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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등록일 [ 2020년03월10일 11시50분 ]

우리사회는 장애인을 성적 주체로 보지 않는다. 무성적 존재, 혹은 일방적 피해자로 바라볼 뿐이다. 장애인은 사랑의 주체에서도 박탈된다. 이들의 사랑은 ‘불완전한 이들이 만들어낸 감동 스토리’로 소비된다. 사회는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연결하여 사유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를 한 사람의 삶의 서사 속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랑과 성과 욕망은 인간 관계의 자장 속에서 일어난다.

 

대만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 돌봄노동자, 활동가, 특수교사 등을 인터뷰하여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담은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강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을 펴냈다. 비마이너는 이 책을 매개로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발달장애인 어머니, 오랜 시간 발달장애여성의 성에 대해 고민해온 활동가의 글을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글을 통해 거세된 욕망의 언어가 한국에서도 섬세하게 피어오르길 기대한다. _ 편집자 주

 

①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_ 변재원
②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는 방법 _ 홍성훈
③ 이제까지 ‘장애인의 성’은 ‘장애남성의 섹스’ 이야기였다 _ 김상희
④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내 아들, 발달장애인의 성 _ 정병은
⑤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 _ 이진희

 

성은 어려운 문제이자 금기다

 

천자오루의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사계절)은 ‘모든 장애인은 성적 존재다’라는 선언을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 ‘성’적인 주제가 정치적인 문제임을 ‘성은 어려운 문제이자 금기다’라는 말로 드러낸다. 성적 취약계층이라고 장애인만의 문제로 특수화시키는 전략 대신 성교육, 성폭력, 재생산권, 연애와 사랑, 우생학과 성서비스까지 성에 대한 포괄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다층적인 원인을 바라보게 한다. 한국 사회는 쾌락과 폭력, 금기와 향유 등의 이분법적 구획으로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통제해 왔다.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쾌락을 억제하는 규범화된 성교육이 정당화되는 이유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장애여성은 “욕망이 배제되었을 때만 그녀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대만의 현실이 여기 한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장애인 피해자다움을 갖추지 않으면, 지원 제도는 주춤하고 쾌락에 눈뜬 위험한 장애인이 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강제로 그어진 그 선 위에, 장애인이 경험한 삶과 사랑으로 그려진 지도를 올린다.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선명하게 살아날수록 억압과 차별의 선은 한층 도드라진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삶이 고립적으로 전시되게 하지 않고, 섹슈얼리티가 복잡한 인권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이 책의 등장으로 장애인 섹슈얼리티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반갑다. 장애여성운동은 20년 넘게 성폭력, 독립, 노동, 탈시설,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 성서비스와 성적 권리, 장애와 퀴어, 장애인 활동지원 현장과 사생활 등 장애와 젠더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몸과 섹슈얼리티가 인권의 주제임을 강조해 왔지만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장애인운동 내에서도 부차적 주제로 다루어졌다. 젠더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가 되기 어려운 현실이 젠더 권력의 문제임을 상기하며, 한국 사회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동료 소수자운동들의 궤적들과 함께 이 책이 읽히길 기대한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천자오루 지음, 앙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 표지 이미지 ⓒ사계절출판사

 

성적인 것과 성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권력을 비판하기

 

황리야와 복합장애가 있는 아들 위위의 경험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며 존중하는 관계 맺기의 좌절과 실패를 마주하게 한다. “또 한 번의 따뜻하고 상냥한 표현이 황리야를 버티게 했다. (중략) 이 여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고, 감히 더 깊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는 문장은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의 복잡한 역동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감각들은 자칫 모성의 위대함, 천사 같은 장애인이 주는 즐거움이란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방에서 문을 닫고 자위하는 아들 위위에 대해 ‘수치심은 타고난 능력인가’라는 질문에 황리야가 “아마 제가 아이 신체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라는 장면에서 둘의 관계는 오랜 시간 상호적으로 권리를 존중해 온 관계임을 보여준다.

 

보통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는 2차 성징, 연애와 자위에만 작동한다고(또는 작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은 성적일 수 있고 또 성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성적 권리가 여타 무수한 인간의 권리들과 구분되어 작동한다고 믿는 것이다. 성적인 것과 성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권력으로 규범을 익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장애인과 관계 맺는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 성적 권리를 실천할 역량은 인권의 상호성 속에서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동정과 관리는 이러한 역량을 낙후시킨다.

 

보호주의의 대가, 누가 치르는가?

 

발달장애인의 성적 취약성은 피해 예방과 성적 문제 행동 교정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천자오루는 대만의 장애인 성교육, 성폭력 현실과 쟁점을 던진다. 한 특수교사는 온몸에 만지지 말라는 빨간 스티커를 붙이는 성교육에 참여한 지적장애 학생에게 “선생님, 내 몸 어디는 만지게 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나서야 ‘만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단 걸 깨닫는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문제를 최소화하는 성교육은 권리 제한이 필연적이다. 폭력을 예방하는 교육은 과잉됐고, 쾌락을 다루는 방법은 금기한다. 자위는 발달장애남성의 욕망 해소와 성폭력 예방의 문제로 국한하여 설명된다. 고백하면 나는 한동안 “내 몸은 소중해. 안돼, 만지지 마” 성교육을 발달장애인에게 열심히 전했다. 어느 날 한 발달장애청소년의 “왜 내 몸 소중한데, 사람들이 자꾸 혼내요?”라는 질문이 보호주의의 또 다른 강력한 통제임을 알아차리게 했다. 장애인의 성교육은 당사자를 탓하기 쉽다. “정서적 연결과 유대 관계 형성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지만 올바른 관념을 이끌어 내려다 ‘학생이 멍청해서’라고 결과를 합리화하며 쌍방이 망하는 길을 걸어왔다. (중략) 사람이 가장 중요한 보조 도구인데, 우리 교육 현장에는 이 부분이 가장 부족하죠.” 성교육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성교육을 하는 사람의 이데올로기(Michael Gill, 2015)라고 한다. 그러나 보호주의의 대가인 권리침해는 결국 발달장애인이 치루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성교육이 ‘위험의 최소화, 안전과 보호’를 명분으로 성적 보수화와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문화적 통제 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 맺기를 위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성적 실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와 친밀함의 역동성은 제한적 언어로 설명되고 규정되어 의미와 가능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즉, 제도화된 성교육/성폭력예방교육이 그들의 삶과 관계, 섹슈얼리티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지/학습의 장애를 이유로 성적 규범화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현재의 교육은 발달장애인이란 통합적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삶을 반영하기 어렵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휠체어 탄 사람이 어떤 한 사람과 입을 맞추고 있다. 그 위에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여러가지 즐거움 중에는 성적인 즐거움도 있어요”라고 쓰여 있다. 제공 장애여성공감
 

성서비스, 성적 권리와 정의의 문제

 

2013년 타이완 최초의 성 자원봉사 단체인 손천사 창립자이며 성소수자 운동과 장애인운동에 참여하는 황즈젠은 말한다. “우리는 욕망을 이용해 장애인을 도와요. 그들이 욕망을 삶의 힘으로 바꿀 수 있게 격려하지요. 서비스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역량을 펼쳐 나가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하고요. 욕망이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왜 우리는 이렇게 성과 욕망을 두려워하죠?” 천자오루는 황즈젠의 의견에 대해 “손천사가 주장하는 건 장애인의 신체 해방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과 태도의 해방이다. 장애인들이 신체에 대한 자기 비하와 초조함을 던져버리고, 평상심을 가지고 성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다변화, 시도, 혁신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손천사가 추진하고자 하는 건 ‘성서비스’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 해석한다. 2010년 장애여성공감에서 장애인 성서비스 담론 연구를 위해 방문했던 독일의 ISBB(독일어 ‘장애인 자기결정 상담소’의 약자)도 비슷한 의견을 말했다. “성매매는 일회성으로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지만, 섹슈얼베그라이퉁*은 장애인이 자신의 성적 권리, 성적인 것과 관련한 가능성 혹은 관계성 등을 인식하도록 하고, 심리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독일어 표현으로 ‘성적 동행(accompany; escort)’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남성의 경우 ‘섹슈얼베글라이터(sexualbegleiter), 여성의 경우 섹슈얼리 베글라이터린(sexualbegleiterin)으로 지칭한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인 성서비스 꼭 그거만도 아닌, 꼭 그런것도 아닌」, 2010)

 

장애여성공감은 오랫동안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몸이 가지는 억압을 드러내는 시도를 통해 장애인과 다른 소수자의 섹슈얼리티의 억압이 교차하는 것에 주목해 왔다. 성적 권리를 취약하게 만드는 조건을 장애와 장애를 둘러싼 인종, 연령, 성별정체성, 성적 지향, 계급 등의 중층적인 구조적 차별의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성서비스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장애인의 성적 권리와 사회 정의의 문제는 얽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의 맥락으로 ‘성서비스=장애인의 성적권리’라는 도식이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제한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문제제기 했다. 또한 국가가 개입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의 성은 다시 치료나 재활 정책으로 의료화 될 수 있으며, 성매매를 둘러싼 복잡한 권력 관계에 관한 토론을 외면하고 제도화만을 주장하는 일부의 태도를 비판해왔다(이진희, 2019). 장애인이 특별히 성적 서비스를 공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집단인가?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예외적으로 두는 것은 복지인가, 차별인가? 성서비스는 자칫 섹슈얼리티가 구성되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차별적 구조를 지우고 장애인의 성에 대한 동정을 강화할 수 있다.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되는 것도 우려된다. 세금을 내고 소비함으로써 시민임을 강조하는 소비자주의가 성서비스라는 논쟁에 개입될 때 과연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진전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당사자의 욕망과 권리가 당사자의 결정권을 가장 우선시하는 당사자주의와 연결될 때 돌봄노동 현장의 과제들은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인가. 가령 성적 활동지원의 개념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가능할까와 같은 고민들이 그렇다. 돌봄노동 현장에서 마주하고 있는 질문들은 장애인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권, 활동지원사의 노동권을 존중하며 세밀하게 접근해 나가야 한다. 성서비스를 성적 권리라고 말하는 게으름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책에 소개된 장애인연대의 전 사무총장이자 입법위원인 왕릉장의 의견을 덧붙인다.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과 평가를 거쳐야만 자기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과연 장애인 가운데 섹스 대리인을 통해 그 목적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을까(중략) 장애인은 스스로 사회에서 멀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장애인을 특수화해서 타이완 전체에서 그들만 한정적으로 매춘을 할 수 있게 한다거나,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섹스 대리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인에 대한 가장 큰 차별입니다.”

 

“사회 전체의 성에 대한 태도, 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철저하게 전복되지 않는 한 문제가 끝까지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자위에서나 섹스에서나 중요한 것은 성적인 즐거움이 나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자유로운 성적 상상과 행동으로 내 몸의 느낌을 즐기는 거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제공 장애여성공감
 

2020년, 탈시설과 장애인의 재생산권리

 

2017년엔 한센인 강제 단종수술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한 대법원판결이 있었고, 작년 4월 11일 66년간 존치되던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을 시설에 격리하고 사생활을 빼앗고 강제 불임 시술,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 등의 재생산권리를 통제했던 역사는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국가는 우생학과 인구정책으로 장애와 질병을 가진 이들의 생명과 인권을 감금했던 역사를 사과하고, 탈시설과 재생산권리 보장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020년 천자오루가 말한 대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든 장애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한국 사회는 변화해야 할 것이 많다. 그 변화가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토론하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장애인 당사자와 주변인 가까이에서 경험을 듣는 관찰자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위치와 몫을 끝없이 돌아본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천자오루가 장애인의 삶을 통해 변화해 가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장애인 인권운동에 함께 하기 위해 내가 변화해야 할 몫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 참고

장애여성공감, 「장애인 성서비스 꼭 그거만도 아닌, 꼭 그런것도 아닌」, 2010
이진희, 「성적 시민권의 관점으로 본 발달장애인 성교육」,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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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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