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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지 대구, 정부 공백 메꾸는 장애인 활동가들
생필품 후원 관리부터 배달까지... 기존 업무 마비
주말 방문순회 이면에는 부족한 활동지원시간 문제도
등록일 [ 2020년03월10일 19시10분 ]

대구에서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확진자가 전체 확진자의 75.4%에 육박(10일 기준, 5,663명)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라, 보건당국의 역할을 장애인 단체가 대신 하고 있다. 장애인지역공동체(아래 장지공)를 비롯한 대구 장애인 활동가 60여 명은 대구 전역 코로나 문제에 대응하느라 기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그 숨 가쁜 현장을 지난 6, 7일 이틀간 동행했다.

 

양제희 질라라비야학 담당자가 6일 자립생활주택 이용자에게 보낼 식품을 상자에 정리하고 있다. 오전 11시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양 담당자는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물품을 정리했다. 사진 박승원


“차르르르르륵… 차르르르르륵…….”
 
휠체어 탑승장치가 있는 특장차량이 대구 지역 장애인 가구에 보낼 식품을 싣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대구 동구의 어느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황보경 질라라비장애인야학(아래 질라라비야학) 사무국장은 침착하게 차를 뒤로 빼더니 크게 원을 그리며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황 사무국장과 2인 1조로 식품배달을 하던 이강우 질라라비야학 팀장은 “물품 배달을 하다 보면 장애인이 사는 곳은 교통이 좋지 않거나, 주차할 곳이 없거나, 더러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있다”라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장애인에게 정부가 코로나19 안전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라고 전했다.

 

장애인지역공동체 활동가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회의실 앞 모니터에는 코로나19 현황이 있다. 이들은 매일 아침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 상황 등을 살펴본 뒤 그날 일정을 그때그때 짜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환 여기서함께센터 센터장, 황보경 질라라비야학 사무국장, 박지후 활동지원사업팀 코디네이터, 권미경 활동지원사업팀 코디네이터, 권수진 다릿돌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사진 박승원

 

- 혼자 있는 장애인에게 생쌀과 배추 보낸 정부… 발 벗고 나선 시민과 활동가
 
코로나19가 대구에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지난달 18일, 장지공은 SNS에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긴급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시민과 기업은 십시일반으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보내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받은 물품의 경우, 인증사진을 꼭 찍어서 보내야 하는데 양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까다로웠다.

 

같은 달 23일에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가운데 첫 확진자가 나왔고, 28일에는 자립생활주택 장애인 이용자 가운데 첫 확진자가 나왔다. 자가격리자들을 위한 시민들의 식품 후원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대구 남구청은 생활지원인 없이 홀로 자가격리된 장애인들에게 혼자서는 조리할 수 없는 생쌀과 배추를 보내기도 해 논란이 되었다.

 

조민제 장지공 사무국장은 “SNS에 후원 요청을 한 뒤로 관보다 시민과 기업에서 4~5배 넘는 물품을 보내주고 계신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라면서 “특히 시민들은 자신이 쓸 것도 모자랄 텐데 조금씩 보태서 후원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민과 헌신하는 활동가 미담으로 그칠 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할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6일 들어온 후원물품을 검수하는 발달사업팀 활동가들. 이날 손 소독제 1,300개, 마스크 100개, 비누 495개, 컵밥 119개, 즉석식품 90개가 들어왔다. 왼쪽부터 박정민 발달사업담당자, 박민주 발달사업팀 직무지도원. 사진 박승원

발달사업팀 활동가들이 6일 들어온 후원물품을 검수한 뒤 손 세정제를 손에 들고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특히, 기업에서 받은 물품은 인증사진 양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좀 더 신경을 써서 찍어야 했다. 왼쪽부터 김영주 발달사업팀 직무지도원, 박민주 발달사업팀 직무지도원, 박정민 발달사업담당자다. 사진 박승원


- 생필품 후원 관리부터 배달까지, 장애인 단체가 감당하는 현실

 

어느 날부터 장지공 활동가들의 하루 시작은 급변하는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하는 회의로 시작하게 되었다. 6일(금) 오전 11시 회의에서는 이날 식품배달을 활동가 5명이 두 개 조로 나눠 장애인 가구 15곳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중 한 개 조는 황 사무국장과 이 팀장이 맡아 동구(6곳), 북구(1곳), 서구(1곳) 순으로 총 8가구를 돌았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라 금·토·일 3일 치 분량이 종이상자에 담겼다. 장애가 있어 직접 조리할 수 없는 자가격리자에겐 즉석식품이나 간편식이 필요하다. 이런 음식은 유통기한이 짧아 수시로 배달에 나서야 하는데, 문제는 업무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김밥, 빵 같은 음식이 후원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그날 바로 배달에 나서야 한다. 배달할 때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대면 접촉은 하지 않고 있어, 당사자에게 연락한 뒤 문 앞에 두고 간다.

 

코로나19 사태로 물품 취합, 관리, 배달 업무 총괄을 맡은 황 사무국장은 본업인 야학 업무를 전혀 하지 못해 걱정이 크다. 그는 “코로나19로 야학도 2월 20일부터 3월 20일까지 휴교를 결정했다”라면서 “그사이에 수업 준비뿐 아니라 올해 관련 사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사실상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배달업무를 마칠 즈음 시계 침은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황보경 질라라비야학 사무국장이 배달할 식품을 특장차에 싣고 운전대를 잡았다. 백미러에 황 사무국장이 비친 모습. 사진 박승원

이강우 질라라비야학 팀장이 식품을 들고 자립생활주택에 배달하는 모습. 대면접촉을 하지 않고 있어, 당사자에게 연락한 뒤 배달식품은 문 앞에 두고 갔다. 사진 박승원


- 주말에도 쉴 틈 없는 활동가들, 자립주택 순회 이면에는 활동지원 공백 있어
 
이튿날 7일 아침 9시 반, 토요일에도 장지공 사무실에는 다시 형광등이 켜졌다.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자립생활주택 장애인 이용자들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발달장애인이어서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왜 당분간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지도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다릿돌센터)에서 관리하는 자립생활주택은 9가구로 총 15명이 산다. 그 가운데 한 명은 확진 판정을 받고 2월 29일 상주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로 인해 현재 14명이 자립주택에 있으나 그중 한 명은 확진자와 함께 살았던 사람이어서 자가격리 중이다. 발달장애인은 생활지원이 필요해 홀로 자가격리가 어렵지만 이를 위한 정부 대책은 현재 부재하다. 이 때문에 비장애인 활동가 한 명이 동행격리를 자처했다.

 

7일, 노진영 활동가가 출근하자마자 선별진료소에 연락했다. 자립생활주택 입주자 가운데 한 분이 아직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 박승원

순회방문을 하는 다릿돌센터 활동가가 어느 자립생활주택 1층에서 활동지원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효림 다릿돌센터 활동가, 노진영 다릿돌센터 활동가. 사진 박승원

 

추적추적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그렇다고 순회를 미룰 수는 없었다. 토요일 당직으로 나온 다릿돌센터 노진영·이효림 활동가는 이날 일곱 가구를 방문했다. 이들은 각 가정을 돌며 자립생활주택마다 마련한 체온계로 발열 체크를 했다. 가정마다 들어갔다 나오는데 평균 30분~45분가량이 걸렸다. 청소뿐 아니라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날에는 가사지원도 활동가가 대신 메꿔야 한다.

 

노진영 활동가는 “자립생활주택 입주자 대부분 발달장애인이어서 하루 활동지원 시간이 3~4시간꼴이다. 그동안 활동지원이 비는 시간에 당사자분들은 야학에 오거나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라면서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재난상황에서 자가격리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활동지원사 없는 공백이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활동가들은 열 시부터 시작해 점심시간까지 네 가구를 돌았다.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찰나 연락이 왔다. 자가격리 중인 발달장애인의 양말이 다 떨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차에 준비해둔 검은 봉지에 양말을 챙기고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짬을 내서 점심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식당 문을 닫은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사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워야 했다. 그리고 자립생활주택 이용자에게 선물로 받은 사과 두 개를 몇 조각 입에 털어 넣고는 다시 순회 방문을 하러 문밖을 나섰다.

 

다릿돌센터 이효림·노진영 활동가가 다시 찾아간 어느 자립생활주택 엘리베이터에 오른 모습. 노 활동가 손에는 양말이 담긴 검은 봉지가 들려있고, 이 활동가는 그런 노 활동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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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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