 초기에 섹스 이야기를 하는 것, 내 사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분위기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가 스스로 남성이 아님을 밝히는 느낌이었고, 연애에 앞서 신체적 약자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연애 중 나는 섹스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섹스가 싫었다. 신체와 생식 행위를 드러내는 모든 활동이 부끄럽고 짜증 났다. 매번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돌려가며 섹스의 화두를 피했다. 그리고 관계를 피했다. 사정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비뚤어진 몸을 공유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완벽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한 무성애자는 아니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싶었고, 껴안고 싶었고, 입을 맞추고 싶었고, 혀를 나누고 싶었다. 분명 나는 성욕을 갖고 있었지만 서로 옷을 걸친 선에서의 관계, 상대방만 몸을 드러내는 방식에서의 관계 또는 나의 몸도 나의 사정 여부도 확인할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불투명한 관계만을 추구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는 치명적 결함을 지닌 장애인인 사실이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애인과 스킨십을 할 때도 번번이 ‘나는 장애인이야. 나는 관계도, 사정도 할 수 없어’와 같은 부모가 일러준 의학적 진단을 계속 되뇄고, 이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나를 집어삼키는 불안 속에서 관계를 계속 피하는 대신 가벼운 스킨십만을 즐기며 이것만으로 충분한 척, 격정적으로 즐기는 척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 애인과 서로의 감정이 깊어지면서 더 이상 피할래야 피할 수 없을 때 관계를 갖게 되었다. 사랑의 분위기 속 상대의 눈에 젖어 들어 순간에 몰입했을 때였다. 편안함 속에서 관계를 갖는 그 순간만큼은 나의 의학적 결함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깊은 사랑에 젖어 들었을 때 오래 지나지 않아 온몸이 떨리고 참을 수 없는 감정과 어느 신경의 찌릿거림을 느꼈다. 이윽고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허무함이 찾아왔고, 슬픔이 들이닥쳤다. 눈물이 나왔다. 내가 사랑을 나눌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고, 엄마의 성교육이 완전히 틀렸음을 스무 살이 넘어 알게 되었으며, 나의 모든 학창 시절 자위를 통해 경험한 것은 흥분이 아니라 강박임을 알게 되었고, 여태껏 깊은 무의식이 현재의 의식을 구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첫 사정의 해방 속 돌이켜 본 내 지난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 4년 차에 이르는 현재의 나는 잘 알고 있다. 십몇 년 전, 장애인 자녀를 처음 양육하면서 장애인과 관련한 어떤 지식도 경험도 없던 엄마가 나의 폭풍 같은 신체적 성장과 왕성한 정신적 호기심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너는 사랑을 나눌 수 없다’고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내 성과 사랑의 호기심을 억제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는 이러한 발언을 통해 내 모든 관계의 가능성을 일찍이 포기시키려 한 것일 수도 있다. 먼 훗날 애인에게 상처받지 않기를 일찍이 훈련시킨 것일 수도, 사랑 따위 포기함으로써 타인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극단적인 성교육으로 인해 나의 청소년기는 성적 괴로움과 내 장애에 대한 혐오와 함께했다. 스스로 무성애를 강요했고, 사랑을 혐오했고, 때로는 죽음까지 고민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억압된 과거의 내가 너무 불쌍하고 슬프기는 하지만, 엄마의 전적인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엄마뿐만 아니라, 엄마를 제외한 성인 중 그 누구도 나에게 ‘장애인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유년 시절 장애인의 사랑과 성관계는 주변의 그 누구도 자세히 몰랐을뿐더러, 그 파장을 예상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2020년, 서평을 위해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천자오루 지음, 앙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을 읽으면서 지난 순간들이 떠올랐다.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성과 욕망을 스스로 거부해온 과거가 떠올랐고, 장애인 자녀의 성과 사랑을 부정하려 했던 엄마가 떠올랐다. 찢어질 듯 가슴이 아팠다.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피하고 부정해온 나와 내 부모의 세월과 달리, 장애인 자녀의 성과 사랑을 직시하려는 다른 이들의 기록을 읽으며 몇 번씩 울었다. 만일 이러한 책을 읽었더라면 자신의 성을 부정할 필요도, 자녀의 성을 부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엄마와 나는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그 어떤 책도, 기회도 없었다. 우리에게 배움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장애인과 그 가족 모두 막연한 좌절과 우울감에 젖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나와 같이 장애를 이유로 욕망을 부정하는 장애인, 나의 엄마와 같이 자녀의 장애를 마주하기 두려워서 욕망을 피하는 장애인의 부모가 있다면 섣불리 겁먹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무엇보다도 성교육의 세련된 기술이 아니라, 성을 마주하는 인간적 욕구, 성에 대한 진실적 추구 등 우리 사회가 덮어두고 피해오던 성과 사랑에 관한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의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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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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