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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되지 않는 통증
변재원의 뒤틀린 몸과 사회
‘아프다’는 내게 의사는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등록일 [ 2020년03월02일 21시48분 ]

변재원이 자신의 통증을 설명하기 위해 찍은 사진. 자동차 헤드라이트 주변이 사정없이 움푹 파여 있다. ⓒ변재원

 

- 통증의 시작은 대수롭지 않았다 

 

왼쪽 발끝에 커다란 모래추를 달아놓은 듯한 무거운 통증. 내 몸 전체를 통틀어 가장 명백하고 끈질기게 찾아오는 고통의 감각이다. 이 통증은 4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과 함께 시작됐다. 어느덧 4년째, 나는 이 지독한 통증과 함께 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앉았을 때 섰을 때보다 더 큰 통증을 느끼고, 왼쪽 하체의 둔부와 허리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을 때 엄지발가락을 조이는 듯한 신경통이 발생한다. 덧붙여 왼쪽 중지 손가락의 맨 위 마디를 긁을 때마다, 왼쪽 엄지발가락 끝 신경의 자극이 느껴진다.

 

나는 몇 시간이라도 이 통증의 연결지점이라던가, 인과관계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이 시간을 포함해서 4년째 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증의 계기가 된 교통사고의 순간-성균관대학교로 올라가는 셔틀버스가 부주의한 운전을 하여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 몸을 들이받고 버스 앞바퀴에 다리가 깔려 뭉개지는 압도의 순간-은 이제 희미한 기억만 남았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소한 듯 무겁고 괴로운 통증에 아직까지 내가 생생하게 집착하도록 만든다. 아마 10년 후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 통증을 물어보더라도, 나는 지금과 똑같이 진술할 것이다.

 

4년 전 교통사고 직후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중, 대학병원에서는 이 사소한 신경통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의료진은 그보다 앞서 당시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나의 폐 상태에 훨씬 심각함을 느끼고 있었으며, 오직 나의 원인불명의 폐렴 치료에 몰두하였다. 교통사고 직후 발생한 폐렴은 억지로라도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삽관을 해야 할 것인지와 관련한 문제였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수준의 중대한 문제였다. 호흡의 문제에 비해 발끝이 찌릿거리고 저린다거나, 발이 퉁퉁 부었다거나 하는 문제는 대수로운 것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단지 여느 교통사고 환자나 겪은 일시적 후유증의 한 종류와도 같았다. 교통사고 입원 치료가 열흘쯤 지났을까, 응급실 생활 속 급성폐렴이 일단락되었고, 나는 그대로 왼쪽 하체에 남아 있는 고통을 달고 퇴원 처리되었다.

 

- 우울의 근원, 진단되지 않는 통증

 

살아남은 것은 기쁘지만, 퇴원한 뒤에 더욱 우울했다. 내 새로운 통증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의사도 관심 갖고 진찰해주지 않았을뿐더러, 이 통증은 언제 낫는지 퇴원 수속을 다 밟을 때까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신경통은 도무지 어떤 ‘병명’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심각한 우울함에 잠겼다.

 

이 새로운 우울의 근원은 내가 ‘장애인’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장애로 진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내 몸이 이상한 몸인 줄 알고 있었다. 매일 매일 거울을 봐도 허리가 비뚤어졌다거나, 한쪽 복부가 팽창하여 튀어나왔다거나, 한쪽 다리가 앙상하다거나 이런 것들을 아침마다 샤워하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한 몸을 지니게 된 이유도 알고 있었다. 내 이상한 몸은 의학적 병명인 척수공동증(syringomyelia)에서 비롯되는 문제였다. 따라서 내 몸은 타인과는 의학적으로 다른 장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복잡한 병명만큼이나 복잡한 몸을 감내하고 살아야 한다는 운명이 논리적으로 납득되었다. 장애가 원인이 되어 결과로서 이상한 몸을 갖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상함에 대한 과학적 진단은 늘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런데 이번 신경통의 문제는 달랐다. 이상한 내 통증을 아무도 진단해주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의사도 이에 관해 관심 갖지 않을뿐더러, 어떤 병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무엇이 원인이라는 의학적 처방도 내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이상한 통증에 대해 알고 싶어 수십 건의 의학 논문을 읽었다. 심각한 척추측만증을 겪는 지체장애인이 교통사고로 척추에 한 번 더 무리가 갔을 때, 어떤 문제가 새로이 발생하는 건지 알고 싶었고, 의학적으로 진단받고 싶었다. 어느 논문을 읽다가 척추 중 L5-S1의 신경이 다쳤을 때 느껴지는 신경통 증상과 나의 현 증상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가령 왼손 중지를 만진다고 왼쪽 엄지 발끝에 자극이 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L5-S1의 신경 이상 증상인 것은 알겠으나, 이것만으로 내 통증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병원에 찾아갔다. 당시 나는 진단받기 위한 정신적 강박이 있었다. 치료가 되지 않을지언정, 내가 어떤 병을 새로이 지니게 되었는지, 확인받아야만 했다. 마음이 불안했고 초조했다. 세상에 없는 병을 내가 갖게 된 것이라면 어떡하지. 이러다가 죽는 걸까. 통증이 서서히 심각해지다가 몸이 불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걸까. 가족에게 말할 수 없었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하여 온갖 재활병원을 강박적으로 찾아다녔다. 그리고 온갖 소견을 들었다. “일시적인 신경 손상이다”부터 시작해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 아니겠느냐”, “허리디스크가 아니겠느냐”는 얘기를 무수히 들었다. 이처럼 숱한 진단들은 모자이크와도 같이 제각기 내 통증의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변재원이 자신의 통증을 설명하기 위해 찍은 사진. 자동차 페인팅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변재원
 
- ‘아프다’는 내게 의사는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나의 강박적인 병원 방문은 한 정형외과 원로교수의 호통을 맞이하면서 관두게 되었다. 노원구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에 내가 느끼는 증상을 빼곡히 적어 외래진료에 찾아갔더니, 그는 내게 “거짓말하지 마!”라며 호통을 쳤다. 어떻게 왼쪽 중지 손가락을 만졌을 뿐인데 발끝까지 찌릿거리냐는 것이다. 원로 의사는 내게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단호하게 표현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아무래도 내가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통증을 붙잡고 일인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나 의심이 되는가?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4년 전에 그 의사 앞에서 외쳐야 할 것을 지금 당신 앞에 외치고 싶다. 한이 될 것 같아 지면의 일부를 할애해서라도 외쳐야겠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 따라오는 내 통증은 인과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한들, 감각적으로 생생하다. 의학적으로 진단되지 않은 희미한 상식일 뿐, 강렬한 괴로움을 수반하는 체험이다.

 

진단되지 않은 내 몸에 대해 나란들 의심스럽지 않았을까?  혐오가 없었을까? 무수히 많았다. 아예 죽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다시 태어나서 가벼운 몸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누군가 약속해주기만 한다면, 그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죽을 용의가 있었다. 거짓말이 아님을 죽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의사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취급하는 것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느낌이었다.

 

- 생생한 몸에 느껴지는 통증,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병원에 발길을 끊은 지 3년이 흘렀다. 나는 지난 3년간, 설명되는 것보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크게 세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 계기는 평생을 불신하던 한의원에 가서 8,000원짜리 침을 여러 번 맞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의 연결된 통증이 희미해짐을 느꼈을 때, ‘내가 여지껏 원했던 것은 병명이 아니라 단지 내가 치료의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고, 여전히 치료될 수 있구나’라는 보호 속 안정감을 느꼈을 때 내 통증을 어렴풋이 인정하게 되었다. 두 번째 계기는, 언젠가 주변의 한 장애인이 원인불명의 근육 떨림과 발작을 일으키며 불안에 떨다가, 여러 대학병원을 돌고 돈 끝에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자마자 큰 처방 없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고 또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도 필요했던 것은 아마 과거의 나와 같이 설명 가능한 자신의 몸, 세상과 병원은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믿음이었던 것 같았다. 마지막 계기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현상학을 공부하며, 환상통을 겪는 환자의 사례를 읽을 때, 결국 통증에 대한 감각과 의식은 과학적 논리보다 더 앞서고 생생한 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의학의 객관성이 모든 것을 규명하지 못할지언정 내가 겪는 현상이 거짓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나는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느낌을 받지 않게 되었고 자살을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지금 정체불명의 신경통을 안고 사는 나의 생각은 더욱 간결해졌다. 통증의 기전이 의학적으로 진단되지 못할지언정, 분명히 존재하는 통증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 중 거짓은 없다. 우리의 통증은 과학적 진단보다 더 생생하게 남아있다.

 

자신의 몸을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통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진단의 강박을 버려야 한다. 의사의 말이 아닌 몸의 감각에 우선 귀 기울여야 한다. 설령, 통증이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므로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생생한 통증은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통증을 호소하는 당신은 절대 미치지 않았다. 설령 어느 의사도 당신의 통증에 관해 설명하기를 포기하거나, 약물 처방을 포기할지라도, 당신의 통증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통증은 신경생리학적 기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당신의 감각 속에서 주관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의학의 권위 앞에 움츠러들지 말자. 내 통증이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자책하지도 말자. 그리고, 우리의 몸이 과학적으로 진단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버려진 느낌을 받지 말자. 죽음을 떠올리지 말자. 우리의 몸은 진단되지 않을지언정 가장 생생한 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변재원의 뒤틀린 몸과 사회

 

초보 활동가. 투쟁의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에게 먹물 같다고, 인터뷰 현장에서는 시민들에게 말이 험하다고 놀림당하기 일쑤. 뒤틀린 몸과 말을 끝까지 지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소박한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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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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